렉서스 ES 300h, 갈 데까지 간 럭셔리 중형 하이브리드의 끝판왕
2016-04-19 16:24:20 글 임유신 객원기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에는 어디로 탈출해야 할까? ES300h는 이미 고급차이지만 고급화로 탈출구를 찾았다. ‘더 고급스럽다’는 의미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갈 데까지 갔다.’ ES 페이스리프트를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부정적인 뜻으로 그런 건 아니다. “고급차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고급차의 다음 모델에 대한 답은 뻔하다. ‘더 고급스럽게’ 만들면 된다. 여기서 ‘더’의 정도가 얼마만큼 변했느냐를 가늠하는 척도다. 그런데 ‘더’도 한계가 있다. 소재나 가격의 한계 때문에 무작정 고급스러움의 정도를 높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ES 300h 페이스리프트는 이전보다 확실히 고급스럽다. 더 이상 고급스럽게 만들기는 힘들어 보일 정도로 ‘갈 데까지’ 고급스러워졌다.
5,000만~6,000만원대 세단에서 이 이상 고급스럽게 만들기는 힘들어 보인다. 벌써부터 다음 세대 모델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정숙성과 부드러움을 브랜드 성격으로 삼던 렉서스는 더 이상의 변화를 주기 힘든 때에 역동성과 파격적인 디자인을 승부수로 내걸었다. 어느 정도 성과도 얻었다. 그리고 그 다음 승부수로 브랜드의 본질인 고급성을 들고나온 것으로 보인다.
스타일 변화는 페이스리프트인 만큼 그리 크지 않다. 헤드램프와 안개등, 범퍼의 형상이 일부 바뀌었고, 리어램프도 내부 그래픽에 변화를 줬다. 부담스럽게 입을 벌리고 있는 그릴도 모양을 다듬고 크기를 키웠다.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이미 익숙해져서 당황스럽지는 않다. 렉서스는 휠이 멋있지 않기로 정평이 나 있다. ES는 휠을 여러 개 준비했는데 모두 다 디자인이 괜찮게 나왔다. 휠이 차 디자인을 까먹을 일은 없어 보인다.
실내 구조와 레이아웃은 큰 변화가 없다. 스티어링휠의 형상이 바뀌고, 시프트레버가 부트타입으로 바뀌었다. 이런 부분이 변화의 대세는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전체적인 분위기다. 이전보다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고급 브랜드 모델이니 고급스러운 것은 당연한데, 그 정도가 더 강화됐다. 최고급 모델인 LS에 쓴다는 시마모쿠 우드트림을 비롯해 도어 스위치 패널 등에 고급 마감재를 쓰는 등 고급화에 공을 들였다. 좋게 보면 업그레이드고, 부정적으로 보면 페이스리프트 생색 낼 수 있는 부분이 소재 고급화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만족도가 더 높아졌으니 긍정적으로 봐도 좋다.
시프트레버는 부트타입으로 바뀌었다. 모양은 그냥저냥
특히 뒷좌석은 구성이 더 알차졌다. 우선 ES의 뒷좌석은 매우 넓다. 앞좌석에서 편하게 앉을 정도로 시트를 이동시켜도 뒤에는 무릎 공간에 주먹 두개 이상의 여유가 생긴다. 바닥 가운데도 거의 평평하다시피 해서 공간 여유감이 더 크다. 그리고 센터 암레스트에 열선과 공조기, 오디오, 선쉐이드 조절 스위치를 모아 놓아서 더욱 짜임새 있고 알차 보인다. 동승석 시트에도 전동 조절 스위치를 달아 뒷좌석 공간 확보에 편의성을 더했다. ES를 쇼퍼드리븐으로 타기에는 차급이나 성격을 생각할 때 무리가 있지만, 뒤에 앉은 사람은 쇼퍼드리븐카의 뒷좌석에 앉은 것 같은 여유와 기분을 충분히 느낄 만하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엔진룸이 뭔가 특이해 보인다
파워트레인은 그대로다. 바뀌지 않았어도 만족도는 여전히 높다. 디젤 세단이 대세인 이 때에도 ES 300h가 꾸준히 인기를 얻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6세대 ES는 2012년 9월 국내에 선보였는데, 3년 동안 1만1,000대가량 팔렸다. 그 중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이 80%를 차지한다. 수입차 판매 베스트셀러 10에도 심심찮게 이름을 올릴 정도로, ES 300h는 렉서스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의 대표 모델 역할을 해낸다.
헤드램프가 없다면 자동차인지 몰라볼 수도 있다. 기괴하다
엔진은 I4 2.5L 가솔린으로 158마력의 최고출력과 21.6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여기에 전기모터가 힘을 더해 시스템 출력은 203마력으로 올라간다. 변속기는 e-CVT다. 시동을 걸어도 조용하다. 액셀 페달에 발을 올리니 ‘지잉~’ 소리를 내며 미끄러진다. 하이브리드를 자주 접해서 이제 이런 반응이 신기하지 않다. 그만큼 익숙해졌다. 가속은 부드럽다. 액셀 페달을 깊게 밀면 전기모터가 힘을 더해 넉넉한 파워로 밀어붙인다. 순항 상태에 들어서면 엔진은 숨 고르기에 들어가고 모터만으로 움직인다. 서고 달리는 동안 배터리에는 수시로 에너지가 드나들고, 엔진과 모터는 서로의 역할 분담에 바쁘다.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 순식간에 이뤄지는데, 그 연결이 매우 자연스럽다.
실내는 조용하다. 렉서스의 명성 그대로다. 하지만 급가속할 때의 거친 엔진소리는 시끄럽다. 잘 다듬었다면 차의 가치가 더 올라갈 텐데 왠지 방치한 느낌이다. 그런 이용 행태가 별로 없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역동성과 정숙성 사이에서 고민하다 찾은 타협점인지도 모른다.
휠이 멋있어졌다. 휠이 전체 디자인을 깎아 먹을 일은 이제 없다
주행모드는 에코, 노멀, 스포츠로 나뉜다. 차이는 크지 않지만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구분은 된다. 스포츠 모드는 은근히 박력 있다. CVT는 자동변속기의 패턴을 모방했다. 수동변속할 때에는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무시해도 될 정도다.
ES 300h의 최고 강점은 아무래도 연비다. 공인연비는 16.4km/L로 경차보다 연비가 좋다. 그런데 하이브리드는 달릴 때 신경을 좀 써야 한다. 딱히 막 밟지는 않았지만, 의식적으로 엑셀 페달을 자주 밟으니 연비가 13km/L 정도 나온다. 여러 대가 같이 달릴 기회가 있었는데, 열에 여덟은 공인연비를 뛰어넘었고, 20km/L를 넘는 차도 여럿 있었다. 잘만 다루면 연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뒷좌석을 위한 배려. 은근히 쓸모 있다
ES는 하체를 손봤다고 한다. 역동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전반적인 하체 감각의 최적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승차감은 부드러운데 그 속에 강단이 느껴진다. 스티어링도 유연하지만 적절한 긴장감이 느껴져 방향을 틀 때 위화감이 덜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패밀리카 관점에서 봤을 때다. 전반적으로 주행이 부드러워서, 잡아 돌리는 차로 타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차를 사는 사람 중에 그렇게 탈 사람도 없지 않을까 싶다.
배터리를 잘 숨겨서 트렁크 공간을 최대한 살렸다
ES 300h는 고급차 중에서는 무난한 차다. 딱히 입이 벌어질 정도로 매력적이기보다는 별 생각 없이 좋다고 느껴지는 차다. 렉서스 차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페이스리프트는 다른 부분은 몰라도 고급화에 있어서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이 정도 ‘변화에 대한 인지’를 이끌어 낸 사실만으로도 페이스리프트는 성공작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