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로메오 4C 스파이더, 화끈한 경량 로드스터
2016-04-20 03:06:35 글 박영웅 편집장
흠잡을 곳 없는 퍼펙트한 주행성 대신 한 타임 늦게 회전 반응을 보이고 거친 엑셀링에 여지 없이 차체가 용트림하는 4C 스파이더지만 타면 탈수록 중독성 있는 고유의 매력이 다가온다
운전의 즐거움을 아는 이라면 가볍고 경쾌한 자동차가 지닌 매력을 잘 알 것이다. 무게가 덜 나가는 만큼 관성의 영향이 줄어들기에 연이어 구불거리는 도로를 롤러코스터처럼 돌파해나가는 묘미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뻥 뚫린 직선로를 대포알처럼 질주하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 여기에 루프까지 열어 시원한 개방감을 만끽할 수 있는 오픈 에어 드라이빙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눈치챘겠지만 경량 로드스터가 그 해법이다. 자동차 계보상 1962년 나온 로터스 엘란으로 대표되는 경량 로드스터는 컴팩트하고 가벼운 2시터 차체로 날렵한 몸놀림을 뽐낸다. 대부분의 경량 로드스터는 정통 스포츠카와 비교해 평범하기 그지 없는 파워트레인을 갖췄지만 다이어트한 차체 덕에 중, 저속 영역에서는 기동성이 수준급이다.
경쟁모델에 비해 호화롭기 그지 없는 실내
물론 단점도 있다. 작은 배기량의 스몰 엔진이 지닌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고속에서 가속력이 눈에 띄게 둔해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굽이진 도로를 중저속에서는 포뮬러 레이싱카 빰치게 잘 달리다가 직선로를 만나 스피드를 높이면 쭉 뻗어나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어찌 보면 넉넉한 사이즈의 엔진이 달린 준대형 세단보다 주행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혹자는 엔진 파워만 높이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업그레이드된 구동력 만큼 서스펜션, 타이어, 브레이크 등을 손봐야 하고 차체의 앞뒤 무게비도 다시 세팅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경량이 아닌 중량(?) 로드스터가 되기 마련이고 심지어는 생뚱맞은 GT카가 탄생 할 수도 있다.
탈착식 소프트톱을 얹었다
4C 스파이더는 기존 경량 로드스터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알파로메오의 야심작이다. 2015년 북미모터쇼에서 데뷔했는데 2013년 양산형이 공개된 4C 쿠페를 기초로 탈착식 소프트톱을 얹었다. 로터스의 자문을 받아 완성한 미드십 레이아웃의 차체는 2인승 콕핏을 가볍고 견고한 풀 카본 파이버로 구성하고 앞뒤에 알루미늄 프레임을 더했다. 또 보디 패널은 스틸보다 20% 가벼운 글라스 파이버 복합소재로 짜넣었다. 그 결과 4C 스파이더의 무게는 940kg(쿠페는 895kg)에 불과하다.
알파로메오가 1962년부터 활용해온 발로코(Balocco) 프루밍 그라운드에서 4C 스파이더를 시승했다. 참고로 발로코 프루밍 그라운드에는 5.75km 길이의 ‘알파’ 트랙을 중심으로 5.5㎢면적에 모두 120km 길이의 테스트 코스를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 FCA 그룹의 핵심 연구시설로 꼽힌다.
논 파워스티어링이지만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부담없다
1967년 처음 등장해 단 18대만 만들어진 33 스트라달레(Stradalle)를 모티브로 그려낸 4C 스파이더는 다이내믹하고 근육질적인 겉모습이 자극적이다. 카본 파이버 소재가 훤히 보이고 슬림한 버킷 시트가 눈길을 모으는 실내는 레이싱카 못지않은 공격적인 구성이다. 또 인스트루먼트 패널과 공조장치 등의 레이아웃은 페라리 F430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텅빈 깡통차에 오른 듯한 느낌을 주는 로터스 엑시지와 비교하면 4C 스파이더는 호화롭기 그지없다.
스티어링 휠을 움켜쥐고 스타트했다. 논 파워스티어링이라 팔에 힘을 주자 저절로 ‘윽’하는 신음이 터진다. 다행히 앞타이어의폭이 205mm에 불과해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별 부담없이 스티어링 조작이 가능하다. 오히려 스티어링의 파워 어시스트장치가 노면 저항을 걸러내는 일이 없어 원초적인 손맛이 즐거움을 준다.
1,750cc I4 터보 직분사 엔진은 최고출력 237마력(6,000rpm), 최대토크 35.7kg?m(2,200~4,250rpm)을 낸다. 여기에 듀얼클러치 방식 6단 자동변속기가 매치됐다. 제원상 0→100km/h 가속은 4.5초, 최고 시속은 257km로 정통 스포츠카로도 부족함 없다. 실제로 4C 스파이더의 마력당 차체무게 비는 4kg이 안 된다. 구형 포르쉐 911 카레라(4.2kg/마력)보다 앞선다.
아웃-인-아웃라인을 그리며 연석을 살짝 타고 넘을 때마다 엉덩방아를 찧는 느낌이다. 충격을 흡수하는 서스펜션이 없는 고-카트를 탄다고 할까. 칼로리 과다로 살짝(?) 늘어진 뱃살이 펄럭거린다. 4C 스파이더는 차체가 코너 바깥쪽으로 쏠리는 롤링도 거의 없다.
알파로메오 고유의 ‘DNA’ 드라이빙 셀렉터
워밍업 주행을 포함해 4랩 동안만 타볼 수 있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다이내믹’(Dynamic), ‘내추럴’(Natural), ‘어드밴스드 이피션트’(Advanced Efficient)로 나뉜 알파로메오 고유의 ‘DNA’ 드라이빙 셀렉터를 ‘D’로 젖히고 본격적인 어택에 나섰다.
스몰 엔진이지만 카랑카랑한 배기음이 터져 나온다. 한바탕 달리고자 인스트럭터가 모는 페이스카를 바싹 몰아세웠다. 기자의 전투력을 알아챘는지 인스트럭터가 스피드를 높여 저만큼 앞서 나간다. 스로틀을 활짝 열어 풀 파워로 페이스카의 뒤를 쫓았다. 시속 200km를 넘어서도 가속 토크 분출이 꾸준하다. 경량 로드스터 로터스 엑시지와 견주면 알파로메오 4C는 수퍼카다.
초기회전반응이 한 타임 늦다
코너 진입 전에 급제동하며 시프트 다운했다. ‘왕’, ‘왕’ 거리며 저단 기어가 물리는 순간 스티어링 휠을 감았다. 초기 회전 반응이 날카로운 편은 아니지만 프론트 타이어가 좀처럼 그립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코너 탈출 때 가속 페달을 한 포인트 빠르게 밟으면 맥퍼슨 스트럿 방식 리어 서스펜션에 끼워진 235/40R 18 타이어가 옆으로 미끄러지며 극적인 오버스티어를 연출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급가속에 나섰다. 맥박수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차체 꽁무니가 틀어지기를 몇 차례 겪으면서 4C 스파이더와 한 몸이 되기 시작한다. 흠잡을 곳 없는 퍼펙트한 주행성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타면 탈수록 이리저리 더 꺾어보고 싶은 중독성 있는 고유의 매력이 다가온다.
화려한 그래픽의 계기판
여담이지만 알파로메오는 4C 쿠페와 스파이더를 출시하며 카본 파이버 소재의 생산성을 고려해 연간 1,000대 한정 판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폭발적인 인기에 생산량을 3배 이상 키웠다. 충분히그럴만하다. 한 타임 늦게 회전 반응을 보이고 거친 엑셀링에 여지 없이 차체가 용트림하는 4C 스파이더는 깔끔한 핸들링 머신이 아니라 화끈하고 원초적인 스포츠카였다. 알파로메오의 본거지 이탈리아의 라틴계 민족처럼 아직도 한창 피가 끓고 있는 운전자라면 한번쯤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