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레니게이드, 하나쯤 있었으면 했던 바로 그 캐릭터
2016-05-03 10:22:21 글 민병권 기자
레니게이드는 지프의 새로운 막내지만 오프로드 성능은 막내가 아니다. 관건은 온로드와 도심에서의 매너다
전장을 누비던 지프의 적통자 랭글러. 하지만 덩치가 너무 커져 버린 나머지 도심은 물론 좁은 산길에서도 주춤거리기가 일쑤다. 어딜 가도 튀는 존재감은 좋다. 그러나 자유의 상징인 지프가 스스로 부풀린 몸집으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이라니. 콤팩트 SUV 시장을 겨냥한 컴패스/패트리어트 형제가 있긴 했지만 도회적인 느낌이 너무 강했다.
그래도 토종 미국 브랜드임을 생각하면 차체를 이보다 더 줄여 달라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는데, 유럽 토종 피아트와 가족이 되면서 의외의 해답이 나왔다. 피아트 플랫폼을 활용한 글로벌 시장용 서브-콤팩트급 지프의 탄생. 게다가 지프만의 특색을 오롯이 살려, 다른 어떤 경쟁 모델도 감히 언급하지 못했던 오프로드 주파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나섰다. 이것은 마치 마카로니 웨스턴 같다고나 할까? 지프지만 북미가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생산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아이러니하다.
엔진 힘은 충분히 좋다. 수치상으로는
국내 도입 엔진은 2.0L 터보 직분사 디젤과 2.4L 가솔린. 언뜻 떠오르는 것과는 달리 2.4L가 보급형이고 앞바퀴굴림만 있다. 주력은 앞바퀴굴림과 네바퀴굴림 두 가지 트림으로 나뉜 2.0L 디젤이다. 변속기는 모두 9단 자동. 레니게이드의 2.0 디젤은 엔진 출력과 토크 모두, 2.0L 디젤 엔진을 탑재한 미니 컨트리맨의 쿠퍼 D는 물론 쿠퍼 SD보다도 월등히 높다. 다만 빠르게 달리고자 할 때의 체감성능은 제원만큼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역전된 느낌이다.
다행히 와인딩에서는 미니 컨트리맨의 꽁무니를 제법 잘 쫓아간다. 유럽형 서스펜션 세팅을 적용해 온로드 주행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안정감과 핸들링 면에선 컨트리맨을 쫓지 못한다. 허둥지둥하는 듯 보이면서도 그럭저럭 실속은 있으니 기특할 뿐이다. 경쟁 모델들이 가지 못하는 오프로드에 뛰어들 수 있다는 장점을 생각하면 그 기특함은 배가 된다. 동급 최초 로우 레인지 기능과 지형 설정 시스템이 있어 간편히 험로를 즐길 수 있다.
상대적으로 껑충한 운전 자세는 SUV에 기대되는 장점을 잘 살린 모습이다. 천천히 다니면서 경치 구경할 때도 좋으라고 만든 게 SUV 아니었나. 뭘 그리 죽자고 달리나. 물론 이것은 도심용 차로 콤팩트 SUV가 각광 받는 이유에도 잘 들어맞는다. 동급에선 큰 덩치지만 차체를 가늠하기 쉽고 다루기가 용이하다. 박스 2개를 붙인 것 같은 차체는 공간 또한 넉넉하다. 시승차의 어두운 내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겉모습처럼 반항적이고 재미있는 요소 들을 끌어들인 실내 디자인은 자칫 치기 어리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깔끔 하게 잘 정리됐다. 구석구석 실용성도 좋은 편이다. 이 정도면 나이 든 이들이 콤팩트 SUV의 장점을 누리며 타기에도 손색없을 듯하다.
셀렉터레인은 오토, 스노, 샌드, 머드 모드로 나뉜다. 4WD LOW를 선택하면 20:1의 크롤 비를 얻을 수 있다
문득 생각난 지프 브랜드의 장점은 그것 이다. 설사 조금 작더라도, 오래되더라도, 값이 떨어지더라도, 사용자가 나이 들더라도, 체면 안 따지고, 남의 시선에 구애 받지 않고 탈 수 있는 차. 사진으로 보던 레니게이드의 모습은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면이 있어 내심 걱정이 됐었는데, 실물을 보니 색과 액세서리만 잘 고르면 되겠단 생각이다. 다만 여전히, 더 보수적으로 정통 지프의 느낌을 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전동 주차브레이크, 전동 슬라이딩과 수동탈착이 모두 가능한 선루프 등 은근 놀라운 사양들을 갖췄다
또 한 가지,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은 디젤 엔진의 정차 중 진동이다. 다행히 스타트 스톱 시스템이 있어 신경을 끄게 해주었지만 오래 타게 되면 어떨지 다시 체크해보고 싶은 부분이다. 대신 정속 주행 시엔 9단 변속기의 장점이 발휘돼 낮은 회전수를 유지할 수 있었고, 컨트리맨 대비 아늑함이 부각됐다. 사양도 컨트리맨의 나이가 부각될 만큼 신식으로 잘 갖췄다. 조향보조기능을 포함한 차선이탈 방지 경고-플러스, 사각지대 모니터링, 후방 교행 모니터링, 열선 스티어링휠, 듀얼 온도 조절, 크루즈 컨트롤, 후방 카메라….
트렁크는 네모반듯하며 바닥을 더 낮출 수 있다
가격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출시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아니라, 탑재 사양을 좀 더 줄여 딱 필요한 것만 갖춘, 문턱을 낮춘 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다.
물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는 간다. 어차피 글로벌 시장의 인기로 인해 물량 공급이 원활치 않은 차다. 도입 초부터 가격을 낮춰 주문만 잔뜩 받아봐야 골치 아플 것이다. 옵션 다 빠진 깡통 수입차를 ‘지프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라며 반길 국내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안팎으로 지프와 관련된 디자인 요소들을 배치했다. 누구냐 넌...
그래도 보급형 레니게이드가 언젠가는 출시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오프로드 성능을 극대화한 트레일호크 버전보다도 말이다. 그래서 개소세 인하 기준 3,280만원인 2.4 모델이 더 궁금하다. 가솔린 엔진이니 앞서 언급한 진동도 신경 쓸 필요 없을 것이다. 오프로드 주파력도 사실 대부분 구매자들에게는 차별화된 이미지로서 필요한 요소에 불과한 게 아닐까.
오프로드에 올인 한 것 같지만 온로드도 버리지 않았다. 차별화에는 성공했으니 모난 부분을 어떻게 갈고 닦아낼 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