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TT, 좋아해야 할 이유 찾기
2016-05-04 10:13:42 글 임유신 객원기자
차는 자신이 좋아하는 모델을 사야 한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선택해야 하는 것이 보통사람의 처지이다. 초라한 현실과 커다란 꿈 사이의 괴리감을 메워주기 위해 ‘드림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죽기 전에 드림카를 손에 넣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PC나 스마트폰 바탕화면으로 깔아놓는데 만족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특정 차를 마음에 품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아우디 TT 3세대가 나왔다. 이 차를 보면서 ‘빠져들 만한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한눈에 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TT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스포츠 쿠페’. 보통은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어야 하지만 신형 TT는 이것저것 살피고 따져보게 만든다. 전세대를 처음 봤을 때와는 많이 다르다.
전동식 리어 스포일러로 스타일을 챙겼다
1세대 TT는 충격적이었다. 아우디에서 이런 차가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앞뒤대칭으로 둥글둥글한 스타일은 독창적이고 참신했다. 동종의 차들 사이에서 스타일 아이콘으로 꼽힌 이 멋진 차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2세대 TT는 궁금해서라도 눈길이 쏠렸다. 1세대의 특이한 디자인을 어떻게 변신시켰을까 하는 호기심이 컸다. 1세대의 대칭적인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날을 세우고 세련미를 가미한 스타일은 스포츠 쿠페에 대한 동경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3세대를 처음 본 순간, ‘과연 바뀐 차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2세대를 각지게 다듬어놓은 마이너체인지 정도로 보인다.
아우디는 근래 들어 디자인 변화가 크지 않다. 작은 변화를 주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간다. 이런 트렌드에 비추어보면 TT의 소극적인 터치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TT는 일반 세단이나 SUV가 아니다. 뭔가 급진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특별한 차라는 이야기다. 신형 TT는 이런 기대감을 만족시키기에 많이 약하다. 그래서 이 차를 좋아할 이유를 일부러 찾아야 한다.
신형 TT의 스타일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날카로운 선’이다. 그릴, 헤드램프, 리어램프에 각을 주고 철판의 주름이 잡히는 부분은 날을 세웠다. 플랫폼은 폭스바겐그룹이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MQB로 바뀌었다. 하지만 차체의 형상은 2세대, 아니 1세대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신형 TT의 스타일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날카로운 선’이다
1세대의 개성을 지키면서 변화를 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세대까지는 자연스러웠으나 3세대는 뭔가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이 없지 않다. 전통을 이어가느냐, 완전히 새롭게 변신하느냐는 현재 TT가 직면한 딜레마가 아닌가 싶다. 헤드램프는 LED다. ‘ㄴㄴ’ 형태로 빛나는 주간등 사이로 번득이는 불빛이 매서운 인상을 풍긴다. 빵빵한 뒷모습은 1세대와의 연결고리, 둥그런 은빛 연료주입구 캡은 TT만의 전통이다. 이런 디테일이 참 좋다.
실내로 들어가면 차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전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세 개의 송풍구를 제외하고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우선 센터페시아의 모니터가 사라졌다. 공조장치 컨트롤은 송풍구 가운데 작은 표시창이 달린 다이얼로 합쳐졌고, 센터페시아 버튼이 확 줄어 간결하고 깔끔하다. 이전에 모니터 옆에 옹색하게 달려 있던 축소형 MMI는 기어레버 아래 큼직하게 자리잡았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전자식으로 바뀌어 센터터널 부분도 시원해 보인다.
실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계기반이다. 전체를 12.3인치 스크린으로 덮었다. 아우디는 이것을 ‘버추얼 콕핏’이라 부른다. 센터페시아 모니터가 없어진 이유도 계기반 스크린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클래식 뷰’는 일반적인 모드다. 좌우로 타코미터와 속도계가 자리잡고, 가운데 정보창이 뜬다. ‘프로그래시브 뷰’는 타코미터와 속도계가가 줄어 양쪽으로 이동하고, 정보창이 커진다. 심지어는 내비게이션이 스크린 전체를 채우기도 한다. 계기판 메뉴는 스티어링 휠 버튼이나 MMI를 사용해 조절한다.
화면을 가득 메운 지도는 ‘버추얼 콕핏’의 압권이다
메뉴 구성은 매우 다양하고, 양도 방대하다. 하나하나 구현해보려면 몇 시간은 걸릴 듯하다. 그중 특이한 메뉴가 하나 있는데 ‘아우디 심장 박동’ 사운드다. 시동을 끄면 두둥 하는 소리로 마무리되며, 이 소리를 끄거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내부 인터페이스 변화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는다.
시트는 버킷형으로 단단하면서도 편하게 몸을 받친다. 뒷좌석은 안전벨트가 달린 어엿한 2인승이지만 아이도 앉기 힘들 만큼 좁다. 트렁크는 생각보다 넓다. 뒷좌석을 접으면 기대 이상의 널찍한 공간이 펼쳐진다. 트렁크 도어는 유리부분까지 함께 열려 짐을 넣거나 빼기 편하다. 의외의 실용성이다.
엔진은 2.0L 터보로 최고출력 220마력을 낸다. 35.7kg·m의 최대토크는 1,600~4,000rpm 구간에서 터져나온다. 변속기는 6단 더블클러치(S-트로닉)이고, 네바퀴를 굴린다. 전자식 디퍼렌셜 록도 들어간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생기 넘치는 엔진 구동음이 울려 퍼진다. 공회전은 조용한 편으로, 어서 페달을 밟으라고 보채거나 그르렁거리지 않는다. 서서히 속도를 높이면 매끈하게 속도계 바늘이 올라간다. 초반부터 최대한의 토크를 응집해 차체를 밀어붙인다.
배기음보다 엔진소리가 더 자극적이다
가속페달에 힘을 주니 빠르게 속도가 올라간다. 배기음보다는 엔진소리가 더 자극적으로 실내에 진동파를 날린다. 0→100km/h 도달시간은 5.6초. 스포츠 쿠페를 탄다는 짜릿함이 충만하게 전해져온다. S-트로닉 기어도 꽤 만족스럽다. 순간적인 변속능력이나 낭비 없는 동력 전달력이 인상적이다.
주행 모드는 효율·승차감·자동·다이내믹·개별 설정 5가지다. 연료를 절약하는 효율 모드는 불필요한 힘 분출만 억제할 뿐, 뒷목 당기는 듯한 급격한 힘의 약화는 보이지 않는다. 마구 밟지만 않으면 적당히 여유롭고 만족스럽게 탈 수 있다. 승차감과 자동 모드의 차이는 애매하여, 승차감 모드에 맞춰도 썩 편하지는 않다.
핸들링은 정교하고 예리하다
다이내믹 모드로 들어가면 TT의 본성이 드러난다. 엔진 · 변속기 · 스티어링 · 콰트로 시스템에 긴장감이 실리고 예민해진다. 이때부터 가속페달을 내리밟으면 스포츠카를 모는 듯한 흥분감에 휩싸이게 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절정에서 급격하게 떨어지는 토크다. 4,000rpm을 넘어 7,000rpm에 이르는 사이 토크는 35.7kg·m에서 24.5kg·m로 급격하게 떨어진다. 수동 모드로 기어를 고정해 가속하거나 자동 모드 최고단수에서 속력을 높이면 힘차게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려버린다. 좀더 끈기 있게 밀고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핸들링은 정교하고 예리하다.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머리를 튼다. 콰트로는 전자유압식 다판 클러치가 노면상황에 맞게 수시로 토크를 배분하고, 제동장치와 힘을 합쳐 각 바퀴에 걸리는 토크를 제어한다. 자세제어 시스템의 능력이 탁월해 급한 움직임이나 고속 코너링 때도 어지간해서는 거동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강원도의 굽이치는 와인딩에서 이것저것 신경쓸 것 없이 차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평균 이상의 짜릿한 역동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TT는 아슬아슬한 스릴감보다 운전자가 마음놓고 차를 즐길 수 있는 안정성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와인딩 코스에서 평균 이상의 짜릿함을 준다
이제 신형 TT를 좋아할 이유를 찾았는지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 스타일에 대한 감흥은 크지 않다. 하지만 버추얼 콕핏 등 바뀐 인테리어는 마음에 든다.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각종 메뉴를 살펴보는 재미에 빠져들 수 있겠다. 마음놓고 역동적인 달리기를 즐길 수 있는 높은 안정성에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운전실력이 최소한 두 단계는 높아졌다는 기분 좋은 착각을 안겨준다.
TT는 설레는 마음으로 탈 만한 차다.
안정성이 뛰어나다. 가볍게 즐기는 스포츠카로 제격이다
숙명의 라이벌. 낡은 이미지를 떨치고 바뀔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