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파일럿, 매력적인 가솔린 SUV
2016-05-12 08:37:42 글 김종우 기자
추남이 환골탈태했다. 거기다 ‘뇌섹남’의 매력까지 추가됐다
‘이건 정말 혁신인데?’
잊혀질 만하면 신차를 발표해온 혼다가 오랜만에 내놓은 신모델. 3세대 혼다 파일럿을 보고 처음 스친 생각이다. 모든 것이 바뀌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들어낼지는 몰랐다. 특히 외관 디자인의 변화가 극적이다.
리어범퍼에 크롬도금 장식을 줘 디테일을 살렸다
그동안 파일럿은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존재감이 없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하지만 직접 타보면 실내공간이나 시트 구성이 상당히 만족스럽다. 문제는 투박한 디자인과 둔중한 차체 그리고 나쁜 연비였다. 파일럿이 북미시장을 목표로 한 차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큰 덩치나 연비에 대해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디자인은 아니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호감을 얻기 힘들어 보였다.
디자인은 자동차 구입 때 체크리스트 앞쪽을 차지하는 필수항목. 사람들의 관심이 연비나 실용성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지만 매력적인 디자인은 여전히 커다란 관심거리다. 혼다는 전통적으로 기술을 중시해온 회사인 만큼 외형보다는 내실을 우선해왔다. ‘기술의 혼다’라는 평가는 그래서 붙여진 것이다.
기술에 집중한 탓인지 그동안 큰 특징이 없는 무난한 디자인을 채용해왔다. 이런 혼다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 어큐라에서 시작되어 전체 브랜드로 퍼지고 있는 중이다. 새 파일럿은 면과 선을 살린 날카로운 디자인으로 다이내믹한 인상을 풍긴다. 디자인 변화 바람은 혼다뿐만 아니라 일본 메이커들의 공통된 양상이다. 일본도(刀) 같이 예리함을 살린 토요타, 보디빌더를 연상케 하는, 볼륨감을 극대화한 닛산 디자인은 사실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이들과 비교해 혼다는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3세대엔 지능형 지형 관리 시스템이 추가됐다
3세대 파일럿은 전형적인 2박스 SUV였던 2세대에 비해 곡선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요즘 SUV 트렌드인 슬로핑 루프라인을 살짝 적용했다. 프론트 그릴과 리어 범퍼에는 크롬 장식으로 화려함을 덧입혔다.
인테리어 변화는 더 극적이다. 센터페시아에 떡 하니 박힌 8인치 모니터를 통해 스마트폰과 연동, 다양한 앱을 실행시킬 수 있다(요즘 신차는 다 이 정도는 한다. 하지만 블루투스도 안되고 그래픽도 엉망인 전세대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시스템도 상당부분 한글화되어 경쟁자인 포드 익스플로러를 긴장시킨다.
파일럿의 큰 장점인 넓은 실내공간은 여전하다. 큼지막한 센터콘솔, 도어마다 달린 수납공간, 3열시트 좌우에 마련된 컵 트레이 등 구석구석 수납공간도 풍부하다. 특히 자동으로 2열 시트를 접을 수 있은 ‘워크인’ 기능이 추가되어 3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다. 적재함의 크기는 467L. 3열을 접으면 1,325L로 커지고, 2열까지 접으면 2,376L가 된다.
보닛 안쪽도 손질이 가해졌다. 아키텍처를 새로이 구성해 엔진 성능을 높인 것. V6 3.5L 직분사 엔진은 6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284마력, 최대토크 36.2kg·m를 끌어낸다. 출력은 27마력, 토크는 8kg·m이 향상됐다. 덩치가 있다 보니 200kg을 감량했음에도 초기 거동이 굼뜬 편이다. 하지만 뒤처짐이 아닌 느긋하고 여유 있는 움직임이다.
고속주행이나 급가속 때는 낮고 묵직한 사운드를 내며 성큼성큼 움직인다. 회전계 바늘의 상승에 맞추어 안정된 출력을 뽑아내는 자연흡기 엔진은 근래의 다운사이징 트렌드에 밀려 보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다양한 기능으로 스티어링 휠이 복잡해졌다
파일럿에는 다양한 편의장비가 탑재되어 있다. 혼다 플래그십 모델 레전드에 적용된 LKAS(차로유지 시스템), ACC(자동감응식 정속주행장치) 등으로 무장했다. 스티어링 휠을 슬쩍 움직여 코스를 바로잡는 똑똑한 파일럿이라니! 전세대 파일럿을 박혀버린 선입견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멋진 외관에 내실까지 갖춘 ‘뇌섹남’이라 할 만하다.
익사이팅 H 디자인이 적용된 전면부
‘디젤 게이트’ 논란으로 시끄럽지만 아직 국내 SUV시장은 디젤이 대세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분야건 판을 뒤엎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도전자가 있기 마련. 티볼리 가솔린은 쌍용차의 티핑 포인트가 됐고, 가솔린 모델만 있는 포드 익스플로러는 브랜드 홍보의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다. 파일럿은 혼다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 기대된다.
불붙은 대형 가솔린 SUV 시장에 기름을 부을 주인공. 혼다의 다음 타자는 HR-V?
포드 익스플로러 : 이제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됐다. 가격마저 착하게 나온 파일럿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