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MKX, 본선에 합류한 새 경쟁자
2016-05-25 09:37:34 글 민병권 기자
독일제 고급 SUV의 무뚝뚝한 공간에 질렸다면 이제 MKX에 오를 시간
TV프로그램 〈수방사〉를 생각했다. 아내, 가족들에게 집안을 내주느라 자신만의 공간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불쌍한(?) 남성들을 위해 제작진이 집을 뜯어고쳐 꿈꾸던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내용이다.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는 제목이 심금을 울리는 걸 보니 기자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가장인가 보다.
링컨 MKX는 19개의 스피커와 22방향으로 조절되는 전동시트를 지녔다. 아니, 22개의 스피커와 19방향이었나…. 아무튼 으리으리한 ‘레벨 울티마’ 오디오와 마사지 기능을 겸비한 멀티컨투어 시트를 제공한다. 꽤 많은 수컷의 로망 중 하나인 -진부한 표현이지만- 달리는 음악감상실 내지는 나만의 휴게실을 실현할 조건을 갖춘 셈이다.
시트는 기대 이상이다. 별의별 부분이 다 조절되기에 입맛에 맞게 맞출 수 있고, 마사지 기능은 운전하느라, 앉아 있느라 긴장된 근육을 시원하게 자극해준다. 뭔가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애들 장난감 같아서 있으나마나 한 여느 차들과는 다르다. 기능이 많다 보니 시트에 달린 버튼을 줄이고, 세부적인 제어는 중앙화면을 통해 하도록 되어 있다. 이 중앙화면, 그리고 계기판의 그래픽이 포드차 특히 익스플로러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은 흠이다.
MKX의 전신인 에이비에이터는 익스플로러를 살짝 손봐서 링컨 버전으로 만든 차다. 한편 에이비에이터 콘셉트카의 양산모델로 2006년 출시된 1세대 MKX는 포드 엣지(Edge)를 조금 고친 차다.
2015년 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데뷔해 지난 가을 북미 판매에 들어간 이번 모델 역시 엣지와 휠베이스 및 트레드는 같고, 덩치가 조금 커졌다. 익스플로러보단 훨씬 작다. 작아서 손해인 것이 아니라 훨씬 아늑하게, 충실하게 꾸며 고급 SUV답다. 실내외에서 익스플로러와의 연관성을 거의 찾을 수 없다. 굳이 흔적을 남긴 계기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시보드와 센터콘솔을 연결하는 ‘현수교’ 아래에도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MKX의 실내는 아주 고급스럽진 않아도 포드 브랜드 차, 혹은 경쟁모델들과 뚜렷이 차별화되고, 품질도 괜찮은 편이다. 오디오, 시트 외에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편의장비와 안전장비를 같은 가격대의 독일 차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갖추었다. 그래서 경쟁력이 있다. 실내 구성도 제법이다. 가죽, 나무 등 기본소재와 질감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변속레버, 주차레버를 없애고 센터페시아와 콘솔을 매끈하게 연결한 뒤 아래에 수납공간을 배치한 것도 - 실용성은 의심스러울지언정 - 고급 SUV에 어울리는 시도라 할 만하다(MKX가 처음은 아니지만 응용을 잘해냈다). 그러고 보니 전모델에서 우려스러울 정도로 터치 인터페이스를 강조했다가 지금은 포기한 것도 눈에 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결국 이렇게 내세울 만한 결과물을 갖게 된 느낌이다.
북미용 MKX의 기본 엔진은 V6 3.7L(300마력). 우리나라에는 V6 2.7L 340마력이 출시됐다. 다운사이징인데 성능은 훨씬 높아진 셈이다. 6단 자동변속기는 토크컨버터식이다. 주행에 문제가 되진 않지만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실내외 분위기(특히 버튼을 눌러 레인지를 선택하는 변속기 조작부)에서 예상되는 스펙과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다. 가속페달 입력에 대한 반응은 느긋하다. 종종 작은 변속충격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스포츠 모드와 스티어링 휠 변속패들을 갖추어 성미 급한 운전자의 요구를 따르는 시늉을 한다.
엔진힘도 좋다. 차가 불끈불끈 튀어나간다. 네바퀴굴림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힘이 주체가 안되는 듯 허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계기판을 통해 앞뒤 바퀴로의 구동력 배분을 확인할 수 있어 듬직하다(AWD차를 선택한데 대한 보람도 찾을 수 있다). 익스플로러에 달린 다이얼 형태의 지형관리 시스템은 없지만 그게 아쉬운 성격의 차는 아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는 육중한 덩치의 쇄도를 진정시키는 데 조금 버거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저속주행 때 가속페달을 방정맞게 놀리거나 회전수를 쓸데없이 높이면 거친 소리가 난다. 전반적으로 보면 점잖게 달릴 때 진가가 나타나는 차다.
‘360도 카메라’의 일부인 전방 카메라는 필요할 때만 돌출된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1열 차음 글라스 등 정숙하고 품격 있는 실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운전석보다는 동반석의 만족도가 높은 편. 뒷좌석은 앞좌석만큼 껑충하다. 하지만 측면 실루엣에 비해 머리공간이 좁지 않고 비스타루프 덕분에 개방감도 좋다. 타고 내릴 때는 다리 뻗기가 편하다. 겉보기와 달리 문짝이 차 바닥까지 내려간 형태이고, 문턱이 옆으로 튀어나오지 않아서다. 짐을 실을 때는 등받이를 전동으로 접을 수 있지만 앉을 때의 각도조절은 수동이다. 뒷좌석 팽창식 안전벨트는 함께 탄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을 덜어준다. 뒷좌석을 위한 송풍구도, 열선도 있지만, 독립적으로 온도조절은 할 수 없다는게 사소한 아쉬움이다.
MKX는 혼자 즐기기보단 함께할 때 가치가 더 빛나는 차다. 결국 ‘수방사’에 대한 의지는 함께하는 공간에 대한 배려 속에 다시 약해지고 만다. 어느쪽을 더 중시하느냐에 따라 MKX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이 가격에 살 수 있는 이만한 크기의 고급 SUV는 뭐가 있을까? 풍부한 장비까지 고려하면 답은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