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밴 장점 녹인 크로스오버 SUV, 푸조 3008
2016-06-27 16:51:30 글 민병권 기자
2008년 나온 3008은 푸조가 만든 첫 SUV이다. 그보다 먼저 푸조 4007이 나왔는데, 이것은 미쓰비시 아웃랜더를 푸조풍으로 바꾼 차이고 생산도 일본에서 했다(후속인 4008도 같은 방식으로 미쓰비시의 RVR을 빌린 것이다). 다른 유럽 메이커들과 마찬가지로 푸조도 SUV에 별 관심이 없다가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을 보고 뒤늦게 제휴업체의 힘을 빌려 뛰어든 것이다. 비슷한 시기 르노가 닛산의 기술과 르노삼성의 생산시설을 이용해 꼴레오스(QM5)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튼 푸조도 4007에 이어 자체개발한 3008을 투입할 수 있었다. 잘 만들던 소형 MPV를 살짝 손봐 차종을 바꿔버렸다. SUV로는 어색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이유다.
시승차를 QM5 옆에 세워봤다. 누가 더 못생겼는지, 누가 더 어색하게 생겼는지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공통점이 또 있다. 위아래로 나뉘어 열리는 크램셸 테일게이트를 갖추었다. 3008은 짐칸의 턱이 낮고, 바닥 덮개를 선반처럼 높일 수 있어 활용성이 뛰어나다. 나머지 부분은 많이 다르다. 3008은 차체도 더 작지만 QM5와 달리 오프로드 접근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양새다. 하이브리드 버전을 제외하면 앞바퀴굴림뿐이기도 하다.
시승차는 1.6 악티브. 이름에 걸맞게 그립 컨트롤을 장비했다. 타이어만 제대로 끼워주면 ?그리고 상황에 맞게 다이얼만 돌려주면- 오프로드에서도 네바퀴굴림 부럽지 않은 주파력을 자랑한다고 푸조가 우기는 장비다. 수입 초기에는 이게 빠져있었는데, 요즘은 QM3에도 비슷한 기능이 달려 나온다. 그립 컨트롤 다이얼이 추가되어 센터콘솔의 컵홀더는 두개에서 하나로 줄었다.
높다란 센터콘솔 아래에 숨겨진, 바게트 빵을 넣어도 다 들어갈 것 같은 깊은 수납공간은 그대로다. 아이들 장난감을 빠뜨리면 영영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리고 실내를 덥혀도 어디선가 냉기가 올라오는 신비한 공간이다. 반대로 뒷좌석 발판 밑에 숨겨진 수납공간은 자그마하다(장난감이 없어지면 뒤져봐야 할 곳이 늘어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MPV 베이스여서 좋은 점은 차체면적 대비 실내공간이 넓다는 것이다. 일부 SUV들처럼 높기만 할 뿐 정작 공간활용성은 부족한 구성이 아니다. 천장을 가득 채운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는 체감공간을 더 여유롭게 만든다.
환한 햇빛 아래 드러난 실내 구성품들이 왠지 부끄러워하는 느낌이다. 독일차 같은 깐깐한 품질도, 일본차 같은 아기자기함이나 화려함도, 미국차 같은 치기도 없는 탓이 아니다.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유행을 받아들인 외관과 달리 실내는 데뷔 시점인 7년전에 머물러 있는 탓이다.
3008 중에서 가장 싼 기본형인 만큼 장비가 많이 빠진 것은 이해한다. 데뷔 당시 ‘전투기 조종석’으로 화제를 모았던 헤드업디스플레이(HUD)와 토글 스위치도 빠졌는데, 그래서 더 깔끔해 보이기는 한다. 요즘 보니 미니도, SM6도 이런 HUD를 따라했더라. 크루즈컨트롤과 좌우 독립식 온도조절 에어컨, 차 주변을 밝히는 퍼들램프 같은 장비는 황송할 지경이다.
3008의 천지개벽할 변화는 외관이나 실내가 아닌 파워트레인에서 일어났다. 유로6 배기규정에 맞춰 SCR을 적용, 트렁크 바닥 스페어타이어 자리에 요소수 보충구가 생겼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존 1.6의 MCP 대신 6단 자동변속기가 달린 것이다. 덕분에 변속 시 앞뒤 흔들거림은 사라졌다.
장점으로 꼽혀온 소음 및 진동 상쇄, 주행감성은 그대로다. 16인치 휠을 끼운 덕분에 하체 움직임은 부드럽게 느껴지고 그러면서도 특유의 안정감이 있다. 1.6이지만 힘이 아쉽지 않고 연비도 좋다.
수입사는 SCR과 자동변속기를 쓰고도 값을 300만원이나 낮췄다. 연비도 자신 있다고 한다. 1년간 타보고 연비가 16.0km/L 이하면 유류비의 차액을 주겠다는 프로모션까지 했을 정도다.
프랑스 회사들은 자동차로 예술을 한단 얘기가 있다. 한때는 감탄과 부러움의 뜻이었지만 한동안 ‘역시 우리랑은 안맞아’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3008에 대한 평가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