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직진, 기아 모하비
2016-07-06 15:51:36 글 민병권 기자
한적한 교외, 왕복 4차로의 굽잇길을 돌던 중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트럭에 한눈을 팔았다. 위장무늬 군용트럭의 꽁무니 트레일러엔 자주포가 실려 있었고, 그것이 모하비의 제품설명 프레젠테이션에 나온 탱크 사진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보니 새 모하비의 프론트 그릴 가로줄도 총포의 방열판 형상이다. M-클래스 등 다른 SUV의 디자인을 흉내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전보다 튼튼한 차, 군용차 이미지가 더욱 강조됐다.
“삐삐삐삐~”
경고음에 정신을 차려보니 굽잇길 끝 사거리 신호등은 빨간 불이고, 앞서가던 차들이 정지선에 멈춰 있었다. 본능적으로 힘껏 브레이크를 밟아 사고는 면할 수 있었다(그 와중에 동승자는 제동력이 좋다고 감탄했다).
새로 추가된 최신 안전장비들이 모하비의 오래돼 보이는 생김새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투박한 이미지에 맞게 가장 저렴한 모델을 옵션 없이 사서 타는 게 낫겠다던 생각이 확 바뀌었다. 역시 안전장비는 많이 있는 게 좋다. 6개월간 쉬었다가 부분변경 후 돌아온 2016년형 모하비에는 하이빔 어시스트, 차로이탈 경고, 사각지대 경고, 전방추돌 경고 기능이 더해졌다. 고급승용차들처럼 위험을 감지해 속도를 줄여주진 않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오토 스타트 스톱, 전동식 테일게이트 및 사이드미러 폴딩 기능도 없지만 오래된 플랫폼의 차임을 생각하면 감지덕지다.
외관은 앞뒤를 조금 손봤다. 프론트 그릴 외에 범퍼 형상이 바뀌면서 LED 주간주행등이 추가됐다. 테일램프 안쪽 디자인이나 앞범퍼 하단 스키드 플레이트 형상 등 ‘기왕 손댈 거 제대로 좀 하지’ 싶은 부분들이 있지만 기존 모델보다 알게 모르게 강인하면서도 깔끔해진 인상을 풍기긴 한다.
실내는 전용 스티어링 휠과 새로운 센터페시아 디자인으로 칙칙하고 오래돼 보이는 인상을 걷어냈다. 계기판에 적용된 4.2인치 수퍼비전 클러스터와 8인치 내비게이션 화면도 요즘 차 같은 느낌을 살려주는 부분. 사이드스텝을 밟고 차에 오르면(그러기에 딱 좋은 높이다) 퀼팅 가죽시트부터 눈에 들어오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의 변화도 많다. 흡차음재 보강과 서스펜션 튜닝으로 정숙성과 험로 승차감을 개선한 것 등이다.
물론 부활한 모하비의 핵심은 유로6 배기규제 대응이다. 이걸 제때 못해 한동안 판매가 중단됐었다. 새 모하비는 기아 승용차 중 최초로 배출가스 질소산화물 저감수단인 SCR을 적용했다. 주기적으로 요소수를 보충해야 해서 신경 쓰이지만 성능에서 유리하다.
국산 동급 SUV 유일의 V6 디젤로 남은 모하비의 3.0L ‘S2’ 엔진은 최고출력(260마력)은 그대로이고, 최대토크는 아주 약간 개선되어 57.1kg.m다. 하지만 이젠 기존에 46kg.m의 토크를 내던 1,500rpm에서 최대토크를 뽑아내고, 80km/h에서 120km/h로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빨라지는 등 실용영역의 성능이 강화됐다. 그 덕분에 2.3톤의 덩치를 가뿐하게 움직여 제법 시원하게 내달릴 수 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정숙성이다. 시동 걸 때의 소리가 가솔린 엔진의 고급승용차 부럽지 않다. 주행 중 가속페달을 갖고 놀 때는 어쩔 수 없이 디젤임이 드러나지만 느긋한 주행에선 소음도 진동도 꽤나 고급지다. 고속주행시 각진 차체에서 비롯되는 풍절음을 제외하면 주행소음도 잘 억제됐다. 여기에다 차고까지 높으니 슬렁슬렁 편안하게 놀러 다니며 경치 구경하기에 이만한 차가 또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고급승용차의 대안으론 어떨까? 아쉽지만 조금 부족하다. 아무래도 뒷좌석 승차감이 떨어지고 고속주행 시 조향성이나 차로 변경 때의 거동도 부드럽지 못하다. 오프로드에서 나고 자란 뼈대 있는 SUV이니 이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정통 SUV치곤 온로드 주행성이 꽤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시승행사에 오프로드 코스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코스가 평탄해 엄홍길 대장이 나오는 TV 광고와 같은 험로 주파력을 맛볼 순 없었다. 어차피 대다수 고객은 험로 주파력보다는 프레임 보디 SUV의 안전하고 강인한 이미지에 끌려 이 차를 고를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8년째로 접어든 모하비의 각진 보디도 흠잡을 요소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