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시트로엥 DS5 vs 볼보 S60 CC
세단인 듯 세단이 아닌 듯
2016-07-07 09:51:59 글 김준혁 기자
세단인 듯 세단이 아닌 듯 세단이라고 주장하는 크로스오버 두대가 만났다. 어느 쪽이 진짜 세단일까?
“PSA그룹 프리미엄 브랜드 DS의 공식수입원인 한불모터스가 DS 최상급 모델인 크로스오버 세단 뉴 DS5를 국내에 공식 출시했다. 새로운 DS5는 DS의 플래그십 모델로, 품격 있는 세단의 장점에 스타일리시하고 실용적인 4도어 쿠페의 매력을 더했다. 한불모터스는 DS5의 출시를 통해 국내 럭셔리 세단 시장에서 브랜드의 입지를 더욱 넓혀갈 계획이다.”
“크로스컨트리는 볼보자동차가 자사 인기 차종들의 지상고를 높이고, SUV의 장점을 더해서 완성시킨 새로운 세그먼트다. S60 크로스컨트리는 세단형을 기반으로 만든 크로스오버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시장에서도 전례가 없는 와일드 세단을 탄생시켰다는 것이 볼보 측의 설명이다.”
이는 DS5와 볼보 S60 크로스컨트리(이하 S60 CC)가 국내에 출시될 때 나온 보도자료 내용의 일부다. DS5와 S60 CC에서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고, 사용 목적도 다를 것 같다. 그런데도 두 차를 한자리에 불러모은 것은 뜻밖의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위의 보도내용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공통된 단어를 하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세단이다. DS5와 S60 CC 모두 세단을 기반으로 한 크로스오버라는 것이 메이커들의 주장이다.
적어도 볼보 S60 CC는 이런 주장에 들어맞는다. 딱 봐도 세단 S60의 지상고를 높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볼보는 이 차가 지상고만 높인 것이 아니고, SUV의 강인한 성능까지 더했다고 자랑한다.
DS5는 전형적인 크로스오버 자동차다. 하지만 해석이 유별나다. 세단에 4도어 쿠페의 매력을 더했단다. 생김새는 MPV와 해치백을 뒤섞은 것 같고, 세단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도자료를 다시 살펴보니 세단형이라고 하진 않았다. 세단 수준의 편안함을 갖췄다는 의미인 모양이다. 하지만 세단 같지 않은 차가 대놓고 럭셔리 세단 시장을 공략한다고 하니 소비자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DS5의 정체성이 헷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인 때문이다. 메이커에서 세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DS5를 세단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DS5는 얼핏 보면 시트로엥 C4 피카소를 다듬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두 차는 플랫폼이 다르다). 그 정도로 MPV의 향기가 짙다.
세단이라는 단어를 놓아버리면 DS5의 디자인은 그 자체로 봐줄 만하다. 그리고 기존 PSA자동차와 많이 다르다. 무난하지 않은, 눈에 띄는 디자인이라는 뜻이다. 쿠페와 해치백, MPV가 섞인 커다란 덩치, 헤드램프부터 보닛을 지나 A필러까지 이어지는 크롬 장식 등에서 강한 개성이 묻어난다.
이번에 출시된 DS5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시트로엥의 최고급 모델인 DS가 프리미엄 브랜드로 독립하면서 얼굴을 뜯어고쳤다. 시트로엥의 더블 쉐브론을 걷어내고, 육각형 프론트 그릴과 헤드램프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DS윙 디자인을 도입한 것. 프리미엄 브랜드답게 이전에 없던 진중한 이미지가 더해졌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얼굴이 훨씬 좋다. 예전 DS5는 너무 가벼워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건 S60 CC도 마찬가지다. 볼보의 디자인은 대체로 무난하고 질타를 받지 않는 것이 특징. 하지만 이 차는 보는 사람마다 말끝에 물음표를 달 것 같다. 생김새는 세단인 S60인데, 지상고가 65mm 높아진 201mm다. 딱 봐도 껑충한 모양새다. 볼보의 크로스컨트리처럼 휠아치를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두르고, 앞뒤 범퍼 하단에 스키드 플레이드까지 달았다. 이 정도면 영락없는 SUV다. 사실 V60 크로스컨트리만 해도 실루엣 때문에 SUV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S60 CC는 지상고만 높인 튜닝카 같다. 콘셉트카에서나 볼 수 있는 디자인을 시도한 볼보자동차의 용기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남들이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DS5의 실내는 전모델과 차이가 없지만 예상보다 화려하고 꽉 차 있으며, 소재도 좋아 보인다. 3개의 작은 디스플레이로 구성된 계기판, 센터페시아의 아날로그 시계와 디테일에 신경 쓴 버튼들, 고급스러워 보이는 토글 스위치는 이 차가 DS의 플래그십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해준다. 그밖에도 운전석과 동반석, 뒷좌석 등 세부분으로 나눠진 글라스 루프, 센터콘솔과 똑같은 천장의 토글 스위치까지, DS5의 실내는 화려하고 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30분 정도만 운전하면 생각이 바뀐다. 분명 할 얘기가 많아 보이는데 소통이 매끄럽지 못하다. 다시 말해 인터페이스가 불편하다. 센터페시아 좌측의 동그란 버튼 2개는 스티어링 휠에 가려져 쓰기 어렵고 아날로그 시계는 너무 누운 센터페시아와 애매한 위치 때문에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디스플레이는 어찌된 일인지 빛반사가 심해 한낮에는 정보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다. 블루투스 기능은 시승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 쓰는 것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멋지다고 생각되었던 3피스 글라스 루프는 왜 운전석과 조수석을 나눠놓은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 이 넓은 실내에 제대로 된 컵홀더 하나가 없다! 찾아보면 도어 포켓에 컵을 꽂는 자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너무 얕아서 종이컵을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한가지 위안거리를 찾자면 뒷좌석이 생각보다 넓고 편하다는 것. 운전석 중심의 화려한 디자인을 보면 분명 오너드리븐인데, 공간과 쓰임새를 보면 쇼퍼드리븐 같기도 하다. 이래저래 헷갈리는 자동차다.
DS5와 비교하면 S60 CC의 실내는 소박하다. 대시보드를 덮고 있는 플라스틱과 시트의 감촉은 분명 훌륭한데,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디자인 포인트가 없다. 센터페시아의 빼곡한 버튼과 작은 디스플레이에서는 세월의 흔적도 느껴진다. 새로운 실내 디자인이 2세대 XC90을 통해 공개됐기 때문에 오래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타면 탈수록 S60 CC는 편하다. 터치 입력을 지원하지 않는 디스플레이 때문에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이 어렵다는 것만 빼고 아주 편안하고, 사용법이 쉽다. 시트는 안락하고 계기판도 선명하며, 각각의 버튼과 탑재된 장비들은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한다. 컵홀더도 2개나 있다.
DS5의 달리기 실력은 콘셉트가 뚜렷하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운전하는 맛이 좋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다. 일단 승차감이 기대 이상이다. 아주 부드러워 고급세단을 타는 기분이 든다. 이는 뒷좌석도 마찬가지. 넓은 공간과 어우러져 DS 브랜드의 기함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푸조·시트로엥의 다른 자동차처럼 달리기 실력도 출중하다. 스티어링 휠은 생각보다 무거워 저속에서 다루기가 힘들지만 속도가 붙으면 명확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의외로 피드백까지 풍부하다. 서스펜션은 부드러우면서도, 코너에서 차체를 버텨내는 힘이 대단하다. 무게중심이 낮아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파워트레인이 민첩하지 않다는 것 정도. 180마력의 2.0L 디젤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은 시트로엥 C4 피카소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변속기의 반응이 좀더 빠르긴 하나 최신 자동변속기나 듀얼클러치는 못따라간다.
전체적으로 섀시와 파워트레인의 조합은 훌륭하다. 실내에서는 디젤 엔진의 존재 유무를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정숙성도 뛰어나다. 덕분에 운전에만 집중하면 엉망진창인 실내 인터페이스에 대한 안좋은 기억을 쉽게 떨쳐낼 수 있다.
S60 CC의 주행실력은 솔직히 실망스럽다. 볼보 특유의 묵직함을 기대했는데 전체적으로 가벼워 오프로드를 염두에 둔 차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오프로드에서의 대처능력은 훌륭하다. 하지만 온로드에서의 모습이 의외다. 높아진 무게중심과 부드러운 서스펜션 탓에 움직임에 허점이 많다. 코너에서는 롤링이 심하고, 요철을 통과할 때 앞뒤 흔들림이 전해진다.
승차감도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볼보 섀시 특유의 꽉 잡아주는 느낌이 없다. 이미 S60과 V60 크로스컨트리를 타본 상황에서 S60 CC의 이런 움직임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운전자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스티어링 시스템과 부드럽고 빠르며 강한 파워트레인(좀 시끄럽긴 하지만)이 없으면 큰일날 뻔했다. 전체적으로 S60 CC의 주행 콘셉트는 애매하다. 오프로드에서 엄청나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S60이 갖고 있는 온로드에서의 장점도 상당부분 사라졌다.
시트로엥과 볼보는 각각 DS5와 S60 CC에 대해 세단의 장점을 지닌 크로스오버차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일정 부분에서만 맞는 얘기다. DS5의 크로스오버 디자인은 화려해 보이고 시선을 사로잡지만, 실내 인터페이스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대신 주행감각은 세단 못지않게 훌륭하다. 우아하면서 스포티하다. S60 CC는 생김새만 키 큰 세단이다. 세단에서 기대할 수 있는 편안함 대신 거친 감각이 난무한다.
두 차는 장단점이 너무 명확해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다. 그래도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이렇게 하겠다. 일상에서 편하게 탈 차를 찾는다면 DS5를,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달리기를 원한다면 S60 CC를 선택할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석연찮다. 고를 수 있는 자동차가 이 둘만이 아닌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