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터가 마침내 터보 엔진을 얹었다. 그러면서 이름을 718로 바꿨다. 변화가 크기에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다. 포르투갈에서 그 결과를 확인해봤다
‘팔방미인, 즐거움의 결정판’, ‘궁극의 운전자용 자동차’. 최근에 읽은 영국인들의 포르쉐를 향한 찬사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여러대의 스포츠카를 비교할 때면 어김없이 포르쉐가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급이 다른 수퍼카와 비교해도 포르쉐는 언제나 밸런스가 탁월하다는 이유로 값이 몇배 비싼 모델을 따돌린다.
포르쉐가 좋은 자동차라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그래도 영국인들은 정도가 심했다(포르쉐 본사의 담당자들조차 부담스러워할 만큼).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할 기자들이 포르쉐만 만나면 이성을 잃는다. 포르쉐가 이성을 잃게 할 정도로 마력을 갖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하지만 최소한 〈탑기어〉라면 정신줄을 붙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국에도 이런 생각을 가진 기자가 있었는지 얼마 전 출시된 새 911에 약간의 쓴소리를 했다(탑기어코리아 2016년 2월호). 이유는 한가지, 자연흡기 엔진을 대체한 터보 엔진 때문이었다. 포르쉐는 강화된 배기가스 규정에 대응하고, 출력 상승이 어렵다는 이유로 자연흡기 엔진을 버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911 터보를 통해 수십년 전부터 포르쉐의 터보 기술이 입증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터보 엔진을 쓴 911은 강하고 빠르며 정확하다. 또한 운전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잘 이끌어준다. 이전 자연흡기 911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대부분 좋은 쪽으로의 변화다.
그래도 안심하기 이르다. 포르쉐의 과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911의 뒤를 이어 터보를 쓰게 될 새 박스터는 걱정이 앞선다. 배기량을 줄이고 터보차저를 붙이는 방식은 911과 같지만 문제는 실린더 개수다. 포르쉐를 상징하는 수평대향 6기통을 박스터에서는 볼 수 없다. 그 자리를 4기통이 메운다. 엔진 변화가 급격해 박스터 앞에 붙은 718이라는 전설적인 숫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718 박스터를 만나러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하는 아늑한 비행기 안에서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먼저 경험한 터보 911(911 터보가 아니다)을 향해 대중과 언론매체는 찬사를 보냈지만 718 박스터는 상황이 좀 다르다. 그래도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넋이 나갈 수 있다. 포르쉐를 만날 때마다 그랬으니까.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몇가지 기준을 정했다.
첫째는 터보 엔진에 관한 것이다. 신형 수평대향 4기통 터보 엔진이 자연흡기 같은 매끄럽고 날카로운 반응을 보여줄 수 있을까? 터보랙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1,900rpm대부터 최대토크가 나온다고 하는데, 왈칵 쏟아지는 엄청난 토크를 미드십 방식의 박스터가 온전히 처리할 수 있을까? 새로운 엔진을 품은 718 박스터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두번째는 배기음. 개인적으로 터보 911에서 조금 실망했던 부분이다. 포르쉐가 신형 911을 개발하면서 특유의 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실제로 포르쉐 특유의 음색을 들려주긴 했다. 그러나 자연흡기와 비교해 박력이 떨어진다. 스포츠 배기 시스템을 활성화해도 마찬가지다. 부디 이 부분만은 718 박스터에서 해결되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세번째는 718이라는 새로운 이름에 걸맞는 디자인. 특히 헤드램프에 4포인트 LED 주간주행등이 포함된 새로운 얼굴과 테일램프를 잇는 검은색 액센트 바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다. 나머지는 크게 바뀐 것이 없을 테니 이 정도만 확인하면 될 것 같았다.
718 박스터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따라서 3세대 박스터(981)의 보디 라인과 전체적인 구성은 변하지 않았다. 대신 앞뒤 램프와 범퍼쪽에 힘을 주는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718 박스터의 새로운 헤드램프는 사진으로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익숙할 것 같았다. 그런데, 실물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시승회에 참석한 중국 기자들이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이 렌즈를 들이댄 곳은 LED 4개로 눈매를 또렷이 살려낸 헤드램프였다.
이 헤드램프야말로 포르쉐가 왜 981 코드네임을 유지하지 않고 982로 바꾸었는지 이해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아마 엔진일 것이다), 그만큼 둘 사이의 디자인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 아닐까?
프론트 범퍼의 흡기구를 좀더 키우고 LED 방향지시등을 얇게 디자인하는 등 다른 부분도 조금씩 손봤다. 하지만 새로워진 헤드램프야말로 718을 상징하는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981과의 차이가 뚜렷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아름다운 헤드램프가 옵션이라는 사실. 기본형은 헤드램프 안쪽에서 밝은 LED만 빛난다. 4포인트 LED 주간주행등 옵션은 두가지로 나뉘는데, 크세논이 아닌 LED 방식을 선택해야 사진에서 봤던 직사각형 LED가 적용된다(크세논은 원형 LED). 멋있는 포르쉐를 얻기 위해서는 돈을 더 내야 한다.
돈을 내지 않고도 718의 새로운 디자인을 누릴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바로 테일램프. 박스터의 뒤를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각을 살린 모양보다는 입체적인 램프구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양쪽 테일램프를 잇는 검은색 액센트 바에 연결된 듯한 미등,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켜지는 4개의 LED 포인트는 포르쉐 디자인의 백미는 뒷모습에 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그 정도로 718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그리고 앞쪽과 마찬가지로 981과의 디자인 차이가 뚜렷하다. 전체적인 틀은 건드리지 않고 디테일한 부분만 손봤기 때문에 박스터 특유의 균형미는 그대로 살아 있다. 정말 다행스럽다. 최근 출시된 일부 페이스리프트 모델들의 경우, 억지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집어넣다 보니 균형이 깨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시 포르쉐는 밸런스를 유지할 줄 아는 회사다.
놀라운 디자인 변화에 넋이 빠지기 전에 비행기 안에서 정한 평가기준을 다시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미 세번째, 즉 디자인에 대한 잣대는 부러진 뒤였다. 718 박스터의 디자인은 완벽했다. 그래도 한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다. 바로 실내다.
718의 실내는 변화가 크지 않다. 첫눈에 알아챌 수 있는 변화는 두세가지 정도. 첫번째는 새 911에도 적용된 918 스파이더 스타일의 스티어링 휠이다. 그립감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행 모드를 바꿀 수 있는 다이얼과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이 911과 같은 위치에 있다. 두번째는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의 필수품인 크로노미터가 911처럼 센터페시아에서 대시보드 상단으로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911에서 기분 좋게 사용했던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이 정도 변화로도 실내 분위기가 911과 비슷해졌다. 외부 변화가 큰 탓인지 718의 실내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기 어렵다(페이스리프트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번엔 어떤 부분이 기자의 넋을 쏙 빼놓을까? 그것이 궁금해 얼른 718의 새로운 심장을 깨우기로 했다. 나머지 기준이 희미해지기 전에.
기자가 처음 배정받은 차는 박스터 S였다. 박스터 S는 수평대향 4기통에 VTG(가변식 터빈 지오메트리) 방식의 터보를 얹은 2.5L 엔진을 사용한다. 시승차에는 7단 PDK와 파워 스티어링 플러스,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스포츠 배기 시스템(토크 벡터링과 차체를 20mm 낮추는 스포츠 서스펜션 제외) 등이 적용됐다.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배기음. 왼손으로 시동키를 비틀어 엔진을 켜면 머리 뒤쪽에서 들려오는 특유의 건조한 소리는 그대로다. 포르쉐답다. 그런데, 그 후부터는 조금 다르다. 스포츠 배기 시스템을 활성화하지 않으면 이 차가 포르쉐인지 잊을 정도로 조용하다.
엔진 회전수를 3,000~4,000rpm까지 올리지 않으면 정말 조용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게 좋을 수도 있다. 아파트 주차장이나 포르투갈의 시골길에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포르쉐가 짜놓은 시승코스에 포함된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는 이쪽이 더 낫기도 했다.
문제는 회전수를 그 이상으로 올려도 예전 박스터만큼의 박력 넘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차는 스포츠카다. 성능도 중요하지만 소리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나 박스터는 지붕을 열고 달리는 로드스터다. 따라서 ‘노멀 모드’에서의 배기음은 기자의 평가기준에 못미쳤다. 옵션인 스포츠 배기 시스템을 활성화했을 때는 어떨까? 당연하지만 더 크고 폭발적인 소리가 나온다. 공회전부터 걸걸거리는 포르쉐 특유의 소리가 살아난다. 레드존까지 회전수를 바짝 끌어올린 뒤 기어를 변속할 때 들려오는 폭발음도 포르쉐답다. 다운시프트 때 팝콘 터지는 소리까지도. 하지만 그 강도가 자연흡기만 못하다.
타면 탈수록 인위적인 소리 같은 느낌도 든다. 실린더 깊숙한 곳에서 터지는 소리가 아니라 머플러 주변에서 만들어지는 소리 같다고 할까? 포르쉐에 따르면 실린더 2개가 빠지고, 배기량이 줄어든 것을 만회하기 위해 배기음 튜닝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다. 2.0L 엔진의 박스터에 대한 시승소감을 밝히기 전에 배기음부터 언급하면 박스터 S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용할 땐 조용하고 터뜨릴 땐 화끈하게 터뜨린다. 그리고 특유의 포르쉐 노트도 그대로다. 부메스터 사운드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변함없다.
718을 통해 포르쉐 사운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을 것이 분명하다. ‘스포츠카답다. 이게 바로 포르쉐구나’ 하는 생각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그저 소리가 수형대향 6기통 자연흡기에 비해 약하다는 얘기다.
이제 남은 한가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718의 엔진과 그에 따른 주행성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 때문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소프트톱을 열고 달렸다. 박스터 S의 속도를 올리자 다행히 하늘도 개기 시작했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긴 했다. 그래도 출발할 때보다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사실, 고속도로에서 앞만 보고 달릴 때는 비가 오는지도 몰랐다. 새로운 2.5L 수평대향 4기통 터보 엔진이 만들어내는 미칠듯한 토크가 전달하는 추진력에 취해버렸기 때문이다. 718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박스터 S는 엄청나게 강해졌다. 2,000rpm이 되기 전에 왈칵 쏟아져나오는 42.8kg·m의 최대토크는 작디 작은 박스터 S에 과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350마력의 최고출력이 발휘되는 6,500rpm까지 회전수를 올리지 않고도 박스터 S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나 스포츠 플러스에 놓지 않아도 된다. 노멀 모드에서 회전수를 3,000~4,000rpm에 맞춰놓고 액셀 페달만 잘 컨트롤해도 시종일관 신나게 달릴 수 있다. 터보랙? 존재하긴 한다. 7단 PDK를 3단이나 4단으로 낮추고 재가속을 하면 약간의 지체현상이 있지만 박스터 S의 어마어마한 토크 앞에서는 의미 없는 현상일 뿐이다.
시종일관 힘이 넘치기 때문에 컨트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박스터의 예리함은 718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스티어링 휠로 전해지는 명확한 피드백은 본격적인 주행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다. 가벼운 앞머리를 좌우로 획획 돌릴 때의 감각은 박스터만의 재미다. 아니, 이전 박스터보다 더 재밌어졌다.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의 반응속도가 10% 빨라진 덕분이다. 10%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앞차축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반응성이 빠르고 정확한 것만은 사실이다.
더 빨라진 스티어링에 맞춰 섀시는 관절 부위를 강화했다. 굳이 댐퍼를 옥죄지 않고도 2.5L 터보 엔진의 토크와 횡가속도를 충분히 소화한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에서 충격을 깔끔하게 흡수하며 달릴 때 예상한 것과는 다르다. 댐퍼 설정을 바꾸지 않고 코너를 달리면 불안할 것 같았는데, 아니다. 일반도로의 코너에서는 댐퍼 설정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일반적이지 않은 곳이라면? 이때는 하체에 긴장감을 주어야 더 빠르고 재밌게 달릴 수 있다. 아껴두었던 스티어링 휠의 다이얼을 스포츠 모드로 돌린다. 그러면 718 박스터 S의 진가가 드러난다.
일반 모드에서도 박스터 S의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착각이고 실수였다. 스포츠 모드로 달려야만 이전 모델과 718 박스터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과격하게 코너를 파고들어도 눈 하나 꿈쩍 않고 차체를 버텨낸다. 그 정도로 코너에서의 움직임이 믿음직스럽다.
약간의 고저차를 보이며 쉴새 없이 이어지는 코너를 타고 넘다 보면 좌우로 무게중심이 흐트러질 것 같다. 아니 그래야만 정상이다(게다가 노면은 젖어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요지부동, 한결같은 무게중심과 접지력을 보여주었다.
뒤에서 강하게 밀어주는 토크도 인상적이다. 718 박스터 S의 강한 토크는 직선에서만 유용한 게 아니다. 오히려 코너를 탈출할 때 진가가 드러난다. 수동변속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7단 PDK의 순간적인 킥다운과 터보 엔진의 힘찬 토크가 만나면 금상첨화, 화룡점정이다.
부드럽게 코너 라인을 타다가 스로틀을 활짝 열어봤다. 이때 뒤쪽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추진력은 새총에서 튕겨져 날아가는 총알이 된 기분이다. 조금 보태면 포르쉐의 주특기인 론치 컨트롤을 코너에서 사용하는 것 같다.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스포츠 플러스 모드(스로틀 반응이 훨씬 빨라지고 기어 단수가 확 낮아진다)에서만큼은 등골이 서늘한 론치컨트롤 같은 추진력이 느껴진다. 코너를 타고 돌 때의 민첩함과 폭발력은 자연흡기 박스터를 잊을 만큼 황홀했다.
718에 추가된 PSM 스포츠 모드(PSM 버튼을 살짝 누르면 개입이 최소화된다)까지 더하면 살짝살짝 꽁무니가 흐르는, 포르쉐 홍보영상에서나 봤을 법한 모습으로 주행할 수도 있다. 스티어 특성이 뉴트럴에서 약한 오버스티어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기에 시프트 패들까지 활용하면 차와 하나가 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수동 모드를 이용하면 똑똑한 PDK가 변속할 때보다 타이밍이 늦는데, 그래도 이쪽이 훨씬 재미있다. 앞에서 코너를 탈출할 때의 추진력이 론치컨트롤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 기분을 100km/h로 달리는 중에도 느낄 수 있다. 스포츠 리스폰스 기능 덕분이다. 터보 911에서 먼저 선보인 이 기능을 사용하면 20초 동안 엔진과 변속기가 가속을 위한 최적의 상태에 돌입한다. 스티어링 휠의 다이얼 컨트롤 중앙 버튼을 누르는 순간 PDK는 기어를 4단 이하로 낮추고 스로틀을 열어놓는다.
이 상태에서 액셀 페달을 콱! 밟으면 정지 상태에서의 론치컨트롤 같은 엄청난 가속감을 달리는 중에도 느낄 수 있다. 100km/h 이상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도 눈 깜짝할 사이에 200km/h를 돌파해버린다.
박스터 S에서 짜릿한 경험을 한 탓에 기본형을 탈 때 조금 걱정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당연한 일이다. 배기량 2.0L에 출력과 토크도 각각 300마력과 38.7kg·m으로 박스터 S보다 약하니까. 그런데, 의외였다. 출력이 훨씬 약한데도 정말 빠르고, 그만큼 재미있다. 오히려 더 만만해서 갖고 놀기 좋았다. 기자가 시승한 박스터는 7단 PDK, 파워 스티어링 플러스, 스포츠 크노로 패키지, 스포츠 배기 시스템을 갖춘 모델로, 박스터 S와 엔진만 다르다. 토크는 박스터 S보다 약하지만 코너를 탈출할 때의 폭발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스로틀 반응이 한결 유순해서 컨트롤에 대한 부담이 적다. 힘이 더 약한데, 섀시의 세팅은 박스터 S와 거의 같으니 코너에서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박스터 S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직선에서의 순간 스피드는 박스터 S보다 떨어진다. 이는 스포츠 리스폰스 기능을 써서 채울 수 있는 부분이기에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개인적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박스터를 고를 것이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과함보다는 어느 정도 만만하고 친절한 쪽이 편하다.
포르투갈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정한 3가지 평가기준에서 하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알 것이다. 터보 911에서 확인한 사실이기에 718 박스터 역시 배기음이 자연흡기만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마냥 실망스럽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포르투갈에 갔다온 지 한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718 박스터의 배기음이 가끔 귓전에 울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정도면 포르쉐의 노력이 성공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두번째 기준인 디자인은 기대 이상이었다. 터보 엔진의 911보다 718의 디자인 변화가 더 극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4포인트 LED가 앞뒤로 추가된 718을 보고 나니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박스터들이 10년 전에 나온 구형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포르쉐가 이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718은 디자인 하나만으로 구매자들의 지갑을 열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4포인트 LED DRL을 얻기 위해서는 지갑을 한번 더 열어야 하지만).
마지막으로 엔진과 주행성능. 이 부분은 절반은 예상대로, 나머지는 반대로 흘러갔다.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은 ‘터보 엔진의 토크는 위대하다’는 사실이다. 고회전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터져 나오는 강한 토크 덕분에 718 박스터는 이전 모델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섀시가 좀더 치밀해져 정확하게 달리기까지 한다.
기자는 한번도 최고출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예전 포르쉐 같으면 회전수를 7,000rpm 이상으로 쥐어짜고, 그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최고출력을 느끼며 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718 박스터는 그럴 필요가 없다. 6,500rpm을 넘기고 7,000rpm까지 회전수를 바짝 올리면 자연흡기 엔진에서 느꼈던 희열감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718의 터보 엔진은 중저회전대에서 토크가 워낙 크고, 중독성이 있어 회전수를 끌어올릴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을 느낄 일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박스터의 특성이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예전 박스터는 엔진을 쥐어짜면서 달려야 하는 고성능 스포츠카였다. 반면, 718 박스터는 일상에서 편하게 탈 수 있는 데일리 스포츠 로드스터다. 718 박스터가 약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버튼 몇개만 누르면 금세 빠르고 정확하게 달리는 포르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린다(이때만큼은 예전보다 훨씬 무섭다). 이런 특성은 더 많은 사람을 포르쉐팬으로 끌어들일 것이 분명하다. 이제 막 포르쉐에 입문한 사람은 좀더 쉽게, 그리고 순식간에 포르쉐라는 바이러스에 중독될 것 같다. 포르쉐를 잘 알던 사람은 터보라는 새로운 ‘물건’에 호기심을 보일 것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 맛에 빠질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기자가 이미 그 맛에 빠졌기 때문이다. 718 박스터는 확실히 예전 모델과 다른 맛이 있다. 그러면서도 타면 탈수록 포르쉐답다는 생각이 든다. 718의 중독성 강한 그 맛을 한번만 느껴보면 분명한 포르쉐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