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모델 S와 인제 스피디움 나들이
2016-07-18 12:20:28 글 신기량(자동차 칼럼니스트)
지난번에는 모델 S로 강원도 인제를 다녀왔다. 게다가 스피디움에서 서킷 주행까지 해봤다. 전문가들이 독일 뉘르부르크링이나 미국 각지의 트랙에서 테슬라로 달려봤겠지만 일반인들은 그럴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도 일부러 그런 기회를 만들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탑기어〉의 애스턴마틴 밴티지 인제 스피디움 시승과 관련해 소중한 기회가 생기자 얼른 움켜잡았다.
모델 S는 전기차이기에 장거리 주행을 하려면 우선 충전소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심한 경우 충전을 위해 여행 코스를 변경할 때도 있다. 여기서 완충 후의 주행가능거리가 400km를 넘나드는 테슬라의 장점이 눈부시다. 충전 횟수와 시간이 대폭 줄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의 모델 S P85+는 완충 때 주행가능거리는 스크린에 428km가 찍힌다. 그러나 시내주행이 대부분인 경우 300km 넘기기 힘들다. 배터리 효율이 떨어지고 전력 소모량이 많은 겨울철이나 고속주행 위주로 달리면 더 짧아진다.
이번 인제 나들이는 왕복 300km 정도이고 트랙까지 달려야 하기에 도중에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서울에서 인제로 향하는 도로에는 가평휴게소(서울-춘천 고속도로)에 급속충전기가 있다. 가평휴게소까지의 거리는 약 50km이고 휴게소에서 인제 스피디움까지는 100km이기에 돌아올 때 이곳에서 재충전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가는 길에 춘천방향 가평휴게소에 들러 차에 충전기를 물렸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차로 돌아오니 모델 S를 살펴보고 있던 사람들이 질문을 쏟아낸다. 모델 S는 생김새도 일반세단과 다름 없기에 평상시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충전기 앞에 있을 때는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스피디움에 도착 했을 때 남은 주행가능거리는 270km 정도. 이 정도면 서울까지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탑기어〉 편집부와 약속한 애스턴마틴 밴티지 시승을 마치고 잠깐 짬을 내 모델 S로 트랙을 밟았다. 모델 S의 하체는 어찌 보면 레이스카 뺨친다. 앞 더블 위시본, 뒤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가벼운 알루미늄 소재로 짜넣었고 거기에 에어스프링까지 갖췄다. 주행 때는 120km/h가 넘어가면 자동으로 차고가 4cm 정도 내려가 공력성능을 높인다. 게다가 차체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 바닥에 달린 544kg의 배터리팩이 주행안정성을 극대화한다. 마치 엔진이 중앙에 얹힌 미드십의 느낌을 주는 이유다. 2톤이 훌쩍 넘는 차지만 배터리가 지면에 가깝게 놓여 서스펜션 상부에 실리는 하중 부담이 그만큼 작다. 그래서인지 약 2.5톤의 모델 S는 트랙에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다. 롤이 거의 없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포뮬러카 같다고 하면 과장이지만 엔진이 한쪽으로 치우친 구성(FF, FR, RR)의 자동차를 타다가 미드십 스포츠카를 처음 탈 때처럼 충격적인 것은 사실이다.
평소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등의 고급 대형차처럼 안락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모델 S가 서킷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다시 놀랐다. 앞 245/35R 21, 뒤 265/35R 21의 타이어도 한몫 하는 눈치지만 무엇보다도 배터리 미드십(?)이기에 그런 것 같다. 테슬라 모델 S는 미국에서 400m 드래그 레이스에서 웬만한 스포츠카를 압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이 차를 트랙에서 몰면 배터리에 열이 많이 발생해 성능을 제한하는 안전 모드로 전환된다고 한다. 필자의 경우 출력이 대폭 줄어들어 순한 양처럼 달리는 모델 S를 아직 경험하진 못했지만 가속력을 믿고 서킷 주행에 나섰다가 몇 랩을 돌지 않아 차가 제대로 달리지 못한다는 미국 현지 오너들의 불만을 종종 접한다. 최근에는 현지 레이싱팀에서 자체적인 배터리 열관리 기술을 개발해 모델 S를 경주차로 변신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모델 S는 정통 스포츠카와 다른 세단 스타일에 크기와 무게에서 불리하지만 워낙 코너링 실력이 뛰어나 양산차들이 겨루는 모터스포츠에서도 특출난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인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며 가평휴게소에 들러 잠시 충전을 했다. 그런데 인제에서 작별인사를 했던 〈탑기어〉 일행과 우연히 만나게 되어 커피를 손에 들고 못다한 수다를 한바탕 떨었다. 그 사이 모델 S의 주행가능거리는 200km 이상으로 늘어났다. 공짜로 말이다. 우리나라에 전기차가 더욱 많아지고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충전기가 설치된다면 필자처럼 배터리가 배를 채울 동안 지인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