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리프’가 필요할 때, 닛산 리프
2016-08-26 14:05:18 글 민병권 기자
닛산 리프는 전기차다. 버튼을 눌러 전원을 켜면 출발준비가 끝난다. ‘부팅’이라고 할 것도 없을 만큼 즉각적이다. 달리기는 또 어떠한가. 리프의 최대토크는 25.9kg·m. 닛산은 V6 3.5L 가솔린 엔진급의 순간 가속력을 발휘한다고 자랑한다. 준중형 해치백 수준의 덩치를 지닌 차가 말이다. 1.5톤이 넘는 공차중량도 준중형차 수준을 넘기는 한다.
하지만 전기차의 필살기는 토크가 가속페달을 밟는 즉시, 기어단수, 엔진 회전수를 가리는 일 없이 즉시 발휘된다는 점이다. 디젤차처럼 뜸을 들이거나 심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소음과 진동 없이 말이다. 처음엔 스로틀 응답이 느슨하다고 생각했다. 운전하기 편하지만 필요할 때 제대로 힘을 낼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봉인 탓이었다. 에코 모드가 켜져 있었던 것이다. 에코 모드를 끄는 게 다른 차의 스포츠, 아니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속페달을 밟고 있던 발에 약간의 힘을 주는 것만으로 슈슈슉 하면서 다른 차들을 제치고 나가는 쾌감은 정말 중독성 있다. 그 경쾌함이 고속영역까지 지속되진 않지만 주로 사용하는 범위에선 차고 넘칠 정도이고, 섀시도 이를 잘 뒷받침한다. 감속 때 배터리를 보충하는 회생제동 시스템의 이질감도 적은 편이다. 운동성에서 발목을 잡는 무거운 배터리는 차바닥에 깔아 악영향을 최소화했다. BMW i3급은 못되지만 스티어링 휠을 잡아 돌렸다가 맥이 쭉 빠질 수준은 아니다. i3도 그렇지만 해치백치곤 지붕이 높고 바닥에 배터리를 깔아 높게 앉은 느낌이 어색할 뿐이다. 이런 기분은 뒷좌석이 더하다. 그래도 공간 여유나 활용성은 i3에 비할 바가 아니다. 크로스오버, MPV에 견줄 만한 부피감을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준중형 해치백 수준에선 모자람이 없다. 몇 군데를 제외하고 튀지 않는 실내외 구성도 장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 타이틀은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는 전기차. 다른 차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문제가 시승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주행 가능거리 말이다. 주행 가능거리가 250km(해외 기준)로 늘어난 새 리프가 나왔다지만 구형 시승차는 그 절반 수준. 당초 계획은 50km 떨어진 목적지를 오가는 길에 시승과 촬영을 마치는 것이었지만 막상 차를 타고 계기판의 주행 가능거리 수치가 뚝뚝 떨어지는 걸 경험하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중간에 급속충전기가 있긴 했지만 1개뿐이었고 우리가 들렀을 때 곧바로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게다가 ‘아직 충전이 덜돼 출발 못하고 있다’면서 약속시간을 미뤄 몇시간 늦게 나타난 시승차는 주행 가능거리가 70km에 불과했다. 하는 수 없이 촬영을 이튿날로 미루고, 밤사이 집에서 배터리를 가득 채워오기로 했다. 이때만 해도 충전을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귀찮더라도 가까운 급속충전기를 찾아봤을 텐데. 하필 한밤중에 귀가한 이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완속 충전을 하느라 쇼를 해야 했다.
어렵사리 90% 남짓 채워놓은 배터리는 다음날 시내를 오가는 사이 또 무섭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점심 무렵, 모 주유소(!)에 있는 급속충전기에 차를 연결해놓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완충을 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땅값 비싼 동네인데도 주차비를 따로 내지 않는다는 점을 위안 삼기로 했다. 충전완료 예상시간보다 조금 일찍 주유소로 돌아왔지만, 기다리고 있던 택시 기사가 “충전은 아까 끝났는데 이제 오면 어떡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의 차는 SM3 전기택시였다.
어리둥절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다시 촬영에 필요한 주행거리를 벌었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촬영을 마쳤고 시승차를 반납하기에 충분한 주행거리가 남았다. 이쯤 되니 전기차가 필자의 오래된 스마트폰을 닮은 것 같았다. 배터리 잔량이 종잡을 수 없이 떨어지고 일체형 배터리여서 충전이 덜된 채로 갖고 나갔다간 일정이 꼬이기 십상이다. 다행인 것은 요즘 새로 나오는 전기차들은 리프가 처음 나왔던 5~6년전보다 성능이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다. 올 1월까지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20만대 넘게 팔린 리프가 전기차 발전에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