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C90, 럭셔리 SUV 향한 볼보의 반격
2016-09-07 08:30:00 글 이지수, 김준혁 기자
볼보 신형 XC90은 그동안 UK 〈탑기어>를 통해 종종 소개한 차이기에 관심이 컸었다. 매번 언급하는 내용 중 하나가 무겁고 큰 차체에 대한 얘기였다.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지난번에는 XC90을 끌고 네팔 카트만두를 둘러본 이야기가 실렸다. 교통상황이 복잡하다 못해 전쟁터 같은 현지에서 XC90에 달린 수많은 안전·편의장비(360도 카메라와 인텔리 세이프 등) 덕분에 무사히 시승을 마쳤다는 내용이다. 여유공간이 10cm도 되지 않는 도로를 길이가 5m에 육박하고 폭이 2m가 넘는 육중한 XC90이 헤치고 나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회전수를 올리면 한계치인 5,700rpm까지 꾸준한 파워를 뽑아낸다
책에서만 보던 신형 XC90 T6 모델을 드디어 국내에서 시승했다. 시승차인 2.0L 터보 직분사 엔진 T6는 D5(2.0L 터보 직분사 디젤)와 T8(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사이에 드는 중간급이다. 9,550만원인 인스크립션 트림으로 바워스&윌킨스 스피커와 360도 카메라 등 고급 장비를 갖췄다.
볼보 파워트레인은 큰 변화를 겪었다. 고집스럽게 유지하던 5기통 엔진을 비롯해서 6기통(심지어는 야마하에서 가져온 V8까지)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선보였다. 바로 ‘드라이브-E’다. 변화의 핵심은 다운사이징 직렬 4기통 블록이다. 새 엔진은 가솔린과 디젤 모두 같은 블록을 활용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터보와 수퍼차저를 결합해 2.0L인데도 320마력에 이르는 강력한 힘을 낸다
T6은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 중 가장 강력한 가솔린 엔진을 얹은 모델이다. 수퍼차저와 터보차저를 덧붙여 최고출력이 320마력에 이른다. 저속에서도 자연흡기 못지않게 자연스럽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고속에서는 대용량 터빈이 강력한 힘을 이끌어내 맹렬하게 달린다. 회전수를 올리면 한계치까지 꾸준히 파워를 뽑아내는 특성이 마음에 든다.
넘치는 힘은 제원표에서도 드러난다. 2,165kg이나 나가는 육중한 차체지만 0→100km/h 가속을 6.5초만에 끊는 순발력이 돋보인다. 최대토크는 40.8kg·m로 2,200~5,400rpm에서 터져 나온다. 4기통 1,969cc 엔진을 올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느 때이든 모자라지 않는 힘을 발휘한다.
아이신제 8단 자동변속기와 엔진의 조화가 만족스럽다
아이신제 8단 자동변속기와 엔진의 조화도 만족스럽다. 서서히 속도를 올리면 각 단마다 짧게 호흡하며 부지런히 단수를 올린다. 직결감도 좋다. 전반적으로 움직임은 안정적이지만 코너를 급하게 돌 때나 빠른 속도로 진입할 때 롤링이 발생하고 요철을 넘을 때 제법 흔들리는 편이다. 덩치 큰 SUV치고는 자세 유지 능력이 우수하지만 SUV의 구조적 한계는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공인 복합연비는 8.8km/L인데 85km가량 달린 뒤 트립 컴퓨터를 보니 10.2km/L가 찍혀 있다. 연비를 신경 쓰지 않고 달렸는데 만족스러운 수치다.
패밀리 SUV이지만 시트 형상은 매우 역동적이다
다재다능한 측면에서 접근해도 이만한 차를 찾기는 쉽지 않다. 장점을 소개할 때 무엇을 먼저 얘기할 지 정리 해야 할 정도로 매력 넘치는 장비가 가득하다. 실내에 오르면 나뭇결을 살린 무광 우드와 세련된 베이지 색상 가죽시트, 진회색 가죽으로 마무리한 창틀의 조화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탑승객 모두를 배려한 장비도 여럿이다. 2열과 3열까지 전용 공조장치를 갖춰 온도 조절이 자유롭다. 1열부터 3열까지 시트 높이를 다르게 해 뒷자리에서도 전망이 탁 트인다.
9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로 대부분 기능을 조작한다
센터페시아 중앙부에 위치한 9인치 디스플레이는 적외선 방식이어서 가벼운 터치로 조작할 수 있다. 터치감이 우수하다는 아이폰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비상등과 앞뒤 유리 열선 등 몇가지 기능만 버튼을 이용한다. 대부분 기능은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조작해야 한다. 내비게이션, DMB, 음향(스튜디오·콘서트홀 모드, 운전자·동반자 모드 등), 타이어 공기압 확인 및 보정, 엔진오일 체크 등 꽤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마사지 시트는 속도와 강도 조절은 물론이고 허리나 어깨 등 작동 부위도 나눠진다.
나뭇결을 살린 우드와 고급 가죽으로 마무리한 실내는 꽤나 멋스럽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제왕이라 불리는 바워스&윌킨스 스피커가 달려 있어서 운전을 하면서 귀가 제대로 호강했다. 다이아몬드 트위터로 유명한 바워스&윌킨스 오디오는 트위터 진동판 소재를 흔히 사용하는 알루미늄 대신 단단한 합성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반응성이 좋고 깨끗한 고음을 뽑아낸다. 중대역을 책임지는 미드레인지 드라이버 역시 고강도 케블라 소재로 만들어 안정적이고 선명한 사운드를 이끌어낸다. 실제로 들으면 닭살이 돋을 정도로 흥분되니 기회가 닿으면 꼭 한번 들어보기 바란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제왕인 바워스&윌킨스. 귀호강 할 준비 됐나요?
볼보 하면 안전과 편의장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반자율 주행기술인 ‘파일럿 어시스트 2’는 운전자가 별도로 조작을 하지 않아도 차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며 달린다. 차선을 벗어나면 이전(어시스트 1)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차를 제자리로 되돌리는 기술이다.
차가 도로에서 이탈하는 사고가 나면 운전자를 신속하게 시트에 밀착시켜 부상을 최소화하는 도로이탈 보호 시스템과 업그레이드된 시티 세이프티 기술도 담았다. 이전에는 앞차와 보행자, 자전거와의 충돌만 감지했다. XC90은 큰 동물 또는 교차로 진입 때 반대편에서 직진하는 차와 충돌을 감지해 긴급 제동을 하는 교차로 추돌방지 시스템을 새로이 더했다.
파크 어시스트 파일럿은 앞뒤옆에 달린 초음파 센서를 이용해 주차 가능 공간을 감지하고 30km/h 이하 속도에서 스티어링 휠을 움직여 주차를 돕는다.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 등 실내로 들어오는 유해물질을 막는 실내 공기청정 시스템, 발 동작으로 트렁크를 열 수 있는 핸즈프리 테일 게이트도 갖췄다. 인스크립션 모델은 주변 장애물과 도로 상황을 한눈에 파악하는 360도 카메라 시스템이 달려 있어서 좁은 곳에 주차할 때 편리하다.
3열 시트를 접으면 비행기 격납고만한 널찍한 공간이 생긴다
XC90 T6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전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그득하게 실은 안전·편의장비는 물론이고 비행기 격납고만한 적재공간도 인상적이다. 가격은 만족스럽지 않다. 시승차인 T6 AWD 인스크립션의 판매가격은 9,550만원이고 R-디자인은 9,390만원이다. 다른 럭셔리 브랜드 경쟁차와 비교해서 비싸다는 의견이 많다. 볼보 측에서는 이전과 달리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합당한 가격이라고 말한다. 가격의 적정성은 판매 대수가 말해 주지 않을까 싶다.
XC90 T8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이유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볼보는 거의 12년만에 내놓은 신형 XC90의 최상급 모델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T8을 내세웠다.
달리다 보면 배기량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XC90 T8은 수퍼차저와 터보차저를 올린 2.0L 가솔린 엔진에 전기모터를 더했다. 이를 가리켜 볼보는 ‘트윈 엔진’이라 부른다. 가솔린 엔진은 앞바퀴를 구동하고, 뒤 차축 뒤에 달린 전기모터가 뒷바퀴 구동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직렬 4기통 트윈 엔진은 디젤 엔진과 같은 강력한 토크에 가솔린 엔진 특유의 날카로운 반응을 겸비했다. 최고출력은 313마력이고, 최대토크는 40.8kg·m이다. 여기에 87마력과 24.5kg·m의 토크를 내는 전기모터를 결합해 시스템 출력 400마력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XC90 T8은 엄청난 힘을 자랑한다. 배기량이 1,969cc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을 정도다. 특히 가속할 때 토크가 인상적이다. 엔진과 전기모터의 힘을 최대한 사용하는 파워 모드에서는 V6, 심지어 V8의 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시동과 동시에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전기모터 특성 때문에 2,300kg이 넘는 무게를 느끼기 어렵다. 가속 페달을 밟는 대로 쭉쭉 나갈 때에는 파워트레인이 섀시를 뛰어넘는 오버스펙이라 여겨질 정도다. 다만 배기량이 작기 때문에 고속으로 갈수록 밀어주는 힘은 약해진다. 400마력까지는 아니고 딱 가솔린 엔진의 출력 수준인 300마력 정도만 느낄 수 있다.
T8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갖췄다
볼보측 설명에 따르면 프로펠러 샤프트가 있어야 할 차체 한가운데에 9.2kW 리튬이온 배터리를 놓아 무게중심을 낮췄다. 가속을 멈추고 제동을 하거나 코너를 급하게 돌 때에는 앞머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엔진과 전기모터 결합은 이질적이지 않다. 자동차 스스로 전기모터와 엔진을 번갈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모드에서 엔진의 개입 시점을 알아차리기는 힘들다. 그 정도로 엔진이 부드럽고 조용하게 꺼졌다 켜진다. 전기모터만 사용하는 퓨어 모드에서는 지금까지 숱하게 겪어왔던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모습 그대로다. 조용하고 부드럽고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이때 주행 가능 거리는 유럽 기준으로 43km라고 한다. 국내 기준으로는 21km가 나왔다. 일반 하이브리드 주행을 기준으로 한 국내 복합 연비는 10.7km/L다. T6 가솔린의 8.8km/L보다 높지만 PHEV에 기대하는 연비에는 미치지 못한다. 외부 충전을 하는 경우라면 연비는 이보다 높아질 게 분명하다.
PHEV의 가장 큰 단점은 충전이다
충전기 문제를 비롯해 우리나라는 XC90 T8의 효율성이 부각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분명한 사실은 XC90 T8을 효율성 하나만 보고 살 사람은 많지 않다. 배기량을 뛰어넘는 강력한 성능이 이 차의 최대 장점이다. T8 트림에만 적용되는 크리스털 기어 노브를 비롯한 호화로운 옵션도 T8이 탐나는 이유 중 하나다.
XC90의 기본형인 D5는 2.0L 트윈터보 디젤 엔진을 사용한다. 3.0L 디젤에 버금가는 최고출력 235마력, 최대토크 48.9kg·m의 넉넉한 힘을 지닌 유닛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판매된 볼보 D4에 얹혔던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의 고성능 버전이기도 하다. 단순히 출력만 높이지 않았다. 반응속도가 가솔린 엔진 못지않게 빨라졌고 회전수 상승도 매끄럽다. 비결은 신형 S90을 통해 최초로 선보인 파워펄스 기술 덕분이다. 2L 크기 저장소에 압축공기를 모아뒀다가 시동 직후 또는 속도를 높일 때처럼 터보 작동이 불완전한 시점에 순간적으로 공기를 넣어 폭발력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파워펄스는 1단과 2단 기어 그리고 2,000rpm 이하에서 작동한다.
디젤 모델 D5는 밸런스가 뛰어나다
새로운 기술과 고출력 덕분에 2.0L 엔진으로도 XC90의 커다란 덩치를 충분히 소화해낸다. 저속에서 펀치력도 좋고 가속 페달을 다그쳐도 실내로 넘어오는 소음과 진동이 크지 않아 부담 없다. 150km/h를 넘으면 슬슬 배기량의 한계가 오지만 그 전까지는 가솔린 엔진 T6이나 하이브리드 구동계 T8이 부럽지 않게 매끄럽게 달릴 수 있다. 더 싼 연료를 적게 써가면서 말이다. 고속 영역에서 가솔린 모델들보다 활기차게 달리지는 못하지만 엔진 출력이 만만하고 밸런스까지 좋아 컨트롤하기는 D5 쪽이 훨씬 수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