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TT, 과거와 현재의 시공을 초월한 만남
2016-09-28 08:00:00 글 김종우 기자
아우디 TT 1세대 디자인은 충격이었다. 아우디에서도 이런 차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콘셉트카도 양산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프런트 범퍼부터 보닛과 루프, 트렁크 리드, 리어 범퍼로 이어지는 유려한 곡선은 여체의 라인을 재현한듯 관능적이었다. 루프를 열고 도로 위를 사뿐사뿐 캣워크하는 1세대 TT는 어린 기자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았다. 대학교에 진학하면 바로 사야 할 물건 1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우디 TT는 BMW Z4, 메르세데스-벤츠 SLC와 함께 독일 2인승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차다. 데뷔는 TT가 가장 늦다. 199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콘셉트카가 데뷔했다. 이후 1998년 쿠페, 1999년 로드스터가 출시됐다.
1세대 TT는 2000년대 최고의 디자인으로 꼽힐 정도로 스타일이 뛰어났다. 물방울을 연상시키는 측면, 공격적인 앞모습과 부드러운 뒷모습이 어우러져 콤팩트하고 날렵한 2인승 스포츠카의 진수를 보여줬다. 쿠페는 2+2, 로드스터는 2시트 구성이다. 플랫폼은 폭스바겐그룹의 A4(PQ34)다. 이는 골프 4세대와 아우디 A3에도 사용됐다.
TT라는 이름에는 2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영국 맨섬에서 열리는 ‘맨섬 TT’(Isle of Man Tourist Trophy)와 Technology & Tradition을 뜻한다
2006년 출시된 2세대는 이전 모델의 디자인을 살리면서 고성능을 더했다. 1.8·2.0·2.5·3.2L 가솔린 엔진과 2.0L 디젤 등 다양한 엔진을 사용하고 고성능 모델인 S와 RS가 더해졌다. 1세대보다 조금 더 큰 플랫폼을 사용해 길이와 너비가 130mm, 76mm 늘어났다.
현재 판매 중인 TT는 2014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한 3세대다. 폭스바겐그룹의 차세대 플랫폼인 MQB를 사용하고 아우디 패밀리룩을 적용했다. 다양한 엔진을 갖춘 이전 세대와 달리 2.0L 가솔린과 디젤 엔진만 선택할 수 있다. 올해 4월 베이징 모터쇼에서는 TT의 고성능 모델 RS가 선보였다. 이 차는 직렬 5기통 2.5L 엔진을 사용하고 최고출력이 400마력에 육박한다. 올 10월 유럽을 시작으로 세계 시장에서 판매된다.
<탑기어>는 아우디 TT의 과거와 현재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 15년 세월을 건너뛴 1세대와 3세대 TT 로드스터를 준비했다. 두 차의 외관과 인테리어, 주행 및 편의장비를 살펴보기만 해도 그 사이 자동차산업의 트렌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TT만의 개성은 여전하다
1세대 TT에는 화제를 모았던 야구 글러브 형태 가죽 마감 시트와 내장재를 사용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적당히 빛 바랜 가죽에서 연륜이 묻어난다. 신차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향기다. 각종 버튼과 커다란 모니터 등으로 채워진 요즘 차와 달리 1세대 TT의 센터페시아는 깔끔하다. 운전할 때 꼭 필요한 기능만 갖췄다. 어느 브랜드마냥 ‘하나의 버튼은 하나의 기능만 담당한다’는 원칙을 따른다.
버튼 없이 깨끗한 스티어링 휠은 요즘 차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어색하다. 스티어링 휠 가운데와 에어벤트, 기어 시프터, 도어 핸들 등에는 현재까지 이어오는 은빛 링으로 장식했다. 요즘은 고급스러운 마감재로 유광 블랙 소재가 각광 받지만 당시에는 은빛 크롬이었다. 실내 곳곳에 광택을 잃은 크롬 장식이 붙어 있다. 센터페시아 쪽 널찍한 TT 판대기(?)는 부담스러울 정도다.
3세대는 TT만의 개성이 사라져 아쉽다. 버추얼 콕핏은 첨단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세대와 비교해 3세대 TT는 스페이스 셔틀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그중 3세대에 처음 적용한 버추얼 콕핏은 아우디만의 자랑이다. 1세대와 같이 최소한의 버튼을 배치해 좀더 운전에 집중할 수 있다. 아쉽게도 TT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디자인 요소는 사라졌다. 1세대처럼 조금 촌스럽지만 ‘당신은 지금 TT를 타고 계십니다’라고 알려주는 위트가 없다. 여기서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획일화를 추구하는 요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1세대 TT는 1.8L 220마력 엔진에 6단 수동 변속기를 갖췄다. 앞바퀴굴림을 기반으로 하는 콰트로 시스템을 이용해 달린다. 3세대 TT는 2.0L 220마력 엔진, 6단 DCT에 역시 콰트로 시스템을 사용한다.
1세대의 6단 수동변속기. 요즘 차에서 보기 힘든 희귀 아이템이다
두 차의 외관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프런트 그릴과 범퍼 구분 없이 둥그렇게 마무리한 앞모습은 3세대에도 이어졌다. 다만 3세대는 날카로운 선과 면을 살려 인상이 더 공격적이다. 전복 때 탑승자를 보호하는 롤바도 1세대는 둥그런 형태인 반면 3세대는 각이 져 있다.
1세대에는 어색한 리어 스포일러가 달려 있다. 관능적인 라인을 흐트리는 옥에 티다. 사실 초기형에는 리어 스포일러가 없었다. 출시 후 고속주행 안정성 문제가 제기돼 ESP와 서스펜션을 손질하고 고정식 리어 스포일러를 달았다. 3세대는 전동식 리어 스포일러를 달아 운전환경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오픈 에어링 감성은 변하지 않았다
15년이나 차이나는 두 모델의 달리기는 어떨까? 1세대 TT의 운전 포지션은 일반 세단과 크게 다르지 않아 조금 껑충하지만 실내공간은 더 넓고 여유롭다. 3세대는 운전석이 경주차처럼 타이트하다. 이런 특성은 달릴 때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3세대가 1세대보다 주행감각이 날카롭고 단단하다. 서스펜션도 딱딱해 요철로 인한 층격을 탑승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두 차 모두 소프트톱이 달려 있는데, 3세대의 3중 구조가 방음 효과가 더 우수하다.
세대를 이어오는 차를 살펴보면 당시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우디 TT도 마찬가지다. 1세대는 파격 디자인으로 독특한 개성을 뽐냈다. 2세대는 S와 RS 모델을 추가해 빠르게 달리는 스포츠카의 본질을 만족시켰다. 3세대는 첨단 편의장비를 갖춰 스마트한 차로 거듭났다. 세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은 부분은, 루프를 열어젖히고 바람을 맞으며 질주하는 오픈 스포츠카의 감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