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로엥 C4 칵투스, 선인장이라는 이름의 범퍼카
2016-11-07 08:00:00 글 민병권 기자
커피를 주문하러 드라이브 스루에 들어가면서 잠시 긴장했다. 칵투스의 하나뿐인 컵홀더에 꽂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설임을 끝내고 톨 사이즈를 주문했다. 다행히 운전석과 동반석 사이, 저만치 바닥쪽에 있는 작은 구멍에 컵을 놓을 수 있었다. 작은 컵홀더가 제구실을 하니 신기했다.
첫인상도 그렇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더 이상한 차다. 동반석 에어백을 천장에 달면서까지 마련한 보물상자 같은 글러브박스, 변속기와 브레이크 주변의 움푹 파인 부분 등 이곳저곳에 수납공간이 있는데, 으레 기대하는 곳에는 없고 있더라도 쓰기 불편하다. 모양이 이상해서 물건이 떨어지거나, 조명이 없거나, 운전 중엔 손이 닿질 않거나.
버튼이나 다이얼 개수를 줄이고 중앙 터치스크린에 온갖 기능을 통합했는데 이것도 좀 이상하다. 그래픽이 구식이고 처리속도가 늦은 것은 둘째로 치자. 온도조절이나 외기 유입 차단 등 자주 쓰는 기능도 해당 화면을 띄운 다음에 선택할 수 있다. 터치 영역과 조작감에도 문제가 있다.
운전자가 이런데 주의를 빼앗기면 안전운행에 도움될 리 없다. 그에 비하면 내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 사이드미러의 전동 기능, 룸미러 눈부심 차단(ECM), 윈도 원터치 업다운 기능이 없는 것 정도는 하찮은 불만이다(일부는 옵션으로 준비되어 있다).
뒷좌석은 도어포켓이 널찍한데 대신 창문을 아래로 내릴 수 없다. 미니밴처럼 뒤쪽이 벌어지도록 틸팅만 할 수 있다. 파노라마 루프에는 햇빛가리개가 없다. 조금 지나친 것 같지만 이런 간소화 덕분에 칵투스는 무게와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뒷좌석과 적재공간은 작은 크기와 낮은 지붕에 비해 괜찮은 편이다.
이름으로 보아 C4 피카소 계열 같은 C4 칵투스는 사실 푸조 2008의 시트로엥 버전이다. 그만큼 작은 차라는 뜻이다. 차체 크기가 2008과 비슷하다. 사진에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은 휠베이스가 길고 지붕은 낮기 때문이다. 지붕 높이가 DS 3 혹은 모닝이나 스파크와 비슷하다.
1.6L 디젤 엔진의 최고출력은 99마력, 최대토크는 25.9kg·m다. 변속기는 PSA 그룹 차들에서 익숙한 싱글 클러치 수동변속기 기반 6단 자동변속기 ETG(MCP)다. 그런데 이번엔 버튼식이라 색다르다. 센터페시아 아래쪽으로 팔을 뻗어 시트 높이에 달린 큼지막한 D·N·R 버튼을 누르면 된다.
시트 사이에 솟아 있는 넓적한 손잡이를 기어레버로 착각한 이들을 여럿 봤다. 이것은 주차브레이크다. 버튼을 누르며 아래로 쑥 내려주면 된다. 반대로 차에서 내리기 전에는 N을 눌러 기어를 중립에 넣고 주차브레이크를 당겨 올려줘야 한다.
경사로에 잠시 멈췄을 때는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걸려 차가 밀리지 않으며, 오토 스타트 스톱 기능이 작동해 시동이 꺼졌더라도 브레이크 페달을 떼면 바로 시동이 걸린다. 정차 중 주차브레이크를 당기고 D에서 N레인지로 바꾸면 시동 정지상태가 유지된다.
멈추기도 전에 시동을 꺼버리는 오토 스타트 스톱은 하이브리드 뺨치게 적극적이고 매끄럽기도 하다. 디젤 엔진과 ETG에 이걸 물렸으니 연비가 좋을 수밖에 없다(복합연비 17.5km/L). 물론 차가 가벼운 덕분이기도 하다. 배기량에 비해 보잘것없는 출력이지만 힘차게 나가는 것도 그 덕분이다. 다만 가속페달을 깊게 밞으면 걸걸대는 소리가 난다.
시스템이 제안하는 ‘느긋한 가속’ 이상을 원할 때는 가속페달을 더 밟아 다운시프트를 유도하기 보다는 패들로 직접 변속하는게 낫다. 이전과 달리 변속기엔 수동 모드나 스포츠 모드 선택부가 따로 없다. 패들을 더 적극적으로 쓰라는 뜻 같다.
거실 같은 실내공간, (직물)소파 같은 평편한 좌석이 보여주듯 과격한 운전이 어울리는 차는 아니다. 하지만 차로 변경이나 코너링은 탄탄하게 잘 해낸다. 변속기에 개의치 않는다면 나름 운전재미를 즐길 수 있다. 17인치 휠을 끼운 시승차는 가끔 튀는 경향을 보이면서도 요철 충격과 소음을 잘 흡수해 대체로 나긋한 느낌을 주었다.
트집거리가 없지는 않지만 개성 넘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차에 대한 호감을 지워낼 정도로 큰 걸림돌은 없어 보인다. 값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