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G GT S vs 카마로 SS, 심금을 울리는 8개의 실린더
2016-11-16 08:00:00 글 김종우 기자
매월 발행하는 <탑기어>에는 수십대의 시승기가 실리고 수백대의 자동차 정보가 수록돼 있다. 최신 자동차 정보가 가득하고 멋진 사진이 넘쳐나는 <탑기어>를 후루룩 넘겨보다가 이 페이지에서 멈췄다면 분명 두 글자를 봤기 때문이다.
V8. 차 좀 좋아한다는 독자들 중에 이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을 보고 가슴 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미리 고백하자면 이번 V8 특집은 기획자의 욕심이 크게 작용했다. 차값이 네배 이상 차이나고 성격도 전혀 다른 아메리칸 머슬카와 독일산 스포츠카를 왜 붙였느냐는 항의는 잠시 접어두시라. 심금을 울리는 V8의 배기음과 머리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폭발적인 가속력. 이 두가지 특성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두 차의 만남이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부산 해운대를 달궜던 2016년 부산모터쇼. 국제 모터쇼라지만 월드 프리미어 신차도 별로 없고 죄다 어디서 본 듯한 모델뿐이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진흙 속 진주를 발견했으니 바로 2017년형 쉐보레 카마로 SS다.
카마로는 1966년 처음 선보였다. 현재 모델은 6세대다
카마로는 영화 <트랜스포머>의 범블비로 국내에서 유명세를 떨친 모델이다. 1966년 큰 인기를 끌던 포드 머스탱의 대항마로 쉐보레가 야심차게 선보인 포니카다. 포니카는 원래 머스탱에 붙여진 애칭(엠블럼이 조랑말이다)으로 ‘머슬 루킹카’로 기획됐다. 머슬카의 외형을 따온 겉만 화려한 차였는데 점차 화끈한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면서 머슬카와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카마로는 1966년부터 2002년까지 4세대를 이어오다가 잠시 생산을 멈췄고 2007년 5세대 등장했다. 멋진 디자인과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현재 모델은 올해 풀 체인지된 6세대다.
그간 국내 시장에서 V6 3.6L RS 모델만 판매됐는데 이번에 정통 아메리칸 머슬카를 느껴볼 수 있는 V8 6.2L SS 모델이 선보였다.
AMG와 쉐보레. 심금을 울리는 V8의 배기음과 폭발적인 가속력. 이 두가지 특성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두 차의 만남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머슬카 특유의 거대한 차체는 볼륨감 넘치는 앞뒤 펜더로 인해 한층 더 우람하고 탄탄해 보인다. 보닛까지 한껏 솟아오른 앞펜더는 승모근을 단련한 보디빌더처럼 위협적인 모습이다. 범퍼와 보닛 사이 얇은 틈에 프론트 그릴과 헤드라이트가 숨겨져 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안광을 번뜩이는 자객 같은 모습이다. 범퍼 하단부는 고성능 모델임을 숨기지 않았다. 커다란 흡기구와 낮게 깔린 립스포일러가 공격적이다.
옆모습은 전형적인 머슬카다. 20인치 거대한 휠과 한껏 솟은 뒤펜더 라인, 매끈하게 흘러내린 루프라인과 리어 스포일러 등이 우람하면서도 날렵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뒷모습은 조금 심심해 리어 디퓨저라도 달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린더 수는 같지만 각기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온몸에 힘을 주고 도로에 낮게 엎드린 카마로 옆에 독일 V8 스포츠카가 도착했다. 메르세데스-AMG GT S다. AMG는 1976년 설립된 메르세데스-벤츠 전문 튜닝업체. 다임러는 AMG의 기술력을 인정해 1990년대부터 지분을 사들였고, 2007년 자회사로 흡수했다.
AMG는 B-클래스를 제외한 메르세데스-벤츠 전체 모델을 튜닝한다. 그중 AMG GT는 매우 특별한 차다. AMG에서 직접 생산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AMG가 개발한 양산차는 전작인 SLS AMG와 AMG GT 두가지. GT는 2014년 10월 파리 모터쇼에서 데뷔했다.
AMG GT는 SLS AMG에서 걸윙 도어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을 가져왔다. 보디 형식은 프론트 미드십으로 앞바퀴축 뒤에 엔진이 위치한다. 엔진·변속기·탑승객 등 무게가 휠베이스 안쪽에 실리기 때문에 안정적인 스티어링이 가능하다.
보디는 클래식 스포츠카의 전형인 롱노즈 숏데크다. 넓고 긴 보닛과 길쭉한 윈드실드, 넓은 휠아치, 낮은 차체는 SLS AMG의 모습을 빼다박았다. 은근한 볼륨감을 풍기면서 미끈하게 빠진 보디 라인은 우락부락한 카마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시승차는 GT S 에디션1로 리어 해치 위에 스포일러가 달려 있다. 공력성능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겠지만 매끄러운 루프라인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AMG GT S(좌)와 카마로 SS(우)
실내도 개성이 극명하게 갈린다. 카마로는 스포츠카답지 않게 2+2 구조다. 운전석에 앉는 과정도 한결 수월하다. 콕핏은 큼지막하고 시원시원하다. 기어시프트 뒤에 자리잡은 두개의 에어벤트는 비행기의 제트 엔진을 연상시킨다. 대시보드는 간결하고 1열과 2열을 가로지르는 센터터널은 높고 두껍다.
개성은 강하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은 덜한 카마로 SS
AMG GT S는 승차가 굉장히 불편하다. 두명만 탈 수 있는 캐빈룸은 몸을 한껏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화려한 인테리어는 장거리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럭셔리 스포츠카 ‘GT’라는 꼬리표가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다. 유광 마감재와 카본·알칸타라·고급가죽으로 장식해 럭셔리함을 풍긴다. 조금 과장하면 타고 내리기 힘든 S-클래스 정도랄까? 화려함은 각종 주행 버튼과 다이얼식 셀렉터, 터치패드 등이 빼곡하게 들어찬 기어시프트 주변에서 절정을 이룬다.
AMG GT S의 실내는 2억원이 넘는 차 값에 걸맞게 럭셔리하다
카마로는 차값에 비해 편의장비가 풍부하다. 통풍시트에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고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사용한다. 여기에 열선 스티어링 휠, 보스 사운드 시스템,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까지 갖췄다. 사각지대·후측방·차로변경 경고 시스템은 시도 때도 없이 삑삑거린다. 이것저것 집어넣었지만 정작 필요한 사이드미러 전동폴딩 기능은 빼먹었다. 고급스러운 정도나 첨단기술 등에서 AMG GT S에 뒤지는 것은 분명하다.
카마로 SS. 요즘 시대에 흔치 않은 대배기량 자연흡기 V8
그동안 무척이나 궁금했고 지인들한테도 자주 질문을 받은 카마로부터 시승하기로 하고 차에 올라 시동 버튼을 눌렀다. 터보 엔진이 대세인 요즘 보기 드문 자연흡기 엔진이다. 거기다 배기량이 6.2L다. 최고출력은 453마력, 최대토크는 62.9kg·m다. 변속기는 자동 8단. 예상한 대로 V8 엔진의 묵직한 사운드가 울려퍼진다. 아이들링 진동도 요즘 차치고는 많이 느껴지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숨을 죽이고 들어보면 멀리서 질주해오는 말굽 소리처럼 리듬감 있다.
카마로 SS의 변속기는 자동 8단이다
문짝이 두개만 달린 쿠페인데 무게가 1.7톤이나 나간다. 하지만 초기 거동은 굼뜬 느낌이 없다. 매력적인 배기음은 1,500rpm을 넘으면서 서서히 울려퍼지고 rpm이 높아질수록 심금을 울린다. 당연히 가속반응은 신속하고 화끈하고 묵직하다. 회전질감도 좋고 rpm이 올라갈수록 안정적으로 분출하는 힘도 좋다. 변속도 레드존 영역까지 기다렸다가 느긋하게 이뤄진다. 바늘이 오르락 내리락 바쁘게 변속해대는 DCT와는 다른 여유로운 모습이다. 고속주행 시 노면소음, 타이어 소음, 풍절음이 모두 발생하지만 배기음이 다 눌러버린다. 매력적이다.
카마로 SS의 주행모드는 투어·스포츠·트랙으로 나뉜다
직선구간을 지나 굽이진 산악도로로 향했다. 시승하면서 서스펜션 세팅이 굉장히 편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좋지 못한 노면이나 과속방지턱에서도 불편하지 않다. 세단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모습이다. 카마로는 스포츠카다. 편하려고 타는 차가 아니다. 우려했던 대로 산악구간에서 움직임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급격한 코너링에서 롤링도 심하고 앞쪽이 무거워 언더스티어 경향을 보였다. 조향감각도 이질적이고 빠릿하지 못한 편이다. 겸손한 자세로 코너에 진입하게 만들 정도로 예측 불가다. 변속기도 빠릿하지 못하다. 급격하게 시프트업&다운을 하면 반박자 늦게 따라온다. 엔진의 넘쳐나는 힘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는 느낌이다.
AMG GT는 먼저 산악구간에서 시승했다. 운전석은 굉장히 타이트하다. 어깨까지 감싸는 버켓시트는 착좌감이 정말 좋다. 역시 우렁찬 소리와 함께 8개의 피스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4.0L 터보 V8은 최고출력 510마력, 최대토크 66.3kg·m이고 변속기는 7단 DCT다. 주행 모드는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레이스로 구성됐다. 모드에 따라 변속기와 서스펜션이 달라진다. 컴포트 모드는 스포츠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편안하다. 스포츠 모드로 맞추면 차의 성격이 돌변한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 놓으면 어김없이 ‘파다당’ 하며 백프레셔가 울려퍼진다. 급가속을 하면 순식간에 변속이 이뤄진다. 가속력도 폭발적이다. 패들시프트 반응도 즉각적이고 스티어링 감각도 직관적이다.
AMG GT S는 V8에 터보를 달았다. 출력은 510마력
산악도로 구간을 서서히 돌다가 조금 욕심을 내 속도를 올렸다. 염려와 달리 차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보완한다. 타이트한 코너도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빠져나가고 코너 출구에서 가속 페달을 꾹 밟으면 흔들림 없이 시원하게 뻗어나간다. 자신감이 마구 솟지만 자만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직진가속은 ‘말해 뭐해’다. 터보지만 쥐어짜냄 없이 여유롭게 출력을 뽑아내고 엔진도 꽤 고회전을 한다. 하이톤으로 내지르는 배기음이 조금 시끄럽다고 할까? 그것 말고는 흠잡을 거리를 찾지 못하겠다.
AMG GT S는 주행모드에 따른 성격 차이가 크다
V8 고성능 세단은 ‘양가죽을 쓴 늑대’처럼 점잖은 모습 속에 야수의 본능을 숨기고 있다. V8 쿠페는 다르다. 외관에서 풍기는 질주본능 카리스마는 동일하지만 아메리칸 머슬과 매끈한 유럽산 머슬의 매력이 극명하게 갈렸다.
카마로는 V8 자연흡기의 감성을 만족시키지만 보완해야 할 점이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바로 아메리칸 머슬의 특징 아닐까? 차를 사서 입맛에 맞게 고치고 꾸미는 나라가 미국이고 그런 자동차 문화 바탕 위에서 탄생한 차가 카마로다. AMG GT S는 완벽하게 갖춰놓고 시작한다. 틴팅 좀 하고 블랙박스 달고 휴대전화 거치대 정도만 있으면 된다.
미국과 독일의 V8 야수는 각자 개성이 뚜렷하지만 둘 다 벼락 같은 포효와 화끈한 질주를 보여줬다. 이 점이 바로 기자는 물론이고 V8이란 글자에 이끌려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들이 동경하는 모습 아닐까? 세상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V8 고성능차들이 많다. 다음에는 더 화끈한 차들을 불러내 독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겠다. 그때까지 ‘구독 고정’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