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6 그란쿠페 vs CTS-V, 관록의 M과 떠오르는 별 V
2016-12-23 13:30:00 글 Elias Lim
지난 여름 리우 올림픽이 한창일 때, 연일 메달 소식과 감동 스토리가 흘러나왔다. 올림픽 하면 1988년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서울 올림픽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명곡으로 꼽히는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가 기억에 남는다. 그 노래의 가사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되어 더 잘살아보자’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 사는 세상뿐만 아니라 럭셔리 고성능 세단 시장도 ‘하나 되어 더 강력해지자’는 분위기다.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올림픽 출전 선수들처럼 좀더 강한 면모로 금메달을 따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다면 고성능 중형세단 분야에서 하나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바로 V8이다. 그동안 V10을 써왔던 BMW M5와 아우디 RS6은 현행 모델에서 V8로 갈아탔다. 메르세데스-벤츠 AMG E 63과 재규어 XFR, 캐딜락 CTS-V는 원래 V8이다. 자연흡기만으로는 큰 힘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과급기를 쓰는 것도 또 다른 하나된 모습이다. V8과 과급기로 하나가 됐지만 특성과 수준까지 같지는 않다. V8로 하나 된 이들은 어디까지 같고 얼마만큼 다를까? 고성능의 대표주자 BMW M과 떠오르는 별 캐딜락 V를 호출했다.
(좌 M6, 우 CTS-V) 똑 같은 V8이지만 배기량과 과급기는 차이가 난다
BMW M6 그란쿠페는 4도어 쿠페다. 쿠페 라인은 명확하게 살렸지만 트렁크 리드를 길게 잡아빼 세단 분위기가 강하다. CTS-V는 세단이지만 늘씬한 라인을 강조해 그란쿠페보다 더 쿠페처럼 보인다. 쿠페 같은 세단, 세단 같은 쿠페가 만났다.
M6(좌)은 20인치, CTS-V(우)는 19인치다
M6은 점잖은 편이지만 은근히 풍겨나오는 카리스마가 예사롭지 않다. 낮고 넓게 깔리는 자세가 카리스마의 원천이다. 20인치 무광 블랙 휠과 카본파이버로 뒤덮은 루프가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CTS-V는 현란한 터치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기본이 된 CTS부터 디자인이 튀는 차다. 거기에 에어로다이내믹 파츠를 붙이고 사이드와 보닛에 흡기구 등을 뚫어 고성능을 과시한다. 시각 효과에서 기대치에 못미치는 19인치 휠이 흠이라면 흠.
M6 그란쿠페는 럭셔리 투어러 분위기다
실내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M6 그란쿠페는 럭셔리 투어러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작고 둥그런 M 전용 시프트 레버와 카본 등으로 고성능차 티를 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늑한 쿠페다. 레카로 시트와 화려한 그래픽 계기판이 달린 CTS-V는 스포츠카 느낌이 강하다. 특히 시트가 꽉 조인다. 허리와 다리부분의 조임 정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기본상태에서도 끼는 편이어서 몸을 꽉 잡아준다.
CTS-V는 실내에서도 스포츠카 분위기를 진하게 풍긴다
고성능 모델은 변하지 않은 듯 드러내지 않는 겸양의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외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원판이 잘생긴 차들이라 어떻게 꾸며도 멋있기는 매한가지다. 스포츠 선수가 대성하고자 한다면 기본 운동실력이 있어야 하듯이 고성능 모델도 기본은 성능이다.
M6은 560마력짜리 V8 4.4L 트윈파워 터보 엔진을 얹는다. 최대토크는 69.4kg·m이다. CTS-V는 같은 V8이지만 배기량이 6.2L로 엄청나게 크다. 최고출력 640마력, 최대토크는 87.2kg·m다. 0→100km/h 가속성능은 M6이 4.2초, CTS-V(0→97km/h)는 3.7초다. 게임 끝? 제원상으로는 CTS-V의 압승이다. 그렇지만 제원을 뛰어넘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관록이다. M의 이름값은 제원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캐딜락 V의 무시무시한 성능은 단연 돋보인다. 최근 고성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성능 키우기도 끝간 데 없이 이어지는 추세다.
같은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이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실제로 BMW는 M만으로는 모자라 컴페티션 패키지를 마련했다. M6 컴페티션 패키지의 경우 600마력, 71.4kg·m로 성능이 뛰어오른다. 또 메르세데스-AMG와 재규어도 성능을 키운 ‘S’등급을 추가하고, 아우디는 ‘퍼포먼스’를 더했다. 이런 고성능 위의 고성능도 제원상 성능은 모두 캐딜락 V보다는 한수 아래다. 이런 막강한 성능은 CTS-V의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다.
M6과 CTS-V에 대한 성능이 궁금하지만 결과는 뻔하다. 잘 달리고, 잘 서고, 잘 돌고, 이 말 외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다만, 성능을 즐기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M6은 다양한 선택권을 앞세우고, CTS-V는 준비된 상황 적응력을 내세운다.
M6(좌)은 주행모드가 다양하다. CTS-V(우)는 단순해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복잡하다
M6은 페달 응답성, 서스펜션, 스티어링 감도, 변속반응, 주행안정장치를 각각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수십가지 주행 모드가 가능하기 때문에 운전자의 취향과 도로 여건에 맞춰 최적의 모드를 고를 수 있다. 반면 CTS-V는 선택이 제한적이다. 주행 모드는 투어·스포트·트랙·스노 네가지. 모드마다 스로틀·변속·스티어링·서스펜션·LSD·배기음·주행안정장치 세팅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끝나면 너무 싱겁다. CTS-V의 ‘퍼포먼스 트랙션 매니지먼트’(PTM)는 5가지 세분화된 모드를 제공한다. 트랙션 컨트롤을 끄고 트랙 모드로 들어가면 PTM 모드가 등장한다. 웨트(wet)·드라이·스포트1·스포트2·레이스로 나뉘고, 해당 영역에서 또 다시 퍼포먼스 트랙션과 액티브 핸들링, 섀시가 달라진다.
화려하고 세분화된 모드를 준비했지만 각각의 특성은 정해져 있다. M6이 골라 먹는 뷔페라면 CTS-V는 거하게 차려진 한상이다. 부지런히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 먹느냐, 앉아서 주는 대로 받아 먹느냐 차이다.
M6은 주행 모드 변화에 따라 특성 변화가 크다
M6의 가속은 화끈하다. 가속페달을 밟는 대로 팍팍 튀어나간다. 터보 래그는 무시해도 될 수준이다. 7단 더블클러치 변속기는 변속이 매우 신속하다. 여기에 페달 반응까지 빨라서 가뿐하고 민첩하게 속도를 올린다. 모드마다 특성 차이가 뚜렷하다. 가장 편안하게 맞추면 승차감이 아늑하고 운전하는데 부담도 덜하다. 반면 가장 과격한 모드에 들어가면 원초적 스포츠카의 본성이 드러난다.
엔진 반응은 빨라져 가속 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울컥거리고, 긴장한 하체는 도로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변속기는 고회전대를 유지해 토크를 최대한 채워넣고, 스티어링은 예민해져서 날카롭게 반응한다. M6은 강력하면서 정교하다. 한계치가 높아 거세게 몰아붙여도 안전하게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손과 발의 움직임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과감해진다.
CTS-V는 대배기량 막강 토크로 밀어 붙이는 힘이 대단하다
CTS-V는 배기량으로 밀어붙이는 폭발력이 매력이다. 수퍼차저가 가세해 폭발력은 더 커진다. 급하게 가속하면 차체가 좌우로 틀어댄다. 안전하게 제어하기 때문에 미동에 그치지만 넘치는 힘을 꾸역꾸역 억누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토크컨버터 방식 8단 자동변속기는 더블클러치에 비해 신속함이 떨어지지만 만족할 만한 속도와 성능을 보인다.
M6과 달리 기본이 되는 투어 모드에서도 그리 편하지는 않다. 단단하고 뻑뻑한 기운이 여전하다. 스포트와 트랙 모드로 넘어가면 스포츠카 기운이 충만해지지만 기본 모드의 역동성이 원체 높아서 그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M6과는 다르게 CTS-V는 예측 불가다.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M6과 달리 두려움이 앞선다.
M6은 클래식한 느낌을, CTS-V는 첨단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도로에서 느껴지는 두 차의 역동적인 감성의 한계치는 비슷하지만, M6은 일반도로에서 성능의 90%를 보여주는 반면 CTS-V는 절반도 드러내지 않는다. CTS-V의 나머지 절반은 미지의 세계다. CTS-V를 제대로 느끼려면 서킷으로 가야 한다. 마음껏 잡아 돌릴 수 있는 공간에서 험하게 다뤄야 본성을 드러낸다. 도로에서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는 M6과 달리 CTS-V는 서킷에서 속내가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두 V8은 지향점이 다르다. M6은 일상에서도 화려하고 현란한 역동성을 드러낸다. CTS-V는 좀더 깊이 파고들어야 본모습을 보여준다. M6은 고성능이 추구하는 에브리데이 스포츠카에 충실하다. 하지만 CTS-V는 무늬만 고성능 세단일 뿐 영락없는 스포츠카다. ‘4도어 콜벳’이라는 소리가 빈말이 아니다.
운동 선수들도 대외활동이 활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기장에 틀어박혀 묵묵히 실력 향상에 힘쓰는 이도 있다. 겉모습이 어떻든간에 대회에서 만난 그들의 대결은 늘 흥미롭기 마련이다. 올림픽 경기를 재미있게 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니겠는가.
* <탑기어> 2016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