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세단의 제네시스, G80 스포츠
2017-01-10 09:15:14 글 민병권 기자
나이 들면 죽는다. 자동차회사의 경우, 젊은 고객층을 잡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그래서 100년이 넘는 브랜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프리미엄 럭셔리 브랜드도 고객 평균연령 낮추기에 공을 들인다. 대형세단만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그래왔던 회사들이 SUV도 만들고 쿠페도 만들고 작은 차도 만든다. 고성능, 모터스포츠 이미지도 이런 전략에 도움이 된다. 이 때문에 벤츠, BMW는 말할 것도 없고 얌전 떨던 렉서스도 스포츠와 고성능 이미지 입히기에 열심이다.
후발주자인 제네시스는 선배들의 부침을 잘 살폈다. 그래서 ‘현대 제네시스’ 시절 어설프게 엮었던 제네시스 쿠페를 정리하고 EQ900, G80의 뒤를 잇는 3번째차로 스포츠 모델을 택했다. G80 스포츠가 그것이다.
굵기와 형상이 달라진 스티어링 휠, 몸을 잘 잡아주는 스포츠 시트, 카본 패널…, 필요한 것들을 잘 챙겼다
이 차는 BMW M5나 AMG E 63, 혹은 렉서스 GS F급이 아니다. GS 350 F 스포츠 수준이다. 즉 본격적인 스포츠 세단이라기 보다 그런 분위기만 낸 차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맞게 눈높이를 낮추고 보면 G80 스포츠는 우주의 기운을 상대적으로 많이 모아 담은 차라고 할 수 있다. 범퍼와 인테리어를 손본 스포츠 패키지 수준에 그치지 않고, 전용 엔진까지 준비했으니 말이다. 이 V6 3.3L 트윈터보 엔진은 EQ900에 먼저 사용됐지만 G80에선 스포츠 모델을 선택해야 만날 수 있다.
가장 섹시한 부분은 엔진룸이다
최고출력 370마력, 최대토크 52.0kg·m의 수치는 EQ900와 다르지 않다. 엔진이 딱히 날카롭거나 카랑카랑한 것도 아니지만 기존의 V6 3.8L보다는 고성능이다. G80 스포츠의 성격에는 충분하다. 배기량을 낮춘 터보 엔진을 썼으니 다운사이징이라고 해야겠지만 차무게는 더 나간다. 대신 낮은 회전수부터 발휘되는 강력한 토크로 큰 덩치가 의식되지 않는 시원시원한 움직임을 보인다.
속도를 높인 상황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숙성이 워낙 좋아서 그렇다. 하지만 속도계 바늘이 거침없이 올라간다. 6,250rpm 정도에서 시프트업이 이뤄지고 8단 자동 변속기는 빠릿하게 움직이려고 열심이다.
4개의 배기 파이프는 범퍼에 붙인 장식품이다. 멋있으면 됐지 뭘
체감성능을 높이고 싶다면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면 된다. 조향과 가속페달의 반응이 예민해지고 서스펜션도 단단해진다. 엔진 사운드도 두드러진다. 진짜 배기음이 아니라 스피커로 스포티한 소리를 입힌 것이지만 그럭저럭 어울리고 과하지도 않다. 기분 내킬 때만 스포티한 분위기를 낼 수 있으니 대부분의 선량한(?) 예비 고객들도 부담없이 옮겨갈 수 있다.
스포츠 모드에 맞추어도 승차감은 무너지지 않는다. 안락함을 유지하는 선에서 다이내믹한 특질을 조금 높인 수준이다. 타이어 선정도 이런 특성을 한몫 거든다. 따라서 급차로 변경이나 코너링에선 2톤이 넘는 거구를 숨기지 못한다. 장정 4명이 타고 시승한 것을 고려하면 승차감과 스포티한 주행을 이만큼이라도 양립시킨 게 기특하다.
보통 이런 차에 대해 이도 저도 아니라거나 안내놓느니만 못하다는 평을 하기 쉽지만 G80 스포츠는 조화가 잘됐다. ‘넉넉하고 편안한 차가 좋지만 운전이 맥 빠지는 것은 싫다’는 이들에게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차가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너무 흔해서 지갑 열기가 망설여진다는 이들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시승하는 동안 우연히 현대 제네시스와 제네시스 G80, 그리고 G80 스포츠가 나란히 달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중 G80 스포츠는 쉽게 구분됐다. 운전을 즐기는 이들이 차이를 쉽게 알아챌 수 있도록 차별화된 실내도 이런 차를 찾는 고객층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이 정도 크기와 성능에 이 정도 장비를 갖춘 차는 G80 스포츠가 유일하다. 물론 가격도.
적어도 G80 스포츠는 젊은층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이런 관심은 G70 그리고 또다른 고성능 버전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G80 스포츠의 임무는 완수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