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그랜저, 원빈을 꿈꾸는 옆집 아저씨
2017-02-14 14:18:53 글 민병권 기자
그랜저가 젊어졌다. 출시에 앞서 웹무비로 차를 먼저 보여주는 마케팅을 펼쳤고 TV 광고에선 인적 없는 심야 도심의 정적을 깨고 홀로 다이내믹한 질주를 즐기는 모습이 비춰진다.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 말에 그랜저로 답했다던 광고 속 그 차와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그랜저는 이전에도 젊어지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뒷좌석용 최고급차에서 직접 운전하는 이들을 위한 고급 중형차로 성격 자체를 바꾼 그랜저 XG 그리고 전작 TG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날렵한 디자인을 채택한 HG를 생각하면 6세대 그랜저 IG의 변화는 차라리 은근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회춘 카드를 꺼내든 것은 준대형차 시장에서 30~40대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 있다. 실제로 이 연령대가 IG 초기 계약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벤틀리를 거쳐 현대차에 합류한 이상엽 디자이너의 말을 덧붙이자면 ‘젊음’은 진짜 젊은이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마케팅적 외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수적인 효과로, 그만큼 젊은 기분을 낼 수 있는 구성 또한 기대할 수 있다. 현대차 엔지니어들은 전보다 스포티한 주행을 즐길 수 있도록 IG의 조향, 서스펜션, 제동장치를 고루 손봤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운전해보니 일정부분 몸에 와닿을 정도의 변화가 있다.
가령 아저씨차 같은 출렁거림이나 꿈뜬 느낌이 많이 줄었다. 조향이 헐겁거나 뒤뚱거리는 느낌이 적고 과격하게 몰아붙여도 싫은 내색 없이 곧잘 따라온다. 시승하는 내내 기대를 충족시키는 움직임을 보여 만족감이 높았다. 직전에 시승한 G80 스포츠에 매긴 우호적인 점수가 과했나 싶을 정도였다.
성인 남자를 여럿 태우긴 마찬가지였는데, 이번엔 코너를 기분 좋게 돌아낼 기회가 좀더 자주 찾아왔다. 차급에 어울리지 않게 랙 타입이 아닌 칼럼 타입 MDPS(전동 파워 스티어링)를 적용했다고 까이지만 실제 스티어링 휠을 잡았을 때는 그 차이를 알아챌 수 없었다.
강성을 높인 차체, 새로운 서스펜션 등 하체 변화와 달리 파워트레인 구성은 HG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3.0과 디젤(2.2)의 경우 아슬란에 이어 8단 자동변속기를 올리면서 효율이 좋아졌고, 3.3이 추가되는 것 정도가 뉴스다.
시승차는 V6 3.0L 람다 ‘개선’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이 270마력에서 266마력으로, 최대토크가 31.6kg·m에서 31.4kg·m로 줄어든 것이 특징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지만 ‘제원상 수치보다는 실제 주행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영역에서의 성능을 강화하느라 그랬다’고 한다. ‘뻥마력’ 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그리고 적어도 이번 시승에선 엔진 힘에 별다른 아쉬움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변속기는 새로 추가된 스마트 모드는 물론이고 스포츠 모드에서도 빠릿하기보단 느긋했다. 스티어링 휠에 패들도 없어 막 원빈으로 빙의하려던 흥분을 식혀주었다. 이전 그랜저의 성격에 비추면 흠이라고 할 수 없으나 새차의 지향점에는 조금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구성은 렉서스와 비교해도 손색없다. 현대차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경쟁자인 ‘4,000만원대 외산차’들은 말할 것도 없다. 왜 하필 렉서스냐 하면, 신형 그랜저가 표방하는 젊은 감각보다 먼저 체감되는 것이 정숙성과 부드러움 그리고 꼼꼼함과 상냥함이기 때문이다.
19인치 휠타이어를 끼운 시승차는 탄탄한 주행감을 보이면서도 승차감에서 손해 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온갖 차음수단을 동원한 덕에 실내에선 불경 읽는 소리만 들릴 것 같다. 안팎으로 역동적인 감각을 내세우지만 이런 차를 찾는 이들이 궁극적으로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신형 그랜저 구매자들이 고른 보디 색상은 검정색이 60%이고, 나머지 30% 이상을 흰색과 은색, 회색이 차지했다. 실내도 브라운 투톤, 베이지 투톤, 네이비 카멜 투톤이 준비되어 있지만 검정 단색이 압도적이다.
안팎을 둘러보면 이전 모델과 비교해 크게 눈길을 끄는 부분이 없지만 각각의 구성요소가 한결 치밀해지고 숙성된 것을 느낄 수 있다.
대중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를 따로 운영하는 경우, 두 제품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종종 있다. 미묘한 차이가 상표와 가격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신형 그랜저의 경우 제네시스 브랜드를 붙여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구형과는 다른 미묘한 차이, 높아진 완성도가 그런 인상을 만든다. 풀옵션을 갖춘 시승차가 불러일으킨 착각이 아니리라 믿는다.
신형 그랜저의 값은 2.4가 3,055만원, 3.0이 3,550만원에서 시작되지만 시승차는 최고급형인 3.0 익스클루시브 스페셜에 선택장비를 모조리 넣어 몸값이 4,500만원을 살짝 넘어선다. 렉서스 ES350과 비교하면 여전히 1,000~2,000만원 저렴하면서 장비면에선 우세하다.
얼마 전까지 두배값의 외산차에서나 기대할 수 있었던 장비가 이젠 그랜저에도 수두룩하다. 현대차의 첨단 주행안전장치를 통칭하는 스마트센스는 제네시스 것과 비교해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이 빠졌을 뿐이고 이것도 곧 보완될 예정이다. 상반기 중 추가될 3.3은 외산차 대비 가격적인 메리트가 줄겠지만 이 상품성이 어디 가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