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크루즈, 10년만의 반가운 변화
2017-03-15 17:00:39 글 김준혁 기자
애간장을 태워도 너무 태웠다. 1세대 크루즈 이후 2세대가 나오기까지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지난해 1월 2세대 크루즈의 모습이 공개되고, 우리 앞에 나타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는 얘기다. 크루즈 후속에 대한 목마름이 커져갔던 터라 2세대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마침내 등장한 새 크루즈를 보고 나서 세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말리부와 완벽한 패밀리룩을 구축했군’. 두번째, ‘꽤 커 보이는군’. 세번째, ‘잘 팔릴 것 같은데?’
그렇다. 신형 크루즈는 말리부의 축소판이라 해도 될 정도로 최신 쉐보레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위아래로 나누어진 듀얼 포트 그릴과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근육질의 유기적인 라인이 특히 그렇다. 가로형 테일램프를 기점으로 뒷범퍼에 베일 듯이 날카로운 에지까지 더한 것도 묘하게 닮았다.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끝을 맺는지 모를 정도로 현란한 측면의 캐릭터 라인까지도.
하지만 둘을 착각할 일은 없다. 디테일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리부가 중형세단에 어울리는 차분한 모습을 추구했다면, 크루즈는 한층 날카롭고 역동적이다. 그리고 젊다. 프론트 펜더까지 날카롭게 치켜올린 헤드램프는 이전 세대와의 연결고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유사점은 딱 여기까지. 나머지는 다 바뀌었다.
덩치도 커졌다. 길이는 25mm 정도 늘어난 4,665mm, 너비는 15mm 커져 1,805mm가 됐다. 키는 1,465mm로 15mm 낮아졌다. 실제로 보면 더 크고 넓어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볼륨감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휠베이스는 2,700mm로 경쟁상대인 아반떼와 똑같다. 이는 길이 4,570mm의 아반떼와 비교해 크루즈의 앞뒤 오버행이 훨씬 길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모서리를 부드럽게 깎아내면서 다양한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여러곳으로 분산되다 보니 오버행이 길어 보이거나 앞뒤가 처져 보이지 않는다.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실내는 윗급 말리부와 구분하기 어렵다. 말리부 오너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크루즈의 실내에 말리부급 디자인과 품질이 더해졌다는 뜻이다. 디자인은 쉐보레만의 아이덴티티인 듀얼 콕핏 콘셉트가 적용됐다. 역시 말리부를 통해 익숙해진 디자인이다. 스티어링 휠을 인조가죽으로 정성스럽게 마무리한 것까지 똑같고, 센터페시아의 구성도 비슷하다. 계기판의 디자인이나 디스플레이 형상 등이 약간 다를 뿐이다.
패밀리 세단으로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만큼 실내는 아주 넓다. 준중형급인데도 미국 태생다운 광활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적어도 앞좌석에서는 불만을 느끼긴 어렵다. 하지만 뒷자리에 키 180cm가 넘는 성인이 탑승할 경우 머리를 조심하라고 미리 언질을 줘야 한다. 쿠페 스타일의 루프 라인을 유지하기 위해 뒷문 개구부와 천장을 낮춘 탓이다. 네바퀴굴림이 아닌데도 뒷좌석 바닥 중앙이 솟아오른 것도 약간 아쉽다.
앞에서 차체가 이전 세대 그리고 경쟁모델인 아반떼보다 길다고 했다. 그 결과는 트렁크 용량으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적재용량이 무려 469L다. 이전 세대보다 33L 커졌고, 아반떼의 407L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트렁크벽이 울퉁불퉁한 게 흠이지만 워낙 넓어 용서가 된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덩치가 커지는 것은 자동차업계의 불문율과도 같다. 크기 제한이 있는 경차를 제외하고 약속이라도 한 듯 새차가 나올 때마다 덩치를 내세운다. 그런데, 국산차 중에는 차체가 커진 만큼 무거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크루즈도 분명 이전 세대보다 커졌다. 그래서 무거워졌을까? 천만의 말씀. 무려 110kg을 감량했다(동시에 차체 강성은 27% 증가했다). 거구의 남성 한명 또는 성인 여성 두명만큼의 감량효과를 얻은 것이다. 다이어트만 한 게 아니라 체력까지 강화했다. 완전히 새로운 1.4L 직분사 터보 엔진(트랙스에 쓰인 것과는 다른 계열) 덕분이다. 이는 고스란히 주행감에 반영된다. 경쾌하고 가볍다. 그리고 시종일관 힘이 넘친다. 정말 힘 하나는 장사다.
최대토크 24.5kg·m가 나오는 회전구간은 공식적으로는 2,400~3,600rpm이다. 좁다고 느껴지는가? 아쉬워할 것 없다. 공회전 직후인 1,000rpm부터 20kg·m의 토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이 토크는 5,000rpm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액셀 페달을 밟으면 밟는 만큼 시원하게 달려나간다. 터보 래그? 놀랍게도 거의 없다. 정말이다. 스로틀 반응이 한결같고 일정하다.
액셀 페달을 밟으면 6단 자동변속기가 차곡차곡 단수를 쌓아올리며 속도를 높이는 모습에선 자연흡기의 특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고출력이 나오는 회전수는 5,600rpm으로 비교적 낮은 편. 쉐보레에 의하면 실용성을 높이기 위한 세팅이라고 한다. 준중형 세단을 타면서 스포츠카처럼 엔진을 고회전까지 돌리는 사람은 없을 터. 소비자의 성향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반영한 쉐보레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크루즈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오펠이 개발한 플랫폼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5세대 오펠 아스트라와 뼈대가 같다. 그래서인지 크루즈에서 독일차의 느낌이 난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직선을 빠르게 달릴 때는 몰랐는데, 코너를 달려보니 판매가 중단되기 전에 탔던 골프 같다. 승차감은 쫀득쫀득하고, 코너를 달릴 때는 네바퀴가 지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앞뒤가 따로 노는 느낌도 전혀 없다. 전형적인 독일산 해치백의 모습이다. 그런데 크루즈는 독일차도 아니고 해치백도 아니다. 플랫폼만 빌려왔을 뿐인데 완성도가 이 정도다.
독일차 느낌이 나는 섀시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스티어링. 동급 유일의 랙타입 프리미엄 전자식 속도 감응 시스템이라고 한다. 복잡한 설명 들을 필요 없이 직접 만져보면 그 차이가 바로 드러난다. 아주 정직하고, 조작한 만큼 반응하는 것 또한 독일산 해치백에서 봐오던 모습이다. 급작스러운 스티어링 휠의 움직임에도 앞바퀴의 접지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에서 코너링에 대한 자신감이 배가된다.
크루즈의 공식연비는 18인치 휠을 끼운 시승차의 경우 12.8km/L(16, 17인치 모델은 13.5km/L)인데, 300km 정도를 달린 결과 12.5km/L가 나왔다. 80km 정도 주행 후 측정한 시가지 연비는 11.3km/L로, 공식연비(11.6km/L)와 별 차이가 없다. 역시 차는 가벼워야 하나 보다. L당 100마력이 넘는 나름 고성능 엔진을 달고도 효율성까지 챙겼으니 말이다.
당분간 크루즈는 세단형 차체에 1.4L 터보 한가지만 판매된다. 아반떼 등의 경쟁모델과 비교하면 불리할 수도 있는 부분. 아무래도 쉐보레의 판매전략은 선택과 집중인가 보다.
새차를 기다리다 지쳐서 떠나버린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제 돌아올 때라고. 그리고 직접 앉아 운전을 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