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렌의 새로운 도전, 570GT
2017-03-28 16:10:59 글 김종우 기자
'스페인 테네리페 섬? 테네리페 섬에 서킷이 있었던가?'
새벽 비행기라 단돈 1만5,000원에 공항 리무진 버스를 전세(?) 내고, 흐릿한 서울의 야경을 커튼 삼아 비몽사몽 이동 중에 문뜩 떠오른 생각이다. '아일톤 세나', 'F1그랑프리', '모터스포츠', 'P1 GTR' 등 맥라렌 하면 떠오르는 가장 큰 이미지는 바로 ‘모터스포츠’이고, 모터스포츠와 서킷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뭐, 서킷이 있든지 없든지 중요하지 않았다. 지난해 국내에서 650S를 시승하기 전날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는데, 이번에도 공항으로 이동하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또다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자동차 전문기자로 일하면서 나름 세워놓은 기준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모든 자동차를 객관적으로 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기자도 사람인지라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특히 평소에 접하기 힘든 클래식 자동차나 수퍼카,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드림카를 만나면 객관성 따위는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려보내고 차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흥분감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지난 650S 시승 때도 귀밑까지 올라간 입꼬리를 들킬까봐 꽤나 엄숙한 표정(차가 너무 빨라서 조금 무섭고 긴장한 것도 있지만)을 지으며 운전대를 잡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 시승 이벤트에는 국내에서 기자 혼자만 참석한다. 탑기어 UK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훌리건처럼 기뻐 날뛰고 설쳐도 알아볼 사람이 없다.
훌리건의 마음자세로 머나먼 스페인의 테네리페 섬까지 날아가는 이유는 맥라렌 570GT의 글로벌 시승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570GT는 201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한 맥라렌의 가장 따끈한 신상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맥라렌에서 최초로 선보인 장거리 투어용 고성능 모델이다.
태생부터 모터스포츠를 지향해온 맥라렌의 첫번째 GT카. 더구나 맥라렌의 특징인 미드십(MR) 구성은 운전자뿐 아니라 탑승자까지 몸을 구겨서 타야 하는 낮고 비좁은 공간으로 유명하다. 이런 태생적 한계를 극복한 그랜드 투어러라니, 캐리어는 둘째치고 작은 더플백이나 들어가려나 싶다. 문제는 또 있다. 바로 서스펜션이다. 서킷에서 650S를 시승했을 때 굉장히 타이트하고 노면상황을 손금 보듯이 선명하게 전달하는 서스펜션 세팅이 인상 깊었다. 잘 닦인 서킷에서, 빠른 속도로 차를 모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이런 서스펜션 세팅이 좋지만, 장거리 여행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마 차에 탄 지 두어시간도 되지 않아 차를 팽개치고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어 지나가는 염소 트럭이라도 잡아타고 싶을 것이다. 설렘은 어느새 궁금증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900km/h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어쩜 이리도 느린지.
McLaren Automotive, 최근 가장 '핫'한 수퍼카 브랜드
환승을 3번이나 하는 빡빡하고 기나긴 비행일정을 즐겁게 보낼 겸 맥라렌의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자. 차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정도는 알고 있지만, 맥라렌에 대해서는 매우 낯설어한다. 국내에서는 얼마 전 아이돌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이 650S를 타 관심을 모았고, 최근 정식딜러가 판매를 시작하면서 인지도가 조금씩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 특히 F1 그랑프리를 꾸준히 챙겨보는 사람에게 맥라렌은 너무도 익숙한 브랜드다. 또 비운의 천재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와의 연결고리도 빼놓을 수 없다.
맥라렌은 1963년 뉴질랜드 출신의 레이싱 드라이버 브루스 맥라렌(Bruce Mclaren, 1937~1970)이 만든 F1 맥라렌팀으로 출발했다. 맥라렌은 페라리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F1팀이다. 1966년 모나코 GP에서 데뷔해 우승 175회, 드라이버즈 챔피언 12회, 컨스트럭터 타이틀 8회에 빛나는 명문팀이다. 현재는 혼다에서 엔진을 공급받고 있다.
맥라렌은 1989년 페라리를 벤치마킹해 F1 경주차를 기반으로 한 수퍼카 개발에 착수한다. 이 프로젝트로 탄생한 차가 1994년 맥라렌 F1이다. 이 차는 최고속도 387km/h를 기록해 당시 가장 빠른 수퍼카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일반도로에서 다루기 힘든 초고성능과 비싼 가격 때문에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이후 메르세데스-벤츠와의 협력을 통해 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을 개발했고, 이 차의 성공으로 다시 자동차 생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9년 맥라렌은 투자를 받아 자동차만 생산하는 맥라렌 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이후 맥라렌은 맥라렌 F1팀과 양산차 메이커인 맥라렌 오토모티브로 나누어진다. 2011년 맥라렌 오토모티브(이하 맥라렌)는 맥라렌 F1의 뒤를 잇는 수퍼카 MP4-12C를 출시했다. V8 3.8L 트윈터보를 장착한 이 차는 최고출력 600마력, 최대토크 61.2kg.m의 고성능을 자랑한다. 이전 모델에 비해 부담 없는(?) 성능과 가격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3년 등장한 맥라렌의 최상급 모델 P1(기념비적인 차라고 단언한다)은 V8 3.8L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시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으로 903마력이라는 엄청난 힘을 자랑했다. 375대 한정생산됐고, 지난 2015년 12월 생산이 종료됐다. P1의 뒤를 잇는 차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650S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모델로, P1과 같은 카본파이버 보디에 650마력의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McLaren Sports Series, 검은 백조의 우아한 날갯짓
650S로 수퍼카 시장의 신흥세력으로 탄탄히 자리잡은 맥라렌은 2015년 새로운 라인업을 공개했다. 'BLACKSWANMOMENTS'라는 이름을 가진 이 프로젝트는 수퍼카 시장을 넘어 스포츠카 영역까지 확장을 노리는 맥라렌의 야심작이다.
이 프로젝트의 첫번째 모델이 바로 570S다. 서킷 출신의 브랜드답게 일반인(물론 돈이 많은)이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하드코어 레이싱 이미지를 조금 다듬어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에 질린 부호들이 부담 없이 주머니를 열 수 있도록 배려한 라인업이다. 결과는 알다시피 성공적이었고, 중국의 신흥 부호들을 겨냥한 맞춤형 모델 540C까지 출시했다.
스포츠 시리즈의 출시로 맥라렌 라인업은 셋으로 정리되었다. P1과 P1 GTR이 속한 얼티메이트 시리즈, 625C, 650S, 675LT가 속한 수퍼 시리즈, 540C, 570S, 570GT가 속한 스포츠 시리즈가 그것이다. 최근 2017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720S를 공개하며 수퍼 시리즈를 업데이트 했다.
탄탄한 라인업을 기반으로 최근 맥라렌의 성장세는 놀라울 정도다. 2012년 500대 정도의 규모에서 2015년 1,600여대, 2016년 3,290여대로 생산이 늘었다. 영국 서리에 위치한 맥라렌 공장에서 370여명의 장인이 일일이 수작업을 하는 생산방식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맥라렌의 이런 성장세는 공격적인 R&D 투자에 따른 것이다. 맥라렌이 2015년 한해 동안 R&D부문에 투자한 비용은 약 120만파운드(2천억원)에 이른다. 맥라렌은 2022년까지 10억파운드(약 1조 7천억원)를 투자해 15종의 신모델(그중 절반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1개 모델은 순수전기차)을 개발하고, 재정자립을 이룬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연간 생산량은 4,500대를 넘기지 않을 계획이다.
TENERIFE, 지붕 위에 올라간 맥라렌을 만나다
20시간이 넘는 기나긴 비행과 환승시간을 견뎌내고 스페인 테네리페 섬에 도착했다. 테네리페 섬은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스페인 본토보다는 아프리카 대륙에 더욱 가까운, 대서양 위의 화산섬이다. 섬 중앙에 높게 솟은 테이데봉은 높이 3,718m로 대서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테네리페 섬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휴양지 중 하나다. 특히 영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 거리여서 많은 영국인들이 따뜻한 햇빛을 즐기기 위해 많이 찾는다. 맥라렌 본사 직원들은 시승회를 핑계로 휴가를 온 듯 2주 가까운 출장임에도 다들 생글생글한 얼굴이다.
공항에서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리조트에서 기자를 반기는 건, 광활하게 뻗은 대서양의 수평선도 아니고 예쁘게 지어진 리조트 전경도 아니었다. 시승 일정을 마치고 리조트로 복귀하는 맥라렌들의 그르릉거리는 낮은 울림이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울림의 주인공들을 찾지 못했다.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맥라렌 본사 직원에게 이끌려 프레스 라운지로 갔다. 8층에 위치한 프레스 라운지에서 체크인을 하고 주변풍경을 보러 테라스로 나가니 기자를 이역만리 이곳으로 오게 만든 주인공인 570GT가 양쪽 도어를 한껏 치켜올려 환영인사를 한다. 차를 둘러보고 있으니 스태프가 다가와 대형 크레인과의 5시간 사투 끝에 570GT를 8층 높이까지 올렸다고 한다. 시동을 걸면 바닥의 타일이 깨질 수 있으니 주의하란다. 엔진 스타터 버튼에 손이 올라가 있는 걸 그새 보았나? 훌리건스러운 행동이 여기서 한번 좌절됐다.
숙소에 짐을 풀고 들려왔던 낮은 울림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리조트 앞 메인광장을 지나 작은 주차장에서 맥라렌 무리를 볼 수 있었다. 570GT뿐 아니라 675LT 스파이더, 650S 스파이더, 570S가 570GT의 첫 미디어 시승을 축하하러 온듯이 자리를 함께했다. 맥라렌차들은 자주 접할 기회가 없고, 디자인도 유사해 쉽게 구분하기 힘든데 한자리에서 보니 저마다 특징이 뚜렷하다. 이튿날 시승 준비를 위해 미캐닉들이 차를 닦고 조이고 점검하며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어 먼 발치에서 조용히 맥라렌들을 감상했다. 내일 두고보자.
570GT, 맥라렌의 새로운 도전
570GT를 시승하기 전 맥라렌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웨인 브루스(배트맨?)의 570GT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브루스는 맥라렌이 생각하는 GT카는 "대륙을 넘나들 정도로 긴 거리를 안정적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라고 소개하며 "운전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드라이빙 스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맥라렌이 그동안 일관되게 추구해온 스포츠성에 편안함을 가미시킨 모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디자인은 스포츠 시리즈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GT카인 만큼 시트 뒤에 간단한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맥라렌은 이곳을 투어링 데크(Touring Deck)라 부르며 적재용량은 220L이다. 앞쪽의 150L를 포함해 총 370L의 적재공간을 제공한다.
투어링 데크에는 유리로 된 해치도어가 달려 있다. 이 도어는 파노라마 선루프와 연결되어 뛰어난 실내 개방감을 선사하며, 햇빛 투과를 막는 틴팅 글라스다.
그밖에도 글러브박스, 양쪽 도어패널, 센터콘솔, 컵홀더 등 자잘한 수납공간이 있다. 동반석 레그룸 안쪽에도 그물로 된 적재공간이 숨어 있다. 웬 호들갑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650S를 시승할 때 휴대폰 놓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 경험이 있는 만큼 광활한 대지처럼 느껴진다. 또 장시간 차안에서 보내는 운전자를 위해 B&W의 8스피커 사운드 시스템과 앞뒤 주차센서, 후방카메라 등을 달아 편의성을 높였다.
외관은 570S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뒤쪽 스포일러가 달라졌다. 장거리 운행시 공기저항을 줄이고 엔진룸의 열기를 효과적으로 배출하기 위한 디자인이다. 프레임은 맥라렌 스포츠 시리즈에 공통으로 사용하는 카본파이버 모노셀Ⅱ다. 가볍고, 알루미늄 프레임보다 뒤틀림강성이 약 25% 높다. 570GT에만 달린 유리로 된 해치도어 패널에도 카본파이버를 사용했다. 차무게는 1,350kg로 맥라렌이 경쟁자로 지목한 포르쉐 911 터보 S보다 105kg이나 가볍다. 엔진은 V8 3.8L 트윈터보를 사용해 최고출력 570마력, 최대토크는 61.2kg·m이다. 0→100km/h 가속 3.4초로 탁월한 순발력을 보여준다.
Teide, 해발 3,000m의 아찔한 와인딩
570GT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본격적인 시승에 나섰다. 시승 코스는 리조트를 출발해 테네리페 섬의 최고봉인 테이데봉을 지나 아름다운 대서양 해안도로를 거쳐 돌아오는 180km, 3시간 코스다. 마음 같아선 차를 독차지하고 싶었지만 2인 1조로 진행돼 1시간 반 정도의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함께 탄 호주 기자의 양보로 먼저 운전대를 잡았다.시승코스는 고속도로와 산악구간 업힐 그리고 약간의 다운힐로 구성되었다. 하늘을 찌를 듯 위로 솟는 도어를 열고 차안에 몸을 구겨넣었다. 편안한 탑승을 위해 570S보다 80mm 정도 문턱을 낮췄다지만 워낙 차체가 낮아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버킷시트를 사용하지만 착좌감이 굉장히 좋고, 몸을 꽉 조여오는 압박감 없이 편안한 운전자세를 잡을 수 있다. 시야는 꽤 넓은 편이고, 루프와 투어링 데크 위로 펼쳐진 파노라마 선루프로 인해 개방감이 탁월하다. 보기에는 참 좋은데, 햇빛과 열기가 그대로 전해져 뜨겁고 더웠다. 맥라렌은 이 루프를 통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걸 바랐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시승 내내 “덥다, 블라인드는 왜 안만들었지?”를 속삭였다. 국내에 들어온다면 열차단 틴팅은 필수라 생각된다.
자세를 조정하고 엔진 스타터 버튼을 누르니 570GT의 엔진이 깨어난다. 그것도 매우 싱겁게 말이다. 데일리카에 초점을 맞추고, 세단을 타듯 편안한 주행감을 제공하기 위해 굳이 엔진음을 줄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좋게 말하면 점잖다. 형제들처럼 주변의 시선을 끌 일도 없고 한밤중 연인과 밀회를 떠날 때 고양이 발걸음같이 조용하게 움직일 수 있다.
버튼식 기어 셀렉터의 D버튼을 꾹 누르고 주행을 시작했다. 주행 모드는 핸들링과 파워트레인을 조합해 9가지 구성이다. 핸들링에 노멀/스포츠/트랙, 파워트레인에 노멀/스포츠/트랙이다.
모드에 따라 스티어링 감도, 서스펜선 댐핑, 엔진과 변속기 반응이 달라진다. 출발 전 엔진음에 실망한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인스트럭터가 슬쩍 다가와 파워트레인 모드를 꼭 트랙으로 바꿔 달려보라고 권한다.
고속도로에 접어 들어 가속페달을 꾹 밟아봤다. 처음의 실망감을 멀리 떨쳐버리고 차는 쏜살같이 뛰쳐나간다. 650S를 시승했을 때와 다른 점은 가속이 점잖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호수 위를 유영하는 백조를 연상시킨다고 할까? 스티어링 휠 너머 계기는 미친 듯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주변풍경은 선을 그리며 한없이 뒤로 흘러가는데 차안은 너무나 고요하다. 풍절음 차단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조금 부드러워진 서스펜션이 노면 소음도 잘 걸러낸다.
고속도로 구간을 지나 테이데봉을 오르는 산악구간에 접어 들었다. 고속도로에 비해 노면 상태도 좋지 않고 여느 유럽의 시골길처럼 폭도 상당히 좁았다. 구불구불 산악도로를 가감속을 하며 달려보니 서스펜션의 부드러움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맥라렌은 570GT에 570S보다 스프링을 무르게 세팅해 앞 15%, 뒤 10% 부드러워졌고, 전용 피렐리 P제로 타이어를 사용한다. 여기에 맞게 조향비도 조절해 고속에서 칼같이 코너를 파고드는 집요함이 아닌 부드럽고 여유로운 핸들링을 선사했다.
이 부드러움은 제동에도 이어진다. 570GT에는 스틸 디스크 브레이크가 적용된다. 제동력은 카본 세라믹보다 좀 떨어지지만 제동감이 더 부드럽기 때문이다. 카본 세라믹 디스크는 옵션으로 준비된다. 도로사정이 조금 여유로워져 주행 모드를 트랙과 스포츠로 번갈아가면 산길을 파고들었다. 조금 전의 고요함은 없어지고 맥라렌 특유의 카랑한 엔진음과 단단한 서스펜션, 즉각적인 가속 반응과 칼 같은 핸들링을 경험할 수 있었다.
7단 듀얼클러치가 사용된 변속기는 자동변속에 맞추어도 신속하다. 특히 다운시프트나 감속시 ‘우웅’ 하면서 레브 매칭을 수동변속기마냥 해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맥라렌 모델들은 레이시하게 생긴 겉모습과 달리 운전하기 쉬운 차 중 하나다(주행 보조장비를 모두 켰을 때 얘기다). 570GT 역시 코너로 거칠게 몰아대도 실력 이상의 코너링을 느끼게 해 자신감을 한가득 심어준다. 이를 믿고 주행 모드를 트랙에 ESC를 끄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아래쪽을 보니 아찔한 풍경이 펼쳐진다. 훌리건스러운 행동을 또다시 자제했다.
이리저리 570GT를 몰아 테이데봉 정상에 있는 스페인 천문대에 다다랐다. 해발고도가 3,000m를 넘는 고산지대다. 아래가 온통 구름이다. 구름 속 도로에 도열해 있는 570GT를 본다. 짧게나마 570GT를 타본 느낌은 설익음이었다.
맥라렌은 570GT를 설명하면서 ‘데일리카’, ‘부드러움’, ‘편안함’을 강조했다. 분명 570GT는 다른 맥라렌에 비해 편안한 주행감각을 보인다. 시승 둘쨋날 타본 675LT 스파이더에 비하면 ‘매직 카펫 라이드’가 따로 없을 정도다.
하지만 막강한 경쟁자들, 고성능 GT카의 역할을 이어받고 있는 고성능, 초호화 SUV에 대항해 570GT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한편으로 우려가 된다. 하지만 맥라렌은 30년도 안되어 지금의 위치로 올라선 양산 수퍼카 메이커다. 이 점이 바로 아직 설익은 570GT의 깊고 풍부한 맛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다.
McLaren 570GT
가격 : 15만 4,000파운드(2억6,180만원)
엔진 : V8 3799cc 트윈터보, 570마력/7500rpm, 61.2kg.m/5000-6500rpm
성능 : 0→100km/h
3.4초, 328km/h
변속기 : 7단 듀얼클러치, RWD
연비 : 9.4km/L, 249g/km
무게 : 1,350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