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내가 있을 뿐, 740d M 스포츠 vs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2017-03-31 11:49:19 글 민병권 기자
스포츠 패키지를 두르고 젊은층을 유혹하는 7시리즈와 최신장비로 업그레이드를 끝낸 콰트로포르테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BMW에서 만든 세단이라고 덮어놓고 스포츠 세단이라고 부를 순 없다. 가장 큰 7시리즈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흔치 않은 숏보디(스탠다드 휠베이스)에 M 스포츠 패키지를 두른 7시리즈라면 봐줄만 하지 않을까? 디젤 엔진을 얹은 740d이고 네바퀴를 굴리는 x드라이브라 해도 말이다.
콰트로포르테를 스포츠 세단이라 부르는데 대해선 별로 저항감이 없을 것이다. 7시리즈 숏보디보다 16.7cm, 롱보디보다는 3cm 긴 작지 않은 몸집이지만 5cm 가까이 넓고 1cm 낮은, 한눈에 봐도 잘 달릴 것 같은 자세와 스타일을 먼저 챙긴 듯한 실루엣이 스포츠 이미지를 살리는데 한몫 한다.
콰트로포르테 옆에 선 7시리즈는 실제보다 더 작아 보인다. 740d는 눈에 익은 7시리즈들(모델 숫자 뒤에 L이 붙은 롱휠베이스 모델들)처럼 뒷부분이 길지 않아 5시리즈를 조금 부풀린 듯한 모습이다. 신형 5시리즈가 도로에 많아지면 뒷모습 빼곤 꽤 헷갈릴 법하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숏보디 7시리즈는 젊고 활달해 보이고, 잘 달릴 것 같은 이미지다.
오너드라이버를 겨냥해 M 스포츠 패키지를 넣은 BMW코리아의 제품기획이 그럴듯하다. 시승차는 흰색이어서 일반 7시리즈와 다른 점이 한층 부각된다. 안개등과 검정 장식이 부각된 M 범퍼 외에 키드니 그릴, 에어브리더, B필러와 윈도 프레임, 배기구 등을 검은색으로 바꿔 스포티한 느낌을 살린 게 특징. 어두운 색상에선 이 요소들이 은근한 오라를 풍길 것이다. 19인치 M 휠은 달릴 때 제몫을 하겠지만, 조금 작아 보이는 게 흠이다.
한편 콰트로포르테 시승차는 20인치 휠이 잘 어울리지만 구형 디자인을 그대로 쓴게 불만이다. 2013년 출시된 현행 6세대 콰트로포르테는 지난해 6월(국내에선 10월)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그란루소와 그란스포트 2가지 트림으로 분리됐다. 그란루소는 럭셔리, 그란스포트는 스포츠에 해당한다.
기존 콰트로포르테와 그란루소 및 그란스포트의 차이는 미묘하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신형이 한결 단단하고 시원스러운 앞모습을 가졌다는 점. 시승차는 그란루소인데 딱히 그란스포트가 아쉽진 않다. 그란스포트에 기본으로 달리는 21인치 휠만 탐난다.
상어의 코를 모티프로 깊이를 선명하게 강조한 콰트로포르테의 새 그릴은 르반떼처럼 전동 그릴 셔터를 적용해 공기저항을 줄였다. 트렌드에 맞게 최신장비들을 추가하면서 마세라티 삼지창 로고에는 레이더를, 앞유리 상단에는 카메라를 통합한 것도 눈에 띈다. 이를 통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로이탈경보, 긴급제동보조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서라운드 카메라를 추가하기 위해 사이드미러 디자인도 손봤다.
실내에서는 대시보드 중앙에 달린 터치스크린이 8.4인치로 시원스레 커진 것이 가장 눈에 띈다. 르반떼 출시에 맞춰 기블리, 콰트로포르테에도 적용된 마세라티의 새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기어레버 뒤로 두개의 다이얼을 포갠 메뉴 선택 장치가 추가된 것도 동일하다. 이제 안드로이드 오토, 애플 카플레이까지 지원한다. FCA그룹의 은총이다.
스크린 아래 공조장치 조작부와 센터터널 콘솔 주변도 싹 바뀌었다. 소재와 조작감이 개선되어 이전보다 훨씬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그래도 마세라티의 전자제어 댐핑 기능인 스카이훅 버튼을 누르면 기계식 바늘과 문자판으로 이뤄진 계기판이 무뚝뚝하게 ‘스포츠 현탁액’이라는 메시지를 표시하는 것은 여전하다(온라인 번역기에 ‘현탁액’을 입력해 한영 전환을 해보면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 있다). 변화를 주려고 애쓰긴 했으나 7시리즈가 갖춘 업계 최고 수준의 전자장비와 비교하면 한 세대 이상 뒤진 느낌이다.
7시리즈 계기판은 전체가 그래픽 화면이라 주행 모드 변경에 따라 다른 차로 갈아탄 기분을 낼 수 있다. 콰트로포르테엔 없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있고 내장된 화면으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시동키나 원격주차 기능까지 제공한다. 반자율 주행이라는 말도 이차쯤 돼야 쓸만하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화면 앞 허공에 대고 ‘너 미쳤니’ 하듯이 검지손가락을 빙빙 돌리면 오디오 볼륨이 조절되는 등의 제스처 컨트롤을 지원한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뭔가 앞서가는 느낌을 주긴 한다. 스크린 메뉴에 들어가면 실내에 은은하게 감도는 방향제의 향을 고르거나 농박을 조절할 수도 있다. 개별 버튼들과 액정에 표시되는 섬세한 애니메이션까지, 차근차근 살펴보면 얼마나 정성 들여 만든 차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운전석 주변에 오밀조밀 구성요소가 너무 많아 정신없다. 과거의 무채색 이미지를 씻어내려는 듯 화려한 조명과 메탈로 도배한 것 같은 대시보드는 소재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기도 한다. 어디부터가 플라스틱일까? 업계 최고 수준인 것은 인정하겠으나 현대차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금세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새다.
콰트로포르테는 좀 다르다. 어쨌든 마세라티만의 개성이 살아 있다. 그리고 ?일부 플라스틱 부품을 크라이슬러에서 그대로 가져오긴 했으나? 진짜 금속과 나무, 가죽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프리미엄 브랜드의 수준을 넘어선 풍성함을 안겨준다.
숏보디여서 상대적으로 작은 740d의 뒷좌석 공간은 넉넉한 편의장비가 되려 어색하다. 중앙 팔걸이에 시트 전동조절 레버가 달린 것은 물론이고 떼어내서 온갖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태블릿도 있다. 운전자용 차라고 생각하면 과한 면이 있지만 L 모델의 장비가 일부 빠지긴 했다. 뒷좌석 선루프, 테이블, 통풍시트, 마사지 기능 등.
덕분에 콰트로포르테의 검소하기까지 한 뒷좌석이 덜 부족해 보인다. 7시리즈 롱보디와 숏보디의 중간쯤 되는 휠베이스를 가졌으니 당연히 뒷좌석은 넓다. 하지만 편의장비는 온도조절장치와 전동 햇빛가리개 정도. 중앙 팔걸이엔…컵홀더가 있다. 그리고 옵션인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실크 인테리어를 넣으면 고급양복을 아무렇지도 않게 깔고앉은 것 같은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문짝은 커다란데 740d에는 있는 소프트 클로징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아쉽다.
7시리즈의 브라운 가죽시트는 소재의 고급스러움을 부각시키는 스티치와 퀼팅 패턴으로 꾸며졌다. 머리를 기대면 꿈속을 걷게 될 것 같은 푹신하고 부드러운 헤드쿠션도 달렸다. 앞좌석엔 마사지 기능이 있고 스포티한 주행에 맞게 옆구리받침을 조일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콰트로포르테 시트는 별것 없다. 미국차에서 가져온 것 같은 전동식 페달 조절기능이 있을 뿐이다. 그란스포트의 경우 스포츠 시트와 스포츠 스티어링 휠이 달리는 등 외관뿐 아니라 실내도 한층 왈가닥 분위기로 꾸며진다.
콰트로포르테 S Q4는 페라리가 생산하는 V6 3.0L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한다. 제네시스 G80 스포츠가 V6 3.3L 트윈터보로 370마력을 내는 걸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S Q4는 410마력이고 최대토크도 더 높다. G80이 52.0kg·m인데 비해 콰트로포르테는 56.1kg·m의 힘을 1,750~5,000rpm에서 발휘한다. 레드존이 6,500rpm에서 시작되는 건 G80과 같지만 최대 가속 시 이걸 다 채워야 자동변속이 이뤄지고 수동변속 모드에선 운전자의 명령을 넘겨짚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사운드다. 콰트로포르테의 배기 플랩이 개방돼 심장을 두드리며 울려 퍼지는 통렬하고 자극적인 소리를 제대로 즐기려면 유리창을 약간 내리는 편이 좋다. 창문을 닫았을 때의 소리는 조금 먹먹하고 덜 자극적이다. 실내로 소음이 들어오는 걸 틀어막은 부작용이다.
터널을 통과하며 콰트로포르테의 울부짖음을 들어보면 이 차가 얼마나 반사회적인 성향을 지녔는지 실감할 수 있다. 1차로에서 니나노를 부르는 차들을 쫓아내느라 빵빵거릴 필요가 없다. 쾌감을 느끼는 한편으론 경찰에 잡혀가는 것 아닌가 겁도 난다. 얘긴즉슨,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실내 스피커로 가짜 엔진음을 내는 차들과는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S가 이 정도면 좀더 페라리에 가까운 V8 3.8L 530마력 엔진의 콰트로포르테 GTS는 어떨까. 도저히 이런 소리를 낼 수 없는 디젤에선 액추에이터의 힘을 빌려서라도 비슷한 느낌을 살리려 하는게 마세라티다. 성능수치만으로는 알 수 없는 감성의 영역에 목숨을 거는 브랜드인 것이다.
740d 역시 S Q4처럼 3.0L 트윈터보 엔진을 얹었다. 대신 직렬 6기통이고 디젤이다. S Q4에 비해 최고출력이 90마력 떨어지는 대신(지난해 6월호에서 콰트로포르테를 상대했던 포르쉐 파나메라 4와 동등하다) 최대토크가 69.4kg·m로 훨씬 높다. 최대토크 발생 회전대가 1,750~2,250rpm인걸 보고 나머지 영역에선 맥을 못추는 걸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실제로는 회전수를 훌쩍 높여도 기운차게 돌진한다. 8단 자동변속기가 마지못해 기어를 갈아타는 것은 4,700rpm을 찍으면서다. 740d x드라이브는 0→100km/h 가속을 5.2초에 끊는다. S Q4보다 0.3초 뒤질 뿐이다.
740d도 외부에서 듣기엔 20d급 해치백과 다름없이 걀걀거린다. 하지만 실내에서는 디젤이란 사실을 잊을 만큼 소음도 진동도 없다. 다시 디젤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박차고 나가는 힘과 부드럽게 깔리는 낮은 엔진음을 느끼고서다. 일반 7시리즈와 다르지 않은 하체를 가진 740d M 스포츠는 스포츠 모드를 택하더라도 끝까지 편안함을 잃지 않으면서 매끄럽고 영리하게 움직인다. 스티어링 휠에선 M 로고를 찾을 수 없지만 8단 스포츠 변속기와 함께 변속 패들이 달린 스포츠 스티어링 휠이 적용됐다. 디젤 엔진에 덩치도 크지만 가뿐하고 정확한 움직임을 보이는 7시리즈의 장점이 M 스포츠 패키지 덕분에 더 빛난다. 한두급 아래 차들을 몰 듯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어 편안하기까지 하다. 에어 서스펜션을 장비해 필요할 땐 차고를 높일 수도 있다.
스틸 스프링과 전자제어 댐퍼 조합을 쓴 콰트로포르테는 조금 과장된 움직임을 보여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스포츠 모드에선 탄탄함을 넘어 튀기까지 한다. 시트에 앉은 느낌부터 투박한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감각까지 전반적으로 큰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끔 한다. 그러다가도 슬며시, 이런 덩치에선 절대 안될 것 같은 예리한 조향반응으로 놀라움을 선사한다. 허세가 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이미지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애초에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둘 중 어느 차가 더 마음에 드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결론은 간단하다. 젊을 때 큼지막하면서도 스포티한 차를 타고 싶다면 7시리즈를 고를 것이다. 반면 콰트로포르테는 나이 들었으나 아직 기운이 팔팔하고 동년배들과는 다른 감성을 가졌음을 내비치고 싶을 때 선택할 만하다. 740d 대신 M760Li를 붙였어도 이런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뒷좌석을 이용하는 비중이 높다면? 그럼 S-클래스에서 골라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