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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 몬스터, BMW M760Li xDrive
2017-07-11 10:27:33
글
김종우 기자
몬스터(Monster) 도감에서 봤던 것 중 가장 큰 놈이네.’
서울 중구의 정글을 헤매며, 미궁 속 지하 던전(Dungeon) 구석에서 마주한 잠자는 미녀 아니 무지막지한 세단의 첫인상이다. 길고 새카만 전형적인 회장님차인데, 에어로다이내믹스가 잔뜩 들어간 외관에 낮게 웅크린 자세, 거기다 20인치나 되는 4개의 발(?)에서는 크고 새파란 브레이크 캘리퍼가 번쩍거린다.
잔뜩 겁먹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된 것마냥 조심스레 다가가 엔진을 깨웠다. 거대한 엔진의 웨이크닝 사운드는 예상과 달리 나긋하다.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보려 했는데 맥이 풀린다. ‘현타’로 돌아온 기자의 첫번째 걱정은 이 거구를 생채기 없이 좁은 주차장과 골목에서 어떻게 빼내느냐 하는 것이다.
차체는 지난 서울모터쇼에서 봤을 때보다 더 커 보인다. 길이가 무려 5.2m에 이르고 너비는 1.9m다. 넉넉한 차체에서 나온 휠베이스는 3.2m로 앞뒤 범퍼를 뗀 경차 한대를 품을 수 있을 정도로 길다.
거구의 세단을 정말 오랜만에 운전하는지라 조심조심 차를 빼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좁은 터널을 살살 올라가다 가속페달을 살짝 밟았는데, 뒤에서 우렁찬 배기음이 들려온다. 그래, 아까는 하품한 거였구나.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느라 신경을 써서 그런지 본격적인 시승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진이 빠진다. 이래서 기자는 대책 없이 긴 세단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다른 차들을 기죽이는 존재.
더 큰 문제는 이런 차는 뒷좌석에 누워가야 폼이 나는데,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고, 과속방지턱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는 것이다. 유리에 틴팅도 안되어 있어 정차 시 옆 차 운전자들이 자꾸만 쳐다보는 것도 부담스럽다. 이래저래 불편하게 시작한 시승이 도심을 빠져나오자 신세계로 바뀌었다.
도로가 한산해지자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올 때 잠시 들었던 소리가 운전석 주변을 서서히 감싸더니 가속페달을 꾹 밟자 굉음으로 바뀐다. 순간 몸이 시트에 파묻히며 차는 무서운 속도로 워프하기 시작한다. 나름 고성능차를 많이 타봤지만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하다.
특별한 점은 강력한 출력을 매우 젠틀하게 토해낸다는 것이다. 12개의 실린더를 장착한 다른 모델들처럼 한껏 소리를 지르거나 으르렁거리며 사방에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는다.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방법을 읊조리는 것 같다.
아무리 M 배지를 품었다고 해도 태생이 럭셔리 드라이빙을 지향하는 7시리즈. 본분을 잊지 않는 듯 매력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면서 화끈한 가속을 보이지만 승차감은 다른 BMW 형제들 특히 M배지가 붙은 모델에 비하면 매직카펫라이드 탄 듯 부드럽다. 엔진이 롤스로이스와 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양탄자도 같이 빌려왔나?
부드러운 주행감각을 지녔다고 해도 보닛 아래에는 12개의 실린더가 달린 6.6L 트윈터보 엔진이 들어차 있다. 이것은 롤스로이스 고스트와 레이스, 던에 사용되는 BMW N74 엔진으로, M 퍼포먼스 튜닝을 거쳤다.
최고출력 609마력에 최대토크는 81.6kg·m를 뽑아내는데, 이 강력한 토크빨이 1,550rpm부터 5,000rpm까지 이어진다. 2.3톤에 육박하는 거대한 세단을 3시리즈처럼 가뿐하게 움직일 수 있는 비결이다. 앞다퉈 실린더와 배기량 줄이는 다이어트 열풍에 초연한, 배짱이 두둑한 엔진이다.
공인연비는 6.6km/L. 나름 기름값 좀 줄여주겠다고 오토 스톱&고 시스템을 마련했지만 있으나마나다. 가변 실린더 기술이 들어갔는지 찾아보니 역시 없다. 하긴 이 정도 가격, 이 정도 배기량의 차를 모는 사람이 기름값에 신경이나 쓸까? 연비는 단지 얼마나 자주 주유소에 들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표 정도다. 대형엔진으로 인한 무게증가는 카본파이버와 알루미늄을 듬뿍 사용한 경량 플랫폼으로 상쇄시켰다.
이제 슬슬 적응도 됐겠다, 주행 모드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V12 엔진을 다그쳐보기로 했다. 주행 모드는 컴포트부터 스포츠+까지 4가지다. 모드에 따라 스로틀 반응과 회전수, 스티어링 휠 감도가 달라진다. 여기에 2액슬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돼 차고와 서스펜션 감쇠력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고, 차선을 넘나드는 거친 주행에서도 보디 롤을 최소화한다.
사람들이 M과 V12의 컬래버레이션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자는 스포츠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7로 인해 스포츠성이 많이 희석됐다. 스포츠+ 모드에 맞추면 어떠냐고? 배기음이 한층 커지고 가속페달에 발이 스치기만 해도 rpm이 솟구치며, 속도계 바늘 역시 시원하게 움직인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거나 시프트패들로 변속을 하면 어김없이 배기구에서 콩 볶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이 모든 특성을 아우르는 것은 편안함과 부드러움이다. 여기에 거슬리지 않는 사운드, 지면을 손금 보듯이 미리 살펴 충격을 전달하지 않는 서스펜션, 외부 소음(심지어 배기음까지 차단해 조금 재미가 없을 정도로)까지 꼼꼼하게 차단된다. 뒷좌석 VIP를 위한 차라는 본연의 임무에 철저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첨단주행보조 및 안전장비도 부드러운 운전을 돕는다. 가장 인상적인 장비는 4개의 바퀴가 모두 조향되는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 시스템이다. 덕분에 5.2m의 대형세단이 해치백 마냥 빠릿하게 코너를 돌아나갈 수 있다. 긴 세단의 경우 방향을 틀면 잠시 후에 뒤쪽이 따라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차는 4개의 바퀴가 동시에 회전해 앞뒤가 즉시 정렬된다. 차의 뒤쪽이 없는 느낌이다. 또한 V12 세단 최초로 적용된 뒷바퀴굴림 기본의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토크와 구동력을 적절히 나눠 빠르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준다.
실내는 7시리즈 롱휠베이스 모델을 기본으로 도어실과 센터콘솔 등에 커다랗게 V12 를 새겨 넣어 특별함을 강조했다. 스티어링 휠은 스포티하다. 휠 뒤쪽에 달린 시프트패들의 감촉이 최근 만져본 세단 중 가장 만족스러웠다.
시트 포지션은 조금 높은 편이어서 낮춰서 운전자세를 잡으니 편안했다. 뒷좌석도 조금 높은 편인데, 탑승자를 폭 안아주는 게 아닌 조금 밀쳐내는 느낌이다. 이건 기자만의 느낌이 아니다.
M760Li는 현재 BMW에서 출시된 세단 중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며, 가장 화려한 장비로 안팎을 꾸민 플래그십이다. 1열 시트 뒤에 달린 디스플레이부터, 2열 센터 암레스트에 달린 갤럭시 탭으로는 모든 기능을 컨트롤할 수 있다. 다양한 색상의 앰비언트 라이트에 B필러에도 조명을 넣었다. 안마기능? 당연히 있다.
성능은 또 어떤가? 고성능의 리얼 M카를 사뿐히 즈려밟을 정도로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BMW는 2015년 6세대(G11/12) 7시리즈를 발표하며 7시리즈 지향점이 M카와 맞지 않아 출시할 가능이 없다고 못박았다. 따라서 이 차는 앞으로도 7시리즈의 최강자의 위치를 지키게 될 것이다.
탁월한 달리기 실력에 VIP를 위한 최고급 장비. V12 대배기량 엔진에서 터져 나오는 풍요로운 힘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차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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