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타본 메르세데스-벤츠 중 최고의 차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GLC의 손을 들어주겠다. 덩치가 너무 크지 않고 힘이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디자인이 멋있다. C-클래스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크로스오버 SUV의 특징을 적당히 버무린 결과물이 끝내준다. (AMG 43를 제외하고) 성능이 화끈하거나 운전이 재미있진 않지만, 과시나 자기 만족감을 충족시키면서 일상용으로 타기에 이만한 차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쿠페는 기본이 되는 세단이나 SUV보다 훨씬 멋지고 주행성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BMW의 짝수 X 시리즈가 그랬고, 가깝게는 벤츠 세단에서 파생된 쿠페가 그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GLC 쿠페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그런데 GLC 쿠페는 GLC를 처음 봤을 때만큼 혹하지 않았다. GLC 디자인에 눈이 적응됐기 때문일 수도 있고, 먼저 나온 GLE 쿠페를 통해 벤츠 쿠페형 SUV의 뒷모습이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GLC를 처음 봤을 때의 강렬한 느낌은 없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GLC 220 d(GLC 250 d 포함)에 스포티한 AMG 보디 패키지가 적용됐음에도 뭔가 미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C-클래스 쿠페를 처음 봤을 땐 디자인이 끝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GLC 쿠페는 GLC의 디자인을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뒤에서 보면 쿠페형 SUV 특유의 매력이 살아 있다. 흔히 말하는 힙업(hip-up)된 디자인 덕분이다. 리어 범퍼가 두툼하고 테일램프를 높게 달아 이런 디자인이 완성됐다. 여기엔 255/50 R19 사이즈의 뒤타이어와 커다란 휠(앞쪽은 235/55 R19)이 한몫을 한다. 170마력의 2.1L 터보 디젤 엔진에 과분한 ‘오버스펙’ 타이어지만 시각적인 효과는 확실하다.
C-클래스 세단에서 파생된 C-클래스 에스테이트, C-클래스 쿠페가 그랬고, GLC가 그런 것처럼 GLC 쿠페의 인테리어 역시 세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시보드나 센터페시아를 보면 이 차가 C-클래스인지 GLC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반면 E-클래스 쿠페는 송풍구를 제트기 엔진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인테리어는 기본형 GLC와 큰 차이가 없지만 운전석에 앉으면 타이트한 느낌이 든다. GLC보다 키가 30mm 낮아진 탓이다. 앞좌석의 타이트함이 뒤쪽으로 가면 답답한 느낌으로 변한다. 세단이나 SUV가 쿠페로 변신할 때 생겨나는 단점을 GLC 쿠페도 피하지 못한 것이다.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루프 라인을 만회하고자 뒷좌석 머리공간을 깊게 파놓았지만 키 180cm가 넘는 사람이 앉으면 머리가 닿는다. 스타일을 위해 실용성을 포기하는 게 쿠페의 숙명인 만큼 이는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파워트레인과 섀시 구성도 기본형과 비슷하다. 4기통 2.1L 터보 디젤 엔진에 9단 자동변속기를 매치했다. 앞뒤 구동력을 45:55로 나누는 4매틱도 적용됐다. 여기까진 기본형과 구성이 같지만 결과물은 조금 다르다.
가장 크게 다가온 특징은 엄청나게 조용하고 깔끔하다는 것이다. 기본형 GLC 220 d를 탈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쿠페는 NVH 부분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외부에서는 오래된 2.1L 디젤 엔진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시끄럽지만, 실내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공회전 때 소음이 전혀 없고, 페달이나 스티어링 휠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도 깔끔하게 잡았다.
하지만 디젤 엔진 특유의 두툼한 토크감은 약하다. 에코나 컴포트 모드에선 시종일관 답답함이 느껴진다. 벤츠의 거의 모든 모델이 느긋한 스로틀 반응을 보이지만 스포티한 쿠페엔 이런 특성이 어울리지 않는다. 스포츠 모드에 맞추면 답답함이 해소되어 자연스럽게 스포츠나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손이 가고, 그렇게 하면 이 차가 내세우는 장점인 정숙성이 사라진다. 어느쪽을 택할지는 운전자의 몫이다.
9단 자동변속기는 무척 매끄럽고, 주행 모드의 특징도 분명하다. 스포츠 모드에선 엔진 회전수를 높게 가져가면서 다운시프트와 킥다운을 확실하게 처리한다. 시프트패들을 통한 수동 모드도 깔끔하고 신속하다. 커다란 타이어를 끼우고 네바퀴를 굴리는 덕분에 고속안정성은 대단히 훌륭하다. 기본형보다 단단한 스포츠 서스펜션(국내 판매 GLC 쿠페에 일괄적용)을 끼운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코너링 실력도 기본형보다는 낫다. 엔진이 평범하고 차체가 무거워 빠른 코너링은 어렵지만 피드백이 풍부한 스티어링 시스템(기어비는 기본형 16.1:1, 쿠페 15.1:1)과 조화를 이뤄 제법 날렵하고 운전 재미도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스포티하진 않다.
이 부분에서 약간의 문제가 드러난다. GLC는 코너링 퍼포먼스가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승차감은 세단 못지않게 부드럽고 나긋하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맘에 들었다. 반면 단단한 서스펜션을 사용한 GLC 쿠페는 승차감이 훌륭하지도 않고, 쿠페에 어울릴 정도로 스포티하지도 않다. 쉽게 말해 어중간한 느낌이다. 스포츠 서스펜션의 영역은 250 d에 맡기고 220 d 만큼은 기본형 서스펜션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아니면 큰맘 먹고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하거나).
GLC의 가장 차별화된 장점은 안락함과 고급스러움이다. C-클래스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GLC 쿠페는 안락함이 많이 희석된 느낌이다. 적어도 GLC 220 d 쿠페는 그렇다. 그래도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동급에서 쿠페형 SUV를 찾기가 쉽지 않고, GLC 쿠페만 놓고 보면 완성도도 괜찮기 때문이다. 다만 기본형 GLC가 줬던 임팩트가 강했을 뿐이다.
메르세데스-벤츠 GLC 220 d 쿠페
가격: 7,320만원
엔진: I4 2143cc 터보 디젤, 170마력, 40.8kg·m
변속기: 9단 자동, AWD
성능: 0→100km/h 8.3초, 210km/h
연비: 12.9km/L, 148g/km
무게: 1915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