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370마력 스팅어 3.3 터보를 몰고 도로를 질주할 때다. 한계치를 향해 속도를 붙여나갈수록 노면을 꽉 잡고 있던 하체 힘이 슬슬 풀리는 기미가 보이고, 그만큼 스티어링 휠을 꼭 쥔 몸뚱이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살짝 불안해진 마음에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스팅어 3.3 터보는 무려 270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평소 법질서를 중시하는 기자가 일반도로에서 이 영역에 도전했단 얘긴 절대 아니다. 엄습한 불안감은 누구 말처럼 ‘달리는 사자 등에 탄 것 같은’ 강렬한 가속과 국산차에 대한 선입견이 상충되면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게 기아차야? 이게 국산차라고? 국산차가 이렇게 빨라도 되는거야?’
아닌 게 아니라 개발자들로부터 제품소개를 들을 때도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얘기들이 속속 튀어나왔다. “론치컨트롤을 이용하면 0→100km/h 가속을 4.9초에 끊을 수 있고 기계식 LSD, 퍼포먼스 타이어인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와 브렘보 브레이크를 적용했으며 드리프트, 서킷 주행을 고려해 설계했고 뉘르부르크링에서 성능을 검증했고 블라블라블라….” 순간순간 포르쉐나 AMG에서 만든 고성능 세단의 설명을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제네시스 쿠페가 떠난 자리에 스팅어가 들어왔다
‘뉘르부르크링에서 테스트해가며 개발했으면 랩타임도 공개할 일이지.’ 혼자 생각하는데 때마침 발표자가 수치를 딱 내놓는다. 8분 20초대란다. 굳이 비교하면 구닥다리 스포츠카들보단 빠른 수준이다.
랩타임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걸 신경 쓸 만큼 주행성능을 우선시한 차가 드디어 나왔고, 개발진이 그것을 공개할 만큼 성능에 자신감을 갖는 단계에 이르렀다는데 감명을 받았다.
이어진 미디어 시승행사의 주행코스는 곧게 뻗은 고속도로 위주로 짜여져 스팅어가 자랑하는 펀 투 드라이브 특성을 제대로 맛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코너를 통과해보니 조향 반응이 빠르고 경쾌했으며 낮게 깔리는 느낌의 차체는 정밀하게 움직였다.
K5를 위에서 눌러놓은 것 같은 크기와 비례의 스팅어는 뒷바퀴굴림이어서 휠베이스가 K5보다 10cm 긴 2,905mm에 달한다. 체구도 그렇지만 실내공간도 경쟁모델로 지목한 아우디 A5 스포트백이나 BMW 4시리즈 그란쿠페보다 훨씬 넉넉하다. 스포츠카로 즐기기엔 큰 덩치지만 거의 의식되지 않는 몸놀림을 보인다. 드리프트까진 아니어도 제대로 된 굽잇길을 만나면 재미있을 법하다.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를 선택했을 때의 차이가 크고, 각각의 목적에 잘 부합한다. 주행 모드를 바꿀 때 쓰는 다이얼은 버튼식보다 쓰기 편하다. 나지막한 시트 포지션, 옆구리를 조일 수 있는 전동 볼스터도 마음에 든다.
반면 평범한 스티어링 휠은 불만이다. 운전석 주변도 어색하다. 현대 브랜드로 팔아도 될 것처럼 정체성이 약해 보인다. 기존 기아차들과 선을 긋는 김에 이왕이면 스팅어만의 강한 개성을 추구했더라면 좋았겠다. 아직은 뜬금없게만 느껴지는 ‘E’ 엠블럼의 차들이 늘어난 후에는 다른 평가를 하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사운드도 아쉽다. 스팅어가 강조하는 주행성능과 운전 재미의 수준을 고려하면 엔진과 배기 사운드는 짖지 못하도록 성대수술을 받은 것만 같다. 컴포트 모드에선 소리가 완전히 죽고 스포츠 모드에선 스피커로 덧입힌 둔탁한 소리만 불거진다.
따지고 들면 참 괴상한 차다. 4명 이상이 탈 수 있는, 온전한 문 4짝이 달린 작지 않은 세단인데 외관은 날렵한 쿠페처럼 한껏 멋을 부렸고 트렁크는 해치 방식으로 실용성을 챙겼으며 실내는 고급스럽게 치장했다. 넣을 수 있는 최신 고급장비도 다 넣었다.
외관 디자인에는 장거리를 빠르고 편안하게 질주하는 그란 투리스모, GT의 이미지를 담았다. 그런데 이 차로 신나게 드리프트를 할 수도 있고 서킷도 갈 수 있단다. ‘차값이 5,000만원도 안되는데 정말 이게 다 된다고?’ 또다시 선입견의 상충이 의심의 루프를 타게 만든다.
▲ 초기 계약자의 80%는 무채색을 골랐다. 흰색이 가장 인기다
그러고 보니 스팅어 3.3 터보의 복합연비는 뒷바퀴굴림 8.8km/L, 네바퀴굴림 8.4km/L인데, 벤츠 E-클래스의 고성능 버전 AMG E 43 4매틱(네바퀴굴림)은 8.9km/L다. E 43는 스팅어와 같은 V6 트윈터보 엔진인데 배기량이 3.0L로 더 낮다. 최고출력은 401마력으로 더 높고 0→100km/h 가속이 4.6초로 더 빠르다. 스팅어보다 크고 130kg 이상 무거운 차인데도 말이다. 이런 수치들로 스팅어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E 43(1억1,200만원)의 절반값인데 이 정도면 훌륭하지 뭘!
기아 스팅어 3.3 터보 GT
가격: 4,880만원
엔진: V6 3342cc 트윈터보, 370마력, 52kg·m
변속기: 8단 자동, RWD
성능: 0→100km/h 4.9초, 270km/h
연비: 8.8km/L, 192g/km
무게: 1785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