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일본 스즈카 서킷에서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와 우라칸 퍼포만테를 시승했다. 필자는 람보르기니가 아시아지역 자동차 전문기자와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시승회(Lamborghini Suzuka Esperienza)에 초청받는 행운을 잡았기 때문이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이탈리아 볼로냐의 람보르기니 공장 그리고 박물관을 방문하는 일반고객 대상 이벤트로 시작됐다. 근처 이몰라 서킷에서 람보르기니 모델들을 시승해보고 전문 강사와 프로 드라이버들로부터 맞춤형 운전교육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자국의 람보르기니 공식 딜러사(우리나라의 경우 SQDA 모터스)에 문의하면 자격이 될 경우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단순히 재력이 있고 람보르기니를 갖고 있다고 해서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선정기준이 다르다고 한다. 이탈리아 본사에서 열리는 이런 고객 체험 행사를 기초로 아시아 지역 미디어 관계자와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마련된 게 이번 스즈카 행사다.
출국에 앞서 람보르기니의 최신 플래그십 아벤타도르 S를 서킷에서 타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떴다. 어린시절 필자의 머릿속에 ‘슈퍼카=람보르기니’를 각인시켰던 카운타크(필자 같은 아재는 쿤타치라고 읽지 않는다)의 맥을 잇는 아벤타도르를 더 매섭게 다듬은 S를 탄다니 흥분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물론 우라칸 퍼포만테도 만만치 않은 차다. 지난해 10월 독일 뉘르부르크링을 6분 52초 01에 주파해 양산차 랩타임 신기록(1위 포르쉐 918 스파이더의 기록을 5초 정도 단축한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을 세운 괴물이다. 과연 람보르기니 가문의 큰형님이 좋을까? 아니면 형보다 잘난 동생이 좋을까?
이들을 만나볼 무대는 일본 혼슈(本州) 미에켄(三重縣)의 스즈카시(鈴鹿市)에 있는 서킷이다. 아시아 최초의 국제규격 자동차 경주장으로 1962년 혼다가 만들었으며 시즈오카켄(靜岡縣)의 후지(富士) 스피드웨이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서킷이다. F1 일본 그랑프리가 열리는 스즈카 서킷은 1주 5.821km 트랙에 17개의 코너로 이루어져 있다. F1 서킷 중 까다로운 코스로 알려져 있고, 유일하게 입체로 교차하는 코스가 있다. 혼다 공장과 더불어 대규모 가족 놀이공원으로 꾸며진 것도 특징이다. 필자는 스즈카 서킷을 처음 방문하기에 인터넷을 통해 각종 경주차 주행 동영상을 보면서 선행학습을 했다. 그래야 시승 때 차의 진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준비로 바쁜 필자에게 람보르기니 서울(SQDA 모터스) 담당자로부터 이메일이 한통 왔다. 주최측의 요청에 따라 ‘서킷 주행 경험과 운전 능력 수준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자동차에 모든 것을 걸었던 젊은시절이 떠오른다. 필자는 1999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Sonoma) 지역의 시어스 포인트 레이스웨이(Sears Point Raceway, 현재는 소노마 레이스웨이)에 있던 러셀 레이싱 스쿨(Russell Racing School)에서 포뮬러 경주차 미캐닉 & 드라이버 양성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며칠 혹은 몇주 동안 운영되는 단기 프로그램이 아니라 12개월 동안 진행되는 전문가 과정이다. 당시 필자는 러셀 포뮬러 경주차와 레이싱 스쿨 교육용 차들을 유지, 보수하고 제작하는 일을 하면서 레이스에 6회 출전한 경험이 있다. 이런 내용을 적어 답신을 보냈더니 주최측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행사 당일 스즈카 서킷에는 대만, 일본 등에서 온 기자들과 딜러사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다. 사전에 확인한 드라이버의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2인 6개조로 나눠 트랙 주행에 나섰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행사가 취소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행 세션 진행을 맡은 인스트럭터들은 운전자들의 기량에 맞춰 페이스카의 스피드를 조절하며 행사를 무리없이 진행했다. 얼마후 빗줄기가 멈췄다. 하지만 트랙은 흠뻑 젖은 상태. 각각 최고출력이 740마력, 640마력에 달하는 슈퍼카를 트랙에 올리려니 살짝 긴장됐다. 어차피 전력질주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적당한 기회에 앞뒤 간격을 최대한 벌리고, 그 틈을 이용해 차의 성능과 한계를 알아보기로 했다.
첫 주행에서는 인스트럭터가 운전하고 시승자는 동반석에 앉아 각 코너의 레코드 라인과 브레이킹 포인트 등을 익혔다. 인스트럭터는 대대수가 일본 레이서로, 스즈카 서킷을 잘 알고 있었다. 능숙하게 코스를 돌면서 차를 접지력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 정도 속도면 차가 휘청거릴 만한데 미동도 없이 급코너를 빠져나갔다. 인스트럭터들의 코스 적응도가 엄청났다. 빗길주행의 기본스킬인 코너 직전에서의 한 템포 빠른 브레이킹과 부드러운 스티어링 휠 조작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시승 차례가 돌아왔다. 먼저 아벤타도르 S의 운전석에 앉았다. 2016년말 데뷔한 아벤타도르 S는 람보르기니 양산차 가운데 최초로 뒷바퀴조향 시스템(LRS, Lamborghini Rear-wheel Steering)이 달렸다. 강화된 공력성능을 기초로, 정밀한 서스펜션과 드라이빙 모드가 특징이다. V12 6.5L 엔진은 최고출력 740마력, 최대토크 70.4kg·m를 낸다. 기존의 아벤타도르에 비해 최고출력이 40마력 높지만 제원상 주행성능은 0→100km/h 가속 2.9초, 최고속도 350km/h로 비슷하다.
주행 모드는 트랙에 최적화된 코르사(CORSA)에 맞춰져 있었다. 일반주행용 스트라다(STRADA), 다이내믹 주행용 스포츠(SPORT) 모드 외에 새로 추가된 에고(EGO) 모드가 눈길을 끈다. 에고 모드는 안락하고 편안한 승차감(스트라다)에서 뒷바퀴굴림차와 같은 다이내믹하고 민첩한 맛을 살려주거나(스포츠), 최대의 성능을 뿜어내는(코르사) 등 운전자 입맛에 맞춰 조합할 수 있게 해준다. 맞춤주행 모드 설정이 가능하기에 스티어링, 서스펜션, 파워트레인을 각기 다르게 조절하고 기억시켰다가 바로 불러올 수 있다. 이렇게 세심하게 조절해 차를 더욱 재미있게 탈 수 있도록 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대신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드라이버가 돼야 할 것이다.
아벤타도르 S의 공차중량은 1,575kg로 가볍진 않다(우라칸 퍼포만테는 1,382kg). 하지만 직접 움직여보니 묵직한 주행감 대신 사뿐한 몸놀림이 느껴진다. 마력당 무게가 2.13kg에 불과한 것도 이유겠지만 새로 적용된 능동형 서스펜션(LMS, Lamborghini Magneto-rheological Suspension)이 바퀴에 걸리는 부하를 줄여준 것이 큰 것 같다. 자료를 보니 LMS는 LDS(Lamborghini Dynamic Steering), LRS에 맞춰 최적화됐고 이를 통해 서스펜션 하중과 캐스터각을 줄였다고 한다. 억세고 둔한 느낌이 없는 이유다.
외관은 헤드라이트 아래 예전의 육각형 에어덕트가 세로로 길쭉하게 바뀌고 범퍼 하단의 정교해진 면처리가 눈에 들어온다. 로커패널은 포뮬러카를 연상시키며, 리어 펜더도 더욱 정교해졌다. 삼각형에 가까운 육각형으로 바뀐 머플러도 매우 인상적이다. 페이스리프트 개념의 모델 체인지여서 전체적으로 크게 바뀌진 않았다.
페이스카 바로 뒤에서 출발했다. 피트 레인을 빠져나가자 앞차가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킨다. 와이퍼를 부지런히 움직여도 소용이 없다. 트랙에 오르자마자 페이스카를 바짝 몰아붙여 주행속도를 높일 심산이었지만 자제하기로 했다. 2~3개 코너를 천천히 통과한 페이스카가 갑자기 튀어나갔다. 이미 달궈진 엔진이기에 풀 스로틀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뒤에 있던 차는 수중전을 포기한 듯 멀찍이 떨어져 졸졸 따라온다.
엄청난 기세로 달리던 페이스카가 9번 코너를 앞두고 속도를 줄인다. 필자도 브레이크 페달에 일찍 발을 얹었다. 스즈카 서킷은 F1을 치른 경주장 중에 유일하게 입체 교차하는 코스다. 9번 코너를 돌면 교각 아래를 지나게 된다. 교각 상판은 코스의 일부이고, 15번 코너 직전이다. 트랙이 위아래로 교차하는 입체적인 서킷은 보기 드물다.
3번부터 7번까지 이어지는 S자 코너는 이어지는 코너를 향할 때 트랙 중앙부분을 따라가야 다음 코너 공략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코너 공략법인 아웃 인 아웃을 지키지만 코너 탈출 때 다음 코너 진입을 위해 코스 중앙부분을 유지하고 너무 바깥쪽으로 붙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 맞춰 가속페달의 부분적 전개와 부드러운 조작도 필요하다. 7번 코너 이후 직선주로도 약간 휘어 있는 형태여서 스티어링 휠을 살짝 돌린 상태에서 꽉 잡은 채 짧은 풀 가속이 필요하다.
11번 헤어핀 코너와 13, 14번 코너로 구성된 스푼 커브는 온전한 뒷바퀴굴림차라면 코너링 도중 가속페달을 지긋이 밟은 채 돌아 나가는 밸런스 스로틀 구사가 필요한데, 람보르기니 차들은 미세한 조작도 필요없다. 과감하게 밟아도 된다. 여기서 최신 네바퀴굴림 구동계 고성능차들의 놀라운 성능을 경험할 수 있다. 람보르기니의 아벤타도르와 우라칸 정도라면 아무리 밀어붙여도 코너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벤타도르 S 역시 사고를 내지 않으면서 차의 한계를 파악하고자 할 때 조심스럽게 접근하면 쉽사리 최대 한계치를 보여주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제아무리 고성능을 자랑해도 운전자의 능력에 따라 차의 한계치가 달라졌다. 그러나 최신 슈퍼카의 경우 기계와 장비가 그 역할을 퍼펙트하게 해낸다.
커다란 시케인처럼 느껴지는 16, 17번 코너를 돌아 나가면 완만한 18번 코너를 끝으로 메인 스트레이트 구간을 지나게 된다. 코스가 마른 상태라면 쉽게 300km/h 가까운 스피드를 뽑아낼 수 있겠지만 페이스카는 200km/h로 무리를 이끈다. 앞차가 뿜어내는 물보라를 피해 엇갈린 라인을 유지하며 달렸다.
젖은 직진코스에서 보여준 아벤타도르 S의 접지력은 마른 노면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아마도 앞범퍼쪽의 더 길어진 프론트 스플리터와 두개의 에어덕트가 공기를 효과적으로 가르며 차체 바닥으로 밀어넣고, 뒷범퍼의 디퓨저가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에어로다이내믹 설계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아벤타도르 S는 구형에 비해 앞쪽 다운포스가 130% 이상 향상됐다. 또 속도 및 주행 모드에 따라 세가지 포지션으로 움직이는 리어윙도 고속주행 때 차체 안정성을 유지시켜준다.
여유 있게 두번째 랩을 돌기 시작했다. 최고출력 740마력인 V12 엔진의 배기음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런 고성능차로 최대 허용치인 8,500rpm을 유지하며 달리는 것은 일반도로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배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환상적인 소리를 스피드와 함께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노면이 젖어 극단적으로 몰아붙일 수 없었기에 새롭게 선보인 뒷바퀴조향 시스템(LRS)의 진가를 만끽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아벤타도르 S의 덩치를 잊게 하는 발빠른 코너링 성능과 완만한 코너에서의 기막힌 직진성은 분명히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모든 것이 경이롭다고 표현하고 싶은 환상적인 아벤타도르 S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싱글클러치 방식 변속기다. 아벤타도르는 우라칸처럼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새차는 제어 프로그램을 손봐 0.05초만에 변속이 이뤄진다고 하지만 조금 부족한 부분이 보였다. 특히 급가속을 위해 8,000rpm 정도까지 끌고가다 기어를 올리면 차체가 흔들릴 정도의 큰 충격이 전해지면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높은 회전수에서 업, 다운 때마다 변속지체와 충격을 경험하고 나니 무리하지 말고 여유 있게 코너를 공략하라는 무언의 시위로 느껴졌다. 이는 일반도로에서 겪지 못할 단점이기에 문제 삼을 부분은 아니다. 게다가 이런 싱글클러치 변속기의 한계를 달래며 운전하길 좋아하는 드라이버도 있다.
아무튼 아벤타도르 S는 굉장한 차다. 강력한 자연흡기 엔진과 네바퀴굴림 구동계가 젖은 서킷을 안심하고 종횡무진 누비도록 뒷받침한 것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손맛이 좋다. 마치 뒷바퀴굴림인 듯 스티어링 휠이 엉기는 느낌 없이 매끈하게 달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정적이고 빠르다. 새로 추가된 LRS의 위력은 상당하다. 제아무리 뒷바퀴굴림 구동계를 신봉하는 이라도 한번 타보면 마음을 고쳐먹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번에는 우라칸 퍼포만테에 오를 차례다. 사실 이 차에 특별한 기대감은 없다. 필자는 V12 모델인 아벤타도르 S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우라칸의 전작 가야르도에 대한 기억(아우디 R8와 감흥이 다르지 않았다)도 있지만 지난해 인제 서킷에서 우라칸 네바퀴굴림(LP610-4)과 뒷바퀴굴림(LP580-2)을 비교시승하며 맛을 본적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하지 못했던 반전매력이 듬뿍 숨겨져 있었다. 독일 뉘르부르크링을 양산차 가운데 가장 빨리 돌 수 있었던 비결이 분명 존재했다. 퍼포만테는 전혀 다른 차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빼어난 트랙 주행성능을 자랑했다. 일반도로를 달릴 수 있는 경주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같은 범주에 드는 차들 중 가장 편한 차라는 타이틀도 동시에 가져갈 것 같다.
퍼포만테를 탈 때는 대열의 맨 뒤에 섰다. 페이스카가 그룹의 주행속도를 제어하기 때문에 맨 뒤에서 달려야 앞차와의 간격을 벌린 다음 쫓아가며 한계까지 밀어붙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트랙은 젖어 있다. 조심해서 달릴 수밖에 없다. 아벤타도르 S처럼 우라칸 퍼포만테도 듬직하게 제 성능을 느껴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코스에 익숙해졌기에 한층 과감한 주행을 할 수 있었다. 변속도 바쁘게 해야 했다. 앞차가 뿜어내는 물보라를 핑계 삼아 약간 느리게 주행하며 간격을 확보했다. 멀리 떨어지면 페이스카가 주행속도를 늦출 것이기 때문에 너무 처져도 안된다. 그래서 인스트럭터가 속도를 높게 유지하는 코너에서는 열심히 따라가고 몇몇 코너에서는 살짝 거리를 벌린 뒤에 최대한 공격적으로 가벼운 슬라이드가 날 때까지 코너를 공략했다.
V10 5.2L 엔진은 최고출력 640마력, 최대토크 61.2kg·m를 낸다. 이 차 역시 훌륭한 배기음을 뿜어내지만 그 톤이 아벤타도르 S와는 다르다. 배기음만 보면 형님의 굵은 목소리가 더 듣기 좋다. 하지만 둘 다 자신의 체구에 맞는 성량과 음색을 가졌다고 보는 게 맞겠다.
외관은 람보르기니 원메이크 레이스인 수페르 트로페오(Super Trofeo) 경주차를 연상시킨다. 일반 우라칸과 비교해 한층 공격적이다. 이빨처럼 날카로운 프론트 스플리터가 뱀의 머리를 연상시킨다. 차체 하단부를 두른 에어로파츠는 물론이고 차체와 잘 어울리는 거대한 리어윙은 순둥이 같던 우라칸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변신시켰다. 도어 하단은 람보르기니의 본거지 볼로냐를 상징하는 색상으로 치장됐다. 퍼포만테 전용 20인치 휠도 눈길을 끈다. 가만 보니 배기구도 통상적인 위치에서 양쪽 테일램프 안쪽으로 옮겨왔다. 익스트림 스포츠 모터사이클에서 차용한 디자인인데, 아마도 우라칸 퍼포만테 배기음이 높은 음색을 내는데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아벤타도르 S에 비해 가볍고 조금 더 작은 우라칸 퍼포만테는 기대처럼 가벼운 풋워크를 보여준다. 재빠르게 코너를 파고들며 날렵하게 돌아나간다. 지난해 네바퀴굴림과 뒷바퀴굴림 우라칸을 탈 때는 각 차의 특성을 음미하며 달렸지만 퍼포만테는 그럴 틈이 없다. 이 차는 무조건 빠르고 잘 돌고 선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운전자는 그저 갑자기 다가오는 브레이킹 포인트를 맞추는데 몰입하면 된다. 완벽한 조작감을 자랑하는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자꾸만 패들을 당기게 만든다.
필자는 십여년전 처음 듀얼클러치 방식 변속기를 접했다. 그동안 여러 차종에서 해당 변속기를 접해보고 기술 발전속도에 놀랐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완벽하게 조율된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만났다. 언젠가 오겠지 했던 그날 같았다. 변속 충격이 없다시피 해 언제 기어가 바뀌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물론 수동 모드로 변속 패들을 당기고 있기에 그 순간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액셀 페달을 밟고 있는 사이에 기어 체인지가 이루어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운 시프트 때 레브매칭(회전수를 스스로 높여 변속을 자연스럽게 하는 기능)도 더욱 완벽해졌다. 과거 수동변속기로 힐 앤드 토를 구사하며 뿌듯해 하던 시절이 낯뜨겁게 느껴질 정도다.
람보르기니는 퍼포만테의 무게를 기존 우라칸보다 40kg 줄였다고 한다. 비결은 세스토 엘레멘토에서 활용했던 포지드 컴포지트(Forged Composite) 카본파이버. 탄소섬유 조각을 뭉쳐서 합성수지와 혼합, 고압에서 찍어낸 포지드 콤포지트 소재는 기존 카본파이버보다 가볍고 정교한 가공이 가능하다. 퍼포만테의 경우 프론트 및 리어 스포일러, 엔진 보닛, 리어 범퍼와 디퓨저에 적용됐다.
그런데 1,382kg의 차체가 과장하면 400kg은 더 가벼운 것처럼 내달린다. 우라칸 퍼포만테의 마력당 무게는 2.16kg으로, 앞서 탄 아벤타도르 S보다 떨어진다. 그래서 단순히 무게만을 따지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ALA(Aerodinamica Lamborghini Attiva)의 효과가 가장 클 것이다.
람보르기니의 액티브 에어로다이나믹 시스템인 ALA(마침 이탈리아어로 날개를 뜻한다)는 전동 모터에 의해 플랩들을 움직여 앞스포일러를 타고 들어오는 공기흐름을 제어, 다운포스와 저항을 조절한다. 차체 뒤에서도 4개의 에어덕트로 공기흐름을 조절한다. 항상 열려 있는 중앙의 2개는 차체 하부로 공기를 보내 다운포스 효율을 높이고 엔진 냉각을 돕는다. 상황에 따라 열고 닫히는 다른 2개는 리어윙 내부 통로와 연결되어 차체 뒤로 지나는 공기흐름을 조절한다. 단순히 윙이나 스포일러의 각도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체에 유입됐다 뿜어내는 공기 통로를 제어하는, 매우 효과적인 최신 에어로다이내믹 시스템이다.
차체 윗면을 따라 뒤로 간 공기는 플랩을 열었을 경우 리어윙을 받쳐주는 기둥 속을 통과해 거대하고 잘생긴 리어윙 하단부로 배출된다. 플랩들을 열고 닫음으로써 다운포스를 위아래와 좌우까지 별도로 제어하는 방식이 놀랍다. 뒤의 플랩들을 닫은 채 풀 브레이킹 상황에서 차체를 눌러주는 다운포스가 우라칸 쿠페에 비해 7.5배 높다는 점만 해도 그렇다. 리어윙에서 흘러나오는 공기 채널은 좌우가 분리돼 고속 코너링 시 좌우를 별도로 열고 닫을 수 있다. 코너링 방향에 따라 좌우가 따로 조절되며 안쪽 바퀴에 다운포스를 집중시킬 수 있다. 코너링 한계속도를 더욱 높여주는 것이다. 우라칸 퍼포만테가 빠른 비결 중 하나다.
할리 데이비슨에 스포스터라는 작은 기종이 있다. 할리 가족 중 막내로 여겨지는 라인업인데 실제로는 형보다 몸놀림이 빠르고 운전 재미가 넘친다. 요즘에는 이런 면이 주목받아 인기가 많이 올라갔지만 아직도 가격이나 덩치에서 형님들이 더 대접받기에 스포스터 고유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우라칸이 그렇다고 하면 우라칸 오너들 눈꼬리가 치켜올라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퍼포만테 덕분에 상황이 달라졌다. 서킷에선 람보르기니 집안 형님들이 고개를 못들 것이다. 게다가 공격적인 리어윙과 완성도 높은 외관으로 이젠 일반도로에서도 형님들처럼 카리스마가 넘친다. 람보르기니 하면 아벤타도르만 고집하던 시절이 끝난 듯하다. 순둥이 우라칸이 드디어 해냈다. 람보르기니의 보석은 이제 우라칸 퍼포만테라고 말하고 싶다.
참고로 이번 행사에는 미디어와 각국 딜러사 관계자 외에 VIP 고객들도 참가했다. 특별대우를 원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다른 시간대에 행사가 진행됐다. 한국인 참가자가 있으면 고객 입장에서의 새차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있으면 꼭 독자들과 공유하겠다.
폭우가 쏟아지며 트랙이 흥건히 젖었기에 안전상의 이유로 제약이 많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궂은 날씨에 웬만하면 차를 꺼내지 않는 슈퍼카 오너들이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빗길주행을 실컷 했기 때문이다. 아벤타도르 S와 우라칸 퍼포만테는 그런 상황에서도 안심하고 달릴 수 있는 차라고 강조하고 싶다. 스즈카 서킷을 처음 주행해본 것도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1960년대 신생 자동차 메이커(혼다)가 이렇게 훌륭한 서킷을 지었다는 사실이 놀랍다(세계 5위권으로 성장한 현대기아차지만 아직 자체 서킷이 없기에 더 그렇다). 아무튼 앞으로 국내에서 한층 버전업된 람보르기니의 두 차를 자주 마주칠 수 있길 고대한다.
필자의 스즈카 현지 시승은 람보르기니 본사의 경비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