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X-5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2인승 스포츠카다. 1989년 출시된 이후 100만대가 넘게 팔렸다. 그러나 우리나라와는 연이 없었다. 마쯔다 한국 진출설이 돌 때마다 마니아들이 귀를 쫑긋 세웠지만 매번 빗나갔다. 꿩 대신 닭이라고 MX-5의 형제차인 피아트 124를 FCA코리아에서 판매할 것이란 얘기도 있지만 구체화되지 않은 채 시간만 가고 있다.
그사이 병행수입업체들이 MX-5를 들여와 팔고 있다. 시승차도 그중 하나다. 덕분에 <탑기어> UK를 포함, 해외에서 찬사를 쏟아낸 이유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요즘 만나기 어려운 수동변속기에 수동개폐 지붕의 조합이라 더욱 반갑다.
MX-5가 데뷔 직후부터 큰 인기를 얻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잊혀졌던 1950년대 영국 스포츠카의 감성을 절묘하게 되살려낸 덕분이다. 차체가 작고 가벼워 평범한 엔진으로도 뛰어난 운동성능과 재미를 제공하며, 상대적으로 몸값이 싸 부담이 적은게 이 차의 미덕이다.
현행 4세대(ND)는 이전 모델보다 100kg을 감량하는 등 1세대(NA)가 지향했던 콘셉트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차체크기는 길이×너비×높이가 3,915×1,735×1,235mm로 경쟁모델로 자주 비교되는 토요타 86(4,240×1,775×1,320mm)보다 훨씬 작다. 심지어 2,310mm의 휠베이스는 앞바퀴굴림인 미니(2,495mm)보다도 짧다. 그 작은 공간에 직렬 4기통 엔진과 변속기를 세로로 얹어 운전자는 뒷바퀴 가까이에 앉는다.
▲ 터치스크린과 다기능 컨트롤러를 갖춘 나름 디지털 세대다
클래식 로드스터다운 롱노즈 숏데크의 비례를 잘 살렸다지만 워낙 짜리몽땅한 차여서 비율이 아름답다거나 외모가 잘났다고 말하긴 힘들다. 왜소한 모습이 딱 일본차답다. 일본 탈바가지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1세대의 앞모습도 현 시대에 어울리게 잘 진화시켰다. 호불호가 나뉠지언정 어떤 차처럼 구닥다리 같거나 디자인을 하다 만 것 같진 않다.
실내도 요즘 차답게 적당한 소재를 솜씨 좋게 배치했다. 시트 포지션은 실제보다 높게 느껴진다. ‘운전자가 돋보이는 디자인’을 채택했다더니 나지막한 차 밖으로 상체를 길게 빼고 앉은 기분이 든다. 보닛 앞쪽과 지면이 잘 보여 그런 기분이 가중되는데, 달릴 때 차의 위치를 파악하기 쉬워 운전의 즐거움을 높이는 요소다.
▲ 글러브박스를 대시보드에서 찾지 말라. 시트 뒤에 있으니까
수동 소프트톱은 운전석에 앉은 채로 간편하게 여닫을 수 있다. 레버를 당긴 다음 휙, 철컥 하면 끝이다. 팔힘이 좋으면 주행 중에도 닫을 수 있다. 이렇게 좋은걸 놔두고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를 복잡하고 무거운 전기, 유압장치를 주렁주렁 달 이유가 없다. 물론 뒷좌석이 없고 지붕이 작은 차여서 가능한 일이다.
▲ 트렁크에 트렁크를 넣을 수 없겠는걸
시동은 버튼으로 건다. 외모처럼 연약하고 부드러울 줄 알았는데 엔진 깨어나는 소리가 제법 묵직하다. 의도적으로 강한 느낌을 주려고 한 것 같다. 그에 비해 6,000rpm에서 157마력을 내는 2.0L 엔진은 특별할 것이 없다. 낮은 회전수부터 기름진 토크를 쏟아내지도, 회전한계인 6,800rpm까지 쇄도하며 소름 돋는 가속을 선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활기차다. 경량 로드스터 이미지에 딱 맞는 수준이다. 엔진 소리가 이보다 조용하고 매끄럽다면 1.5L 131마력 버전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수동변속기로 성능과 운전재미를 낱낱이 뽑아낸다는 조건에서다.
▲ 엔진은 앞에 있지만 뒤에 있다(?)
변속기 터널 위 패드에 팔꿈치를 올리면 손목까지 수평을 이룬 팔을 앞뒤로 움직이며 손목만 까딱거리는 기분으로 짤록한 기어레버를 다룰 수 있다. 일반 승용차에선 기대할 수 없는 감성이다.
잡고 있으면 덜덜 떨리곤 하는 동그란 기어봉은 다리 옆 변속기 톱니들과 직결된 느낌이 제대로다. 움직임이 짧고 명료하며 클러치도 적당히 묵직해 스포츠 주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가다 서다를 반복할 땐 조금 부담스럽지만 엔진 시동이 잘 꺼지거나 하는 문제는 없어 수동변속기를 오래간만에 다루는 이들도 금세 적응할 수 있다.
▲ 타이어는 브리지스톤 포텐자 S001. 205/45 R17 사이즈다
요즘 차답게 오르막에서 멈췄다가 출발할 때는 자동으로 3초쯤 브레이크를 잡아주니 뒤로 밀리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일부 수동변속기와는 달리 기어를 바꿀 때 회전수를 맞춰주는 건 운전자 몫이다(다행이다).
살짝만 비틀어도 차 앞머리가 코너 안쪽을 예리하게 파고들게 만드는 스티어링은 의외로 조작이 가볍다. 전동장치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 반대다. 보조력이 있는 듯 없는 듯 차의 거동에 따라 가벼워지고 무거워지면서 앞바퀴의 감각을 전하고, 운전자의 지시를 전달한다.
스포티한 차는 으레 스티어링 휠의 림이 두껍고 회전이 묵직하며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면 더 묵직해져야 할 것 같지만 MX-5는 그렇지 않다고 일깨워준다. 움직임은 작은 차체의 뒷바퀴굴림차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습 그대로다.
시내를 천천히 달릴 땐 하체가 단단한 듯하지만 부드럽고 말랑함이 남아 있어 코너에서 몰아붙이면 적당한 쏠림과 함께 자연스럽게 하중이 이동한다. 지면과 뒷바퀴 가까이 자리한 엉덩이를 통해 그 움직임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절로 미소짓게 된다.
선선할 때 지붕을 열고 굽잇길을 달린다면 금상첨화. 굳이 도로 제한속도를 넘어서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다. 기복 있는 노면에선 다소 들뜨거나 뒤쪽이 쉽게 흐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밀당을 하는 것 같다. 익숙해지면 가벼움이 주는 경쾌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과속? 칼질? 천천히 달려도 즐겁다
간혹 요철을 넘을 때 들리는 잡소리는 애교로 봐줄 만하다. 전반적으로 거칠거나 불쾌한 느낌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말하자면 달리는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도 상당히 대중적인 차다. 여기에 일본차의 장기인 신뢰성과 적당한 가격이 버무려져 많이 팔리는 스포츠카의 요건을 완비했다. 국내에서의 상황은 다를지라도 말이다.
마쯔다 MX-5
가격: 4,389만원
엔진: I4 1999cc, 157마력, 20.5kg·m
변속기: 6단 수동변속기, RWD
성능: 0→100km/h 7.3초, 214km/h
연비: 12.7km/L, -g/km
무게: 1057kg
시승차 협조: 터프컨트리 031-375-4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