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다시 한번, 쉐보레 말리부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꿀 반전 카드로 한국지엠이 부분변경 말리부를 꺼냈다. 성패를 따지기 전에 말리부가 등장한 진짜 의미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2018-12-03 08:55:01 글 김성환
2018년 한국지엠은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군산공장 폐쇄와 노사 갈등, 국내 경영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쉐보레 철수라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구매를 망설였고 오너들은
쉐보레에 대한 분노와 불안감을 드러냈다. 한국지엠은 빠르게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경영 정상화 방침 이후 첫 번째로 내놓은 부분변경 스파크는 경차 시장 침체기와 맞물려 빛을 내지 못했다. 야심 차게 등장한 중형 SUV 이쿼녹스는 비싼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0월에는 연구개발 분야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면서 논란이 커진 상황.
한국지엠은 분위기 반전 카드가 절실했고 부분변경 신형 말리부를 꺼내 들었다. 말리부는 스파크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쉐보레 간판스타이고 전체 라인업에서 중점 역할을 담당한다. 국내 중형 세단 시장이 커다란 기복 없이 수요가 꾸준한 점도 한국지엠이 말리부를 선택한 이유다.
주력 차종을 출시해 실적을 회복하고 내년 상반기 활기찬 출발을 하겠다는 한국지엠의 다짐은 이뤄질 수
있을까? 신형 말리부는 미국 쉐보레 기준 9세대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국내에는 2016년 4월 출시 이후 2년 7개월
만에 부분변경 모델로 돌아왔다. 보통 부분변경은 얼굴을 살짝 고치고 몇 가지 편의 장비를 추가하는 데
그치지만 말리부는 선택과 집중으로 완전변경에 가까운 이미지 변신을 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앞모습이다. 위아래로 나눈 듀얼
포트 그릴은 입을 한껏 벌려 크고 우람한 모습이다. 존재감을 키우고 차가 더 커 보이는 효과를 낸다. 쉐보레 엠블럼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길고 두꺼운 크롬도금 선이 지나간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램프까지 이어지는데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헤드램프는 전체 디자인이 얇아졌고 램프 속 구성까지
모두 바뀌었다.
다소 불안정해 보이던 ㄱ자 모양 주간주행등은 방향지시등과 함께 깔끔한 모습으로 앞범퍼에
옮겨 달았다. 새롭게 디자인한 사이드미러와 Y자 모양 LED 테일램프는 세련미가 넘친다. 뒤범퍼에 붙은 후방 반사등과 배기구는
날렵하고 입체적인 모양으로 다듬었다. 색상은 원래 있던 화이트와 실버,
블랙, 브라운 외에 은은한 문라이트 블루와 짙은 그레이를 더해 모두 7가지를 제공한다.
실내는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다. 부분변경 전 모델이 손댈
곳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서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바꿀 필요가 없다. 부분변경 모델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일부만 손을 댔는데 인포테인먼트 UI 구성을 깔끔하게 정리했고 터치감을 높였다. 옛날 차에서 볼 법한 엉성한 아날로그 계기판은 캐딜락에서 볼 수 있는 8인치
디지털 스크린으로 바꿨다.
시승차는 2.0L 터보 엔진으로 최고출력 253마력, 최대토크
36.0kg.m를 낸다. 변속기는 자동 6단이고
굴림방식은 앞바퀴굴림이다. 이전 모델과 비교해 출력 및 토크가 모두 같다. 가속은 기대 이상이다. 적당히 속도를 올리면서 아무런 감흥 없이
달릴 줄 알았는데 태코미터를 후련하게 꺾으며 제법 매콤하게 뻗어 나간다.
실용 구간에서는 언제든지 원하는
속도에 맞춰 경쾌한 운전을 즐길 수 있고 고속에서는 답답하지 않은 빠른 주행이 가능하다. 서스펜션도
마음에 든다.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도로 위 굴곡을 걸러내는 능력은 평균 이상이다. 자극 없이 담백한 반응과 부드러운 승차감에 탑승객 모두 고르게 만족할 만하다.
안전성은 나무랄 데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일정하게 도로를
움켜쥐고 달릴 뿐이다. 코너에서는 좀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단단한 섀시와 쉐보레가 공들여 만든 말리부에 최적화한 하체 세팅이 안정적인 자세 유지에 도움을 준다. 곳곳에 가득한 안전장비는 시각과 청각으로 운전자를 보호한다.
요즘 나온 쉐보레 신차들이 그렇듯 신형 말리부 역시 어깨가 무겁다.
말리부는 단순히 판매를 늘리는 역할에 그치면 안 된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으로
돌려놓고 회사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상황을 모를 리 없는 한국지엠은 신형 말리부 가격을 동결하거나
최대 100만원 낮추는 파격적인 전략을 택했다. 절치부심하며
준비한 한국지엠의 노력이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