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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 캐딜락 CT6 & 링컨 컨티넨탈
2017-04-03 08:37:20
글
김종우 기자
<탑기어>가 정말 어렵게 두대의 차를 모았다. 차고지까지 찾아가 직접 모셔온 주인공은 바로 캐딜락 CT6와 링컨 컨티넨탈. 이들은 한때 기세등등하게 럭셔리 세단 시장을 주름잡았던 미국의 대표 브랜드다.
근래 들어 캐딜락과 링컨은 유럽산, 특히 독일산 럭셔리 세단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찬란했던 시절을 직접 목도하지 못한 기자에게 두 차의 이미지는 빛 바랜 흑백사진 앨범을 보며, “그땐 그랬지”를 연발하는 백발 신사라고나 할까?
최근 몇 년 사이 무섭게 성장한 중국 시장을 등에 업고 캐딜락과 링컨은 또 한번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이 자리에 불러낸 CT6와 컨티넨탈은 두 브랜드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과거 만인이 소유하고 싶어했던 콧대 높은 드림카가 이젠 만인에게 꿈을 제시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아메리칸 럭셔리 세단이 보여줄 꿈은 어떤 모습일까?
럭셔리 세단이라고 하면 S-클래스나 7시리즈를 비교할 것이지 웬 미국 세단이냐고 툴툴거릴 어린 독자들을 위해 잠시 그들의 과거를 짚어보려고 한다. 캐딜락과 링컨은 미국의 대표적인 라이벌 메이커인 GM과 포드에 속해 있으며, 각각 럭셔리 부문을 담당한다. 견원지간일 것 같은 두 메이커는 놀랍게도 한 사람에 의해 설립됐다.
캐딜락은 1902년 미국의 헨리 릴랜드(Henry Leland)가 파산 직전의 디트로이트자동차를 인수해 캐딜락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 그 출발이다. 브랜드명은 1701년 미국 디트로이트시를 개척했던 프랑스 귀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캐딜락은 모델 A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모델 S로 자동차업계에 확실히 자리잡았다. 릴랜드가 1909년 GM에 캐딜락을 매각한 이후 지금에 이르렀다.
캐딜락 하면 1950~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엘도라도가 대표적인 모델로 꼽힌다. 전투기 꼬리 날개에서 영감을 얻은 테일핀 장식과 거대한 차체는 전후 호황기를 맞은 미국인들의 자신감을 대변하는 차였다.
그중 1959년형 엘도라도는 록큰롤 스타 앨비스 프레슬리 등 유명한 스타와 부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엘도라도에 이어 등장한 럭셔리 세단 드빌은 1970년대 석유파동 전까지 캐딜락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대표했던 모델이다.
포드 산하의 링컨 역시 1917년 릴랜드가 설립한 브랜드다. 1860년 그가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해 뽑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에서 따왔다고 한다. 1922년 2월 포드자동차에 매각되어 지금껏 이어지고 있으며, 주요모델은 제퍼, 컨티넨탈, 타운카, 내비게이터 등이 있다.
링컨은 2004년까지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로도 사용됐다.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퍼레이드 도중 암살됐을 때 타고 있던 차가 1961년형 링컨 컨티넨탈을 베이스로 만든 X-100이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미국 럭셔리 세단은 1970년 석유파동을 기점으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연비 나쁜 미국산 대형차들은 효율을 앞세운 일본 및 유럽차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소형차 개발과 연비 개선에 안일하게 대처했던 미국 메이커들은 결국 합병과 정부의 구제금융이라는 극약처방을 받는 등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구원의 손길을 뻗친 곳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머징’ 중국 시장이다. 크고 호화로운 대형세단과 SUV가 먹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캐딜락의 경우 중국의 젊은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LA 모터쇼에서 캐딜락의 CEO 요한 드 나이슨은 “중국에서는 차가 없어서 못팔 정도”고 말하기도 했다. 캐딜락은 상하이에 공장을 지어 현지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캐딜락에 비해 늦었지만 링컨도 청안자동차와 현지생산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캐딜락과 링컨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을 발판으로 삼아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판매량을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캐딜락 CT6는 지난해 7월 국내에 출시됐다. 2015년 봄 뉴욕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지 1년만이다. CT6는 새 CEO 부임 후 처음 나온 신차이고, 세단은 CT+숫자, 크로스오버카는 XT+숫자의 새로운 명명법을 따른 첫번째 모델이다(에스컬레이드 제외). CT6는 F세그먼트에 속하는 대형세단으로 뒷바퀴굴림과 상시네바퀴굴림방식이 있다.
링컨 컨티넨탈은 2015년 뉴욕 모터쇼에서 콘셉트카로 첫선을 보였고 2016년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양산차가 공개됐다. 컨티넨탈은 1939년 데뷔 후 2002년까지 9세대가 나왔다.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가 2016년 컴백했다. 새로운 모델 창조와 잊혀진 명작의 부활. 두 차는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쳤지만 성격은 극명하게 갈린다.
CT6는 아랫급인 CTS보다 날카로움이 덜하고, 보수적인 라인 속에서도 역동적인 프론트 그릴과 헤드램프, 짧은 프론트 오버행 등 스포티함을 챙긴 모습이다. 젊은층을 위한 노림수인 것 같다. 대형세단인 만큼 몸집은 우람하다. 길이 5.2m, 휠베이스는 3.1m에 육박하며 테일핀을 연상시키는 주간주행등이 차를 더욱 넓어 보이게 만든다.
컨티넨탈은 전형적인 미국식 디자인이다. 차체는 CT6보다 조금 작다. 길이는 5.1m에 휠베이스는 2.9m 정도. 독수리 날개에서 모티프를 딴 스플릿윙 그릴 대신 메시 형태의 프론트 그릴이 새롭게 적용됐다. 이곳저곳에 사용된 크롬 소재도 보수적인 이미지를 거든다.
프론트 그릴은 물론이고 앞범퍼 아래쪽, 로커패널, 그린하우스 둘레에 크롬을 더했다. 뒤쪽으로 가면 리어램프 및 차폭등 주변에 크롬 장식을 썼다. 하이라이트는 벨트라인이다. 컨티넨탈은 특이하게 도어 캐치가 벨트라인과 일치하는데, 도어 캐치를 숨겨 깔끔한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두 차를 나린히 세워 비교해보면 컨티넨탈이 좀더 커 보이고 디자인도 중후해 보인다. 시승에 동행한 동료 기자는 운전석에 앉은 기자를 보고 “할아버지 차를 끌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유럽산 플래그십 모델은 으레 최고급 가죽에 항공기 퍼스트 클래스에 영감을 얻은 안락하고 편안한 디자인 주절주절…이라고 실내공간을 소개한다. 이런 잣대를 가지고 미국 럭셔리카의 도어를 열면 약간, 아니 많이 실망할 것이다. 지난해 CT6 시승행사에서 뒷자리에 앉아보고 조금 어이없었다. 최고급 트림이라지만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컨티넨탈 역시 철저하게 운전자 중심의 차다. 일단 앞좌석만 봐도 그렇다. 여러 장의 꽃잎을 붙여놓은 것 같은 버켓시트는 스코틀랜드의 어디랑 같이 작업했다고 하는데, 착좌감이 여지껏 앉아본 차 중 첫손가락 꼽을 정도로 훌륭하다. 마사지 기능도 수준급이다.
여기에 링컨에만 들어가는 레벌 울티마 오디오 시스템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잠이 솔솔, 하루의 피로가 날아갈 정도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최신이다. 애플 카플레이는 물론이고 포드의 최신 SYNC3를 탑재했다. 이 장비를 활용하려면 정확한 영어 독해력과 유창한 발음이 필요하다. 뭐, 다들 이 정도는 하잖아요? 실내 구성도 미국차 중에서 가장 고급스럽다고 할 수 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뒷좌석에 안마기능을 넣고, 암레스트엔 공조시스템과 오디오 조절 스위치, 앙증맞은 디스플레이 패널도 들어가 있다.
CT6 시승차는 아쉽게도 최고급 트림이 아니다. 앞좌석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2열에서 차이가 난다. 최고급 트림에는 좌석에서 솟아오르는 멀티미디어 디스플레이도 있고 리모컨도 있고 무선 헤드폰도 있다. 또 컨티넨탈처럼 뒷좌석 안마 기능도 포함된다. 오디오는 급이 낮은 보스 시스템이 장착됐다. 베이스를 위주로 튜닝됐는지 트와이스 노래가 훨씬 잘 맞았다. ‘샤샤샤~’
2열이 휑해서 그런지 인테리어 감성이 컨티넨탈보다 부족해 보인다. 가죽 질감도 좀 뻣뻣하고 글러브박스 위 유광 패널은 과하게 번쩍거리고 엔진 스타터 버튼 부분도 여백의 미가 지나치다. 현대차 그랜저가 이 부분을 공유했나? 컨티넨탈에 비해 고급성이 떨어지는데, 이는 젊은 감각을 담아내려고 직선과 모서리를 살린 디자인 때문인 듯하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최신모델이기에 주행안전장비는 풍부하다. 컨티넨탈에는 사각지대경보 시스템, 앞차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크루즈 컨트롤, 전방충돌경보 및 제동 시스템, 차로이탈방지 시스템 등이 포함된다. CT6(플래티넘 트림)에는 컨티넨탈에 포함된 주행 관련장비가 대부분 포함돼 있으며, 나이트비전과 리어 카메라 미러가 눈에 띈다.
CT6는 GM의 새로운 뒷바퀴굴림 기반의 오메가 플랫폼을 사용한 첫번째 모델이다. 알루미늄 사용을 늘리고 새로운 용접기술로 플랫폼을 제작해 동급 F세그먼트 세단에 비해 최대 100kg 정도 가볍다. 파워트레인은 V6 3.6L 엔진에 8단 자동변속기를 물렸다.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는 39.4kg·m이다.
컨티넨탈은 포드의 앞바퀴굴림 기반 CD4 플랫폼을 사용한다. 2013년부터 사용된 포드의 중형세단 및 크로스오버 통합 플랫폼이다. 컨티넨탈의 크기에 맞게 앞뒤에 경량 레일을 보강하고 캐빈룸 강성을 높이는 등의 작업을 거쳤다. 파워트레인 V6 3.0L 트윈터보와 6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최고출력 393마력에 최대토크 55.3kg·m를 낸다. 두 차 모두 주행 상황에 따라 댐핑 강도가 조절되는 서스펜션을 사용한다.
먼저 컨티넨탈의 키를 쥐고 엔진 스타터 버튼을 눌렀다. 컨티넨탈의 첫느낌은 초기 거동이 굉장히 점잖다는 것이다. 가속반응도 부드럽고 서스펜션이 상당히 말랑해 과장하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은 조금 가벼운데, 부드러운 승차감과 잘 어울린다. 아버지가 좋아하실 만한 승차감과 운전 감각이다.
도심을 벗어난 고속화국도로 접어들어 어색한 기어 버튼을 S(스포츠) 모드로 바꿔 가속 페달을 괴롭혔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만족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트윈터보 엔진의 넘치는 힘을 변속기가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게 변속기도 6단밖에 안되고.
가속 페달을 꾹 밟고 속도를 높이면 그르륵거리는 불쾌한 소리를 내며 기어가 올라간다. 변속 타이밍은 굼뜬 편이다. S모드답게 가속반응은 민감한데, 초반에만 움찔움찔거린다. 어중간하게 단단해진 서스펜션은 2.1톤이 넘는 거구를 힘겹게 컨트롤한다. 안되겠다 싶어 기어 버튼을 D로 되돌리니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롭고 점잖은 주행이 이어진다. 이 차의 주소비층이 기자처럼 매몰차게 운전할 일이 없을테니 큰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컨티넨탈에 비하면 CT6는 굉장히 단단하다. 스티어링 휠도 묵직해 저속에서는 꽤 힘이 들어간다. 자연흡기 엔진답게 rpm 상승에 따른 출력도 고른 편이다. 다만 덩치와 무게에 비해 토크가 낮고, 최대토크도 5,000rpm 이상 되어야 터지기 때문에 초기 거동이 조금 느리다. 컨티넨탈과 달리 어느 속도에서건 꾸준한 달리기 실력을 보여줬다. 독일차를 많이 벤치마킹한 듯하고, 꽤 거구임에도 차로 변경과 고속 코너링도 허둥거림 없이 잘 쫓아온다.
새로운 전성기를 노리는 두 브랜드가 지향하는 목표는 같지만 이를 위해 전진하는 방법은 많이 다르다. 캐딜락은 미국차의 특징을 고집하지 않고 대서양 건너 잘 나가는 그들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유럽산 향수를 잔뜩 뿌렸다고 할까? 알파벳과 숫자 조합의 모델명부터 고성능 V모델 도입 등 라인업의 세분화, 단단하고 직관적인 주행감각 등이 그 증거다.
반대로 링컨(이름도 너무나 미국스럽다) 컨티넨탈은 미국 자동차의 특징인 편안하고 안락한 주행감각과 웅장하고 존재감 넘치는 럭셔리카를 지향하는 모습이다.
캐딜락과 링컨이 새롭게 제시하는 꿈을 소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로 인해 두 브랜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아메리칸 럭셔리의 부활을 위한 그들의 노력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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