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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 수 없는 미래, 쉐보레 볼트 EV
2017-06-02 14:40:09
글
김준혁 기자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기차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내연기관 자동차 같은 기계적인 맛이 적고(전기차도 기계지만 뭐랄까 전자제품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무엇보다 감성이 없어서다. 이 무슨 궤변이냐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전기차에 관심이 없었던 진짜 이유는 인프라 부족 탓이다. 현재까지 나온 전기차는 대부분 1회 충전 주행거리가 턱없이 짧아 현실성이 없다. 솔직히 주행거리만 길면 충전소가 부족해도 전기차를 타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볼트 EV를 타보고 나서다. 차의 제원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인증받은 1회 충전 주행거리가 무려 383km. 100km대인 기존의 전기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차체 바닥에 넓게 깔린 60kWh에 달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역할이 크다. 실제로 이 정도 거리를 달려내는지는 시승 시간이 짧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약 50km 거리를 고속주행 했는데도 절반쯤이던 배터리의 전기량이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보통 체격의 남자 두명이 타고, 120~130km/h를 넘나든 결과치고는 꽤 인상적인 수치다. 제원표를 그대로 해석하면 하루 출퇴근 거리가 50km 안팎일 경우, 한번 충전으로 일주일 동안 마음놓고 탈 수 있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마음이 혹했다.
충전시설이 부족해도 볼트 EV를 출퇴근 또는 근거리 주행용으로만 사용한다면 스트레스 없이 탈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지방을 가도 고속도로 휴게소에 마련된 충전시설을 요령껏 이용하면 충분히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볼트 EV의 80% 급속충전(80kW)은 1시간, 100% 완속충전(7.2kW)에는 9시간 45분이 걸린다.
볼트 EV에 혹한 또 다른 이유는 전기차답지 않은 주행감 때문이다. 그동안 타봤던 전기차들은 어딘가 모르게 가벼웠다. 좋게 말해 경쾌한 주행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무 소리 없이 빠르게 달리는 차에 무게감이 없다는 게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볼트 EV는 묵직하다. 가장 큰 이유는 앞에서 적었듯이 차체 바닥에 깔린 배터리로 인한 낮은 무게중심과 무거운 차체 때문이다. 길이 4.2m가 안되는 작은 체구에 1,620kg이니 무겁긴 하다. 그런데 가속하는 순간만큼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지엠이 비공식적으로 밝힌 볼트 EV의 0→100km/h 가속성능은 7초대. 체감속도는 이보다 빠르다. 가속페달을 밟는 즉시 36.7kg·m의 토크를 만들어내는 전기모터 덕분이다. 그대로 페달을 쭉 밟고 있으면 100km/h를 넘기는 건 일도 아니다.
묵직한 맛은 코너에서도 여전하다. 스티어링 휠을 잡아 돌려도 네바퀴가 접지력을 유지하며 안정감 있게 돌아나간다. 앞타이어와 따로 노는 이질적인 스티어링만 아니었다면 운전이 재미있었을텐데, 그 수준까진 미치지 못한다.
대신 다른 곳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배터리 효율성을 높이는 두가지 장비에서다. 첫번째는 ‘리젠 온 디맨드’(Regen on Demand)라는 스티어링 휠 좌측 스포크 뒤에 달린 버튼이다. 이것은 손가락으로 누르는 브레이크 페달로, 버튼을 누르면 약하게 제동이 걸리며 에너지를 회수한다. 다른 전기차들과 마찬가지로 볼트 EV도 제동 때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회수해 배터리에 저장한다.
가속페달로 가속과 감속을 할 수 있는 ‘원 페달 드라이빙’도 비슷한 매락이다. 쉐보레 최초로 적용된 전자식 정밀기어 시프트를 L레인지에 맞추면 원 페달 드라이빙이 시작된다. 가속을 하다가 페달에서 발을 떼면 엔진 브레이크처럼 약하게 제동이 걸린다(브레이크등에 불도 들어온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바쁘게 오갈 필요 없어 스트레스가 덜하고 독특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시가지뿐만 아니라 고속화도로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디자인만 보더라도 볼트 EV는 경쟁력이 충분해 보인다. 무엇보다 실내가 마음에 든다. 꼭 집어 말하면 계기판과 터치스크린의 인터페이스다. 볼트 EV의 인터페이스는 파스텔톤을 기반으로 화려한 그래픽과 선명한 폰트를 제공해 주행관련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배터리가 바닥에 깔린 구조 때문에 시트 포지션이 껑충한 편이지만, 앞뒤 공간은 넉넉하다. 크고 작은 수납공간도 곳곳에 마련돼 있고, 약 480L(미국 기준) 용량의 트렁크는 바닥이 깊어 실용성이 높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보디 비율이나 실루엣에서 BMW i3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실물은 전혀 다르다. 다른 전기차들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꽉 막힌 휠을 써서 답답해 보이지만 볼트 EV는 스포크형 휠 덕분에 일반적인 B세그먼트 크로스오버카 같다. 뒤에서 보면 테일램프가 높게 달려 소형 SUV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기차 구입의 마지막 걸림돌은 가격일 것이다. 볼트 EV의 값은 기본형 4,779만원, 차로이탈 경고시스템과 전방추돌 경고시스템 등의 세이프티 패키지가 포함된 모델은 4,884만원이다. 이것은 원래 가격이고, 1,400만원 정도의 국고 보조금과 최대 1,200만원에 이르는 지자체 보조금을 더하면 2,000만원대 초반에 손에 넣을 수 있다. 주행거리 383km에 가격도 준중형 세단 정도니, 정말 현실적인 전기차 아닌가? 시승을 끝낸 기자의 생각은 분명 이랬다.
하지만 지금은 볼트 EV를 살 수 없다. 한국지엠이 들여온 600대가 2시간만에 완판됐고, 현재로선 추가로 들여올 계획이 없다. 이런 걸 두고 좋다 말았다고 하던가? 혹시라도 이 현실적인 전기차에 관심이 있다면 카셰어링을 통해 성큼 다가온 미래를 간접체험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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