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만든 유러피언 세단, SM6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2016-04-25 17:34:15 글 이지수 기자
르노삼성 SM6가 탄생하기까지 약 6년이 걸렸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진행된 SM6의 탄생 비화가 궁금하다. ‘탑기어’가 르노삼성자동차 기흥연구소에서상품기획담당 우형표 부장을 만났다
SM6 출시를 맞아 ‘탑기어’가 르노삼성자동차 기흥연구소를 찾았다. 르노삼성이 발표한 것처럼 SM6가 한국 기술팀이 주도적으로 개발한 국산차인지 르노 탈리스만을 가져와 약간만 수정해 부산에서 찍어내는 조립모델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SM6의 상품기획을 담당한 르노삼성자동차 우형표 부장이 궁금증 해결사로 나섰다.
르노삼성자동차 우형표 부장
“중형차시장이 점점 축소되는 것을 보고 이탈고객이 어디로 가는지 조사해봤더니 중대형차와 비교적 싼 수입차로 옮겨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연비와 성능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중형차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 탓이 아닐까요?”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식을 줄 모르는 SUV의 붐도 여기에 한몫을 했다. 게다가 국내 메이커 입장에서는 해외(북미) 시장 수출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에 내수 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다.
그는 “지금까지 국내 소비자를 위한 진정한 국산 중형차는 없었다”며 “SM6는 순수 국산차보다 더 세심하게 소비자의 마음을 헤아려 만든 차”라고 강조했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새차 개발은 크게 차의 콘셉트를 정하는 단계, 디자인, 설계, 연구마무리 단계, 제품화 단계로 나뉜다. 르노삼성의 경우 이번 SM6를 개발하면서 전 과정을 프랑스 르노와 함께했다. 새로 개발된 모듈 방식의 CMF 플랫폼을 바탕으로 탈리스만과 SM6 개발이 동시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SM6가 새 중형차를 기다려온 국내 고객뿐 아니라 르노삼성 임직원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하는 이유다.
“2009년쯤 차의 콘셉트가 결정되고, 이듬해 가족을 데리고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팀과 함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2010년 출국했지만 2009년에 먼저 프랑스로 넘어간 직원도 많았죠. 대규모 인원이 현지에서 협업을 했습니다. 워낙 많은 인원이 프랑스에 있다 보니 이를 관리할 인사조직이 파견 나갈 정도였지요”
SM6는 현재 르노삼성 부산 공장에서 생산 중이다
이렇듯 초기 개발은 프랑스에서 주로 진행했고, 차의 윤곽이 잡힌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각종 도면을 바탕으로 설계작업을 이어갔다.
“디자인 도면작업 등 많은 부분을 기흥연구소에서 진행했습니다. 다른 파트도 기초적인 설계는 프랑스에서 주로 했지만 세부 작업은 르노 본사 직원들이 한국에 와서 함께 마무리했고요. 르노삼성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6~7년을 서로 왔다갔다 하며 심혈을 기울인 끝에 SM6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지요.”
SM6의 헤드램프 주변과 보닛의 굴곡진 캐릭터 라인 등에서 콘셉트카 DeZir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르노삼성이 이번 신차 개발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잘 흘리지 않은 탓에 ‘SM6는 전적으로 르노 본사에서 개발한 차’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글로벌 시대지만 본적지를 따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에 홍보나 마케팅에서 이런 부분을 강조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콘셉트를 정하는 일부터 르노삼성이 함께 했다고 하니, 벤치마킹 모델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SM6의 시장 위치(포지셔닝)는 폭스바겐 파사트, 오펠 인시그니아, 푸조 508 정도를 기준으로 잡았고, 성능을 정할 때는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까지 폭넓게 검토했습니다.”디자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채택했을까? 르노 디자인센터는 공개적인 경합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는데 차종, 외관, 인테리어 등 방향이 구체화되면 세계 각지의 R&D센터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디자인 시안을 공모, 그중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는 식이다. 르노닛산그룹의 글로벌 전략모델로 시작된 SM6(탈리스만)는 외관의 경우 한국, 일본, 프랑스 디자이너의 안이, 실내는 한국과 프랑스 디자이너의 시안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그 가운데 누구의 것이 양산모델로 확정됐는지에 대해서 우 부장은 “오픈할 권한이 없다”며 노코멘트 했지만 “골라놓고 보니 아시아계가 인정받은 결과가 됐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결정된 최종안을 제품 디자인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은 르노삼성의 성주완 총괄 디자이너가 지휘했다.
디자인이 결정되면 3차원 설계 소프트웨어를 통해 제품화를 진행한다. 르노는 빠른 신차 개발을 위해 2011년부터 디지털 모형설계를 도입했다. 디지털 모형은 5,500만개의 도형으로 표현되어 실물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밀하다. 실물모형 제작은 약 10주가 걸리지만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면 1~2주만에 완성되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비용도 실물모형은 30만유로(4억500만원)인데 비해 디지털 모형은 1만유로(1,350만원)밖에 안든다. 설계단계에서 3D 소프트웨어 외에 고성능 컴퓨터(워크스테이션) 6,000여대와 수퍼컴퓨터 12대, 가상 시뮬레이션 등의 첨단장비가 동원된다. 특히 가상 주행테스트를 지원하는 시뮬레이션 작업을 통해 실제 주행 중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미리 보완할 수 있다. 1L의 가솔린으로 100km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르노 이오랩도 이런 디지털 기술로 완성된 차다.
혼류생산을 하고 있는 르노삼성 부산공장 하나의 라인에서 SM6를 비롯, 총 여섯 가지의 차를 생산 중이다
출시 이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던 서스펜션에 대한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국내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중형차라면 당연히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차의 성능과 승차감은 섀시가 얼마나 단단하느냐, 튜닝을 어떻게 하느냐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돼요. 그런데도 덮어놓고 토션빔 기반의 AM링크가 좋지 않다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하지요. 좁은 코너가 많은 유럽과 넓은 도로와 좁은 도로가 혼재해 있는 국내 사정을 두루 만족시키고자 멀티링크와 토션빔의 장점을 모은 AM링크를 채택한 것인데요.”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액티브 댐핑 컨트롤
토션빔 기반의 AM링크는 멀티링크에 비해 내구성이 좋다. 이는 험하게 운전하는 유럽 드라이버들을 선발해 많은 시간 테스트를 한 다음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엔진도 마찬가지다.
“1.6L 가솔린 터보는 르노와 르노삼성 모두 사용하지만, 2.0L GDE 엔진은 순전히 국내용이에요. 배기량을 중요시하는 국내 상황을 고려한 조치인데 결과적으로 그룹이 보유한 엔진 가운데 가장 최신 버전을 SM6에만 올리게 됐습니다”
1.6L 터보의 경우 탈리스만은 최고출력이 200마력인데 비해 SM6는 10마력 낮은 190마력을 낸다. 유럽형은 옥탄가가 높은 고급휘발유 기준으로 세팅했고, SM6는 유지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반유에 맞췄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나 서스펜션 세팅에도 차이를 뒀다. 유럽 사람들은 탄탄한 서스펜션과 팍팍 잘 세우는 브레이크를 선호하는 반면 우리나라 드라이버들은 부드럽고 조용한 느낌을 좋아해서다.
고급스러움에 대한 기준도 다르다. 예를 들어 국내 소비자들은 반짝이는 하이글로시 소재를 고급스럽다고 여기지만 유럽인들은 광택이 적은 재질을 선호한다. SM6의 경우 나무장식의 색상과 무늬까지도 국내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해 만들었다. 3D 티맵 내비게이션 및 스마트폰 테더링을 통해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고, 사계절 내내 쾌적한 실내를 유지해주는 습도조절식 에어컨 공조시스템도 채용했다. 룸미러에 넣은 하이패스 기능 역시 국내 소비자를 위한 배려다.
SM6가 나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존 중형차와 준대형차 사이에 있는 애매한 포지셔닝을 납득할 수 없었다. ‘어차피 많이 못팔 터이니 이익이라도 많이 남기려는 꼼수’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설명을 듣다보니 제대로 된 중형 프리미엄 세단을 원했던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릎을 탁 칠만한 해법이 담긴 차가 SM6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형표 부장을 비롯한 르노삼성 구성원의 바람대로 SM6가 큰 사랑을 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