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FUTURE
2016-04-19 20:58:45 글 편집부
과거에서 현재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와야 할 차들이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우리는 그 차들을 원한다. 그들이 돌아온다면 대한민국 자동차시장은 아마도 몇 배로 재미있고 풍성해질 것이다.
자동차는 수명을 다하면 사라진다. 물리적 수명뿐만 아니라 모델 수명을 다해도 역사 속으로 물러난다. 아무리 화려한 명성을 떨쳤고, 자동차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어도 남는 것은 이름뿐이다. 그들의 업적은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당시에 발휘한 능력을 현재에도 보여줄 수만 있다면, 아마도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은 몇 배로 발전하고, 자동차시장은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이제 그들을 불러올 때가 됐다. '탑기어'가 그들을 불러오기 위해 타임머신을 보냈다. 기대해도 좋다. 믿거나 말거나….
이유: 둥글둥글하고 말랑말랑한 SUV는 가라! / 환호할 사람들: 오프로드 마니아. 카이런과 로디우스와 액티언에 눈을 버린 사람들
1993년 나온 쌍용 무쏘는 투박하고 각진 SUV 시대에 종말을 고했다. ‘직선의 부드러움’이라는 난해한 명제를 실현한 차로 각진 박스형이면서 부드러움을 발산하는 모순적인 디자인을 절묘하게 구현했다. 디자인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1994년 버밍엄 모터쇼에서 ‘오토 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돌고래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차체는 당시에 공기저항계수가 승용차 수준인 0.36에 불과했다. 게다가 엔진은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직접 가져온 2.9L 디젤을 얹었다. 무쏘는 코뿔소의 순우리말 ‘무소’에서 나온 이름이다. 스타일과 콘셉트는 이국적이지만 정체성은 한국적인 차였다고 할 수 있다.
이유: 한국형 골프가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 환호할 사람들: 지금 프라이드는 오리지널 프라이드의 진정한 계승자가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
프라이드는 1987년 자동차공업합리화조치가 해제된 이후 기아가 내놓은 승용차다. 세단이 득세하던 국내 자동차시장에 해치백 열풍을 일으키며 소형차의 강자로 우뚝 섰다. 게다가 프라이드는 국산 첫 월드카였다. 전세계를 누비는 글로벌 모델을 목표로 미국, 일본, 한국 세나라의 합작품으로 태어났다. 코엑스에서 열린 신차발표회 때는 3일 동안 20만명이 다녀갔다. 프라이드는 탁월한 연비와 내구성을 인정받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저렴한 가격으로 마이카 시대를 연 것도 프라이드였다. 또한 3/5도어 해치백, 4도어 세단, 지붕이 열리는 캔버스톱 등 다양한 형태로 나와 소형차 선택의 폭을 넓혔다. 마치 독일의 어떤 차와 꼭 닮지 않았는가? 사실 지금 프라이드는 오리지널 프라이드의 명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아 엘란의 베이스모델인 로터스 엘란
이유: 정통 스포츠카는 언제나 필요하다. 컨버터블도 / 환호할 사람들: 현재 엘란 오너들. 국산 스포츠카의 등장을 간절히 빌고 있는 사람들
비록 기아가 로터스로부터 판권을 사들여 만들었지만, 엘란은 어엿한 국산 스포츠카다. 게다가 국산차 역사에서 희귀한, 지붕 열리는 컨버터블이다. 기아 엘란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경량 로드스터 중 하나였다. 백본 프레임 위에 강화플라스틱 외판을 얹어 차체를 구성했고 1.8L 엔진을 실었다. 국산화율은 85%. 1999년까지 1,055대를 생산했다. 스포츠카다운 매끈하고 날렵한 스타일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50 대 50의 완벽한 무게 배분을 자랑했고 차체 특유의 퍼포먼스도 탁월했다. 정통 스포츠카와 컨버터블은 지금도 여전히 국산차의 취약 분야다. 그만큼 엘란은 시대를 앞서가는 차였다. 가격은 2,000만원대였지만 실제 제작비는 4,000만원이 넘었기 때문에 팔면 팔수록 손해였다. 수익을 따지기 보다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시도를 우선하는 기아의 도전정신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차가 바로 엘란이다. 그 도전하는 모습을 지금 이 순간에도 보고 싶다.
이유: 언제까지 인원수송용 밴으로 현대 스타렉스만 타야 하는가? / 환호할 사람들: 대한민국의 수많은 유치원과 학원, 태권도장, 종교단체 등
봉고는 ‘신화’다. 망하기 일보직전에 기아자동차는 봉고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게다가 국내 승합차 역사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얻었다. 지금도 승합차를 지칭해 ‘봉고차’라고 부른다. 1980년 선보인 봉고는 1톤 트럭을 12인승으로 개조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승합차 개념을 도입한 차다. 국내 최초 원박스형 승합차다. 자영업자를 위한 상용차는 물론 기업체의 업무용 차, 학원이나 기관의 운송용 차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불어닥친 레저 열풍도 봉고의 인기에 한몫했다. 봉고는 단종될 때까지 60만대가 넘게 팔렸다. 만약에 기아가 새로운 승합차를 내놓는다면 이름은 무조건 ‘봉고’여야 한다.
이유: 오토바이 역할을 하는 트럭이 필요하다 / 환호할 사람들: 전국의 자영업자들, 그리고 배달 청년들
기아 K-360은 1962년 나온 국산 최초의 화물자동차다. 일본 동양공업과 손잡고 만든 K-360은 바퀴가 세 개 달린 경상용차였다.
K-360은 공냉식 2기통 11마력 356cc 엔진을 얹었다. 속도는 65km/h까지 낼 수 있었고, 짐 300kg을 실을 수 있었다. K-360은 바퀴가 세 개여서 삼륜차 또는 삼발이, 힘이 부족해서 달릴 때 독특한 소리가 났기 때문에 ‘딸딸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기름을 적게 먹었기 때문에 연비 좋은 경제적인 차로 인식되었다. K-360은 자동차지만 실상은 오토바이와 다름없는 차다. 다만 짐 공간이 더 크고 바퀴가 하나 더 많아 안전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K-360이 환생한다면 배달업계에 안전혁명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물론 시티100과 가격이 비슷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른다.
이유: 실험정신 가득한 국산 쿠페의 맥이 티뷰론 이후로 끊겼다 / 환호할 사람들: 주머니가 가벼운 길레이서들
이름과 디자인이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차가 있을까? 현대차가 내놓은 티뷰론은 상어를 뜻하는 이름처럼 디자인도 상어처럼 생겼다. 세단의 쿠페 모델이 아닌, 독자적인 쿠페 모델로 스포츠카에 굶주린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스포티함’을 맛보게 해줬다. 티뷰론도 성능으로 따지면 ‘스포츠 루킹 카’였지만, 탈 때의 기분만큼은 스포츠카를 탈 때와 다르지 않았다. 전편만 한 속편은 없다고,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티뷰론 터뷸런스는 이해할 수 없는 기형적 디자인으로 오리지널 티뷰론의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망쳐놨다. 이후로 나온 투스카니 역시 밋밋한 디자인으로 감흥을 주지 못했다. 국산 쿠페는 비인기 차종이다. 현대차 제네시스 쿠페가 유일하고, 세단을 변형한 쿠페도 K3 쿠페밖에 없다. 쿠페의 비인기를 논하기 전에, 적절하고 저렴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을 갖춘 쿠페는 왜 나오지 않는지 따져봐야 한다. 티뷰론을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유: 과잉의 미학을 실현한 한국형 프레스티지카 / 환호할 사람들: 과시욕 강한 CEO와 국회의원들
대우자동차는 한때 대형 세단의 강자였다. 로얄시리즈를 대적할 국산차는 없었다. 로얄시리즈의 끝판왕은 임페리얼이다. 주렁주렁 치장한 크롬, 백테 타이어, 캐딜락을 연상시키는 수직형 C필러(후기형은 가죽으로 감쌌다), I6 3.0L 엔진, ABS 브레이크(국내 최초), 헤드램프용 와이퍼, 항공기 타입 센터페시아, 디지털 계기반, 크루즈 컨트롤, 자동온도 조절장치, 뒷좌석 파워시트, 카폰 박스, 송아지 가죽 시트 등 정말 없는 것이 없었다. 크고 복잡하고 화려한 것 좋아하는 국내 대형차 소비자의 취향을 200%는 만족시킬 수 있는 면모를 갖췄다. 무엇보다 권위적이면서 화려한(‘현란한’이 더 어울린다) 스타일이 압권이다. 요즘 국산 고급 대형 세단은 성능도 좋고 편의장비도 많지만, 단정하고 말쑥하기 그지없다. 대형차다운 풍채와 권위적인 중후함이 미약하다. 임페리얼은 성능, 디자인, 편의장비 등 모든 분야에서 많을수록, 넘칠수록 좋다는 ‘과잉의 미학’을 실현했다. 프리미엄 자동차 위에 있는 차를 프레스티지카라 부른다(롤스로이스나 벤틀리 등). 임페리얼은 한국형 프레스티지카라고 할 수 있는 차다.
이유: 파격, 파격, 파격… / 환호할 사람들: 10년 후에 나올 차를 미리 타보고 싶은 사람
국산차 역사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차는 대우 에스페로다. 당시 국산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요소를 골고루 담고 있어서, 국산차가 아니라 수입차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릴이 없어 보이는 전면부, 쐐기형 차체, 유리로 감싼 C-필러 등 미래적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마치 10년 후에 나올 차를 미리 본 듯한 충격을 안겼다. 에스페로는 르망과 로얄의 사이를 메우는 모델로, 당시 돌풍을 일으키던 현대차 쏘나타의 대항마로 나왔다 하지만 디자인이 너무 앞섰는지 호감이 판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장의 성공과는 별개로 디자인에 있어서 파격적인 시도는 국산차 디자인의 수준을 몇 년이나 앞당겼다. 진정한 파격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차다.
이유: 레트로 모델 1순위. 이유가 필요 없다 / 환호할 사람들: ‘포니’를 알고 있는 누구나
현대 포니는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이다. 1974년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1975년 12월 생산 첫해에 50대를 만들었고, 이듬해 1만726대, 1977년 2만5,000대, 1978년 5만대 등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대한민국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지난 포니는 이제 대한민국 클래식카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에는 과거 모델을 재해석한 복고 모델이 없다. 자동차 생산 역사가 짧고 그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차가 드물기 때문이다. 포니는 복고 모델로 재탄생할 자격이 충분하다. 국산차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차가 나와야 한다. 복고 모델도 이제 나올 때가 됐다. 당연히 1호는 포니다.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의 전환기를 열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