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세단의 VIP 시트는 어떻게 다를까
2016-04-29 09:58:10 글 제이슨 홍
자동차 부품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 엔진 혹은 변속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이때부턴 의견이 제각각일텐데, 정답은 시트다. 엔진, 변속기에 이어 세번째로 몸값이 비싼 만큼 시트는 자동차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품이다. 이해가 잘 안 간다고? 차 안에서 신체를 가장 많이 접촉하는 부분이 어딘지 생각해보자. 단연코 시트다. 더불어 탑승자의 안전에도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 실내를 보면 시트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몸과 접촉하고 있다는 것은 곧 사람과 자동차가 소통하는 통로라는 뜻. 운전자는 시트 외에 손, 발에 스티어링 휠과 페달을 맞대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움직임의 70%는 시트를 통해 엉덩이와 등으로 전달된다. 동승자의 경우 시트에만 몸을 의지한다. 자동차를 느끼는데 이처럼 커다란 역할을 하기에 차의 성격은 시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F1 경주차는 쿠션이 전혀 없는 드라이버 맞춤형 시트를 쓴다. 서킷 위의 모래알까지 손금 보듯 정확하게 읽으면서도 강한 횡G로부터 몸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경주용차라 하더라도 일반도로를 달리는 랠리카는 쿠션이 어느 정도 있다. 아무리 강철 체력의 드라이버라고 하더라도 쿠션 없는 시트에 온몸을 고정한 채로 점프를 몇 번 하고 나면 허리가 부서질 것이다.
하루 종일 시트에 앉아서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트럭 운전사는 별도의 서스펜션이 달린 시트에 앉는다.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진동으로부터 운전자를 최대한 편안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먼 거리를 집중력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
그렇다면 VIP를 위한 시트는 어떨까? 우선 VIP가 직접 운전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VIP의 자리는 뒷자리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편안함이다. VIP의 품격에 맞는 고급 소재와 화려한 디자인도 필요하다.
자 오늘의 주제는 바로 VIP를 위한 최고급 세단의 시트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브랜드의 플래그십 대형세단 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는 2015년 판매량이 1만대에 육박한다. 더 비싼 마이바흐도 900대가 넘게 팔렸다. 이에 질세라 BMW는 신형 7시리즈를 출시했고, 제네시스 브랜드의 플래그십으로 거듭난 EQ900은 지난 1~3월까지 8,200여대 정도가 판매됐다. 그러면 왜 VIP들을 위한 최고급 세단을 앞다퉈 출시하는지 시트를 통해 매력을 짚어보자.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대형 세단인 롤스로이스 팬텀. 메르세데스-벤츠의 서브 브랜드로 들어간 라이벌 마이바흐에 뒤질 리 없다. 기본형 팬텀의 길이는 무려 5.8m다. 6.1m의 EWB(Extended Wheel Base) 모델도 준비돼 있다. 뒷자리에 들어서면 호화로움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 세상을 내려보듯 높게 자리한 뒷좌석에 앉으면 손과 발이 닿는 모든 곳이 천연 목재와 가죽, 금속이다.
롤스의 뒷좌석은 VIP시트의 정석이다
바닥은 푹신한 양털이고, 시트는 흠 없이 매끈한 황소가죽으로 덮여 있다. 탁 트인 목초지에서 자란 건강한 소의 가죽을 롤스로이스가 직접 선별한다. 천연 베니어판으로 된 테이블 안에는 모니터가 숨어 있다. 하만의 로직7 서라운드 시스템과 함께 움직이는 영화관으로 변신한다.
센터콘솔에는 우아한 크롬 컨트롤러가 있어 손가락만으로 모든 기능을 즐길 수 있다. 천장에 1,600개의 별을 띄울 수 있는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Starlight headliner) 옵션을 선택하면 그야말로 호화로움의 극치다.
팬텀은 클래식 그 자체다. ‘마법의 양탄자를 타는 느낌’으로 널리 알려진 롤스로이스 전통의 승차감을 재현하는데 초점을 맞출 뿐,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시트도 마찬가지. 그도 그럴 것이 VIP 한 명마다 비스포크(Bespoke, 맞춤형)로 제작되는 팬텀은 고객이 원하면 어떤 기능이든 다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상상하는 무엇이든, 지갑만 빵빵하다면.
Mercedes-Maybach S 600 & Pullman
편안함을 위해선 넓은 공간이 기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600은 5.1m가 넘는 기본형 S-클래스에서 무려 33cm를 늘였다. S-클래스 롱휠베이스 모델과 비교해도 25cm가 길다. 기본형 S-클래스의 뒷좌석 공간도 충분한데 33cm를 늘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600의 뒷좌석은 그야말로 광활하다. 여기에 좌우로 구분된 ‘이그제큐티브 시트’가 기본으로 들어간다. 각각의 시트는 등받이 각도를 최대 43.5도로 눕힐 수 있다. 헤드레스트와 옆구리 지지대도 조절되는데, 당연히 전동식이다.
바쁜 VIP들에게 최적의 업무공간 역할도 한다(마이바흐 S600의 실내)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쇼퍼 패키지(Chauffeur Package)를 선택하면 된다. 앞쪽 동반석 시트 메커니즘을 변경해 뒷자리 공간을 77mm 더 확보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동반석을 접을 수도 있다. 늘어난 다리공간에 따라 뒷시트 아래 종아리와 발꿈치 부분을 지지하는 힐서포트가 붙는다. 간단한 업무를 보기 위한 접이식 테이블은 기본이다. 잠이 솔솔 오도록 별도의 쿠션도 준다. 시트와 같은 최고급 소가죽에 마이바흐 로고가 수놓아져 있다.
여기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지갑만 두둑하면 또 다른 대안이 있다. 바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풀만(Pullman)이다. 마이바흐 S 600에서 시원하게 1m를 늘여 6.5m로 만들었다. 머리공간도 6cm를 더 확보했다. 풀만 뒷자리의 특징은 VIP와 마주보고 앉을 수 있다는 것. VIP와 VIP를 마주보고 앉아 회의를 할 수 있다. 비서의 공간마저 아깝다면? 마주보는 시트는 얼마든지 없앨 수 있다.
Bentley Mulsanne & Flying Spur
또 다른 럭셔리 세단 메이커인 벤틀리의 기함은 뮬산이다. 모터스포츠 전통을 갖고 있는 벤틀리는 같은 영국 출신인 롤스로이스보다 한결 스포티하다. 그렇다고 안락함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 롤스로이스가 ‘마법의 양탄자’라면 벤틀리는 기분 좋은 배기음이 살아 있는 ‘다이내믹 럭셔리’를 표방한다. 예를 들면 뮬산의 뒷자리에는 크리스털 샴페인 잔과 두병의 샴페인을 넣을 수 있는 쿨러가 기본으로 달려 있다. 미끄러지듯 달리고 나서 시원하게 한잔 하라는 배려인 듯.
벤틀리의 뒷좌석은 다이나믹함이 돋보인다(뮬산의 실내)
더 색다른 것을 원한다면 뮬리너(Mulliner) 부서에서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 뒷자리에 조금 더 신경 쓴 신세대 플라잉스퍼는 좀더 현대적인 장비를 갖추고 있다. VIP의 편안함을 위해 시트의 각 부분에 강도가 다른 폼을 썼다. 옆구리 지지 기능을 포함해 총 14방향으로 조절되는 시트는 열선과 통풍 기능을 갖추고 있다. 스마트폰처럼 생긴 터치스크린 리모컨이 들어가고, 두개의 10인치 모니터도 달린다. 와이파이까지 가능해 달리면서 웹서핑을 즐길 수도 있다. 1,100W의 나임 오디오가 달려 있으며 무선 헤드폰도 같이 준다.
렉서스는 일본의 장인정신을 녹였다
항상 일본의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렉서스다. 기함인 LS에도 세심한 일본의 정신을 녹였다. 아늑한 실내는 38일간 67단계를 거쳐 완성되는 시마모쿠 원목 우드 트림으로 꾸몄다. 하이브리드 버전에선 특이한 대나무 트림을 고를 수도 있다. 전동으로 등받이를 조절할 수 있는 LS의 VIP 시트는 일본 전통 지압법에서 영감을 얻은 마사지 기능도 갖고 있다. 열선, 통풍기능은 기본. 종아리를 쭉 뻗을 수 있는 오토만 스타일의 시트에는 전용 에어백도 달려 있다. 일본 브랜드다운 배려다.
BMW 7시리즈는 최신의 전자장비가 탑재됐다
BMW가 새롭게 내놓은 7시리즈는 혁신적인 럭셔리를 지향하는 플래그십 세단으로, 모던한 디자인과 다양한 신기술을 담고 있다. 뒷자리도 마찬가지. 차가운 금속성 소재와 따뜻한 원목이 적재적소에 쓰였다. 최신기술이 스며 있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42.5도까지 등받이를 눕힐 수 있는 뒷시트에는 열선 및 통풍, 마사지 기능이 들어 있다. 3단계로 조절할 수 있고, 8가지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게다가 장거리 여행에서 피로를 풀 수 있는 ‘바이탈리티 프로그램’도 있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와 함께 뒷좌석 모니터에 나오는 동작을 따라하면 한결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국 플래그십의 아이콘, EQ900
지난 해 말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세단 EQ900이 공개됐다. 에쿠스의 후속이다. 대한민국 사장님의 차인 만큼 현대차도 뒷시트의 기능을 강조했다. 고급 천연 소재와 완성도 높은 마무리로 VIP에게 만족감을 주도록 ¬디자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고급’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외국 업체의 이름이 난무한다. 가죽에는 이탈리아 파수비오(PASUBIO)사, 바느질은 오스트리아 복스마크(BOXMARK)를 끌어들였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독일척추건강협회 공인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편안할지 궁금하다. 참고로 EQ900의 VIP 시트는 18방향으로 조절된다. 여객기 1등석처럼 버튼 하나로 릴렉스, 독서, 영상 등 다양한 모드로 변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