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외길의 뚝심, 세기의 자동차 브랜드 - 독일
2016-05-13 09:00:54 글 탑기어 편집부
자동차와 세기의 열애에 빠진 브랜드에 대해 알아본다
1769년, 프랑스. 공병장교인 조셉 퀴뇨는 증기기관이 달린 3륜자동차를 개발해 시험운행에 성공했다. 무지막지한 크기에, 15분마다 물을 공급해야 하고,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느린 이 자동차는 당시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퀴뇨는 이에 굴하지 않고 증기자동차 개발에 매진했지만 이 위대한 발명품은 뒤이어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으로 잊혀지고 만다.
245년이 흐른 지금, 자동차산업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제 자동차는 운전자 없이 스스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다. 현대기술산업의 총화라 불리는 자동차산업은 멀고 먼 안드로메다에서 외계인들이 온다면 현생인류를 정의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만큼 현대 문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대 자동차산업은 조셉 퀴뇨, 니콜라스 오토, 칼 벤츠, 루돌프 디젤 등의 선구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발명가와 엔지니어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다. 특히 100년 이상 자동차 기술개발에 매진한 회사가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최첨단의 자동차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번 기획기사는 한세기 넘게 자동차와 열애에 빠진 브랜드를 위한 오마주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노고에 감사 드린다.
자동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 이름, 메르세데스-벤츠
“발명을 향한 우리의 열정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 칼 벤츠 -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 - 고틀리프 다임러 -
벤츠에게는 투자자이자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부인 베르타 링게가 있었고 다임러에게는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기술자 마이바흐가 있었다. 1879년 2행정 가솔린 엔진 개발에 성공한 칼 벤츠는 1883년 10월 독일 만하임에 ‘벤츠 앤 시에’라는 회사를 세우고, 자동차 제작에 나선다. 같은 해 고틀리프 다임러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칸슈타트에서 가솔린 엔진을 개발했다.
두사람은 우연히도 1886년 자동차를 완성했다. 1885년 다임러가 먼저 이륜차를 내놓긴 했으나 요즘의 자동차 개념에 근접한 삼륜차를 먼저 제작한 이는 벤츠였다. 몇달 후 다임러는 마차를 개조한 4륜차를 만들었다. 자동차 생산과 판매를 먼저 시작한 사람도 벤츠였다. 이 두사람의 발명은 20세기 자동차산업 및 운송수단 자동화의 초석이 됐다. 메르세데스-벤츠라는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의 시작이기도 했다.
‘메르세데스’는 1900년 다임러가 설립한 ‘다임러-모토른-게샬프트’의 모델명이었다. 프랑스에서 다임러차 딜러를 운영하던 오스트리아인 에밀 옐리네크가 시판차에 딸의 이름을 붙였고, 이 차들이 자동차경주에서 활약하면서 이름을 떨쳐 공식상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다임러와 벤츠는 제1차세계대전의 후의 극심한 경영난을 이겨내기 위해 1926년, 합병을 통해 메르세데스-벤츠로 거듭났다. 현재는 다임러AG의 브랜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한 이후 지금까지 자동차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며 세계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뛰어난 기술력과 품질, 혁신적인 도전, 최고를 위한 열정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는다.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엠블럼인 세꼭지 별에는 ‘육지, 바다 그리고 하늘’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다임러의 열망이 담겨 있다
1899년 아우디의 창업자인 아우구스트 호르히(엔지니어 겸 레이서)는 자신의 이름을 딴 호르히 앤 시에를 설립한다. 그러나 동업자들과의 불화로 회사를 떠나, 1909년 아우디 베르케를 세웠다. 아우디라는 사명 역시 자신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라틴어로 듣다(audiatur)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932년 경제불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첫번째 회사인 호르히와 두번째 회사인 아우디 베르케, 작센 지방의 4개 자동차업체가 합병해 규모를 키웠다. 이후 여러차례 격변를 거친 끝에 1977년 아우디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아우디AG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슬로건을 지닌 아우디는 여기에 걸맞는 진보를 이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특히 1972년 포르쉐에서 개발 책임자로 일하던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아우디의 기술 개발부에 입사(1988년까지 재직했다)한 뒤 급물살을 타게 된다. 대다수의 메이커가 뒷바퀴굴림차를 고집하던 1970년대에 풀타임 네바퀴굴림인 콰트로 개발을 시작해 1980년 양산차를 내놓았다. 콰트로는 오늘날에도 아우디의 대표적인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 1983년 공기저항계수를 0.3까지 낮춘 아우디 100을 출시하는가 하면, 1985년에는 부식방지를 위해 새롭게 개발한 아연도금 차체를 사용하기도 했다. 1989년에는 고압직접분사 기술과 터보차저를 합쳐 연료소모를 줄이고 주행성능은 높인 TDI 엔진을 내놨다.
1993년에는 알루미늄을 사용한 아우디 스페이스 프레임(Audi Space Frame)을 통해 차체의 강성과 연비를 한꺼번에 잡았다. 부단한 노력과 눈부신 성과에 힙입어 오늘날 아우디는 ‘기술의 아우디’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갖게 됐다.
4개의 원은 호르히, 베르케, 데카베, 반더러 등 4개 메이커를 상징한다. 연결고리는 이들의 결속력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