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외길의 뚝심, 세기의 자동차 브랜드 - 이탈리아
2016-05-13 09:00:28 글 탑기어 편집부
자동차와 세기의 열애에 빠진 브랜드에 대해 알아본다
1769년, 프랑스. 공병장교인 조셉 퀴뇨는 증기기관이 달린 3륜자동차를 개발해 시험운행에 성공했다. 무지막지한 크기에, 15분마다 물을 공급해야 하고,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느린 이 자동차는 당시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퀴뇨는 이에 굴하지 않고 증기자동차 개발에 매진했지만 이 위대한 발명품은 뒤이어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으로 잊혀지고 만다.
245년이 흐른 지금, 자동차산업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제 자동차는 운전자 없이 스스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다. 현대기술산업의 총화라 불리는 자동차산업은 멀고 먼 안드로메다에서 외계인들이 온다면 현생인류를 정의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만큼 현대 문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대 자동차산업은 조셉 퀴뇨, 니콜라스 오토, 칼 벤츠, 루돌프 디젤 등의 선구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발명가와 엔지니어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다. 특히 100년 이상 자동차 기술개발에 매진한 회사가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최첨단의 자동차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번 기획기사는 한세기 넘게 자동차와 열애에 빠진 브랜드를 위한 오마주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노고에 감사 드린다.
2014년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 덕분에 언론매체에 많이 소개되어 이름이 좀 알려졌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마세라티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2014년 마세라티는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콘셉트카 알피에리를 발표했다. 알피에리는 마세라티를 세운 이탈리아 마세라티가(家)의 형제들 중에서 주축이 된 인물이다. 넷째였던 그는 레이싱 드라이버이자 기술자였고, 다섯째인 마리오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 역시 디자인, 엔지니어링 등 각 분야에서 일하다가 1914년 공동으로 자동차회사를 세웠다.
본거지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데페폴리 거리였다. 1926년 삼지창 로고와 함께 자체 제작한 티포 26을 출시했다. 알피에리는 1927년 레이스를 그만뒀지만 마세라티의 활약은 후안 마누엘 환지오가 합류한 1950년대까지 계속됐다. 지금도 마세라티의 명차 중 하나로 손꼽히는 250F는 1954년, 1957년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마세라티는 도로용차 제작에 집중했지만 스포츠카 혈통을 잊지 않았다. FIA GT 레이스 출전, 원메이크 경기인 마세라티 트로페오 운영 등을 통해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마세라티를 대표하는 차이름 가운데 하나인 콰트로포르테는 1963년 마세라티의 첫번째 4도어 세단에 처음 쓰였다. V8 4,136cc 엔진을 얹고 스포티한 달리기와 편안한 승차감을 겸비해 최초의 럭셔리 스포츠 세단으로 칭송받은 차다. 1966년에 나온 기블리는 람보르기니 미우라와 경쟁했다.
198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뛰어난 성능을 갖춘 바이터보를 출시했고 1993년 간디니 디자인의 새 콰트로포르테가 나왔다. 마세라티는 1968년 시트로엥에 지분을 일부 매각해 전환기를 맞았으며 1973년에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레이싱 드라이버였던 알레한드로 데토마소가 경영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페라리와 함께 FCA그룹 산하에 있다.
왕관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마세라티 엠블럼은 1926년 예술가로 활동하던 마리오 마세라티가 고안했다. 마세라티 공장이 있던 볼로냐의 마조레 광장에 서 있는 넵투누스(포세이돈)의 삼지창을
본뜬 것으로 전해진다
1910년 이탈리아 기업가 카발리에 우고 스텔라가 프랑스 다라크 자동차의 밀라노 공장을 인수해 A.L.F.A.(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i)로 명명하면서 알파로메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첫차는 1910년 생산된 24HP였다. 주세페 메로시가 디자인한 이 차는 4.0L 엔진을 탑재하고 100km/h의 최고속도를 냈으며, 이듬해부터 레이스에서 활약했다.
1915년 A.L.F.A.를 인수한 니콜라 로메오는 새차에 자신의 성을 붙이기로 하고 로고도 ‘Alfa-Romeo Milano’로 변경했다. 하지만, 제1차세계대전으로 자동차 생산을 접어야 했다. 알파로메오의 첫차 토르페도 20-30HP는 전쟁이 끝난 후인 1920년에 나왔다. 엔초 페라리 등이 운전한 40-60HP는 각종 레이스를 휩쓸며 알파로메오의 이름을 떨쳤고, 1925년 몬자에서 첫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후 알파로메오는 RL 타르가 플로리오, P2 그랑프리, 2900B 타입 35, 158 알페타, 프로젝트 13-61, GTA, 티포 33, 줄리에타 스파이더 등을 생산했다. 알파로메오는 1914년 그랑프리 경주차에, 1928년에는 도로용차에 처음으로 더블 오버헤드 캠샤프트 엔진을 탑재하는가 하면 현대적인 앞바퀴굴림의 선조격 차를 개발하는 등 진보적인 기술을 선보여왔다. 수작업으로 제작된 알파로메오 차들은 혁신적인 엔진, 공기역학적 디자인, 안락한 승차감 등에서 탁월한 실력을 뽐냈지만 1980년대 들어 판매부진으로 사세가 기울었다.
1986년 피아트그룹에 인수된 후로 1999년까진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발터 드 실바의 지휘 아래 뽑아낸 스타일링으로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알파로메오는 지금도 모터스포츠에서 영감을 얻은 탁월한 성능과 놀라운 핸들링, 독특한 스타일을 모두 갖춘, 운전자를 위한 자동차를 표방하고 있다.
최초의 알파로메오 엠블럼은 14세기 밀라노 지역을 통치했던 비스콘티 가문의 푸른 바탕에 큰 뱀이 있는 문장과 흰 바탕에 적십자가 있는 밀라노의 깃발을 형상화한 문양을 금속 링에 넣고 그 주위에 ALFA와 MILANO를 수놓은 형태였다
피아트는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회사로 1899년 세워졌다. 이름은 토리노 이탈리안 자동차회사(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의 약자다. 현재는 자동차뿐 아니라 농기계, 열차, 선박, 항공기, 원자력, 우주항공, 석유, 금융업까지 진출해 있는 거대기업이다.
이탈리아 자동차 생산의 80%를 독점하고 있으니 이탈리아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격. 피아트는 알파로메오, 란치아, 페라리, 마세라티, 아바스 등을 차례로 인수해 이탈리아 자동차왕국을 건설했고, 2014년 미국의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회사명을 FCA(Fiat Chrysler Automobiles)로 변경했다.
피아트는 500의 다양한 파생모델과 124스파이더, 판다, 푼토 등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는 소형차 500 한가지다. 이 차는 피아트의 아이코닉 모델로, 1936년 첫선을 보였다. 당시 선보인 500은 현재 모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1957년 출시된 누오보 500이 현모델의 직계조상이다. 피아트 500은 미니 쿠퍼, 폭스바겐 비틀과 함께 대표적인 소형 패션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의 피아트 엠블럼은 2007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디자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