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명품을 걸치면 어떤 모습이 될까?
2016-08-26 15:53:36 글 이지수, 김종우, 김준혁 기자
컬래버레이션이 유행이다. 이것은 같은 분야끼리, 혹은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작업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화제성을 바탕으로 광고효과를 높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살리려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한정판 티셔츠를 사기 위해 매장 앞에 소비자들이 긴 줄을 선다면 그 브랜드는 ‘완판’이라는 3번째 목적까지 달성하는 셈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심심치 않게 컬래버레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명품 브랜드와 고급차의 만남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을 모았다.
에르메스는 1837년 안장과 마구용품으로 출발한 프랑스 브랜드로 럭셔리의 정점에 서 있다. 여러 종류의 전문공방을 운영하면서 가죽제품을 비롯해 스카프, 타이, 시계, 문구류, 향수, 은식기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큰 피에르 베니트 가죽공방에는 350여 명의 장인이 소속되어 있다. 창업자의 6대손이자 그룹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피에르 알렉시 뒤마는 자동차, 요트, 헬리콥터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부가티와 에르메스가 손잡고 완성한 부가티 베이론 포브르 에르메스는 에르메스 본사가 있는 프랑스 파리의 포브르 생토노레 거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H’로 포인트를 살린 폴리싱 스포크 알루미늄 휠(1924년형 부가티 타입35에 대한 오마주로 완성)을 달았고, 도어핸들은 에르메스 여행용 가방 손잡이를 떠올리게 한다. 대시보드와 스티어링 휠 등을 엄선한 송아지 가죽으로 마무리했다.
BREITLING × BENTLEY BENTAYGA
브라이틀링과 벤틀리, 명품시계와 럭셔리카의 만남은 낯선 조합이 아니다. 브라이틀링은 1884년 스위스에서 출발한 시계회사다. 창업자 브라이틀링은 일찍이 크로노그래프 시계에 주목하여 전문가용 시계 의 1인자로 우뚝 섰다. 크로노그래프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브라이틀링은 항공·우주비행에 이어 자동차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둘은 분야가 다르지만, 정밀한 시간측정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브라이틀링과 손잡은 자동차는 영국의 럭셔리카 벤틀리. 2003년부터 공동작업을 해오고 있는 두 회사가 가장 최근에 내놓은 작품은 벤테이가에 적용된 ‘뮬리너 뚜르비옹 바이 브라이틀링’이다. 손목시계로도 판매 중인 뮬리너 뚜르비옹을 센터페시아 상단에 집어넣은 것이다. 중력의 영향으로 인한 오차를 최소화하는 뚜르비옹 기술이 들어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백금과 다이아몬드가 사용되었다. 이쯤 되면 벤틀리 뮬리너 뚜르비옹의 가격이 2억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별로 놀랍지 않다.
JOHN VARVATOS × CHRYSLER 300C
300C 존 바바토스 리미티드 에디션은 크라이슬러가 미국 남성의류 브랜드 존 바바토스와 함께 만든 모델이다. 존 바바토스는 미국 폴로와 캘빈클라인 수석 디자인 출신으로, 2000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해 운영하고 있다.
300C 존 바바토스 리미티드 에디션은 프론트 그릴과 윈도 가니시, 사이드미러 등을 존 바바토스 향수병에서 영감을 얻은 검은색 티타늄으로 장식했다. 존 바바토스의 로고가 새겨진 메탈릭 소재의 가죽시트는 회색과 검정색 박음질로 마무리해 럭셔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광택 나는 진주색 보디에 진회색의 메탈릭 베젤로 장식한 계기판과 시계도 눈길을 끈다. 이 차는 2014년 출시되어 미국에서 판매됐다.
VICTORIA BECKHAM × RANGE ROVER EVOQUE
빅토리아 베컴은 전세계 여성들이 주목하는 패션 아이콘이다. 1990년대말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패션쇼에 모습을 드러냈고, 패션잡지 에디터 및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해 의상을 비롯해 가방, 선글라스 등을 판매 중이다.
영국 패션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한 그녀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랜드로버와 컬래버레이션을 한 것. 2010년 7월 게리 맥거번이 이끄는 랜드로버 디자인팀에 합류해 자신만의 디자인 감각을 마음껏 쏟아냈다.
이렇게 완성된 차가 ‘이보크 스페셜 에디션 빅토리아 베컴’이다. 수작업으로 마무리된 무광의 회색빛 차체 , 20인치 검은색 단조휠, 로즈골드 색상으로 포인트를 준 센터페시아, 가죽시트의 두터운 박음질 등이 그녀의 작품이다.
ERMENEGILDO ZEGNA × MASERATI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1910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남성 패션 브랜드다. 구찌, 생로랑, 던힐 등에 원단을 공급하다가 1968년부터는 원단 생산과 함께 남성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 각국에 56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성복 외에 맞춤복과 다양한 액세서리도 선보이고 있다.
제냐는 1982년 란치아자동차와 협업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마세라티와 손잡고 콰트로포르테, 기블리 에르메네질도 제냐 에디션을 출시했다. 제냐가 생산한 최고급 실크, 가죽 등을 시트와 도어 패널, 천장의 테두리 등에 사용해 포인트를 준 것이 특징. 센터콘솔쪽에는 제냐 에디션을 나타내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마세라티-제냐 에디션은 2016년형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와 기블리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국내 출시 여부는 미정이다.
패션 브랜드 디젤은 1978년 렌조 로소와 아드리아노 골드슈미드가 만든 이탈리아 브랜드다. 1970년대 대체에너지로 주목받던 디젤유처럼 패션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담아서 디젤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이후 독자적인 워싱기술을 바탕으로 개성 있는 데님 제품을 만들어왔다.
디젤은 2008년 피아트와 함께 ‘피아트 500 바이 디젤’을 선보였다. ‘도심에서의 생존’을 테마로 꾸민 이 차는 파랑색, 녹색, 검정 등 3가지 색상으로 나오며, 곳곳에 메탈 장식을 써서 전투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B필러 위의 장식은 디젤 데님의 워싱을 떠올리게 할 만큼 브랜드 고유의 특징이 잘 살아 있다. 실내는 데님 소재의 시트커버를 썼고, 측면엔 청바지 뒷주머니 디자인을 집어넣는 센스를 발휘했다.
〈탑기어〉 2016년 2월호 발췌 ·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