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도 보인다. 자동차 숨은 그림 찾기
2016-09-23 10:30:00 글 김준혁 기자
자동차 회사들은 곳곳에 엠블럼이나 아이콘을 배치해 아이덴티티를 강조한다
Continental GT | Flying Spur | Mulsanne | Bentayga
벤틀리는 첫번째 알파벳인 B를 심심치 않게 새겨넣는다. 이 글자는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프런트 펜더 뒤쪽, 깜찍한 에어벤트다. 글자가 변형되지 않아서 자세히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문제는 벤틀리의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점이다. 얼핏 봐서는 에어벤트가 B자 형상인지 알아채기 어렵다(에어벤트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B자 에어벤트는 컨티넨탈·뮬산·플라잉스퍼, 최신 SUV인 벤테이가까지 모든 벤틀리에 들어간다. 이제는 트윈서클 헤드램프에 이어 벤틀리의 또 다른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자리잡았다.
B에 대한 벤틀리의 집착은 꽤 오래전 시작됐다. 초기 모델부터 보닛 끝에 B와 벤틀리의 상징인 날개를 조합한 엠블럼을 부착해왔기 때문이다. 날개 엠블럼이나 부착 위치가 롤스로이스의 환희의 여신상과 비슷해 B가 도드라지지 않지만 측면에서 보면 명확하게 보인다. 현재 이 엠블럼은 플래그십인 뮬산에만 적용한다. 또 다른 B도 있다. SUV 벤테이가의 테일램프에 B자 형태의 그래픽을 넣었다. 라이트를 켜야만 알아볼 수 있지만 이 또한 벤틀리의 아이덴티티를 담아내려는 노력의 결과다. 이 디자인은 최신모델인 뉴 뮬산에도 적용한다.
Z4 | X6
BMW의 모델명은 대부분 숫자 구성이다. 3, 5, 7시리즈가 대표다. 요즘에는 알파벳을 조합한 이름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 차종이 로드스터인 Z4와 SUV인 X시리즈다. 알파벳을 사용하는 일부 모델은 외관에 Z와 X를 당당하게 새기기도 한다.
지금은 단종된 1세대 Z4는 옆구리를 가로지르는 캐릭터 라인에 Z자를 넣었다. Z는 왼쪽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헤드램프 안쪽에서 시작해 도어 핸들로 이어지는 첫번째 캐릭터 라인과 A필러에서 앞펜더 뒤까지 이어진 또 다른 캐릭터 라인, 로커 패널을 구분짓는 3개의 선이 만나 Z자가 완성됐다. 측면에 알파벳 하나를 온전히 새겨 넣는 일이 쉽지는 않은데 Z4를 디자인한 앤더스 워밍(이후 미니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다 최근 보그워드로 옮겼다)은 그 일을 해냈다. 그것도 유명 캘리그래퍼가 쓴 것 같은 강약이 분명한 멋진 필체로 말이다.
Z4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도 있었던 Z자는 2세대에서 사라졌다. 대신 2세대 X6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앞쪽이다. 자세히 보면 프런트 범퍼의 근육질 라인이 X자 형상이다. 밝은 색상은 음영이 약해 X가 잘 보이지 않지만, 어두운 색은 꽤 선명하게 보인다. 이 X자는 프론트 범퍼의 흡기구가 큰 X6 M50d와 X6 M, X5에는 없다. 오직 X6을 위한 디자인인 셈이다. X시리즈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 근육질 보디를 강조하는 요소인 만큼 다양한 X시리즈로 확대를 기대해본다.
X-Type | S-Type | XJ | XK8
재규어는 요즘 LED 주간 주행등에 브랜드 첫글자인 J를 새겨넣은 ‘J 블레이드’ 디자인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J가 L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10여년 전에도 재규어는 J자 형태의 디자인을 사용했었다. 바로 ‘J 게이트’ 변속기다. 재규어를 상징하는 다이얼 형태의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터’를 선보이기 전 S-타입과 X-타입, XK8, XJ(X350)의 6단 자동변속기는 J자 형태였다. 자동변속기의 기본 배열인 P-R-N-D가 J의 큰 획을 완성하고, 왼쪽에 5-4-3-2단 기어를 배열했다.
변속 패턴에 J를 집어넣는 발상은 참신했지만 인터페이스는 그렇지 못했다. P-R-N-D까지는 일반 변속기와 같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수동 모드를 사용할 때의 불편함이 참신성을 깎아먹었다. 엉성한 조작감과 킥다운을 망설이게 하는 배열 때문이었다. J 게이트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던 탓일까? 재규어 공식 사이트 어디에서도 J 게이트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XF부터 적용한 다이얼 타입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터에 대한 내용만 보인다.
Renegade
지프의 막내 레니게이드는 이전 지프와는 다른 특징을 여럿 갖고 있다. 지프를 상징하는 오프로드 주파력과 박력 있는 디자인은 그대로이지만 귀여움과 발랄함을 더했다. 피아트와 합작으로 이탈리아에서 만든 자동차답게 기발한 디자인이 곳곳에 배어 있다. 대표 요소가 지프를 상징하는 7슬롯 그릴과 원형 헤드램프를 형상화한 아이콘이다. 레니게이드는 얼굴부터 원조모델인 윌리스 MB를 떠올리게 한다. 얼굴뿐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 지프를 상징하는 아이콘을 넣었다.
먼저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한가운데 아이콘이 들어 있다. 실내에서는 룸미러 뒤쪽 센서 케이스와 센터페시아 아래쪽 수납함, 도어 아래쪽 스피커, 테일게이트 안쪽에 있다. 눈에 불을 켜고 찾으면 더 나올지도 모른다. 레니게이드 오너들이여 윌리스 MB를 찾아보기 바란다. 참고로 레니게이드에는 7슬롯 그릴 아이콘 외에 윌리스 MB의 측면 디자인을 형상화한 아이콘(앞유리 하단, 마이 스카이 루프 패널 제거 손잡이)과 윌리스 MB의 비상용 연료탱크를 떠올리게 하는 X자 아이콘(컵홀더, 마이 스카이 루프 패널, 테일램프)이 들어 있다.
Continental | MKZ
요즘 링컨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2010년 초반 MKS와 MKZ를 통해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는데 또 다시 디자인 변경을 시도하는 중이다. 그 시작은 15년만에 부활한 컨티넨탈과 2세대 MKZ의 페이스리프트다. 링컨의 상징이었던 스플릿 윙 프런트 그릴을 버리고 과거의 형태로 돌아간다. 링컨은 디자인을 바꾸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링컨의 상징인 세로로 긴 육각형 엠블럼을 반복적인 패턴으로 차체 안팎에 적용했다. 멀리서 보면 기하학적인 무늬 같지만 자세히 보면 무수히 많은 엠블럼 배열이다(너무 오래 보면 어지럽다).
외관에서는 프런트 그릴에 이 패턴을 적용했다. 자세히 보면 링컨 그릴이고 멀리서 보면 스포츠카에 쓰이는 그물눈 타입 그릴 같다. 실내에서는 시트와 도어 트림의 가죽에 같은 패턴을 새겼다. 이런 디자인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완성도 높은 이전 디자인을 짧은 시간에 바꾸고 새로운 패턴을 적용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Forfour | Fortwo
자동차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소형차 전문회사 스마트가 메르세데스-벤츠와 같은 다임러 소속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스마트같이 작은 차를 만들지 않고, 스마트가 반대로 커다란 고급차를 만들 일도 없지만 어쨌든 두 회사는 한지붕 아래 식구다. 스마트는 이런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소심하게 메르세데스-벤츠의 상징인 삼각별 엠블럼을 갖다 썼다. 장소는 실내에 있는 4개의 송풍구다. 송풍구가 360도 돌아가기 때문에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정위치로 고정시키면 삼각별 형태가 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위력이 대단하긴 한가보다. 스마트까지 그 덕을 보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