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의 달인이 되는 비법은?
2016-11-01 08:00:00 글 제이슨 홍
요즘 차에는 대부분 전자식 주행안정장치가 기본적으로 달린다. VDC·VSC·ESP·DTC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장비는 자동차 바퀴가 접지력을 잃는 상황에서 차체를 능동적으로 제어해 사고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협회’(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 NHTSA)나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nsurance Institute for Highway Safety, IIHS)에 따르면 주행안정장치 덕분에 사망사고가 3분의 1 이상 줄었다고 한다. 특히 SUV처럼 무게중심이 높아 주행안정성이 떨어지는 차는 사고가 60% 가까이 줄었다.
이렇듯 주행안정장치의 효과는 확실하게 검증됐다. 따라서 세계 각국의 신차 안전도 평가기관에서도 이 장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이런 장치들이 운전을 재미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 같은 자동차 환자들에겐 안전만큼이나 운전재미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 운전재미는 일정 부분 짜릿함에 기반한다. 빠른 속도로 중력을 느끼며 코너를 돌아나갈 때의 쾌감, 스핀할 것같이 휘청이는 차체를 바로잡아가며 달릴 때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동차회사들도 이 점을 잘 안다. 그래서 스포티한 주행을 강조하는 차는 주행안정장치를 완전히 끌 수 있도록 배려한다. 차체 제어를 온전히 운전자에게 맡기겠다는 뜻이다. 원하면 언제든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잘못하면 차가 도로를 벗어나 파손돼 엄청난 견적이 기다린다. 안전이 확보된 트랙이라도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기술은 나날이 발전한다. 과거에는 주행안정장치가 사고를 방지하는 능동적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에 치중했다. 이제는 안전하면서도 운전을 더 즐겁게 만들고 나아가 운전을 더 잘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진화하고 있다. 좀 보태면 운전의 달인, 미하엘 슈마허가 된 것처럼 만들어주기도 한다.
전자식 주행안정장치와 일부 기능이 겹치지만 운전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이런 기능을 ‘주행보조장치’라고 할 수 있다. 주행보조장치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운전기술이 어떤 것들인지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첫째, 오버부스트(over-boost) 기능이다. 운전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빨리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어린시절 심금을 울리던 애니메이션 <사이버포뮬러>나 자동차 환자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 <분노의 질주>를 보면 순간적으로 엔진의 출력을 높여 레이스에서 이기는 장면이 꼭 나온다. 최근에는 엔진 배기량을 줄이는 ‘다운사이징’이 일반화되면서 과급장치를 폭넓게 활용한다. 배기량을 줄이면서 성능을 높이려면 실린더 연소실에 공기를 더 많이 밀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터보차저(turbocharger)가 대표적인 과급장치다.
오버부스트는 말 그대로 터빈에서 분출되는 공기의 압력을 높이는 것이다. 실린더에 공기를 많이 넣는 만큼 출력은 올라간다. 내구성 문제가 있기에 무한정 오버부스트 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요즘에는 특정모드에서만 일시적으로 부스트 압력이 올라가도록 만든다. 차는 <사이버포뮬러>에서 스파이럴 부스터가 작동하듯이 순간적으로 강력한 파워를 내며 달려나가고, 계기판에 작동상황을 보여준다면 운전재미가 배가된다.
둘째는 ‘론치컨트롤’(launch control) 기술이다. 이것은 차가 출발할 때 가속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장치다. 드래그 레이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최대토크가 나오는 회전영역에서 기어를 맞물리며 출발해야 기록을 단축할 수 있다. 수동변속기라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액셀 페달을 밟은 상태에서 기어를 넣은 뒤 클러치 페달을 놓는 식으로 하면 된다. 요즘 일반화된 자동변속기는 구조적으로 이런 방식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론치컨트롤 시스템이 개발됐다.
론치컨트롤을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전달하는 일이 중요하다. 크게 두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엔진 회전수를 최대토크가 나오는 구간에 고정시킨다. 그리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서 최대토크를 바퀴로 전달하면 된다. 요즘 많이 쓰이는 듀얼클러치 변속기에서는 컴퓨터가 최적 타이밍을 계산해 순식간에 클러치를 연결시킨다. 자동변속기는 엔진 회전수를 올려 토크컨버터에 압력을 걸어두었다가 순간적으로 바퀴에 동력을 보내는 방식을 쓴다. 론치컨트롤을 쓰면 특별한 운전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수준급 드래그 레이서가 될 수 있다.
마지막은 차가 미끄러지는 한계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주행안정장치 개입을 자제하면서 운전자가 차를 컨트롤하도록 허용하는 드리프트 모드(drift mode)다. 뒤타이어에서 하얀 연기를 뿜으며 미끄러지듯 아슬아슬하게 코너를 돌아나가는 드리프트 기술은 자동차 마니아의 로망이다. 누구나 멋진 드리프트를 꿈꾸지만 그만큼 어렵고 실패했을 때 대가도 혹독하다. 이럴 때 드리프트 모드가 있으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드리프트를 시도할 수 있다. 실수를 하더라도 나와 내 차를 지켜줄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주행안정장치 개입을 위해 대부분 차에는 차체의 거동과 바퀴의 미끄러짐을 감지하는 각종 센서가 달려 있다. 주행안정장치의 개입을 늦추어 어느 정도 미끄러짐은 허용할 수 있다. 여기에 뒷바퀴가 쉽게 미끄러지며 오버스티어(oversteer)를 일으키도록 LSD나 전자식 클러치팩을 통한 엔진 토크 배분까지 들어가면 완벽하다. 누가 알겠는가. 켄 블록 부럽지 않은 실력을 뽐낼 수 있을지.
든든한 지원군도 있다. 차체 측면거동을 감지하는 요(yaw) 센서가 차체가 과도하게 미끄러진다고 판단하면 출력을 줄이고 개별적으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스핀을 막아준다. 스핀방지로 운전자의 심적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심각한 사고도 예방한다.
요즘 나오는 주요 스포츠 모델들에는 위의 3가지 기능이 적절히 들어가 있다. 일부 메이커는 최신 주행보조장치를 특장점으로 강조할 정도다. 적은 비용으로 운전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다른 브랜드와 차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타야만 운전실력을 뽐낼 수 있지는 않다.
Ford
일반적으로 재미없고 밋밋한 차를 만드는 포드지만 스포츠 모델만은 화끈하다. 최근 각종 주행보조장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기도 하다. 2016년형 포드 포커스 RS에는 3가지 주행보조장치가 모두 달렸다.
우선 20초간 작동하는 오버부스트 기능이다. 2.3L 트윈스크롤 터보를 단 에코부스트 엔진은 오버부스트 작동 시 최대토크가 45kg·m에서 48kg·m로 올라간다. 3,000rpm 부근에서 발휘되는 이 기능은 직선로에서 경쟁자를 따돌리는 데 좋은 무기다.
론치컨트롤도 달려 있다.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통해 350마력의 최고출력을 순식간에 바퀴로 전달한다. 0→100km/h 가속을 불과 4.7초에 끝낸다. 가장 주목을 끄는 기능은 드리프트 모드다. 포커스 RS는 앞바퀴굴림에 기반한 네바퀴굴림 방식이다. 한마디로 드리프트를 하기에 최악 구성인 셈. 포드는 70%의 동력을 꾸준히 뒷바퀴로 전달하는 트윈클러치 AWD 시스템과 좌우 구동력을 자유자재로 배분할 수 있는 토크벡터링 기능으로 이런 단점을 극복했다.
드리프트 모드에서는 스티어링 휠이 가벼워지고, 좌우 바퀴의 접지력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가변 댐퍼의 감쇠력을 부드럽게 설정했다. 결과는? 끝내준다. 사고 위험 없이 드리프트, 파워 슬라이드, 도넛 그리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포커스 RS 대신 머스탱을 통해 간접체험이 가능하다. 국내 판매 중인 머스탱에는 론치컨트롤 기능과 함께 뒤타이어에서 하얀 연기를 뿜으며 번아웃을 할 수 있는 라인록(Line Lock) 기능을 갖췄기 때문이다. 계기판 중앙 디스플레이의 트랙앱에서 설정할 수 있는 론치컨트롤과 라인록은 머슬카로서의 박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완소’ 기능이다.
BMW
스포츠 세단의 대명사인 BMW지만 최근 나오는 차들은 과거에 비해 조금 심심하다. 하지만 M은 다르다. 여전히 강력한 파워와 칼 같은 핸들링을 유지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주행보조장치까지 더했다. 론치컨트롤은 싱글클러치 방식의 SMG 변속기를 달던 10여년 전부터 써왔기에 새롭지 않다.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쓰는 신세대 M들도 모두 론치컨트롤 기능을 달고 나온다.
여기에 ‘M 다이내믹 모드’(M Dynamic Mode, MDM)라는 이름의 드리프트 모드를 갖추고 있다. 전통적으로 앞엔진 뒷바퀴굴림 방식을 쓰는 BMW는 드리프트에 최적이다. 강력한 엔진과 전자식 클러치팩이 들어간 LSD까지 달렸다면 스티어링 휠을 꺾고 가속페달을 꾹 밟기만 하면 바로 뒤가 돌아간다. MDM은 주행안정장치가 개입해 한계상황에서의 안전을 지켜주면서도 파워 슬라이드 상황에서 오버스티어나 언더스티어가 일어나지 않도록 살짝 개입 한다. 따라서 드라이버가 정말로 운전을 잘한다고 느끼게 해준다.
M의 막내, M2는 오버부스트 때 47.4kg·m의 최대토크를 51kg·m까지 높여준다. 오버부스트·론치컨트롤·MDM까지 갖춘 M2는 자동차 환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차종이다.
Porsche
2016년 부분변경을 거치며 거의 전 차종에 터보를 도입한 포르쉐는 엔진의 변화와 더불어 재미있는 기능을 더했다. ‘스포츠 리스폰스’(Sport Response)라는 일종의 오버부스트 기능이다. 마치 F1 경주차처럼 필요할 때 파워를 꺼내 쓸 수 있는 버튼이 스티어링 휠 오른쪽 다이얼에 달려 있다. 20초간 작동하는 스포츠 리스폰스는 엔진 반응과 파워뿐 아니라 트랜스미션의 반응속도 및 변속시점까지 조절한다는 점에서 일반 오버부스트보다 진보했다. 계기판에 타이머 그래픽까지 표시돼 정말 <사이버포뮬러>의 ‘아스라다’를 운전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포르쉐의 듀얼클러치 변속기인 PDK를 선택하면 론치컨트롤 기능도 추가할 수 있다.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 돋보이는 점은 엄청난 내구성이다. 2,000번을 써도 아무 문제 없다고 공식적으로 얘기한다. 자체 테스트에선 8,000회 이상 견뎠다고 한다. 5년 반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론치컨트롤을 써서 신호등 레이스를 벌여도 차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이다. 그 전에 아마 운전자의 목이 먼저 망가질 것 같다.
포르쉐 911은 자극적인 드리프트 모드는 없지만 뒷바퀴까지 조향이 되는 ‘리어 액슬 스티어링’(Rear Axle Steering)이 들어갔다. 30km/h 이하에서 앞바퀴와 반대방향으로, 50km/h 이상에선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뒷바퀴가 돌아간다. 저속에서는 회전반경이 짧아져 주차나 유턴이 쉽다. 고속에서는 휠베이스가 늘어난 듯 안정성이 높아져 운전을 잘하게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 달려 있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운 핸들링이 일품이다. 단점은 포르쉐에는 공짜가 없다는 점. 이런 주행보조장치는 대부분 선택장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