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시기에 순수 전기차, 연료전지차가 기존 자동차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이고, 기존 내연기관 기반의 파워트레인도 독립적으로, 또는 하이브리드 기술의 근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엄밀히 말하면 디젤과 하이브리드는 갈수록 강화되는 환경규제와 연비 좋은 차에 대한 요구를 함께 헤쳐나가야 할 좋은 동료이기도 하다. 때문에 디젤차에 하이브리드 기술을 결합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한때 하이브리드카는 특정 시장, 몇몇 업체만의 기술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모델과 자동차업계의 움직임을 모아봤다.
Mercedes-Benz E 350 e : 벤츠의 3세대 하이브리드
2016년 신형 E-클래스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인 E 350 e는 벤츠의 3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하고 등장했다. 핵심은 2.0L 터보 엔진에 맞물린 9G트로닉 변속기다. 기존 변속기에 토크컨버터 록업 클러치와 디커플링 클러치, 전기모터를 결합하되 콤팩트한 설계로 크기를 최소화했다. 고전압 부품들과 함께 모듈 콘셉트를 적용해 다른 차에 응용하기 쉽도록 만든게 특징. 작게는 C-클래스부터, GLE 정도의 SUV까지, 엔진을 세로로 배치한 뒷바퀴굴림 벤츠에 모두 쓸 수 있다고 보면 된다.
E 350 e의 경우 9G트로닉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변속기에 최신 전기모터를 결합해 279마력의 최고출력과 최대 30km의 EV 모드 주행거리, 47.6km/L의 연비를 확보했다. 트렁크 용량은 다른 E-클래스(540L)보다 줄어든 400L.
하이브리드, 전기, E-세이브(배터리 잔량 유지), 충전 등 4가지 주행 모드를 제공하는데, 지능형 예측주행 기능으로 주행 모드를 바꿔 연비를 높이고 EV 주행거리를 늘이기도 한다. 기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도 레이더를 이용해 앞차를 감지하고 이를 에너지 회생에 반영하긴 했지만 E 350 e는 전방 카메라와 내비게이션 정보까지 활용해 에너지를 챙긴다.
PHEV? 자, 골라 보세요
전방의 속도제한이나 경사로를 미리 파악해 에너지 회생으로 속도를 줄일 수 있다. 가능한 때는 스스로 엔진을 끄고 타력주행을 하며, 가속페달을 움직여 운전자에게 발에서 힘을 빼도 된다고 알려준다. 엔진, 변속기와 전기계통 냉각에도 이동경로가 반영된다.
한편 2017년 S-클래스의 페이스리프트에 맞춰 나오는 신형 S 500 e에는 한단계 발전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이 사용된다. 성능이 좋아진 리튬이온 배터리와 개량된 운영시스템이 골자다. 신형 배터리는 다임러 자회사 아큐모티브에서 공급하며, 벤츠 하이브리드카 최초로 EV 모드 주행가능 거리가 50km를 넘는다. 이미 8종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판매하고 있는 벤츠는 2017년 2종을 추가할 예정이다.
BMW 530e iPerformance : 벤츠의 뒤통수를 칠 기세
530e는 신형 5시리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버전이다. 2.0L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에 e드라이브라고 부르는 전기구동 시스템을 더해 총출력 252마력, 52.6km/L의 연비, CO2 배출량 44g/km를 목표로 한다. 9.2kWh 리튬이온 배터리는 뒷좌석 아래 실었다. EV 모드 최고속도는 140km/h이고 최대 50km를 주행할 수 있다. 0→100km/h 가속성능은 6.2초로 E 350 e와 같다.
중국에서 만들어 파는 BMW X1 x드라이브25Le i퍼포먼스도 볼만하다. 이것은 X1 롱 휠베이스 모델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버전이다. 3기통 1.5L 터보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로 앞바퀴를 굴리고 전기모터로 뒷바퀴를 굴린다. i8의 구동계를 뒤집어놓은 것 같은 이 시스템은 X1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의 225xe, 미니 컨트리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도 사용된다.
미니 쿠퍼 S E 컨트리맨 ALL4
쿠퍼 S E 컨트리맨 ALL4는 미니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다. ‘쿠퍼 S’이니 성능이 낮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총출력 224마력, 총토크 39.7kg·m로 0→100km/h 가속 6.9초의 성능을 보인다. 65kW(88마력) 전기모터는 2단 싱글 스피드 변속기를 거쳐 뒷바퀴를 굴리며 EV 모드로 125km/h의 최고속도와 40km의 주행거리를 커버한다. 뒷좌석 아래에 실린 7.6kWh 배터리는 3.6kW 월박스를 이용할 경우 2시간 15분만에 완전 충전이 가능하다. 연비는 47.6km/L, CO2 배출량은 49g/km로 E 350 e와 같다.
BMW그룹은 BMW i 브랜드의 출범 만3년째인 2016년 11월까지 총 10만대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i3 6만대, i8 1만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i퍼포먼스) 3만대다.
Porsche Panamera 4 E-Hybrid : 경주용차와 수퍼카의 혈통
포르쉐에게 하이브리드는 지속 가능성과 고성능을 동시에 의미한다.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제패한 919 하이브리드, 수퍼카 역사에 하이브리드카의 페이지를 남긴 918 스파이더가 좋은 예다. 그럼에도 기존 파나메라 하이브리드는 다른 버전에 비해 굼뜨고 허약한 체질이라는 이미지를 가졌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파나메라가 2세대로 진화하면서 하이브리드도 포르쉐 스포츠 세단에 어울리는 특징들을 갖게 됐다.
신형 V6 2.9L 바이터보 엔진은 330마력, 45.9kg·m의 힘을 낸다. 이것만으론 약하다. 기존 모델이 V6 3.0L 수퍼차저 엔진으로 333마력을 냈으니 말이다. 여기에 100kW(134마력), 40.8kg·m 전기모터를 조합했다. 구형은 95마력 정도였다. 이제 모터만으로 최고속도 140km/h를 낼 수 있다. 시스템 출력이 구형보다 40마력 높은 456마력에 이르고, 71.4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모델명에선 ‘S’가 떨어져나갔지만 출력만 보면 신형 파나메라 4S(440마력)보다도 높다.
918 스파이더의 시스템
주행특성도 달라졌다. 가속페달을 80% 이상 밟아야 전기모터가 작동하던 이전과 달리 엔진과 모터가 즉각적으로 움직이도록 개선했다. 이를 두고 포르쉐는 ‘918 스파이더처럼’이라고 설명한다. 모터를 품은 변속기는 다른 2세대 파나메라처럼 8단으로 진화한 PDK(포르쉐 듀얼클러치)다.
이전 파나메라 하이브리드의 8단 자동변속기와 달리 처음부터 하이브리드 버전에 맞도록 모듈구조로 설계했다. 구동력은 이름의 4가 의미하듯 네바퀴로 배분되어 0→100km/h 가속을 4.6초(구형은 뒷바퀴굴림, 5.5초)에 끊는다. 그리고 전기모터의 도움을 받아 278km/h의 최고속도를 낸다.
트렁크 바닥 아래 실은 리튬이온 배터리는 용량이 9.4kWh에서 14.1kWh로 커졌다. 완전충전까지 3.6~5.8시간이 소요되고, EV 모드로 최대 50km를 주행할 수 있다. 주행 모드는 하이브리드 전용인 E-파워, 하이브리드 오토, E-홀드, E-차지 외에 스포츠 플러스 모드까지 갖췄다.
Infiniti Q50S : 두말이 필요없는 중산층 수퍼카
2011~2012년 인피니티 M35h는 기네스 기록 도전과 포르쉐 파나메라 하이브리드를 제치고 달리는 광고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하이브리드카’를 자처했다. ‘고성능=프리미엄’을 내세우며 디젤이나 다운사이징에는 콧방귀를 뀌던 시절이다. 벤츠에서 가져온 디젤 엔진과 배기량을 낮춘 터보 가솔린 엔진을 갖춘 지금도 인피니티는 고성능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렉서스 하이브리드와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F1에서도 하이브리드 기술을 쓰는 요즘 인피니티가 르노 스포츠 F1팀의 ‘테크니컬 파트너’로 활동하는 것도 그런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Q50S 하이브리드는 M35h의 정신적 후계라 할 만하다. M35h에서 이름을 바꾸고 모양을 살짝 다듬은 Q70 하이브리드(한국에선 팔지 않는다)가 현역으로 있지만 말이다. Q50S와 Q70 하이브리드는 파워트레인 구성이 같다.
V6 3.5L 306마력 엔진에 50kW(68마력) 전기모터와 듀얼클러치 컨트롤, 7단 자동변속기, 리튬이온 배터리를 조합한 ‘인피니티 다이렉트 리스폰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쓴다. 전기만으로 100km/h의 속도를 내고 시스템 출력은 364마력이다. Q50를 움직이기엔 차고 남는 힘이다.
세계 최초의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인 다이렉트 어댑티브 스티어링도 Q50S가 자랑하는 무기다. 우리나라에서는 뒷바퀴굴림(RWD)만 팔지만 해외에는 네바퀴굴림(AWD)도 있다. AWD 모델이 0→100km/h 가속에서 유리한 경우도 있는데, Q50S는 RWD 5.1초, AWD가 5.4초다. 아무튼 본지에서 비교 테스트 후 총평한 것처럼, 벤츠 C 450 AMG의 3분의 2 가격으로 동등한 성능과 40% 뛰어난 연비를 누릴 수 있는 차다.
Nissan e-POWER : 주유해서 타는 전기차
우리나라에서 판매 중인 닛산 무라노는 2.5L 수퍼차저 엔진과 전기모터, CVT와 듀얼클러치 컨트롤을 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을 쓰고 있다. 인피니티 QX60 하이브리드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전 무라노가 V6 3.5L 엔진으로 친숙했던 차라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배기량과 실린더를 덜어낸 대신 힘은 과급기로 보충하고 출발이나 급가속 등 엔진 효율이 떨어질 때는 전기모터가 나서는 콘셉트는 요즘 하이브리드카들에 흔하다. 이렇게 해서 2.5L 엔진으로 3.5L 성능을 내고, 연비는 2.0L 수준으로 맞춘다는 콘셉트다.
닛산은 얼마전 북미 시장의 무라노 아랫급 SUV 로그에도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버전을 추가했다. 2.5L 170마력 엔진을 탑재한 일반형과 달리 하이브리드카는 143마력의 2.0L 엔진을 쓴다. 변속기는 엑스트로닉 CVT이고 30kW(40마력) 모터와 듀얼클러치 컨트롤, 리튬이온 배터리를 조합해 총출력 178마력을 낸다. 일반형보다 힘이 부족하지 않으면서 연비는 월등히 낫고 실내공간이나 적재공간은 거의 차이가 없는 점을 내세운다.
그런가 하면 닛산이 2016년 11월 소형차 노트에 접목해서 출시한 e-파워는 동급의 양산차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직렬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25만대 이상 팔린 베스트셀링 전기차 리프의 구동계를 사용하되 전원공급 역할을 1.2L 엔진에 맡겨 충전의 불편함을 해소했다. 바퀴를 구동하는 것은 전기모터의 몫이고, 엔진은 발전기 역할만 한다. 배터리는 앞좌석 아래쪽에 탑재했다. 일본 연비 37.2km/L로, 병렬 하이브리드 소형차 토요타 아쿠아의 37.0km/L보다 높다.
Chrysler Pacifica Hybrid : 미국 최초의 하이브리드 미니밴
2016년 12월 생산을 시작한 퍼시피카 하이브리드는 V6 3.6L 엔진에 2개의 모터를 결합해 260마력의 총출력을 확보했다. 크라이슬러 자체설계인 듀얼모터 트랜스미션이 클러치를 단속해 2개의 모터를 앞바퀴 구동에 참여시킨다. 2열 좌석 아래에 16kWh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해 EV 모드로 50km를 갈 수 있고 240V 레벨Ⅱ 충전기를 이용하면 2시간만에 충전을 끝낼 수 있다.
연비는 80MPGe로, 34km/L쯤 된다. 배터리와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면 850km를 주행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참고로 2.0L 터보+수퍼차저 엔진을 쓴 볼보 XC9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T8)의 미국 연비는 54MPGe(23km/L),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99MPGe(42.1km/L)다.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그동안 이도저도 아닌 구성과 미미한 연비개선 효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강화되는 연비 및 환경규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리카르도 주도로 컨소시엄을 이룬 영국 부품회사들이 개발한 ADEPT(진보된 디젤-전기 파워트레인)는 48V 전기 시스템을 이용한 마일드 디젤 하이브리드카다.
풀 하이브리드카에 가까운 연비를 훨씬 적은 비용으로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내놓은 포드 포커스 1.5L 디젤은 기계식 워터펌프, 오일펌프, 에어컨 컴프레서를 48V 전기 시스템으로 교체했고 엔진에 벨트로 연결된 스타터 제너레이터(BSG)를 붙였다. 전기모터는 감속 때 납 카본 배터리를 재충전하고, 가속 때 엔진에 힘을 보탠다. 터보차저를 돌리고 나온 배출가스도 발전용 터빈을 돌려 배터리를 충전하는 용도로 활용한다.
벤츠도 2017년 내놓을 신형 가솔린 엔진들에 관련기술을 채택했다. 기반 전기 시스템을 48V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스타터와 제너레이터를 통합해 에너지 회생, 부스트, 출발과 저속주행을 전기로 해결하는 기술을 일반차에 적용한다.
직렬 6기통 3.0L 엔진에는 통합형 스타터 제너레이터(ISG), 4기통 2.0L 엔진에는 벨트구동 스타터 제너레이터(RSG)를 붙인다. 스타트모터와 제너레이터의 역할을 강력한 전기모터로 통합한 ISG는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배치되어 가속 때 엔진에 힘을 보태고, 회생 에너지로 배터리를 충전한다. RSG보다 콤팩트한 구조여서 크기 대비 출력이 높다. 기존 제너레이터 자리에 들어가는 RSG는 엔진과 벨트로 연결되며 출발, 가속, 에너지 회생 과정에서 엔진을 보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