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F ‘TOPLESS’ PARTY
2017-01-20 09:21:19 글 김종우 기자
SUV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자동차 시장의 블루오션이라 평가 받았던,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어 이젠 그 어떤 세그먼트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평범한 SUV를 내놔봐야 주목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메이커들은 새로운 판로를 찾았다. 바로 세그먼트의 세분화다. 해치백의 키를 늘여 소형 SUV를 만들고, 슬로핑 루프라인을 적용해 쿠페형 SUV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안그럴 것 같았던 메이커들까지 뛰어들어 GT를 능가하는 초호화 SUV, 스포츠카를 위협하는 고성능 SUV를 만들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고 있는 원조 SUV 메이커들의 심정은 어떨까? 바로 지프와 랜드로버 이야기다. 올해로 지프는 75년, 랜드로버는 68년이 됐다. 아무도 관심 안 가져줄 때도 묵묵히 한길을 걸어왔고, 여기저기 팔려 다니며 고생도 했다.
이제 좀 살림이 펴질까 했는데 너도나도 숟가락을 들고 덤빈다. 역사와 정통성만 내세우기엔 후발주자들의 도전이 워낙 거세다. 두 브랜드도 적극적으로 판로를 찾아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지프는 최초의 SUV로 기록되는 윌리스 MB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초심으로 돌아가기. 그 첫번째 모델이 레니게이드다. 윌리스 MB의 디자인을 꼭 닮은 레니게이드는 소형 SUV붐을 타고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2015년 지프 글로벌 판매량 20% 증가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오죽하면 고담시 최고의 갑부 브루스 웨인도 검게 도색해 타고 다닌다.
지프는 레니게이드에 그치지 않고 75주년 에디션을 전 모델에 심어놓았다. 밀리터리 컬러와 ‘1941’ 배지를 잔뜩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프의 복고풍 도입은 지난해 하반기에 공개된 신형 컴패스에도 적용됐다.
반대로 랜드로버는 파격으로 대응하고 있다. 먼저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난 쿠페형 SUV 레인지로버 이보크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날렵하고 스포티한 디자인은 레인지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디스커버리로까지 확대됐다.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는지 컨버터블이라는 또 한번의 파격을 시도했다.
2012년 이보크 컨버터블 콘셉트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양산이 될까 의아했지만 지난해 보란듯이 거대한 소프트톱이 달린 양산형을 내놓았다. 국내에서는 올 봄 부산 모터쇼에서 공개한 뒤 8월 판매를 시작했다. 컨버터블 SUV가 낯설긴 하지만 이보크가 최초는 아니다. 쉐보레와 닛산도 각각 2004년과 2011년에 지붕이 열리는 SUV를 출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너무 일찍 나온 탓인지 후속모델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종됐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SUV의 원조인 지프 윌리스 MB는 루프가 없다. 즉 SUV는 뚜껑이 없는 형태가 원래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면 랜드로버도 파격이 아닌 과거로의 회귀를 택한 것인가?
어찌됐건 이보크 컨버터블은 현재 유일하게 지붕을 여닫을 수 있는 SUV다. 하지만 이렇게 단정지으면 섭섭해 할 모델이 있다. 바로 지프 랭글러다. 랭글러는 이보크처럼 버튼으로 지붕을 여닫을 수는 없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지붕은 물론이고 4개의 도어도 떼어낼 수 있다. 70여년 뚝심을 이어온, 뚜껑 열리는 두 모델을 불러낸 이유다.
랭글러는 정통 오프로더다. 딱 봐도 어떤 길이든 돌파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승차는 랭글러 중에서도 오프로드에 초점을 맞춘 랭글러 루비콘이다.
곳곳에는 윌리스 MB 아이콘이 담겨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껏 치켜 올라간 차체. 여기에 245/75R 17의 거대한 타이어와 커다란 휠하우스, 진입각과 탈출각 확보를 위해 높고 투박한 앞뒤 범퍼가 정통 오프로더의 오라를 풍긴다. 길이도 4.7m나 되고 너비 1.8m에 범퍼와 패널이 큼지막해 실제로 보면 더 커 보인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튀어나온 두툼한 도어 핸들과 힌지다. 오프로더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이보크 컨버터블은 아직 눈에 익지 않아서 그런지 어색하다. 랜드로버라면 모름지기 디펜더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두툼한 B필러와 C필러 자리에 커다란 소프트톱이 있는데, 루프라인은 이보크 쿠페마냥 살짝 슬로핑돼 있다.
랭글러와 달리 곡선을 많이 사용해 볼륨감이 넘친다. SUV의 외형에 스포츠 로드스터의 특징을 가미한듯 전면부의 커다란 흡기구, 측면의 에어 브리더, 리어 스포일러, 듀얼 배기 파이프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제법 큰 차체 때문에 날렵하다는 느낌은 덜하다.
랭글러와 달리 곡선을 많이 사용해 볼륨감이 넘친다. SUV의 외형에 스포츠 로드스터의 특징을 가미한듯 전면부의 커다란 흡기구, 측면의 에어 브리더, 리어 스포일러, 듀얼 배기 파이프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제법 큰 차체 때문에 날렵하다는 느낌은 덜하다.
이제 두 차의 묘미인 루프를 제거할 차례. 이보크는 너무나 쉽게 원터치로, 우아하게 루프가 접힌다. 현재 판매되는 소프트톱 중 가장 사이즈가 커서 Z자 형태로 접혀 들어간다. 벨트라인 위쪽만 보면 전형적인 2+2의 로드스터인데,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면 우람한 하체가 눈에 들어온다.
랭글러의 루프를 제거하려면 이것저것 많이 필요하다. 별모양 렌치와 건장한 성인 두명 이상, 탈착 후 루프를 보관할 공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먼저 실내로 들어가 롤케이지와 루프의 체결고리를 풀고 별모양 렌치로 사방에 박혀 있는 나사를 힘껏 풀어주면 된다. 참 쉽다. 10개쯤 되는 나사를 풀었으면 적재함 스윙도어를 열고 루프를 들어내야 한다. 이게 꽤 무겁다. 익숙해지면 혼자서도 거뜬하다지만 우린 세명이 낑낑거렸다. 계획대로라면 네짝의 도어도 떼야 하지만 루프만 없애도 야성미가 풍기니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절대로 힘들어서가 아니다.
두 차의 루프를 걷어내고 보니 확연히 다른 성격이 드러난다. 랭글러는 캐빈룸을 둘러싼 사다리꼴의 롤케이지가 눈에 띈다. 정통 오프로더답게 바위를 오르다 전복돼도 승객은 툭툭 털고 걸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이보크 컨버터블은 당연히 온로드 지향이다. 전복 시 커다란 차체를 A필러와 롤바(전복 때만 튀어나와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다)로 지탱해야 하는데, 요철이 많은 오프로드에서는 쓰임새가 떨어진다.
실내를 보아도 두 차의 성격은 극명하게 갈린다. 랭글러는 장갑을 끼고 조작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이 큼지막하다. 이 때문에 디자인과 디테일이 투박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필요한 기능은 다 있어 불편함이 없다. 다만 현지화가 미흡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영어발음이 유창해야 쉽게 조작할 수 있다.
이보크 컨버터블은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모델인 만큼 실내 구성이 세련되었다. 유광 블랙 마감재와 가죽을 넉넉하게 사용해 고급스럽다. +2 개념의 2열 시트는 키 큰 남성이 앉기에는 비좁고, 적재함은 이보다 더 좁다. 접힌 루프가 공간을 차지해 적재함의 용량은 250L 남짓이다. 실용성을 주무기로 내세우는 SUV의 적재함이 로드스터보다 작으니 2열을 짐칸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랭글러는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다. 이 정도 덩치면 당연히 디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시동을 거니 조용한 아이들링음이 낯설다. 진동도 작고 출력도 큰 덩치를 움직이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연비는 양보하자. 몸집이 거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움직임도 굼뜨지 않아 마음에 든다. 다만 시야각이 높은데도 사각지대가 많으니 주위를 잘 살피면서 운전해야 한다.
차체가 훌쩍 올라간 만큼 서스펜션의 응답력이 풍부하다. 반대로 말하면 고속 안정성은 조금 떨어진다. 차체가 크고 윈드실드도 거의 직각이어서 속도계 바늘이 100km/h에 다다르면 사방에서 풍절음이 들려온다. 차로를 넘나들 때는 휘청거린다.
오프로드에 들어가면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다. 굴림방식을 2H-4H-4L로 조정할 수 있고, 센터 디퍼렌셜 잠금 기능에, 힐 디센트 기능까지 있다. 여기에 앞바퀴축 스테빌라이저 바를 전동식으로 탈부착하는 기능도 있어 아무리 험한 길도 헤칠 수 있다. 든든한 외관과 기능이 자신감을 더욱 부추긴다. 그렇다고 자만하지 말도록.
2.0L 180마력 디젤 엔진으로 움직이는 이보크 컨버터블은 힘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부터 된다. 차무게가 2톤에 육박하고, 날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달려보니 걱정한 대로였다. 초반에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디젤 엔진의 장점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또 가솔린 랭글러를 먼저 타봐서 그런지 소음과 진동이 심했다.
루프를 접으면 덜덜거리는 엔진 소리 말고 매력적인 배기음이 마음을 울리는 게 컨버터블의 매력 아니던가? 속도가 붙으면 조금 줄어들기는 하지만 소프트톱을 뚫고 들어오는 디젤음은 여전하다. 가속감도 별로고, 몸집이 커 코너링이나 급격한 거동 변화에 허둥거리고 이래저래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기자처럼 이보크 컨버터블에 로드스터의 잣대를 들이밀거나 너무 많은 것을 바라서는 안된다. 그래도 루프를 열고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건 여러가지 단점을 상쇄할 수 있는 커다란 매력이다. 바닥에 찰싹 들러붙은 오픈카가 아니기에 이보크 컨버터블은 위에서 내려다보며 오픈 에어 드라이빙을 즐기게 해준다. 또한 괴상한 생김새 때문에 어딜 가나 주변의 시선을 모으니 으쓱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게다가 가격도 비싸다). SUV 명문인 만큼 오프로드 기능은 기본적으로 탑재해 일반적인 비포장도로 주행은 문제 없다.
루프를 열 수 있다는 공통점으로 시승을 하게 됐지만 사실 두 차의 성격은 극명하게 갈린다. 랭글러는 정통 오프로더답게 오프로드를 헤치는데 기능이 집중됐다. 반면에 이보크 컨버터블은 도시에서 주로 타는 요즘의 트렌드를 반영해 온로드 주행에 맞게 세팅된 SUV다.
뻥 뚫린 하늘을 보며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랭글러와 이보크 컨버터블이 지닌 공통된 특징이다. 어울리는 장소가 오프로드냐 포장길이냐 그것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