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공기를 다루는 방법
2017-02-06 15:40:48 글 ELIAS LIM
공학에서는 ‘유체’를 지배해야 한다. 흐르는 물체를 뜻하는 유체는 기체와 액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선박은 물을, 항공기는 공기를 지배해야 한다. 자동차는 좀 특이하다. 타이어는 땅과 접촉하고 차체는 공기와 맞닿는다. 때문에 접지력의 근간이 되는 마찰력을 지배하는 동시에 공기도 다스려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섭다는 말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는 자동차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일단 자동차는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다. 저항이 커지면 속도를 내기 힘들다. 저항을 가르며 빨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하고, 연료도 더 많이 소모된다. 공기가 일으키는 소음도 만만치 않다. 빠르게 달리면 공기에 의해 자동차가 뜨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
공기를 잘 활용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열이 나는 부분에 공기를 흐르게 하면 냉각효과가 커지고, 차가 뜨는 현상을 반대로 이용해 위에서 내리누르면 지면에 달라붙는 효과를 낸다.
공기역학의 완전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F1 경주차다. 수백분의 1초 단위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공기저항을 줄이는데 그치지 않고, 공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성능을 높여야 한다. F1 경주차 외에 다른 경주차들도 대부분 공기역학을 최대한 활용한다.
안타깝게도 모터스포츠의 쓰인 기술을 양산차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거주성과 공간 활용성을 우선하기 때문에 차체를 변형시키거나 공력부품을 다는데 한계가 있다.
업체들은 자동차의 모양과 심미성을 감안해 공기역학을 적용한다. 따라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숨어서 제구실을 하는 부품도 있다. 당장 독자의 자동차를 살펴보라. 평범한 대중차든 고성능차든 공기역학을 고려한 디자인과 부품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독자의 자동차는, 실은 공기를 지배하는 에어로다이내믹 머신이다.
Spoiler(스포일러)
범퍼 아래에 달아서 공기를 위아래로 분리,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차가 떠오르는 현상을 막는다. 스커트 또는 스플리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차체 앞쪽의 접지력을 높이는 일도 한다. 스포일러의 형상이나 각도에 따라 공기를 라디에이터로 보내 냉각효과를 높일 수 있다.
Air Curtain(에어커튼)
자동차 공기저항의 약 15%가 휠 주변부에서 발생한다. 에어커튼은 휠하우스에서 발생하는 와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치하는데, 앞범퍼 끝단에 구멍을 뚫어 타이어쪽으로 바람이 빠져나가도록 유도한다. 이 공기가 커튼 역할을 해 휠 주변의 공기흐름을 부드럽게 만든다.
Air Scoop(에어스쿠프)
차체 아래로 유입되는 공기를 줄이는 장치. 공기가 위로 흐르도록 유도한다. 그릴을 통해 들어간 공기가 보닛에 뚫린 구멍을 통해 나간다.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차체를 누르기 때문에 리어 스포일러처럼 다운포스를 만들어낸다.
필요할 때만 열리는 그릴이 요즘 대세다
Active Grill Shutter(액티브 그릴 셔터)
프론트 그릴 안에 공기의 흐름을 단속하는 셔터가 달린다. 여름철 장거리 주행처럼 엔진이 열을 받는 상황에서는 셔터를 열어 공기의 양을 늘리고, 보통 때는 셔터를 닫아 공기저항을 줄인다.
메르세데스는 1940년대부터 경주차에 루버를 사용했다
Louver(루버)
루버는 바람 방향을 조절하는 날개다. 에어컨 송풍구나 환기구에 달려 있는 얇은 판을 떠올리면 된다. 자동차 루버는 주로 보닛에 달리며, 엔진 열을 식히기 위해 보닛에 얇은 구멍을 여러 개 뚫는다. 과거에는 루버의 개수가 엔진 성능을 나타내는 지표로 여겨지기도 했다.
요즘에는 루버를 쓰는 차가 드물다. 쓴다고 하더라도 보닛에 구멍을 뚫지 않고 추가 부속을 끼우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루버는 뒷유리에도 쓰이는데, 공기역학 효과보다는 햇빛을 가리는 목적이 크다.
Air Dam(에어댐)
차체 아래로 흐르는 공기를 최소화한다. 보통 범퍼 아래에 바람막이 같은 구조물을 한단 덧댄 형태다. 다운포스는 비행기 날개와 반대 효과를 낼 때 커진다. 차체 아래는 공기가 빠르게 지나가고 상부는 서서히 흐르게 해서 아래쪽 압력을 줄이는 것이다. 에어댐은 하부로 들어가는 공기의 양을 줄여 아래쪽이 진공상태가 되도록 유도한다. 압력이 낮아지면서 차체가 노면에 붙는 효과가 생긴다.
Canard(카나드)
주로 앞범퍼에 부착하는 윙 형태의 부품으로 범퍼를 눌러 다운포스를 높이는 효과를 낸다. 리어 윙처럼 큰 힘은 아니지만 분초를 다투는 경주차에서는 효과를 발휘한다. 양산차에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주로 멋을 내는 용도로도 쓰인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효과가 큰 에어로핀
Aero Fin(에어로핀)
최근 토요타와 렉서스의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사이드미러 지지부를 보면 보일락말락 하는 가늘고 긴 형태의 핀이 붙어 있다. 토요타는 이것을 ‘에어로 스테빌라이징 핀’이라고 부른다. 차 옆쪽의 공기를 부드럽게 해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차체 흔들림이 줄어들고 핸들링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항공기 날개 끝을 살짝 접어올려 와류를 줄이는 ‘윙렛’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F1에서 노하우를 쌓은 토요타가 모터스포츠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한 사례다.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토요타 아키오 사장의 주도로 개발됐다.
Skirt(스커트)
차체 옆면을 타고 흐르는 공기와 하부로 흘러 들어가는 공기의 간섭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고속으로 달릴 때 양력을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 차체 아래로 흐르는 공기를 줄이면서 매끄럽게 지나가도록 유도한다.
NACA Duct(NACA 덕트)
스포츠카의 옆면에 공기를 넣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 NASA의 전신인 미항공자문위원회(NACA)가 처음 사용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면서 흡기효율을 높이는 장치로, 항공기와 경주차, 일부 수퍼카에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 개발되어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모양은 대개 길쭉한 삼각형인데, 길이와 너비, 기울기 등을 계산해 가장 효율적으로 만든 형태다. 자동차 측면 외에 보닛에 달기도 한다. 자동차 측면 공기구멍(덕트 또는 에어벤트라고 한다)을 뚫어 저항을 줄이거나 냉각효과를 높인다.
Under Cover(언더커버)
자동차 밑바닥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공기의 흐름이 불규칙해지고, 차의 속도도 느려진다. 따라서 공기가 최대한 빨리 지나갈 수 있도록 커버를 씌어 차바닥을 매끈하게 만든다. 전체를 씌울 수는 없고, 가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가린다.
Aerodynamic Wheel(에어로다이내믹 휠)
자동차 휠은 달릴 때 공기저항을 받기 때문에 뚫린 부분을 최소화한다. 저항을 줄여 연비를 높이려는 친환경차에 주로 쓰인다. 고성능차는 냉각효과 때문에 이런 휠을 쓰지 않는다.
Spoiler(스포일러)
스포일러는 차 뒤쪽에 붙어 난기류를 줄이는 부품이다. 해치백은 테일게이트 위쪽, 세단이나 쿠페는 트렁크 리드에 붙인다. 프론트와 마찬가지로 범퍼에도 스포일러가 붙는다. 윙은 스포일러와 다르다. 스포일러는 차체에 밀착되어 있는 반면 윙은 일정 거리를 두고 지지대로 연결되어 있다.
스포일러가 난기류 제거 목적이라면 윙은 공기가 차체를 누르는 힘(다운포스)을 발생시키는 역할에 치중한다. 스포일러와 윙은 역할이 각기 다르지만 효과가 많이 겹치기 때문에 두 용어를 혼용하기도 한다.
트렁크 리드가 살짝 올라가게 디자인하기도 하는데, 이게 스포일러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그 모습이 오리의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덕테일(duck tail)이라고 한다.
Diffuser(디퓨저)
공기를 발산하는 역할을 하며, 범퍼 아래쪽 칸막이같이 생긴 부분을 말한다. 디퓨저는 자동차 하부에 흐르는 공기를 뒤로 뽑아내는 역할을 한다. 공기가 빨리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준다고 보면 된다. 공기흐름이 빠를수록 압력이 낮아지고 위에서 누르는 힘이 커진다. 디퓨저는 보통 위에서 아래로 향한 가느다란 핀과 결합된다. 핀은 공기의 방향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공기가 질서정연하게 빠져나가도록 유도해 뒤쪽의 와류 발생을 방지한다.
Tail Lamp(테일램프)
테일램프가 에어로파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요즘 테일램프는 모서리에 각을 세운 경우가 많다. 차체와 맞물리지 않고 살짝 튀어나오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공기가 안쪽으로 말려들어는 것을 방지해 와류를 줄인다. 비슷한 원리를 범퍼에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Wiper(와이퍼)
공력장치는 아니지만 공기역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단이나 쿠페는 트렁크가 돌출돼 있어 앞에서 뒤로 공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그래도 와류는 생긴다). 하지만 해치백이나 SUV는 뒤가 수직으로 떨어져 와류가 심해진다. 와류는 주로 해치 유리 부근에서 생기기 때문에 바닥에서 튀어 올라온 이물질이나 먼지가 더 많이 달라 붙는다. 이 때문에 리어 와이퍼가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