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로메오 최초의 SUV 스텔비오 콰드리폴리오가 2016 LA 오토쇼에서 공개됐다. 스텔비오는 줄리아를 통해 공개된 알파로메오의 최신 디자인이 반영된 모델. 한눈에 봐도 멋지고 잘 달리게 생겼다. 더군다나 고성능 버전 콰드리폴리오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알파로메오의 첫 SUV는 판매 전부터 커다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기자는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스텔비오라는 이름이다. 스텔비오 패스. 몇년 전 영국 <탑기어>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한 바로 그곳이다. 세계 최고의 와인딩 로드로 꼽히는 이 도로명을 차이름으로 쓰다니…. 이름만 보면 스텔비오는 잘 달리고 운전 재미가 무척 뛰어난 차일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현대 티뷰론은 스페인어로 상어를 뜻하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전자는 차와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지는데, 후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후속차 투스카니 역시 이탈리아 북서부 토스카나에서 이름을 따온 것인데 영 아니다. 토요타 시에나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고 쌍용차 티볼리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이름을 지을 때 유명한 도시나 명소의 이름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그 차에 담아내고 싶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스포티한 차는 와인딩 로드를, SUV는 거친 지형을, 세단같이 편하게 타야 하는 차는 휴양지의 이름을 선택하는 경우가 좋은 예다.
Alfa Romeo Stelvio - Stelvio Pass
스텔비오 패스는 이탈리아 북부와 스위스 남부의 경계를 이루는 스텔비오 국립공원에 있는 고갯길이다. 스텔비오 패스의 핵심은 동쪽에서 올라가는 갈 지(之)자 형태의 블라인드 헤어핀이다. 해발 2,757m까지 이어지는 48개의 헤어핀 코스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의 진수를 보여준다. 좁고 타이트한 코너를 빠르고 안전하게 오르기 위해서는 코너링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알파로메오가 첫 SUV에 스텔비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코너링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SUV라고 하면 으레 오프로드 능력을 강조해왔지만 요즘은 스포티한 온로드형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텔비오도 이름을 통해 빠릿하게 잘 달리는 차라는 걸 암시한다. 먼저 데뷔한 줄리아 콰드리폴리오로 증명된 매서운 성능에, 단단한 근육질 디자인만 봐도 스텔비오 패스 정도는 가뿐하게 정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알파로메오 스텔비오는 이름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와 자동차가 잘 어울린다. 스텔비오를 몰고 스텔비오 고갯길을 빠르게 달리면 정말 재미있을 것이다.
Toyota Sienna - City of Sienna
국내에서 비즈니스 미니밴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토요타 시에나는 잘 알려진 것처럼 북미 시장을 타깃으로 한 모델이다. 1997년 미국에서 데뷔를 했는데, 이때부터 이미 길이 4.9m에 육박할 정도로 큰 덩치를 자랑했다. 현재 판매 중인 시에나는 2010년 데뷔한 3세대 모델이며 고급스러운 디자인, 다양한 편의장비를 장점으로 내세운다. 덩치는 1세대와 비교해 더욱 커져 길이 5,085mm에 휠베이스도 3,030mm에 이르는 거구다.
시에나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중세 도시 시에나에서 갖고 왔다. 시에나는 중세 시대의 문화재와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아마도 토요타가 관광도시 시에나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즐겁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덩치 큰 미니밴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뻗어 있는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시에나는 유럽에서도 판매되지 않는 모델이다. 미국 시장을 위주로 판매하는 차이니, 미국 도시 이름을 사용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Seat Ibiza - Ibiza Island
스페인 자동차 메이커인 세아트는 자국의 지명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간판 모델인 레온(Leon)은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다. 레온 아랫급으로는 B세그먼트 해치백 이비자가 있고, 과거에는 마르벨라와 톨레도도 있었다. 이비자는 지중해에 떠 있는 작은 섬으로, 따뜻한 날씨와 천해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1년 내내 관광객이 모여들어 흥이 넘치는 곳이다.
1984년 데뷔해 현재 4세대(2008년 데뷔)가 나온 이비자는 젊은층이 주로 타는 해치백이다. 젊고 유쾌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여기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운전 재미까지 갖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흥이 넘치는 휴양지 이비자를 모델명으로 쓴 게 아닐까?
툰드라는 1년 중 250일 이상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는 지역이다. 또한, 연평균 기온이 섭씨 0도 이하인 탓에 나무가 자라기 힘들다. 보통 북극에 가까운 시베리아와 캐나다의 북극권을 툰드라로 분류한다. 툰드라 지대를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생명이 살기 힘들 정도로 척박하고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
토요타가 풀사이즈 픽업을 툰드라라고 명명한 것은 악천후와 험한 지형을 쉽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툰드라는 강한 프레임 보디와 높은 지상고, V8 5.7L 엔진,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갖춘 본격적인 오프로더다. 이 정도 제원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고성능 버전인TRD 프로를 선택하면 된다. 지상고를 높인 오프로드 전용 빌스타인 댐퍼, 알루미늄 스키드 플레이트, 미쉐린제 275/65 R18 오프로드 타이어가 달려 있어 얼어붙은 툰드라를 거뜬히 주행할 수 있을 것이다.
Bentley Mulsanne - Circuit De La Sarthe Mulsanne Straight
현재 벤틀리의 기함은 뮬산이다. 이전에는 T2, S3가 기함 구실을 했다. 덩치가 크고 고급스러웠지만 이름이 최고 모델에 어울리지 않아 개명을 한 것이다. 과연 어떤 뜻이 숨어 있길래 럭셔리카의 최고봉 벤틀리가 뮬산이란 이름을 선택했을까?
뮬산은 바로 르망 24시간 레이스가 열리는 라사르트 서킷의 가장 긴 직선주로, 뮬산 스트레이트에서 갖고 온 이름이다(뮬산은 서킷에 인접한 마을 이름이다). 라사르트 서킷의 1주 길이는 13.629km. 그중 뮬산 스트레이트가 6km다. 이 직선주로는 경주차나 고성능 스포츠카의 최고속도를 경험하기에 최적의 코스로 알려졌다. 실제로 르망 경주차들은 이곳에서 350km/h를 쉽게 넘긴다.
벤틀리가 기함에 뮬산이라는 이름을 쓴 것은 뮬산 스트레이트를 내달리는 경주차처럼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서다. 1920년대 르망 24시간을 주름 잡았던 황금시절을 기념하는 뜻도 담겨 있을 것이다. 뮬산은 512마력짜리 V8 6.8L 트윈터보 엔진을 사용해 0→100km/h 가속을 5.3초에 끝내고 최고시속은 296km/h에 달한다. 길이 5,575mm, 무게 2,685kg의 덩치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성능이다. 고성능 버전의 경우는 0→100km/h 가속 4.9초, 최고속도는 305km/h에 달한다. 이 정도면 벤틀리가 뮬산이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붙일 만하다.
Subaru Outback - The Outback
아웃백은 호주 면적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건조한 내륙지대다. 주로 해안에 거주하는 호주인들이 등지고 사는 지역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아웃백은 대부분이 사막이고, 그외 지역은 깊은 협곡이나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하는 곳이다.
스바루는 자사 SUV에 험난한 지형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강인한 오프로더라는 자신감을 담아 아웃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웃백은 덩치가 크지 않아 운전에 부담이 없고, 정통 SUV 못지않은 주행성능을 자랑한다. 스바루 특유의 수평대향 엔진을 써서 무게중심이 낮고, 뛰어난 기계식 네바퀴굴림을 갖춘 덕분이다.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주요 시장인 북미에서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아웃백의 본고장 호주에서도 인기가 좋아 1996년 출시 후 누적판매 10만대를 돌파했다.
Chevrolet Colorado - State of Colorado
쉐보레의 콤팩트 픽업 콜로라도는 로키산맥이 위치한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콜로라도주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해발 1km 위에 위치하고, 로키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 30개를 끼고 있다. 힐클라임으로 유명한 파이크스 피크(해발 4,301m)도 이곳에 있다.
그러니 콜로라도는 적어도 미국 사람들에겐 험준한 산길과 오프로드를 잘 달릴 것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줄 수 있다. 실제로 콜로라도는 2003년 데뷔 때부터 높은 지상고에 무광 검정 플라스틱을 덧댄 범퍼와 휠아치 등 터프한 매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2012년 나온 2세대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 좀더 부드러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그래도 높은 지상고와 넉넉한 서스펜션 트레블, 네바퀴굴림 등 오프로더의 정체성은 지키고 있다.
터프한 차를 원하는 고객을 위해 오프로드 패키지를 더한 ZR2 버전도 나온다. V6 3.6L 엔진에 오프로드 전용으로 설계된 멀티매틱 서스펜션, 앞뒤 로킹 디퍼렌셜, 스키드 플레이트, 50mm 높아진 지상고, 31인치에 이르는 오프로드 전용 바퀴까지…. ZR2라면 콜로라도의 산악지대를 거뜬히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Chevrolet Malibu - City of Malibu
말리부는 LA 인근에 있는 아름다운 휴양도시로, 연중 따뜻한 기후와 34km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끼고 있다. 하지만 말리부는 우리에겐 쉐보레 중형세단으로 기억되고 있다. 쉐보레가 중형세단에 말리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멋진 해안도로를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차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평범한 세단과 말리부 해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초창기엔 세단 외에 멋진 쿠페와 컨버터블도 있었다.
1964년 데뷔한 이후 1983년 단종될 때까지 말리부는 화려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쿠페와 컨버터블이 라인업의 중심을 이뤘다. 이후 평범한 세단만 판매하다가 국내에 출시된 8세대부터 디자인이 화려해졌고, 현행 9세대는 럭셔리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Hyundai Santa Fe - City of Santa Fe
지명에서 이름을 딴 대표적인 모델이 현대차 싼타페일 것이다. 산타페가 주도인 뉴멕시코주는 오랫동안 스페인 식민지였다가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멕시코 땅이 됐다. 이후 미국과의 영토 분쟁 끝에 1912년 미국의 47번째 주로 편입됐다. 이처럼 복잡한 역사를 지닌 탓에 산타페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라틴계, 앵글로색슨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현대차는 2000년 도시형 SUV를 출시하면서 싼타페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움을 즐기는 차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미국 수출도 고려해 그들에게 친숙한 이름을 붙인 것이다. 크로스오버카가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여러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산타페와 다양한 쓰임새를 자랑하는 도시형 SUV 싼타페가 더욱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Ferrari California T - State of California
2008년 출시된 캘리포니아는 페라리 최초로 V8 엔진을 앞에 얹고 하드톱 지붕을 사용한 컨버터블로 기록된다. 2014년 배기량을 줄이면서 터보차저를 더하고, 디자인을 개선한 캘리포니아 T가 등장했다. 페라리가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차의 콘셉트를 보면 알 수 있다.
페라리라고 하면 날카롭고 자극적인 주행특성이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다. 하지만 이런 특징은 여유롭게 운전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에겐 부담으로 다가온다. 캘리포니아 T는 그 틈새시장을 노린 모델이다. 아름다운 페라리의 지붕을 열어젖히고 느긋하게 달리면서 주변 풍광을 감상하라고 부추긴다.
태평양과 인접한 캘리포니아 서부지역은 기후가 온화하고 풍광이 뛰어난 곳이 많다. 다재다능한 캘리포니아 T와 함께라면 캘리포니아의 모든 곳이 최고의 드라이빙 코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