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자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기치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됐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라고 여겨졌던 공약까지 실천에 옮기고 있다. 무리수라고 생각된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진짜로 멕시코와의 국경 장벽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핵심 공약도 지키지 않는 우리 정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 부분만큼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산업에도 관심이 지대한 것 같다. 그 유명한 ‘트위터 정치’를 통해 연일 협박과 회유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미 GM과 토요타에 미국에서 차를 생산하든가 아니면 세금(border tax, 국경세)을 더 내라고 협박성 멘트를 날렸다. 멕시코 공장 설립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미국 미시간 공장에 투자하겠다고 고개를 숙인 포드에는 “땡큐”라고 화답했다. 현대차도 “미국에 5년간 31억달러(3조7,2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하며 꼬리를 내렸다.
근래의 자동차산업은 다국적화돼 있다. 원가를 낮추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어디서 생산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케팅을 위해 브랜드의 국적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독일차라 하더라도 자료를 뒤져보지 않으면 독일산 부품으로 독일에서 생산됐는지 전문가도 알기가 쉽지 않다. 일본차와 미국차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역수입되는 차도 적지 않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 중 하나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판매규모는 중국에 밀렸으나 오랜 자동차문화를 바탕으로 한 영향력이나 안전, 환경 관련법규 제정 등 자동차산업 전반을 이끌어가는 힘은 단연 세계 최고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동차회사는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현지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지리적으로 유럽, 아시아와 뚝 떨어져 있는 탓에 물류비가 만만치 않은데, 현지생산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놓고 ‘미국산을 사라’(Buy America)고 강조하고 있는 트럼프 시대를 맞아 어떤 회사가 이익을 보고 어떤 회사가 손해를 볼지 궁금하다. 그래서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의 미국 현지생산 현황을 알아봤다.
Hyundai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앨라배마주 주도인 몽고메리(Montgomery)에 있다.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투입해 2004년 6월 완공했다. 10년간의 성공적인 운영으로 현재 약 17억달러(2조원)가 투자된 상태다. 근로자는 3,000여명이고, 하청업체까지 합치면 5,500명이 넘는다.
생산은 2005년 5월에 시작했다. 반경 160km 주변에 토요타, 혼다, 메르세데스-벤츠 등에 부품을 공급하는 공장들이 있어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인기 높은 모델 위주로, SUV 싼타페와 중형세단 쏘나타, 준중형 세단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를 만들고 있다. 4기통 세타 엔진을 만드는 엔진 공장에서는 연간 약 40만기를 생산하고 있다.
Kia
앨라배마주와 조지아주의 경계인 웨스트포인트(West Point)에 있는 기아차 조지아 공장은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약 136km 떨어져 있다. 고속도로로 연결돼 두 공장은 접근성이 대단히 좋다. 약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가 투입된 조지아 공장은 2006년 착공해 2009년 11월 생산을 시작했다.
기아차 역시 미국에서 인기 높은 SUV 쏘렌토를 주력으로, 옵티마(한국명 K5)도 함께 생산한다. 엔진은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공급받는다. 근로자는 3,000여명이고, 연간 생산능력은 36만대 수준이다.
Toyota
미국에서 연간 250만여대를 판매하는 토요타는 현지 생산이 가장 활발한 브랜드다. 켄터키, 인디애나, 텍사스, 미시시피 등에 4개의 조립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웨스트버지니아와 앨라배마에는 엔진 공장이 있다. 켄터키 조지타운에 있는 켄터키 공장에서는 주로 앞바퀴굴림 세단을 만든다.
캠리와 아발론 외에 같은 플랫폼을 쓰는 렉서스 ES350도 이곳에서 생산한다. 가장 큰 켄터키 공장의 연간 생산규모는 55만대 수준이며, 60만기를 만드는 엔진 공장까지 갖추고 있다.
그밖에 인디애나 공장에서는 MPV와 SUV 모델을 주로 만든다. 시에나와 하이랜더가 대표 모델이다. 텍사스 공장은 위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픽업트럭 공장이다. 중형 픽업인 타코마와 대형 픽업 툰드라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미시시피 블루스프링스(Blue Springs)에 있는 미시시피 공장은 가장 최근에 문을 연 공장으로, 2011년부터 코롤라로 대표되는 소형차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참고로 코롤라는 지금 테슬라 공장으로 쓰이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NUMMI(New United Motor Manufacturing, Inc) 공장에서 생산했었다. 미시시피 공장은 NUMMI 공장 폐쇄 후 지은 것이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현지공장을 운영해온 토요타는 연간 140만대를 생산하고 있으며, 근로자는 13만6,000여명이다.
Honda
혼다도 토요타만큼 미국 시장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현지공장을 운영해온 혼다는 오하이오주 매리스빌(Marysville)과 이스트리버티(East Liberty), 앨라배마와 인디애나에 4개의 차체 조립공장을 갖고 있다. 혼다는 특히 오하이오주에 투자를 많이 해왔다. 두개의 조립공장 외에 별도의 엔진 공장과 변속기 공장, 테크니컬센터까지 오하이오주에서 운영하고 있다. 근로자는 1만2,000명이 넘는다.
매리스빌에서는 주로 혼다와 어큐라의 세단을 만든다. 어코드와 어큐라 TLX가 대표 모델로, 연간 44만대를 생산한다. 그밖에 2016년 생산을 시작한 혼다의 스포츠카 2세대 NSX도 매리스빌에서 생산한다. 이 차는 ‘퍼포먼스 매뉴팩처링 센터’(Performance Manufacturing Center)라 불리는 전용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이스트리버티 공장에서는 CR-V와 어큐라 RDX 같은 SUV를 만든다. 연간 생산능력은 24만대다. 그밖에 앨라배마 공장에선 MPV와 중형 SUV를, 인디애나 공장에서는 시빅으로 대표되는 소형차를 생산한다. 두 공장을 합해 연산 59만대 규모(앨라배마 34만대, 인디애나 25만대)다.
Nissan
닛산은 1983년 미국 현지생산을 시작했다. 첫 모델은 픽업트럭이다. 34년이 지난 현재 두군데의 공장에서 연간 114만대의 자동차와 165만기의 엔진을 만들고 있다. 누적생산으로 따지면 1,500만대를 미국에서 만들었다. 닛산의 주요 거점은 테네시주다. 스머나(Smyrna)에 차체 조립공장이, 데커드(Decherd)에 엔진 공장이 있다. 닛산 북미 본사도 테네시에 있으며, 2만2,0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스머나 공장에선 알티마, 맥시마, 패스파인더 같은 D플랫폼을 사용한 차들과 함께, 전기차인 리프를 만든다. 리프용 배터리 공장 역시 스머나에 있다. 인피니티 QX60도 스머나 공장에서 생산한다.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차로는 유일하게 미국에서 생산되는 모델이다. 2003년 오픈한 미시시피주 캔튼(Canton) 공장에선 알티마, 무라노와 함께 타이탄, 프론티어 같은 픽업트럭을 만든다. 연간 생산능력은 45만대 수준이다.
Subaru
후지중공업의 자동차 브랜드인 스바루는 네바퀴굴림 시스템과 수평대향 엔진이 어울린 독특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산 75만대 규모의 크지 않은 회사지만 독특한 구동계와 모터스포츠에서 남긴 화려한 족적 때문에 단단한 마니아층을 갖고 있다. 게다가 합리적인 가격과 함께 뛰어난 성능 및 안전성을 갖춰 미국에서의 인기가 절대적이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성장이 멈추지 않았던 탄탄한 회사다.
높은 인기에 힘입어 비교적 작은 회사로는 이례적으로 인디애나주 라파예트(Lafayette)에서 연산 34만대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1989년 생산을 시작한 인디애나 공장에서는 레거시, 아웃백, 임프레자를 만든다. 토요타가 스바루의 대주주인 관계로 캠리 생산의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2007년부터 연간 3~4만대의 캠리를 함께 생산하기도 했다.
BMW
BMW는 SUV 수요가 많은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Spartanburg)에 공장을 세웠다. 현재 X3, X5와 함께 형제모델인 X4, X6도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1994년 가동을 시작한 스파턴버그 공장은 2014년 규모를 늘여 현재 연간 45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만든 차의 70%는 세계 140여개국으로 수출된다. 세일즈, 마케팅, 디자인, 금융 서비스를 전담하는 북미 본사도 이곳에 있다.
MERCEDES-BENZ
메르세데스-벤츠도 BMW와 마찬가지로 SUV 모델 위주로 생산하고 있다. 앨라배마주 밴스(Vance)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은 1997년 생산을 시작했다. 현재 다임러그룹을 이끌고 있는 디터 제체 CEO가 미국 진출을 지휘했다. 현지공장은 연산 30만대 규모이고, GLE의 전신인 M-클래스의 1세대가 첫 현지생산 모델이었다.
현재 GLE, GLS 같은 중대형 SUV 외에 2014년부터는 C-클래스도 만들고 있다. 2017년형 C-클래스는 북미산 부품 사용률이 가장 높은(80%) ‘진짜 미국차’다. 캐롤라이나주 라슨(Ladson)에서 스프린터(Sprinter) 같은 상용밴을 만드는 공장도 운영하고 있다.
Volkswagen
폭스바겐은 1978년 펜실베이니아주에 공장을 세웠지만 불안정한 인력 수급과 품질 문제로 고생하다가 10년만에 철수했다. 그 후 2011년 재진출해 테네시주 차타누가(Chattanooga)에 공장을 새로 지었다. 미국형으로 개발된 파사트를 만들고 있으며, 올해부터 대형 SUV 아틀라스도 생산한다. 연간 생산능력은 15만대 규모로, 경쟁사에 비해 작은 편이다.
미국에서 만들지 않는 미국차들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오래 전부터 나라 밖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에서 강세를 보이는 포드가 대표적이다. 피아트그룹에 매각된 크라이슬러도 지프 레니게이드를 이탈리아에서 만들어 미국에 역수출한다. 한때 세계 1위였던 GM도 여러 나라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짚어보자.
GM
GM은 독일 오펠, 영국 복스홀, 호주 홀덴 등 많은 해외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당연히 현지공장도 많을 수밖에 없다. 영국 공장은 독일 오펠차를 함께 생산하기도 한다. GM의 대표 브랜드인 쉐보레는 다수의 모델을 한국에서 만든다. 한국이나 멕시코에서 만드는 소형차 스파크, 트랙스 등은 미국에 수출되기도 한다. GM은 중국에서 생산하는 뷰익 및 캐딜락 모델(엔비전, CT-6 PHEV)을 미국에 수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JEEP
지프는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다. 랭글러, 체로키 같은 미국 냄새가 팍팍 나는 SUV는 대부분 오하이오주에서 만들어진다. 그중 랭글러는 북미산 부품 사용률 75%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전반적으로 지프 중에는 ‘진짜 미국차’가 많다. 하지만 브랜드의 막내 레니게이드는 유럽 태생이다. 피아트 푼토와 500X를 만드는 이탈리아 멜피(Melfi) 공장에서 생산되어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FORD
한때 독자적으로 운영되다시피 했던 유럽 포드(Ford of Europe)는 여러 나라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공장이 독일 쾰른과 자를루이(Saarlouis)에 있다. 쾰른에는 유럽 포드 본사도 있다. 자를루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포커스 디젤은 우리나라에도 수입돼, 독일차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역시 국내 판매 중인 쿠가 및 몬데오는 스페인 발렌시아 공장에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