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다. “자동차에서 가장 비싼 부품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엔진과 변속기가 결합된 파워트레인이라고 대답한다. 맞는 말이다. 그 다음은? 예상했겠지만 정답은 시트다. 2만가지가 넘는 자동차 부품 가운데 시트는 파워트레인에 이어 두번째로 비싸며, 그만큼 중요하다.
시트는 자동차와 운전자를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스티어링 휠과 페달도 있지만, 자동차 움직임의 70%는 시트를 통해 전달된다. 신체와 가장 많이 접촉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트는 탑승자의 안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어른과 신체구조가 다른 아기들이 전용 카시트를 쓰지 않을 경우, 머리 부상의 위험이 2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만 봐도 체형에 맞는 시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시트는 이처럼 중요한 부품이기에 자동차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면의 상태를 정확하게 읽으면서 강한 횡G를 버텨내야 하는 스포츠카에는 쿠션이 얇고 딱딱한 버킷시트가 달린다. 반면 장거리를 달리는 버스나 트럭의 운전석에는 별도의 서스펜션이 달린 편안한 시트가 올려진다. 운전자가 오랫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시트 아래쪽의 서스펜션이 차체와 노면의 자잘한 진동을 걸러낸다.
자동차 시트가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시트도 그 기원이 마차로 거슬러올라간다. 널빤지에 가죽을 대서 약간의 쿠션감을 갖춘 초창기의 시트는 마차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8세기 증기기관 자동차와 19세기 후반 내연기관차 모두 이런 방식이었다. 엔진 개발에 몰두하던 때여서 시트를 비롯해 서스펜션, 섀시 등 다른 부분에는 아직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탑승객 시트에는 공을 들였다. 초기의 자동차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코치빌더(Coachbuilder)로 불린 차체 제작소에서 소파같이 고급스럽고 푹신한 시트를 만들었다. 주로 여러명이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벤치 모양이었다. 지금도 세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시트를 ‘벤치시트’라 부른다. 자동차 레이스가 열리고, 직접 운전하는 오너드라이버가 늘어나면서 운전석 시트도 점차 진화했다. 두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투기 시트의 디자인도 영향을 미쳤다.
내연기관의 발전으로 자동차 속도가 올라가고 코너링이 빨라지자 운전자의 몸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버킷시트가 등장했다. 초창기 버킷시트는 1인용 시트 양쪽에 금속판을 덧대 몸이 꽉 끼게 만든 형태였다. 그 후 1인용 시트 프레임에 옆구리 부분을 높인 버킷시트가 등장한다. 투박한 형태지만, 오늘날의 시트와 기본구조가 비슷하다. 이런 형태의 시트는 1920년대에 등장했다.
1인용 프레임을 갖추고, 옆구리를 지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자동차 앞좌석은 버킷시트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안락함과 승하차의 편의성을 위해 쿠션과 옆구리 지지대를 변형했을 뿐이다. 널리 쓰이던 벤치시트는 안전성이 떨어져 뒷자리로 밀려났다.
특이하게도 미국차는 1970년대까지도 앞쪽에 벤치시트를 달았다. 사람들이 널찍한 실내와 편안함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트는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안전벨트 의무규정도 없었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인명피해가 컸다. 실제로 1971~72년 미국에서 일어난 4만건의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안전벨트를 착용하면 사망 73%, 심각한 부상은 53% 이상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늘날과 같은 3점식 안전벨트를 착용한 사람 중엔 사망자가 없었다. 이 같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3점식 안전벨트를 착용하기 쉬운 버킷형 시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며 차체가 작아진 것도 시트의 변화를 부채질했다. 차체가 작아지면서 세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없게 되자 자연히 벤치시트를 다는 차가 크게 줄었다. 1960년대 후반 들어 자동차 시트의 안전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헤드레스트가 달리고 시트에 몸을 밀착시키는 조절식 옆구리 지지대가 등장했다. 충돌사고 때 벨트 아래쪽으로 몸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디자인도 나왔다.
1990년대엔 측면 충격으로부터 몸통을 보호하기 위한 사이드 에어백과 목을 보호하기 위한 액티브 헤드레스트 및 경추보호 시스템이 달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사고 때 운전자와 동승자가 부딪치는 것을 막아주는 센터 에어백, 안전벨트로 인한 충격을 방지하는 좌석벨트 에어백까지 등장했다.
시트의 안락함도 안전성 못지않게 중요하다. 승객은 차에 앉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시트에 몸을 밀착시키고 있기 때문에, 시트의 품질은 곧바로 차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완벽해도 시트가 불편해 운전에 집중할 수 없다면 좋은 차로 평가받을 수 없다. 따라서 고급차일수록 시트에 투자를 많이 한다. 겉으로 보이는 소재와 디자인은 물론이고 내부 프레임과 쿠션을 지지하는 스프링, 쿠션의 소재까지 차급에 따라 달라진다.
시트에 달리는 편의장비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동조절장치. 요즘은 8웨이는 기본, 최대 30웨이로 조절되는 시트도 있다. 웨이(way)는 시트가 조절되는 방향을 의미하며, 앞뒤로 움직이면 2웨이, 등받이 각도까지 앞뒤로 조절되면 4웨이가 된다. 사실 전동조절식 시트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최초의 전동시트는 194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 앞뒤로만 움직이는 2웨이 방식이었다. 1950년대에는 4웨이, 6웨이 전동시트가 등장한다.
지난해말 출시된 신형 링컨 컨티넨탈의 시트는 무려 30웨이다. 몸에 꼭 맞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퍼펙트 포지션 시트’(Perfect Position Seat)라 부른다. 앞뒤, 위아래, 등받이 각도는 물론이고 헤드레스트, 옆구리 지지대, 어깨 지지대, 허벅지 지지대까지 전동으로 조절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열선 및 통풍시트에 민감하다. 가죽시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가죽시트는 겨울에는 차고 여름엔 끈적한 느낌이 들어 열선과 통풍기능이 필요하다. 2000년대 보편화된 기능으로, 이제 경차에도 열선이 옵션으로 준비된다.
온도조절 시트의 역사도 꽤 오래됐다. 열선시트는 1966년 캐딜락이, 통풍시트는 1997년 사브가 처음 발표했다. 여름철에 요긴한 통풍시트를 겨울 나라 스웨덴 출신의 사브가 첫선을 보였다고 하니 그럴듯한 스토리가 있을 것 같지만, 안전운전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겨울에는 열선시트, 여름에는 통풍시트로 사철 쾌적한 환경에서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지붕이 열리는 일부 스포츠카에는 겨울에도 따뜻하게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도록 ‘에어스카프’(Airscarf)란 이름의 장비가 달린다. 이름 그대로 목 주위로 따뜻한 공기를 불어넣어 스카프를 맨 효과를 낸다. 이것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컨버터블에 주로 달린다. 또하나 사치스러운 장비로 ‘액티브 시트 볼스터’(Active Seat Bolster)를 들 수 있다. 코너 등에서 차체가 기울어지는 것을 감지해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옆구리 지지대를 자동으로 부풀리는 장비다. 이 역시 메르세데스-벤츠 및 BMW의 최고급 모델에 달린다.
최근 들어 늘어난 것이 마사지 시트다. 초기에는 대형세단의 뒷자리에 주로 달렸지만 이제는 웬만한 대중차에서도 선택할 수 있다. 마사지 시트가 있으면 장거리를 달릴 때 피로를 풀 수 있고, 기분을 전환해 졸음을 쫓는데도 도움된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쏟아지는 졸음은 음주운전 이상으로 위험한 만큼, 마사지 시트가 안전장비 구실까지 하는 것이다. 포드와 링컨은 다양한 모델에 마사지 시트를 다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가정에서 쓰는 일반 안마의자도 기본 100만원에서 고급모델은 500만원이 넘어간다. 하물며 탑승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몸을 지탱해야 하며, 열선, 통풍, 마사지 등 갖가지 기능을 집어넣은 것을 생각하면 시트가 왜 비싼지 이해가 갈 것이다.
지금까지 시트는 승객의 안전과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어 발전해왔다. 자동차의 발전 방향과 일맥상통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자동차산업에도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경량화와 자율주행 자동차다.
최근에 당면한 과제부터 얘기해보면 화두는 단연 경량화다. 유해가스 배출을 줄이고 연비를 높이기 위해선 다이어트가 필수다. 과거에는 새 모델이 나오면 출력과 성능을 강조했지만 요즘엔 몇kg을 감량했는지를 자랑한다.
경량화 열풍은 시트도 예외가 아니다. 실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경량화 트렌드에 아주 민감하다 하겠다. 요즘 시트는 갖가지 안전장비와 편의장비가 붙어 무게가 30kg을 훌쩍 넘어간다. 이런 시트가 4개 달리면 100kg이 넘는다. 달리 말하면 개당 5kg만 줄여도 20kg을 감량할 수 있다. 어린이 한명의 몸무게다. 안전성과 편의성 등 기존의 장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 메이커들은 시트 프레임을 가벼운 합금으로 만들고, 쿠션의 무게를 줄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렉서스가 2016년 파리 모터쇼에서 발표한 ‘키네틱시트 콘셉트’(Kinetic Seat Concept)를 보면 자동차회사가 시트에 쏟는 정성을 짐작할 수 있다.렉서스는 거미줄 패턴 구조를 활용한 ‘큐모노스’(QMONOS)라는 신소재로 그물망 시트를 만들었다. 질기면서 신축성 있는 그물망 구조가 몸을 완전하게 감싸고 체중을 분산시켜 최상의 착좌감을 완성한다.
이 시트는 통풍이 잘되어 쾌적할뿐더러 아주 가볍다. 골격 구실을 하는 시트 프레임을 가벼운 경량 소재로 만들고, 옆구리와 허벅지 부분이 몸을 잘 지지하도록 설계되었다. 사고가 났을 때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강성도 높였다. 가벼운 무게와 편안함, 쾌적함, 안전성까지 고려한 미래형 시트다.
멀지 않은 미래에 자율주행 기술이 인테리어와 시트의 개념을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혁신적인 방향으로 바꿀 것이다. 자율주행차의 시트는 편안함과 자유자재로 배치할 수 있는 범용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자동차가 스스로 달리면 사람이 운전에 집중할 필요가 없어 실내는 아늑한 거실이나 사무공간의 역할을 하게 된다. 무중력 상태처럼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능이나 승객들이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360도 회전하는 시트 등이 주목받을 것이다.
이런 트렌드는 올해 북미오토쇼에 등장한 자율주행차 인테리어 콘셉트에 그대로 반영됐다. 세계 최대의 시트 제조업체인 애디언트(Adient)와 상하이에 본사가 있는 자동차 인테리어 전문업체 YFAI(Yanfeng Automotive Interiors)는 자율주행차의 시트 및 인테리어 디자인을 통해 가족을 위한 공간, 휴식을 위한 공간 또는 사무를 보는 공간을 제안했다. 그렇다. 미래에는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 놀고, 쉬고, 일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시트는 어떤 모양, 어떤 기능을 갖추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