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s in my heart, GLC 43 & V60 폴스타
2017-05-30 15:17:01 글 민병권 기자
우리나라에서 살 수 있는 왜건이 뭐가 있는지 떠올려보자. 그 다음, 디젤을 제외시킨다. 그럼 뭐가 남을까. 게다가 '힘이 좋고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한 차'로 범위를 좁힌다면? S60 폴스타의 왜건형인 V60 폴스타는 그만큼 귀한 차다.
‘안전의 볼보’가 모터스포츠에서 기반을 닦은 폴스타 브랜드를 인수해가면서까지 작심하고 만든 고성능차가 아니라도 말이다. 바꿔 말하면 많이 팔릴 차가 아니다. 그래도 볼보코리아는 이 차를 들여왔다. S60 폴스타는 7,660만원, V60 폴스타는 7,880만원(세단보다 늘어난 무게만큼 돈을 더 받는걸까)이다. 2.0 엔진치고 꽤 비싸다. 참고로 배기량이 동일한 디젤 모델 V60 D3는 4,640만원, 차고를 높인 V60에 2.5L 터보를 얹은 V60 크로스 컨트리 T5는 5,650만원이다.
S60 폴스타의 경쟁자로 거론된 차가 벤츠 AMG C 43 세단이니, V60 폴스타는 C 43 에스테이트와 비교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여건상 차선책으로 GLC 43를 골랐다. GLC는 SUV 형태의 C-클래스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 체구는 GLC 43가 V60 폴스타보다 3cm 길고, 6.5cm 넓고, 16cm 높다.
GLC 43는 일반형 GLC보다 넓은 휠타이어를 끼우고 트레드를 늘였다. 폴스타도 마차바퀴를 연상시키는 큰 휠과 넓다란 타이어를 끼웠는데, 이걸 감싸기 위해 차체를 늘이진 않았다. 오히려 바퀴가 휠하우스 안쪽으로 푹 들어간 모양새다. 바퀴 위쪽이 차체에 살짝 가려진 자태는 과거 스웨덴 투어링카 챔피언십(STCC)에서 활약했던 볼보 경주차들을 연상시킨다. 차체 나머지 부분들도 약간의 장식을 더했을 뿐 요란을 떨지 않았다. 폴스타의 레이싱팀에서 이름을 따온 눈부신 파란색 페인트가 이 차의 특별함을 내비칠 뿐이다.
볼보가 폴스타와 함께 만든 첫 양산차는 2014년형 S60/V60 폴스타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차들은 2016년 데뷔한 부분변경 모델. 가장 큰 변화는 350마력의 3.0L 터보 엔진을 2.0L로 다운사이징한 것이다. 볼보는 양산차 전모델을 2.0L로 통일해가고 있는데, 폴스타도 그걸 따랐다.
최신 볼보는 연료불문, 덩치불문 2.0L 엔진을 탑재한다. 가령 예전 같으면 3.0L 터보를 얹었을 S90, XC90의 T6 버전은 2.0L 트윈차징(수퍼차저+터보차저) 엔진으로 320마력을 낸다. 폴스타는 한술 더 떠 L당 180마력이 넘는 출력을 짜내기 위해 커다란 터보를 달고 내부 구성품도 싹 바꾸었다. 터보가 힘을 발휘하는 회전수에 이르기까지 허당이 될 수 있는 영역은 수퍼차저가 커버한다.
낮은 회전수에서 귀엽게 앵앵거리던 수퍼차저 소리는 변속기 레버를 S로 옮기면 굵은 배기음과 어우러져 쇳소리 화음으로 바뀐다. 이전까지 헐겁게 느껴졌던 가속페달이나 조향 반응이 팽팽해지고 비로소 '빡센 차'의 본성이 드러난다.
폴스타는 엔진뿐 아니라 네바퀴굴림 시스템과 변속기, 조향장치에 이르기까지 주행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부분을 손봤다. 브렘보 브레이크, 조절식 올린즈 서스펜션, 미쉐린 수퍼스포츠 타이어 등 구성품들도 으리으리하다. 그럼에도 바탕은 기존 S60/V60와 다르지 않아 그 흔한 주행 모드 통합제어장치가 없다. 계기판 중심에 회전계를 놓고 배경을 빨갛게 물들일 수 있는 건 일반 볼보에도 있는 기능이고, 주행 모드에 연동되는 것도 아니다. 파워 스티어링의 강도도 여느 볼보처럼 메뉴에서 선택할 수 있다. 다 익숙하다.
때문에 카본 패널이나 누벅 가죽 마감, 파란색 스티치로 멋을 냈는데도 실내 분위기가 차분하고 편안하다. 이런 차에 게임의 치트키마냥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숨겨놨으니 변태스러움이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긴, 고성능 왜건은 이런 맛에 타는 차이긴 하다.
사이언 블루가 아닌 무난한 보디 색상을 택했다 치자. 평소 한껏 너그럽고 점잖은 척하다가 한번 필 받으면 미친 X처럼 내달릴 수 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모습이지만 본격적인 주행에 나서면 코너 입구에서 칼같이 속도를 줄이고, 코너 안쪽을 깊숙이 파고들었다가 네바퀴에 힘을 주어 탈출하는 과정에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이게 보증수리가 가능한 순정 볼보의 움직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암만 봐도 튜너가 손본 차 같다. V60 폴스타는 나지막한 스포츠카로 땅을 훑으며 달리는 것과는 다른 쾌감을 준다. 물론 뒤편의 화물은 단단히 고정해두어야 할 것이다.
볼보에 소속된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폴스타에는 아직 야생성이 살아 있다. 그에 비하면 AMG GLC 43는 순한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AMG 내에서 이제 43는 약한 버전, 입문용을 뜻한다. 진짜배기인 63가 있으니 43는 나대기 멋쩍은 입장이다. 가령 GLC 43와 동일한 파워트레인을 가진 지금의 AMG C 43는 개명 전까지 '벤츠 C 450'로 팔리던 차다. 그만큼 일반 벤츠와 경계가 얇다. '가짜 AMG'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
GLC 43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GLC 중 유일한 6기통 가솔린 모델이다. 그래서 성능뿐만 아니라 고급성에서도 GLC 중 으뜸이다. 당연히 이 급에서 생각할 수 있는 장비는 거의 다 갖췄다. 때문에 가열하게 운전에 몰입할 분위기는 아니지만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엔진 회전수를, 계기판 중앙에 부스트 게이지를 포함한 AMG 그래픽을 띄워 기분을 낼 순 있다.
폴스타는 6,000rpm이 넘어가면 회전계 눈금의 숫자 7, 8이 붉은색으로 바뀌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레드존은 6,500rpm에서 시작되고, 자동변속 상태에서도 최대가속 시엔 대부분의 단수에서 이 지점을 지나야 시프트업이 이뤄진다. 반면 GLC 43는 6,300rpm에 단수를 갈아타는데, 원할 때는 M 버튼을 눌러 회전수를 붙들어맬 수 있다. 폴스타는 기어가 바뀔 때마다 울리는 '부북' 하는 효과음도 쾌감을 높인다. 그러나 듣는 즐거움을 언급하기엔 4기통의 단조로움이 아쉽다. 배기량이 3.0L에서 2.0L로 줄면서 최대토크도 51.0kg.m에서 47.9kg.m로 낮아졌다.
같은 367마력이라도 AMG GLC 43는 V6 3.0L 트윈터보다. 당연히 힘 분출이 폴스타보다 여유롭고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따라서 승객과 화물을 한층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실어 나를 수 있을 것 같다. 최대토크도 53.0kg.m로 풍요롭다. 느긋할 때나 급할 때나 언제든 적절한 단수를 찾아넣는 9단 자동변속기 및 네바퀴굴림장치와 함께 쾌적한 주행감을 선사한다.
사운드도 그럴듯하다. 스포츠 플러스에서 기어를 내리면 회전수가 튕겨오르며 고음을 내고 배기구에선 팝콘 튀기는 소리가 난다. 크진 않지만 음색이 좋아 스포티한 주행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조용하게 다니고 싶을 때는 또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AMG도 변속기와 프론트 액슬, 브레이크, 서스펜션 등 많은 부분을 손봐 43 모델을 내놨다. 브렘보나 올린즈 같은 유명상표를 빌리지 않았을 뿐이다.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AMG에 어울리게 앞뒤 구동력을 31:69로 나눈다. GLC 43의 기본휠은 19인치지만 국내용은 21인치이고, 타이어도 앞 255/40, 뒤 285/35 사이즈를 쓴다.
폴스타는 취향에 맞게 세팅을 바꿀 수 있는 올린즈 서스펜션을 장비했지만 GLC 43처럼 주행 중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만으로 차의 성격을 바꾸진 못한다. GLC 43는 댐퍼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에어서스펜션 덕분에 차고까지 바꿀 수 있다. 차체를 내리고 최대의 운동성능을 끌어내 달리다가 교통정체를 만나면 차고를 높여 멀리 내다보며 느긋하게 운전할 수 있다. V60보다 작지 않은데도 간편하게 다룰 수 있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가만 보면 GLC 43는 아무렇지도 않게 빠르다. 폴스타보다 200kg이나 더 무거우면서도 0→100km/h 가속시간은 0.1초 뒤질 뿐이다. 대신 코너가 이어지는 도로에선 폴스타를 쫓아가기 버겁다. 혼자 다닐 땐 굉장히 빠르고 안정적인 것 같더니만 호적수를 만나니 금세 높은 무게중심과 체중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래도 좋다. GLC 43의 특징은 극한의 성능이 아니다. 다양한 상황에 어우러질 수 있는 커다란 포용력이 장점이다. 편안할 때는 아주 편안하고 스포티할 때는 ‘AMG는 AMG네!’ 할 만큼 운전의 즐거움을 준다.
AMG의 입문용이자 실생활에서 고성능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차가 43 모델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버전이 즐비한 AMG 입장에선 2.0L로 끝장을 보려는 폴스타가 측은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GLC는 짐공간도 V60보다 낫고 에어서스펜션을 이용하면 트렁크 바닥이 V60 수준으로 낮아져 무거운 짐을 부리기가 수월하다. 이 기능을 간편하게 쓸 수 있도록 트렁크 안쪽에 버튼도 마련해놨다. 뒷좌석도 폼나게 전동 버튼으로 접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거저는 아니다. AMG GLC 43의 값은 9,580만원. 벤츠 GLC 중 가장 비싼 250 d보다 1,900만원 높다. GLE 350 d와 맞먹는 값이다. 같은 값의 GLE와 GLC? 기자한테 고르라면 디자인과 나이를 생각해 GLE를 택할까 하다가 결국은 GLC 43로 기울 것 같다. GLC 43를 타보면 못생긴 얼굴도 용서가 되고 나이는 잊게 된다. 덩치가 작고 체급이 낮지만 실내공간이 넓고 성능이 월등하며 장비가 풍성하니 GLC 43를 택하고 젊게 살테다.
V60 폴스타는? S60/V60 폴스타는 1,500대 한정생산 모델로 30대가 국내에 배정됐고 이미 다 팔렸으니 이젠 넘볼 수 없는 차가 됐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차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갑을 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되어 기분이 좋다.
틈새 수요에 대한 볼보자동차코리아의 적극적인 대응도 고무적이다. 몇대 안되는 차를 조용히 들여와 아름아름 판 것이 아니라 서킷 시승행사까지 열어 적극적으로 홍보한 것은 높이 살 만하다. 지난해 XC90와 S90로 연타를 친데 이어 올 하반기 XC60를 내놓을 때까지 소비자들의 관심을 붙잡아두겠다는 의욕이 엿보인다. 올라운드 왜건 V90 크로스 컨트리의 출시도 그런 차원에서 대환영이다.
그러고 보니 볼보코리아가 우리나라에서 꿋꿋이 파는 왜건 모델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브랜드다. 비록 이번 만남을 통해 기자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볼보의 폴스타가 아니라 벤츠의 세꼭지별이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