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타타(Tata)와 중국의 지리(吉利). 독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처음 듣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반면 영국 재규어랜드로버(JLR)와 스웨덴 볼보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70~90년에 이르는 오랜 역사와 확고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닌 명문 자동차회사다.
이들은 앞에서 언급한 타타(JLR)와 지리(볼보)에 소속된 메이커다. 신흥국의 이름 없는 자동차회사가 메이저급 프리미엄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JLR과 볼보는 포드가 갖고 있다가 적자에 못이겨 매각한 바 있다.
JLR과 볼보는 타타 및 지리의 성공적인 경영에 힘입어 BMW, 메르세데스-벤츠에 버금가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했다. 두 회사가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를 인수해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프리미엄 자동차시장은 성공하기가 무척 어려운 분야다. 글로벌 톱5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그룹의 경우 제네시스를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30여년 전에 론칭된 혼다 어큐라, 닛산 인피니티, 토요타 렉서스 또한 미국과 중국 등 일부 시장을 제외하고는 브랜드 인지도가 아직 미미하다.
JLR과 볼보는 1999~2008년 미국 포드 산하의 PAG(Premier Automotive Group) 즉 고급차 사업부문의 핵심 브랜드였다. PAG는 1999년 대중차를 만들던 포드가 고급차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170억달러(한화로 약 19조원)를 들여 매수한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애스턴마틴을 바탕으로 포드의 고급 브랜드인 링컨 및 머큐리를 한데 묶었다.
문제는 포드가 대중차 부문에만 능숙했을 뿐 고급차 만들기는 서툴렀다는 사실이다. 포드 임직원들은 PGA 임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했으며, 신차 개발에 있어 포드의 기존 부품과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강요했다. 대표적인 예가 포드의 몬데오를 재규어의 소형세단 X-타입에 활용한 것이다.
앞바퀴굴림 대중차를 재규어의 엔트리 모델로 꾸미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뒷바퀴굴림차를 만들던 재규어에 무척 이질적인 일이었고, 게다가 부품은 저렴한 대중차용이었다. 따라서 고급차를 산다고 생각했던 구매자들은 수준 낮은 제품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재규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랜드로버, 애스턴마틴 등은 한때 영국 귀족들이 애용하는 차였지만, 포드 점령군은 이런 브랜드들이 고급일 수 있었던 개발철학 즉 제품의 정수를 망각했다. 안전의 대명사인 볼보가 그나마 포드와 궁합이 맞았다. 하지만 포드의 역량으로는 제품 업그레이드를 추진하기 어려웠다.
포드는 PAG 산하 업체들에게 미국 대중차의 정신을 강조했다. 결국 PAG 브랜드들은 과거의 명성을 잃었고, 고객들은 독일의 고급 브랜드들로 발길을 돌렸다. 포드는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고 2006년부터 PAG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애스턴마틴이 투자그룹에 매각되고, 2008년에는 재규어와 랜드로버가 인도의 타타에, 2010년에는 볼보가 중국의 지리에 매각됐다.
이와 관련해 아직도 회자되는 얘기가 있다. 재규어의 경우는 포드가 현대차에 매각을 타진했다는 사실이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은 아직도 현대차가 재규어에 랜드로버까지 묶어 사들였다면 커다란 수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물론 현대차의 상명하복식 경영으로는 포드가 말아먹은 회사들을 살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타타와 지리가 JLR과 볼보를 되살린 과정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타타, JLR에 베팅하다
2007년초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은 포드자동차로부터 JLR 매각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타타그룹은 인도의 거대 기업군 중 하나로, 내수 위주의 소형차와 트럭을 만드는 타타모터스를 갖고 있었다. 인도를 포함해 영연방 국가에 잘 알려진 JLR에 관심을 가진 그는 9개월에 걸쳐 실사를 했다.
포드는 수조원이 들어간 JLR을 무조건 빨리 매각하고 싶어했다. 타타 회장을 비롯 대부분의 완성차업체들은 몰랐지만, 포드자동차는 미국의 모기지 금융상품들 즉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의 부실로 인한 금융위기를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훗날 GM과 크라이슬러를 파산 위기로 몰아넣은 금융위기를 피하기 위해 포드는 JLR 매각은 물론이고 자사 브랜드까지 저당 잡혀 현금을 확보해나가고 있었다.
JLR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타타 회장은 많은 돈이 투자됐지만 완성하려면 몇년이 남은 신제품들을 목격했다. 타타와 비교해 최신 생산설비를 보유한 점도 매력적이었다. 포드의 엄격한 조직관리에 군살이 쫙 빠진 인적구성도 맘에 들었다.
타타 회장과 측근들은 그해 여름,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 있는 JLR의 딜러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딜러나 소비자들의 브랜드 신뢰도가 무척 높다는 걸 확인하고 JLR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 타타모터스는 23억달러(2조5,800억원)를 주고 JLR을 사들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타 회장과 그룹 경영진은 매수 타이밍이 얼마나 나빴는지, 포드가 왜 그렇게 급히 매각하려 했는지 알게 됐다. 그해 여름 뉴욕발 금융위기가 터졌고, JLR의 판매량은 여타 완성차업체들과 마찬가지로 급감했으며 은행들은 금융 대출을 죄기 시작했다.
타타모터스는 회장이 지주사를 통해 긴급자금을 수혈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하지만 그는 좋은 회사를 좋은 가격에 샀다고 굳게 믿었으며, 금융위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배럴당 140달러까지 치솟았던 유가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50달러 이하에 머무르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유가 안정은 SUV 전문 메이커 랜드로버에 절호의 기회였다.
포드가 투자해놓은 신제품들이 2012년부터 출시되면서 JLR은 물론이고 타타그룹에도 햇빛이 비쳤다. 2012년 9월 파리 모터쇼에서 선보인 레인지로버 그리고 2013년 3월 선보인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뛰어난 상품성으로 각국의 부유층 고객을 붙잡았다. 2012년 랜드로버 31만6,000여대, 재규어 5만9,000여대 등 총 37만5,000여대의 판매실적을 올렸던 JLR이 2015년에는 30.8%가 증가한 49만여대를 팔아 영국에서 가장 큰 완성차업체가 됐다.
매출도 늘어나 2009년 5억파운드(약 8,000억원)에서 2015년 3월 21억원(약 3조원)을 기록했다. 수익성도 개선됐다. 2015년 매출 대비 순이익률은 12.0%로 BMW나 메르세데스-벤츠보다 높았다. 타타그룹의 JLR 인수와 성공은 브랜드에 대한 믿음과 인내심, 그리고 약간의 행운이 작용한 결과다.
꿈, 끈기 그리고 타이밍
차가운 바람과 함께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2007년 1월 어느날 포드자동차의 디어본 본사에서 중국 지리그룹의 리슈푸 회장은 포드의 CFO 돈 르클레어 부사장을 만났다. 당시 지리는 1년 전인 2006년 북미 모터쇼에 7171A를 선보였다. 이 차는 딱딱한 실내 플라스틱과 무미건조한 디자인으로 혹평을 받았으며 모터쇼 주최측은 부스를 내주지도 않고, 전시장 로비에 차를 전시하도록 했다.
이런 홀대에도 불구하고 리슈푸는 르클레어 부사장을 만난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떴다. 의례상 리슈푸를 만나고 떠나보낸 르클레어는 포드의 재무상황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그로부터 몇주일 뒤에 포드는 “126억달러(14조1,500억원)의 손해를 봤고 직원 4만4,000여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1년이 흘렀다. 2008년 1월, 리슈푸 회장은 재차 북미 모터쇼를 참관했다. 단순히 지리 제품을 소개하거나 업체 관계자를 만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금융위기의 불안한 전조 속에서 긴장하고 있던 포드의 가보(家寶) 볼보를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리슈푸를 다시 만난 르클레어 부사장은 볼보를 인수하겠다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현금을 빨아먹는 자회사는 모두 팔아치우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급했던 그는 빌 포드 회장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포드 가문과 경영진들은 돈벌레인 PAG가 결딴이 났지만 볼보만은 계속 소유하고 싶어했다. 따라서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회복한 후 매각을 고려하겠다’며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해 12월,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 직전까지 내몰리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볼보는 2008년 기준으로 15억달러(1조6,800억원)의 적자를 내 더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2010년 1월 28억달러(3조1,400억원)를 받고 지리에 볼보를 넘긴다.
지리자동차는 1997년 중국의 첫 민간 완성차업체로 문을 열었다. 리슈푸 회장은 사진관 사업(1980년), 폐가전품에서 금과 은 같은 귀금속 채취, 냉장고 부품 생산(1986년), 이륜차 사업(1993년) 등을 하면서 낮은 진입장벽으로 번번이 무한한 경쟁 상황에 내몰렸다. 이에 진입장벽이 높은 완성차 사업으로 눈을 돌려 지리자동차를 설립하게 됐다고 한다.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초도물량 차를 세번에 걸쳐 전량 폐기하는 수모도 겪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외부 기술도입이 쉬워지자 대우차의 설계도를 구입해 프리 크루저라는 차를 만들었고, 2002년 이를 바탕으로 독자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세를 키워나가면서 그는 PAG를 계속 눈여겨봤다. 포드가 보유한 고급차 브랜드가 지나치게 많아 언젠가는 매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중 볼보에 눈독을 들였다. 그로부터 8년 후 마침내 볼보의 오너가 되었다.
리슈푸는 볼보에 운영자금만 대고 경영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대신 볼보의 R&D부문에서 지리의 독자적인 자동차 플랫폼(Compact Modular Architecture, CMA)을 공동개발하게 했다. CMA는 볼보의 중소형 차종의 바탕이 되고, 지리의 링크앤드코(Lync & co) 같은 자회사의 차에도 활용된다. 이러한 가운데 볼보는 XC90의 성공적인 론칭은 물론이고 S90, V90 등 북유럽풍이 완연한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면서 비판론자들을 침묵시켰다.
종합해 볼 때, 타타의 JLR, 지리의 볼보 인수 및 성공담은 금융위기에 봉착한 포드가 내려야 했던 시대적 결단의 산물이다. 여기에 ‘좋은 제품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최고경영자의 믿음이 더해져 성공적인 회생이 가능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JLR과 볼보는 금융위기 이후 사라진 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올즈모빌, 폰티액, 허머, 새턴, 로버, 사브)과 함께 역사에 묻힐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인재가 성공의 발판이라는 사실을 믿었고, 인적 구조조정도 최소화했다. 이후 지리의 행보는 더 과감해졌다. 2017년 5월말 말레이시아의 완성차그룹 프로톤과 자회사인 영국 로터스를 인수한다고 발표, 다시 한번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