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럭셔리카의 정점에 섰던 티포 8A
오늘날 최고급차 시장은 사실상 영국(롤스로이스, 벤틀리)과 독일(메르세데스-마이바흐) 메이커가 나눠 갖고 있다. 이탈리아는 페라리, 람보르기니를 거느린 슈퍼카 강국이다.
그런데 과거 이탈리아에도 롤스로이스와 맞먹는 최고급차가 있었다. 교황 비오 11세, 루마니아 공주, 이집트 왕, 출판 재벌 허스트, 할리우드 스타 루돌프 발렌티노 그리고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등 세계적인 유명인사와 갑부들이 사랑했던 그 차의 이름은 이소타 프라스키니(Isotta Fraschini)다.
1900년 1월, 변호사인 세자르 이소타(Cesare Isotta)와 뛰어난 드라이버였던 빈센초 프라스키니(Vincenzo Fraschini)가 수입차 회사인 이소타 프라스키니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처음에는 프랑스 르노 및 드디옹 부통을 수입, 판매했다.
2년 뒤 독자적으로 차를 만들어 프라스키니가 여러 자동차경주에 출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를 바탕으로 1905년 4기통 1만7,203cc, 100마력의 거대한 엔진(기통수와 배기량에 주목하기 바란다)을 얹은 티포 D(Tipo D)를 발표하고 악명 높은 코파 플로리오(Coppa Florio)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힘입어 1906년 이탈리아에서 피아트 다음으로 판매량이 많은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소타 프라스키니는 이탈리아 공군을 위한 비행기 엔진 제작에 주력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19년 미국의 부호들을 겨냥해 럭셔리카 티포 8(Tipo 8)를 발표했다. 비행기 엔진으로도 사용됐던 직렬 8기통 5,880cc OHV 80마력 엔진을 사용한 차였다. 8라는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이 8기통 엔진을 사용한 최초의 자동차였다.
티포 8는 조용한 자동차로 명성이 높았다. 덕분에 발매 후 얼마 되지 않아 미국 럭셔리카 시장에서 롤스로이스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팔리는 외국 자동차가 됐다.
1924년에는 티포 8A(Tipo 8A) 모델을 발표했다. 휠베이스 3.68m(145인치)의 거대한 차체를 지닌 8A의 값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비싼 듀센버그와 비슷해서 섀시만 1만달러였고, 완성차는 2만달러를 넘나들었다. 이 차는 약 950대가 제작됐다.
하지만 경제대공황이 일어난 1928년을 기점으로 판매량이 급속히 떨어졌고, 3년 후인 1931년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이듬해 이탈리아의 항공기회사인 카프로니그룹(Gruppo Caproni)에 매각되어 비행기와 선박용 엔진 생산을 맡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 V8 3,400cc 엔진을 뒤차축에 얹은 8C 몬테로사(8C Monterosa)를 발표하며 재기를 노렸으나, 5대의 프로토타입만 남기고 생산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현재 이소타 프라스키니는 선박, 기차용 엔진 메이커로 존속하고 있다. 자동차는 더이상 볼 수 없지만 한때 이탈리아산 최고급차의 상징이었고, 최초로 8기통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기억될 만하다.
HISTORY
1900 세자르 이소타, 벤센초 프라스키니가 이소타 프라스키니 창업
1902 자동차 생산 시작
1905 4기통 1만7,203cc 엔진의 티포 D 발표
1906 피아트에 이어 이탈리아 제2위 메이커가 됨
1914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비행기 엔진 제조
1919 최초의 8기통 엔진 자동차 티포 8 발표
1924 티포 8A 발표
1931 자동차 생산 중단
1932 이탈리아 항공기회사 카프로니그룹에 매각됨
1947 8 3,400cc 엔진의 8C 몬테로사 프로토타입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