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가능거리가 대폭 늘어난 전기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시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과연 맘 편히 타고 다닐 수 있는 수준인지 궁금했다. 제원상 수치들은 ‘그렇다’고 말하지만 과연 믿어도 될까? 초극한의 연비운전으로 배터리를 쥐어짜서 멀리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반 자동차로 오갔던 서울-강원도 인제 구간을 전기차로 달리면서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아울러 슬라럼 테스트를 통해 핸들링 성능도 평가해보기로 했다. 전기차의 주무대로 인식되고 있는 도심에서의 기동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주행가능거리에서 약점을 드러낸 차도 슬라럼에서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지 모른다.
시승차는 모두 4대. 전기자동차의 월드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닛산 리프, 뒷바퀴굴림 프리미엄 전기차 BMW i3, 현대차 아이오닉 삼총사 중 순수 전기차인 아이오닉 일렉트릭 그리고 이 바닥의 ‘게임 체인저’를 자처하는 쉐보레 볼트 EV 등이다.
제원상 1회충전 주행거리는 리프와 i3가 132km, 아이오닉 191km, 볼트는 383km다. 데뷔한 지 제일 오래된 리프(2010년)와 i3(2013년)는 주행거리가 늘어난 신형이 나왔지만 업체에서는 아직 시판 전이라며 기존 모델을 내줬다.
4대의 차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출발했는데, 인제에서 가장 먼 곳이 서울 관악구이고 나머지도 큰 차이는 없다. 어림잡아 서울에서 인제스피디움까지는 170km. 아이오닉과 볼트는 단번에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슬라럼 테스트와 촬영을 위한 이동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중간에 급속충전기가 있으니 상대적으로 주행거리가 짧은 리프와 i3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충전기의 위치나 사용 가능 여부 등은 환경부 전기차 충전소 웹사이트(ev.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승팀은 서울에서 70km 지점에 있는 서울춘천고속도로 가평휴게소와 150km 지점인 인제읍 인제군농특산물판매장을 충전 포인트로 잡았다. 어디서 충전할지는 운전자 마음이다.
출발 전날에야 이런 내용이 전달되어 막판까지 어떤 차를 운전하게 될지 몰랐던 기자도 있다.
E-DAY
06:00
리프
시승팀에 끼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촬영 진행차를 몰기로 했던 기자의 관심사는 오직 ‘누가 가장 먼저 방전돼 견인차를 부를까?’였고 동료들의 생고생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OMG. 왜 내 손에 리프의 키가 들려 있느냐 말이다. 마음 편한 관람자는커녕 생고생의 당사자가 되어 ‘견인차 탑승 1순위’를 끌고 인제까지 갔다 오는 미션이 주어졌다.
경쟁자들 사이에서 리프는 딱 주행가능거리만큼 빈약해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 전기차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 따위의 수식어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전날 차고지인 서울 강남에서 완전히 충전된 리프를 받았을 때는 주행가능거리가 98km였는데, 관악구의 집까지 이동했더니 85km로 줄었다.
집 근처 공영주차장에서 급속충전기를 본 기억이 있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다녔건만, 가보니 ‘시험 중(이라 써 있고, 너 이제 큰일 남이라 읽음)’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집에서 가평휴게소까지는 72km. ‘10km 이상 여유가 있으니 연비운전을 하면 되겠지’라고 애써 위로하며 충전기 찾는 일을 포기했다.
미세먼지 섞인 상콤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차에 올라 전원을 켜니 밤사이 주행가능거리가 80km로 줄었다. 아니, 얘가 몽유병이 있어 스스로 움직이나? 전날 밤 마음 편히 잘 생각을 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제 와서 급속충전기를 찾아 나서면 분명 지옥의 출근길을 뚫고 가야 한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에잇, 일단 한번 가보자.
김종우
06:30
아이오닉
차고지에 도착한 지 20분쯤 지났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아파트다. 지하주차장 한켠에 완속충전 케이블을 입에 문 아이오닉이 100% 충전된 상태로 자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입이 아니라 볼따구니쯤 되겠다.
2017년형 아이오닉은 완속, 급속충전구가 합쳐진 콤보 타입이어서 충전구가 뒤쪽에만 있지만, 시승차는 구형이어서 운전석 앞바퀴쪽에 완속충전구, 뒷바퀴쪽 주유구 자리에 급속충전구가 있다. 프론트 그릴이 막힌 아이오닉의 얼굴은 미세먼지 마스크를 쓰고 ‘이제 전기차를 탑시다’라고 시위하는 것 같다.
차내 화면을 통해 주행관련 정보와 설정 항목들을 살펴보느라 출발이 조금 지체됐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출근길 정체에 갇혀 시간을 허비하느니 먼저 가서 충전기 상태라도 점검해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동료 기자들과 같은 시간대에 움직였다간 충전기 앞에 여러 대가 줄서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기도 했다.
이른 시간, 사방이 고요하지만 나직한 보행자 경고음 외에 타이어 구르는 소리만 들려 저층 주민들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에어컨을 23℃로 설정한 탓인지 214km였던 주행가능거리는 아파트 정문을 나설 때 207km로 줄었다. 그래도 인제까지 가기에 충분하다. 내부순환로 진입로는 벌써 차들로 혼잡하다. 이럴 땐 오토홀드 기능이 있어 편리하다.
민병권
06:50
리프
다행히 서울시내를 빠져나갈 때까진 길이 그리 막히지 않았다. 주행 모드를 에코로 바꿔 감속 때 살뜰히 배터리를 충전했다. 일반 전기차들과 달리 회생제동 때 뒤에서 옷자락을 훅 잡아채는 듯한 거북함이 없는 편이다.
고속도로에 올라 가속페달을 꾹 밟아봤다. 전기차 특유의 토크감을 느끼고 싶었는데, 할아버지에겐 무리였나 보다. 다시 에코 모드에 맞추고 슬그머니 바깥차로로 이동했다. 시내와 달리 고속도로 주행은 회생제동으로 에너지를 모으기 어렵고 춘천 방면은 오르막이 많다. 주행가능거리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가평휴게소까지 가기엔 충분하지만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짠물 운전을 하기로 했다. 덤프트럭이나 버스가 보이면 꽁무니에 바짝 붙어 경주용차마냥 슬립스트림을 이용했다. 자전거를 탈 때 앞사람 뒤에 붙어가는 것을 ‘피빨기’라고 하는데,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데 꽤 효과가 있다. 단, 위험하니 조심해야 한다.
김종우
07:10
아이오닉
내부순환로에 올라선 이후 소통이 원활해 80km/h 이상으로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체감가속이 굉장히 빠르고 응답도 신속해 굳이 스포츠 모드를 불러낼 필요가 없다. 배터리가 충분하니 가속페달을 마음껏 밟을 수 있어 더 신난다. 차가 조용하게 잘 나가 자기도 모르게 과속을 하게 되는 부작용도 있다. 조향 반응이나 노면에 착 달라붙은 듯한 안정감도 마음에 든다. 올림픽대로를 거쳐 서울춘천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배터리 한칸이 사라졌다. 어쨌든 다른 차들에 뒤지지 않도록 100km/h 이상의 속도를 유지했다.
민병권
07:30
리프
주행가능거리를 10km쯤 남기고 가평휴게소 충전기 앞에 도착했다. 웹사이트에서 미리 확인한 대로 충전하는 사람이 없다. 기자들이 오기 전에 서둘러 충전기를 꽂았다. 소요시간은 40분으로 표시됐다.
뒤이어 도착한 기자들과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샀는데도 20여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아이오닉을 끌고온 기자는 충전하지 않고 인제까지 갈 수 있다면서 “이따 봐” 하고는 쌩 가버렸다. 뒤를 이어 디젤차를 타고 온 사진기자도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고 사라졌다. 그들을 보며 씹는 과자 맛이 떨떠름했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절대로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지 말라. 성질 급한 사람이 하는 충고이니 믿어도 좋다.
김종우
08:00
아이오닉
충전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료기자를 가평휴게소에 남겨두고 먼저 출발했다. 얼떨결에 리프를 맡게 된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오닉의 가속만큼이나 빠르게 잊어버렸다. 아이오닉도 밤새 배터리를 충전해놓지 않았다면 같은 처지였을테지만 아무튼 지금은 145km를 더 갈 수 있다. 주행거리가 충분하다는 걸 재차 확인하고 나니 가속페달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민병권
08:10
리프
전기차를 충전하는 게 신기했는지 주변에서 계속 말을 걸어온다. 같은 물음에 같은 대답을 10번 정도 하고 났더니 드디어 충전이 끝났다. 요금은 2,614원, 주행가능거리는 115km로 늘었다. 시내에서 완속으로 가득 충전했을 때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원래 이런가?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해, 멀리 가기만 하면 되지.
다음 충전 포인트까진 80km. 이번 여정에서 가장 긴 거리다. 해가 떠올라 온도가 슬슬 높아지고 있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기자는 에어컨 없인 못사는데 큰일이다. 그렇다고 창문을 열고 가자니 연비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다. 휴대용 선풍기라도 가져올걸. 겉옷을 벗고 다시금 인내의 여정을 떠난다.
김종우
8:30
아이오닉
정속주행으로 느긋하게 가고 싶은데 가속페달을 일정하게 밟아 속도를 유지하는 게 의외로 쉽지 않다. 윗급 모델은 반자율주행이 가능한 현대 스마트 센스를 제공하지만 시승차는 재래식 크루즈 컨트롤도 없다. 그나마 주행 모드를 에코로 바꾸니 반응이 둔해져 긴장을 조금 늦출 수 있게 됐다.
배터리 게이지는 절반을 향해 간다. 그래도 불안감은 1도 없다. 아직 100km를 더 달릴 수 있고 40km만 가면 충전기가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과속방지턱과 기복이 있는 도로를 통과하게 됐는데, 승차감이 예상보단 훨씬 좋았다.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와 비교하면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아닌게 아쉽지만, 그로 인한 단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어컨을 계속 섭씨 23℃에 맞춰놓았는데, 그 사이 HEAT 램프가 꺼지고 A/C 램프가 켜졌다.
민병권
09:00
i3
시승차가 미리 준비된 아이오닉, 리프와 달리 i3는 이제야 받았다. 그런데 i3와 비슷한 시간에 출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볼트는 스펙상 단번에 인제까지 갈 수 있다. 즉 주행가능거리가 그 절반에도 못미치는 i3가 꼴찌로 도착할 가능성이 크다. 먼저 가면 상 준다는 얘긴 없었지만 마음이 조급해진다. 출발지점은 서울 명동역 근처. 완충된 i3의 주행가능거리는 151km로 표시된다. 인제읍까진 아슬아슬하지만 중간지점인 가평휴게소까진 여유 있게 갈 수 있겠다.
이지수
9:10
아이오닉
인제군농특산물판매장에 도착했다. 배터리 전기가 31% 남아 있어 60km를 더 갈 수 있지만 인제스피디움에서 어떤 주행을 얼마나 하게 될지 알 수 없어 충전을 하기로 했다. 넓은 옥외 주차장이 비어 있어 어렵지 않게 충전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충전기 앞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충전기 앞에 차가 떡하니 주차되어 발을 구르는 것은 전기차 사용자들이 흔히 겪는 고충이다.
개통된 지 몇달 되지 않아 내비게이션에는 표시되지 않는 이곳 급속충전기는 AC3상, DC차데모, DC콤보 방식을 지원한다. 기존 아이오닉과 리프는 DC차데모, i3와 볼트는 DC콤보를 쓰면 된다. 이곳까지 140km를 주행한 아이오닉은 7.4km/kWh의 연비를 기록했다. 공인연비(6.3km/kWh)보다 훨씬 좋다. 예상 충전시간은 24분. 놀면 뭐하나. 디젤차를 타고온 사진기자가 실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민병권
09:20
볼트
서울역 근처 차고지에 도착해 시승차의 전원을 켰다. 충전이 안된 상태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출발이 지연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90% 충전되어 있다. 게다가 계기판에 나타난 주행가능거리는 제원표보다 높은 396km! 그러나 에어컨을 켜니 단번에 380km로 떨어진다. 그래도 인제스피디움을 왕복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번 기획을 탐탁지 않게 여긴 동료들과 달리 볼트를 맡게 된 기자가 내심 쾌재를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나머지 전기차들은 충전소를 들락날락해야 할텐데, 고생스러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준혁
09:30
리프
발끝 신공을 발휘해 인제군농특산물판매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남은 주행가능거리는 무려 35km. 주체할 수 없는 질주본능을 억누르고 오느라 오른쪽 발가락에 마비증세가 일어날 판이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홍천에서부터 이어진 국도구간이 특히 힘들었다. 충전 걱정 않고 밟아댔으면 상황이 달랐겠지만, 국도 갓길에 비상주차를 하고 싶진 않았다. 아이오닉의 충전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리프의 충전을 시작했다. 충전과 촬영을 마친 동료들은 이번에도 쌩하니 가버렸다.
김종우
09:50
i3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가 올림픽대로를 탔다. 아까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사이에 주행가능거리가 2km나 떨어지는 걸 봤다. 이런 상태라면 처음 계산과는 상당한 차이가 생길지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조금 덥기는 하지만 에어컨을 끄기로 했다. 에코프로로 설정해 놓은 주행 모드도 이 참에 에코프로플러스로 바꿔버렸다. 다행히 주행가능거리가 다시 올라간다. 에어컨은 끄라고 달아놨구나.
평일 오전이지만 생각보다 길이 막힌다. 배터리 잔량은 92%로 줄었는데, 30분전 147km였던 주행가능거리는 오히려 151km로 늘었다. 계기를 맹신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평휴게소에 들르지 말고 인제까지 곧장 가볼까 했던 생각도 접었다. 옆으로 i8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같은 i인데 참 다르다.
이지수
10:00
볼트
시내를 빠져나오느라 10km를 달렸는데 주행가능거리 25km가 증발했고, 배터리 잔량은 85%로 떨어졌다. 강력한 모터 힘에 적응하지 못해 급가속을 반복한데다 에어컨을 켰고, 회생제동기능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은 탓일 것이다. 주행가능거리가 남아돈다고 방심했나? 이제부턴 막 나가지 말아야겠다.
김준혁
10:10
아이오닉
인제읍과 인제스피디움 사이 내린천을 따라 이어지는 굽잇길에서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재미있는 드라이브를 즐겼다. 주행 모드를 바꾸면 계기판 그래픽도 달라진다. 그리고 주행 모드별로 에어컨 작동이나 회생제동 수준 등을 상세히 설정할 수 있다.
회생제동은 스티어링 휠의 패들로도 0~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 뒤쪽 버튼을 누를 때만 회생제동이 강한 볼트와는 다른 방식이다. 시내에선 1단계가 적당하지만 여기선 3단계를 선택하고 가속페달만으로 가감속을 해도 그럴싸하다. 회생제동 때 거북한 소음이나 진동 없이 매끄럽게 작동하기 때문에 꺼려지지 않는다. 다른 전기차들보다 나지막한 차체도 운전의 즐거움을 높이는데 한몫 하는 것 같다.
민병권
10:40
i3
가평휴게소에 도착했다. 중간중간 급가속을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연비를 고려해 운전을 했기에 배터리 전기가 59%나 남았다. 주행가능거리도 90km나 된다. 60km를 달렸으니 처음에 본 주행가능거리가 맞는 셈이다. 더운데도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은 기자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 충전지점까지 내처 달려도 되겠지만 모험은 피하기로 했다. 휴게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모니터에는 ‘전기구동 주행가능거리 부족’, ‘충전소를 검색’이라는 문구가 표시돼 불안감을 조장했다. 충전을 시작한 뒤 요기라도 할 겸 휴게소 안으로 들어섰는데 저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다가온다. 볼트를 타고 온 기자다. 간식거리를 사들고 나온 그는 충전할 필요가 없어 바로 출발한다고 말했다. 혼자 덩그러니 앉아 ‘충전아 빨리 되라’ 주문을 외우며 샌드위치 한개를 해치웠다.
이지수
10:50
리프
배터리도 빵빵하겠다 공기까지 상쾌하니 창문을 열고 속도를 높여 인제스피디움까지 달렸다. 리프는 키가 크고 시트 포지션도 높아 밖에서 봐도 껑충하고, 시트에 앉아도 껑충하다. 빨리 달리면 불안할 것 같았지만 꽤 안정적이다. 배터리가 바닥에 깔려 있어 무게중심이 낮기 때문일 것이다.
인제스피디움에 도착하니 주행가능거리가 99km나 남았다. 아침에 제일 먼저 출발했지만 충전과 연비주행을 하다 보니 아이오닉에 뒤졌다. 아직 견인차를 부르지 않은 것에 만족해야 하나.
김종우
11:00
볼트
운전하는 틈틈이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해보니 주행가능거리가 20km까지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제 주행거리 90km를 넘어섰고, 주행가능거리는 250km이다. 평균연비는 6.6km/kWh. 제원상의 복합연비(5.5km/kWh)나 시가지연비(6.0km/kWh)보다 더 좋은 수치다. 참고로 전기차는 고속주행연비가 시가지연비보다 떨어진다.
김준혁
12:15
i3
배터리는 39.5% 남았고, 주행가능거리는 51km이다. 충전기가 있는 인제읍까진 10km밖에 남지 않았는데 주행가능거리가 부족하다며 충전소를 검색하라는 메시지가 뜬 지 한참 됐다. 하지만 ‘10km쯤이야’ 하는 생각이 들어 간만에 에어컨을 실컷 트는 사치를 부렸다.
이지수
12:30
볼트
충전 없이 170km를 달려 인제스피디움에 도착했다. 배터리 전기는 45%가 남아 173km를 더 갈수 있다. 연비운전에 조금만 신경 쓴다면 서울에서 인제 정도는 한번에 다녀올 수 있겠다.
김준혁
12:40
i3
인제군농특산물판매장에 도착했다. 충전 중인 차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없다. 전기차가 많이 보급되지 않은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충전기를 꽂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지나던 이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거나 말을 걸어왔다. 차값을 묻는 예비고객들에게 간단한 구매 상담을 해주고, 충전 중인 차에 올랐다. 배터리를 80%까지 충전하는 데 거의 50분이 걸렸다.
이지수
13:00
아이오닉
넓디 넓은 주차장에서 i3를 제외한 나머지 전기차들을 촬영하는데 한켠에 서 있던 폭스바겐 골프 디젤이 시동을 걸었다.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찼다. 전기차들의 옆을 지나가던 골프는 졸지에 ‘트럭 소리’를 내는 차가 됐다.
잠시 후 점심식사가 도착했다. 편집장이 친히 김밥을 말아… 아니, 읍내에서 사들고 온 것이다. 뒤늦게 i3를 타고 온 동료는 두번이나 충전하느라 꼴찌를 했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그래도 여기 모인 차들 중 외모는 내차가 제일 낫네”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른 기자들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i3는 슬라럼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여줄 것으로 점쳐지는 차이기도 하다.
민병권
16:30
i3
인제스피디움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한 뒤 동료들보다 조금 빨리 출발했다. 인제군농특산물판매장의 충전기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다른 차는 몰라도 리프는 i3와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다. 동료가 오기 전에 충전을 마치기로 했다. 이동하는 동안 내린천 굽잇길에선 슬라럼의 여세를 몰아 신나는 드라이브를 즐겼다. 코너 진입 직전에 사뿐하게 가속페달을 늦추면 브레이크 페달로 발을 옮기지 않아도 적당한 감속이 이루어져 안정적으로 코너에 진입했다가 신속하게 재가속할 수 있다. i3의 장기가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지수
16:50
아이오닉
인제스피디움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인제읍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기자들이 식사하는 동안 전기차들에게도 밥을 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아이오닉은 아직 166km를 갈수 있어 다음 충전기가 있는 가평휴게소는 물론이고 잘하면 서울의 차고지까지도 단번에 갈 수 있다. 충전 여부는 휴게소 근처를 지날 때 판단하기로 했다.
다시 내린천을 따라 쾌적한 드라이브를 즐겼다. 엔진 굉음이나 진동 없이 창문으로 들이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지붕을 열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머지않아 컨버터블 전기차들도 출시되지 않을까? 식당에 도착하니 오늘 주행한 거리가 딱 200km가 됐다.
민병권
볼트
이제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다. 인제스피디움에서의 주행 탓에 배터리 잔량은 35%, 주행가능거리는 149km로 떨어진 상태다. 서울 강서구의 집까지 가려면 한번은 충전해야 하니 인제에서 하고 가기로 했다. 다만 여기서도 충전하고 가평휴게소에서도 충전해야 하는 i3와 리프를 어여삐 여겨 먼저 충전할 수 있게 배려했다. 나 그리 나쁜 사람 아니다.
김준혁
17:50
리프
서울로의 출발도 기자가 가장 빨랐다. 40분간의 충전을 마친 리프의 주행가능거리는 132km로, 여지껏 충전한 것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여줬다. 제원상 주행가능거리와 같다. 얘가 이제야 몸이 좀 풀렸나? 주행가능거리도 넉넉하겠다 연비운전은 신경 쓰지 않고 속도를 높여 달렸다.
문제는 바로 졸음. 새벽부터 움직였더니 눈이 계속 감긴다.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에너지드링크를 들이키며 운전하고 있는데 옆으로 아이오닉이 쌩 지나간다. 번호판을 보니 동료 기자다. 잠이 확 깼다. 주행가능거리도 넉넉한 차가 뭐가 그리 급하다고 할아버지차를 저리 제치고 가는지 원.
김종우
18:10
아이오닉
인제읍에서 동료와 차를 바꿔 타기로 했다. 충전 없이 인제를 떠날 수 있다니 기특하다. 슬라럼 때 느꼈던 것처럼 몸놀림도 경쾌하다. 현대차의 뛰어난 실력에 감탄하며 쭉쭉 진도를 나가는데 멀리 스머프를 연상시키는 색상의 닛산 리프가 보인다. 꽤나 여유로운 모양새다. 아니면 배터리를 아끼려고 발끝 신공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기자는 가평휴게소까지 갈 수 있는 넉넉한 배터리를 믿고 약하게 에어컨을 틀고 달렸다.
이지수
18:20
i3
식사를 마치고 잔뜩 무거워진 눈꺼풀을 비비며 차에 올랐다. 서울까지 빨리 가봐야 퇴근길 정체에 시달릴테니 여유롭게 출발하기로 했다. i3는 아침 9시부터 지금까지 204km를 주행한 상태. 평균연비는 6.8km/kWh로, 공인연비(5.9km/kWh)를 웃돈다.
식사 전에 충전을 한 덕분에 배터리는 84% 차 있고, 121km를 주행할 수 있다. 에어컨을 끄고 왔다는 동료의 말은 엄살인게 분명하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가평휴게소 서울방향으로 설정했더니 주행가능거리가 부족하다고 표시된다. 깜짝 놀라 계기판을 살펴보니 숫자가 85km로 떨어져 있다. 가평휴게소까지의 거리가 84km이니 아슬아슬하다.
잠깐 사이에 주행가능거리가 30km나 줄어버린 게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해하다가 내비게이션 안내를 취소했더니 주행가능거리가 다시 116km로 늘었다. 하루 종일 평온했던 멘탈이 단번에 무너져버린 상태. 도저히 그냥 출발할 수가 없다. 고속주행이나 에어컨 사용이 악영향을 끼쳐 고속도로상에서 배터리 전기 잔량이 뚝뚝 떨어진다면 정말 아찔할 것 같다. 인제를 떠나기 전에 잠깐이라도 충전을 하고 가기로 했다.
민병권
18:30
볼트
충전이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배터리가 30% 이상 남았는데도 80%까지 채우는데 50분이 소요된다고 나온다. 할 수 없이 길 건너 PC방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그런데 또 변수가 생겼다. 진작 출발한 줄 알았던 i3가 충전을 해야 한다며 이쪽으로 온 것이다. 충전기는 하나뿐이고 i3에는 선배 기자가 타고 있으니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생판 남이라면 이것도 곤란한 문제가 될 것 같다.
김준혁
18:40
i3
가진 자의 여유를 부리던 후배 기자는 PC방에서 나와 친절하게도 볼트에 물려 있던 충전기를 양보해주었다. 안됐다는 듯이 쳐다보던 그의 눈빛은 두고두고 떠오를 것이다. 겁이 나서 충전소에 들르긴 했지만, 80%나 남아 있는 배터리를 굳이 급속충전기에 물리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 잠깐 사이에 주행가능거리 125km,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해도 89km로 늘어난 것을 보곤 충전을 중단해버렸다.
민병권
18:50
아이오닉
가평휴게소에 도착했다. 갈 때는 꼴찌였지만 돌아올 땐 일등이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괜히 기분이 좋다. 가평휴게소는 춘천과 서울방향 모두 충전기가 있다. 서둘러 충전을 시작했다.
10분쯤 지나니 리프를 탄 동료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 친구, “선배는 어차피 i3가 오면 함께 이동해야 할테니 먼저 충전하고 갈게요” 하며 충전기를 노리는 게 아닌가. 넓은 아량을 베풀어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충전기는 벌써 리프로 옮겨지고 있었다. 충전을 마친 후 여유롭게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고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따져보니 아이오닉은 이미 차고지까지 가고도 남을 만큼 충전된 상태다.
이지수
19:10
리프
21km의 주행가능거리를 남긴 채 가평휴게소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의 트립컴퓨터 계산으론 45km를 더 달릴 수 있어야 했다. 운전패턴이나 차 상태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100km/h로 정속주행을 했는데도 이렇게 오차가 크면 충전계획을 세워 장거리를 다니기가 어려울 것 같다.
휴게소의 충전기는 먼저 도착한 아이오닉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화려한 말빨(?)로 선배를 설득해 충전기를 리프에 냅다 꽂았다. 그런데 i3도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그래서 리프의 리모컨에 있는 충전단자 잠금 버튼을 살짝 눌러 아무도 건드릴 수 없게 해놨다. 원망의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기자는 이 기획에 예고 없이 투입됐으니 이 정도의 어드밴티지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리프의 충전은 결제시스템의 오류로 45분만에 완료됐다. 충전카드 인식과 결제 문제는 가뜩이나 피곤한 기자를 아침부터 내내 괴롭힌 골칫거리였다.
김종우
19:50
i3
주행모드를 에코프로플러스로 바꾸자 주행가능거리가 1km 늘어났다. 대신 에어컨 온도조절 기능이 꺼졌다. 속도조절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 크루즈 컨트롤을 이용하기로 했다. 앞차와의 거리까지 자동으로 유지해줘 세상 편하다. 그렇게 계속 달리니 주행가능거리 여유가 조금씩 늘어났다.
이윽고 가평휴게소에 도착했다. 배터리 전기량은 26%, 18km는 더 달릴 수 있다고 표시되지만 그리 믿음이 가질 않는다. 충전기 앞에서 동료들이 옥신각신한다. 다행히 아이오닉은 배터리 잔량이 확보된 상태라 리프가 떠난 뒤 바로 i3를 충전하게 됐다.
민병권
20:05
볼트
중간에 i3에 자리를 내준 시간을 제외하면 50여분만에 충전이 완료됐다. 80% 충전될 줄 알았던 배터리는 85%까지 채워졌다. 충전요금은 4,500원쯤 들었다. 서울에서 인제까지 왕복 연료비가 이 정도면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주행가능거리는 355km로 나타났다. 귀가는 물론이고 내일 시승차를 반납할 때까지도 충전 걱정 없이 마음껏 달릴 수 있겠다.
김준혁
20:40
i3
인제에서 저녁도 먹었겠다, 딱히 할 일은 없고 몸도 피곤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날씨라도 좋으니 망정이지 악천후거나 한여름, 한겨울엔 이것도 참 큰일이겠다. 20분남짓 지나자 배터리가 80%까지 채워진 상태에서 충전이 끝났다.
124km를 주행할 수 있다는 계기판 화면을 보고는 아까의 마음고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졌다. 이 정도면 귀가는 물론이고 내일 시승차를 반납하러 갈 때까지 충전할 필요가 없다. 반납 전에 집 근처 드라이브 명소인 북악스카이웨이를 신나게 달려줘야겠다.
민병권
21:20
아이오닉
차고지에 도착했다. 빨리 퇴근하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주차를 했더니 충전 케이블이 닿질 않아 차를 반대방향으로 다시 세워야 했다. 그러고 보니 기자가 오늘 충전과 관련해 겪은 ‘문제’는 이것뿐이다. 전기차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생각이 조금 누그러졌다. 아이오닉은 아직도 68km나 더 달릴 수 있다. 완속충전기를 이용하면 3시간 10분만에 200km 주행가능 상태가 된다고 한다. i3에 비해 배터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i3도 아이오닉 수준으로 주행가능거리가 늘어난 신형이 나왔다. 이번에 그 차를 끌고 올 수 있었다면 스트레스가 훨씬 덜했을 것이다.
이지수
21:30
리프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반납까지 고려해 최대한 배터리를 아껴가며 운전한 결과 주행가능 거리가 45km나 남았다. 시가지 주행용 전기차로 400km에 이르는 장거리 이동을 견인차 도움 없이 해낸 게 매우 자랑스러웠다.
오늘 하룻동안 충전하느라 들어간 돈은 1만원이 안된다. 기존 교통수단들보다 저렴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충전에 소요된 2시간 반가량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시간뿐만 아니라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안먹어도 될 간식을 사먹었고, 괜히 차안에서 쇼핑 사이트를 검색하다 상품도 하나 질렀다.
이런 것을 다 따지면 결코 저렴한 게 아니다. 왜이리 부정적이냐고? 한번 충전해서 인제까지 다녀올 수 있는 볼트를 탔으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풍족한 곳간에서… 아니 배터리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도 있지 않나?
김종우
22:10
볼트
인제읍을 떠나 159km를 주행한 끝에 집에 도착했다. 계기판에 뜬 주행가능거리는 182km로 맘만 먹으면 인제로 다시 갈 수도 있다. 오늘 총주행거리는 373km, 평균연비는 6.8km/kWh다. 하루 종일 볼트와 함께하고 나니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전기차도 탈만 하다는 것. 그리고 이제 다른 전기차는 못타겠다는 것. 전기차는 무조건 1회 충전 주행거리가 길어야 한다. 이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전기차가 내세우는 첨단기술이나 주행성능은 소비자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다.
김준혁
슬라럼 테스트
아직 대부분의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기에 부족하다. 특히 배터리 용량 제약으로 인한 짧은 주행가능거리와 긴 충전시간이 문제다. 그래서 도시에서의 근거리 이동수단으로 전기차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기차의 운동성능 역시 같은 관점에서 체크해야 할 것이다. 도시에서 주로 굴리는 이동수단이기에 고속주행이나 장거리 크루징보다는 시가지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기동성이 우선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탑기어> 편집부가 4대의 전기차를 대상으로 슬라럼 테스트를 준비한 배경이다.
러버콘 사이를 좌우로 교차진행하는 슬라럼 테스트는 자동차의 조향성을 평가하는데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접지력과 차체 균형을 잃지 않아야 운전자가 의도한 대로 앞머리를 틀며 코스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순간적인 가감속 능력도 파악할 수 있다. 인제 스피디움 주차장에 꾸민 슬라럼 테스트 코스는 5개의 러버콘을 교차진행한 뒤 180도 회전을 하고 다시 러버콘을 교차진행하며 복귀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평가에 앞서 각 차의 제원을 살폈다. 먼저 유일한 뒷바퀴굴림인 i3는 휠베이스가 2,570mm로 가장 짧은데, 키는 볼트에 이어 두번째로 크다. 상대적으로 콤팩트한 i3의 무게는 1,300kg로 가장 가볍다. 전기모터는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25.5kg·m를 내며 마력당 무게비가 7.65kg로 가장 앞선다. 대신 배터리 용량이 18.8kWh로 가장 작다.
쉐보레 볼트는 겉보기에 가장 육중하다. 하지만 다른 전기차보다 너비가 작고 키만 크다. 휠베이스는 2,600mm, 무게는 1,620kg으로 가장 무겁다. 대신 전기모터가 강하다. 최고출력 204마력, 최대토크 36.7kg·m로 출력과 토크 모두 라이벌을 능가한다. 배터리 용량도 60kWh로 가장 여유롭다. 마력당 무게비는 7.94kg으로 i3에 이어 두번째로 뛰어나다.
아이오닉은 차체가 가장 길고 넓다. 휠베이스 역시 2,700mm로 리프와 더불어 가장 길다. 몸무게는 1,445kg으로 i3에 이어 두번째로 가볍고 배터리 용량도 28kWh로 볼트에 이어 두번째로 여유롭다. 최고출력은 119.7마력, 최대토크는 30.1kg·m이며 마력당 무게비는 12.07kg이다.
4대 중 데뷔가 가장 빠른 리프는 길이, 너비, 높이가 모두 중간치인데, 휠베이스는 2,700mm로 아이오닉과 함께 가장 길다. 무게는 1,520kg이며 전기모터의 최고출력은 109마력, 최대토크는 25.9kg·m로 평균 이하다. 마력당 무게비 역시 13.94kg으로 가장 떨어진다. 배터리 용량은 24kWh다.
<탑기어> 편집부 기자 5명이 차마다 슬라럼 코스를 주파해 기록의 평균치를 냈다. 그 결과 i3는 25초 09로 1위를 했다. 볼트와 아이오닉은 25초 42, 25초 47로 근소한 차이로 2, 3위를 했다. 리프는 26초 01로 슬라럼 테스트 주파 기록이 가장 나빴다.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i3의 몸놀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뒤에서 밀어주며 앞머리가 러버콘을 감아 도는 느낌이 운전 재미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전기차보다 날카로운 핸들링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회생제동 때 감속이 두드러진 것도 적응이 필요한 부분이다.
테스트에 앞서 i3의 얇은 타이어(앞 155/70 R19, 뒤 175/60 R19)가 급격한 방향전환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적당한 슬라이드를 일으키며 코스를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었다. 파워트레인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운전자의 손맛을 고려한 세팅인 것 같다.
차체가 무거운 볼트는 강력한 전기모터를 통해 이를 만회하는 듯하다. 다만 가속페달과 스티어링 휠 조작의 박자가 맞지 않으면 심한 언더스티어를 낸다. 타이어(215/50 R17)를 보완해야 안심하고 다이내믹한 주행을 만끽할 수 있겠다. 참고로 쉐보레가 밝힌 볼트의 0→100km/h 도달시간은 6.9초. i3의 7.2초를 능가하는 수치다.
아이오닉은 운전자 입장에서 가장 편한 차였다. 슬라럼 코스를 돌 때 평범한 소형차와 다르지 않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적당한 스티어링 휠의 답력과 서스펜션 롤, 205/55 R16 타이어의 접지력이 이상적으로 버무려졌다. 성능이 훨씬 뛰어난 볼트와 비슷한 기록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경쟁모델들과 비교해 부끄럽지 않은 국산 전기차다.
데뷔 7년차로 현행 양산 전기차들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리프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파워트레인보다 뒤뚱거리는 차체와 둔한 스티어링 감각을 우선적으로 손봐야 할 듯싶다. 운전자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차의 진행 궤적이 매치되지 않아 슬라럼 코스를 지나기가 어려웠다. 성능이 개량된 버전도 있긴 하지만 완전한 신차가 나올 때가 됐다.
박영웅 편집장
BMW i3
길이Ⅹ너비Ⅹ높이: 3999Ⅹ1775Ⅹ1578mm
휠베이스: 2570mm
무게: 1300kg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25.5kg·m
배터리: 18.8kWh
주행가능거리: 132km
연비: 5.9km/kWh
가격: 5,760만~6,840만원
현대 아이오닉
길이Ⅹ너비Ⅹ높이: 4470Ⅹ1820Ⅹ1450mm
휠베이스: 2700mm
무게: 1445kg
최고출력: 119.7마력
최대토크: 30.1kg·m
배터리: 28kWh
주행가능거리: 191km
연비: 6.3km/kWh
가격: 4,000만~4,300만원
쉐보레 볼트
길이Ⅹ너비Ⅹ높이: 4165Ⅹ1765Ⅹ1610mm
휠베이스: 2600mm
무게: 1620kg
최고출력: 204마력
최대토크: 36.7kg·m
배터리: 60kWh
주행가능거리: 383km
연비: 5.5km/kWh
가격: 4,779만원
닛산 리프
길이Ⅹ너비Ⅹ높이: 4445Ⅹ1770Ⅹ1550mm
휠베이스: 2700mm
무게: 1520kg
최고출력: 109마력
최대토크: 25.9kg·m
배터리: 24kWh
주행가능거리: 132km
연비: 5.2km/kWh
가격: 4,590만~5,18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