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자동차업계의 화두는 무엇일까? 자율주행, 친환경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과제가 바로 경량화다. 환경규제 및 연비 강화, 에너지 자원의 가격 상승 등에 대한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가벼우면 발걸음이 가볍듯이 자동차 역시 무게가 줄면 잘 달리고 효율성이 좋아진다.
▲ 세계 최초 100% 알루미늄 차체의 양산차 혼다 NSX
2020년까지 25%의 연비 개선(2014년 대비)을 공언한 현대차에 따르면 차무게를 10% 줄일 경우 연비가 6% 개선되고, 오염물질 배출은 2.5~8.8% 감소한다. 더불어 가속력 8%, 조향성능 6%, 제동성능은 5% 좋아진다고 한다. 무게를 덜어내는 것이 차의 성능을 높이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런데 편의성 및 안전성을 높여주는 다양한 장비가 추가되고, 강화된 충돌안전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차체를 보강하면 무게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 연비나 배기규정을 맞추기 어려워지고 움직임도 둔해진다. 따라서 메이커들은 다이어트를 위해 차체, 섀시, 파워트레인의 주요 부품은 물론이고 내외장재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경량 소재는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이다. 두 물질은 철의 기계적 성질을 개선시키는 효과도 있다. 알루미늄은 마모가 잘되고, 접합성이 떨어지는 단점은 있지만 무게가 철의 3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부식이 잘 안되고 열전도성이 좋으며 재활용도 쉽다. 실제로 자동차에 사용된 알루미늄 합금의 85%는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철에 비해 2배 이상 비싸지만 가공성이 좋아 자동차 보디, 엔진 블록, 실린더 헤드, 휠 등의 다양한 곳에 사용되고 있다.
▲ 알루미늄의 무게는 철의 3분의 1로 가볍지만 접합성이 나쁘다. 따라서 알루미늄 차체는 리벳 & 본딩 기술과 특수 용접 기술이 필수적이다
1990년 혼다는 100% 알루미늄 차체의 미드십 스포츠카 NSX를 내놓았다. 이 차는 세계 최초의 알루미늄 양산차로 15년 동안 1만8,000여대가 생산됐다. 대량생산차에 처음으로 알루미늄 차체를 사용한 메이커는 아우디로, 1993년 알루미늄 보디의 콘셉트카 ASF(Audi Space Frame)를 발표하고, 이어서 기함 A8을 선보였다.
아우디는 네바퀴굴림의 구동계 때문에 A8의 무게가 경쟁모델보다 100kg이나 더 나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알코아와 손잡고 알루미늄 차체 개발에 나섰다. 이후 꾸준히 기술을 축적해 2006년 알루미늄 스포츠카 R8을 만드는 등 전체 라인업에 확대 적용해왔다. 올 여름 공개되는 뉴 아우디 A8은 현행 모델보다 28% 정도 가볍다고 한다.
▲ 슈퍼카 라페라리는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마그네슘 휠을 달았다
알루미늄 하면 재규어도 빼놓을 수 없다. 재규어는 2003년 3세대 XJ에 이어 2006년 발표한 XK에 100% 알루미늄 차체를 사용했다. 이후 알루미늄 패널을 연결하는 리벳 & 본딩 기술을 축적해 차체의 70% 이상을 고강도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알루미늄 인텐시브 아키텍처’를 발표했다. 2013년 F-타입, 2015년 XE, XF(2세대), 2016년 F-페이스로 알루미늄 차체를 확대했다. 그중 XE는 D세그먼트의 유일한 알루미늄 자동차로 꼽힌다.
▲ 시트 프레임에도 마그네슘 합금이 쓰인다
운전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앞뒤 5:5에 가까운 무게비를 지향해온 BMW 역시 알루미늄 소재 사용에 적극적이다. 2003년 등장한 4세대 5시리즈(E60)는 보디 앞부분을 알루미늄으로 만든 하이브리드 차체를 사용한 첫 모델이다.
▲ 고성능 엔진 밸브 스프링에는 티타늄이 활용된다
가장 가벼운 금속인 마그네슘도 자동차 경량화에 적합한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마그네슘은 무게가 철의 22%, 알루미늄의 66% 수준이고, 가공도 쉽다. 또한 진동을 잘 흡수하고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 단점은 비싸고 열에 약하며 부식이 잘된다는 것. 이 때문에 고성능 경주차의 휠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 현대차의 플래그십 EQ900에는 구형 에쿠스보다 3배나 많은 초고장력 강판이 쓰였다
하지만 기존의 단점을 보완한 마그네슘 합금이 개발되어 시트 프레임, 인스트루먼트 패널, 엔진 크래들(cradle) 등으로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2006년 나온 쉐보레 콜벳은 마그네슘 루프와 엔진 크래들을 채용해 화제를 모았다.
전통적인 소재인 철도 진화를 거듭해왔다. 고장력 강판과 초고장력 강판은 일반 강판에 비해 인장강도가 2배 정도 높아 무게를 줄이는데 유리하다. 뿐만 아니라 비틀림 강성 80%, 굽힘 강성은 50% 이상 높다.
알루미늄이나 마그네슘에 비해 경제적이고 기존의 생산공정을 활용할 수 있어 최근 사용이 크게늘고 있다. 철판을 900°C로 가열해 성형하고 급속냉각하는 핫스탬핑 초고강력 강판은 1.5GPa급 강도를 지녀 차체를 단단히 잡아주는 각종 필러와 구조재에 사용되고 있다.
▲ 철판을 900°C로 가열해 성형하는 모습
현대차의 경우, 플래그십인 제네시스 EQ900에 구형 에쿠스 대비 3배나 많은 초고장력 강판을 사용한다(차체의 51%). 첫 친환경 전용차인 아이오닉도 차체의 53%가 초고장력 강판으로 되어 있다. 고장력 강판은 충돌안전성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배터리로 인해 늘어난 무게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기아차 니로도 초고장력 강판 비율이 아이오닉과 동일한 수준이고, 경차 모닝은 이전모델보다 2배 높은 44%다.
▲ 아이오닉은 차체의 53%가 초고장력 강판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들어 티타늄합금도 주목받고 있다. 티타늄 합금은 생체 친화적이고 강성이 높지만 비싸고 공정이 까다로워 항공우주, 해양, 스포츠, 의료분야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돼왔다. 자동차에는 밸브 스프링, 리프터 등에 부분적으로 쓰인다. 티타늄 밸브 스프링의 경우 철제보다 58% 이상 가볍다.
▲ 카본파이버는 복잡한 제조공정 때문에 소량생산되는 슈퍼카와 경주차에 주로 사용된다
무게를 줄이는 가장 핫한 소재로는 카본파이버(CFRP)를 들 수 있다. 가볍고 유연하며 충격 흡수성이 뛰어나다. 무게는 철의 50%, 알루미늄의 70% 수준이고, 철보다 10배, 알루미늄보다는 5배 단단하다. 카본파이버는 카본섬유를 겹겹이 쌓아서 굽는 복잡한 제조공정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렵고 값도 비싸다. 이 때문에 소량생산되는 슈퍼카와 경주차, 에어로파츠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됐다.
카본파이버 보급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BMW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BMW는 카본 전문회사인 SGL과 손잡고 가마에서 고온으로 굽는 드라이 방식 대신 에폭시수지와 섞어 100°C 정도로 찌는 웨트 방식을 개발해 양산화에 성공했다.
BMW는 2013년 발표한 전기차 i3를 카본파이버로 만들었다. 그 결과 일반적인 전기차에 비해 가벼운 1,300kg의 무게를 갖게 됐다. 또한 이 차는 여러개의 카본파이버 부품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사고 때 부분수리가 가능하다. i3와 하이브리드 슈퍼카 i8을 통해 카본파이버의 효용성을 확인한 BMW는 2016년 발표한 6세대 7시리즈에 카본코어(Carbon Core) 기술을 적용했다. 사이드실 필러 등을 카본파이버로 만들어 130kg의 무게를 덜어 냈는데, 대량생산차 가운데 카본파이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모델은 7시리즈가 처음이다. BMW는 앞으로 카본코어 사용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 BMW는 대량생산차 가운데 최초로 카본파이버 차체를 적용했다
자동차 내장재에 주로 쓰이는 플라스틱(고분자화합물)은 철보다 20~60% 가벼워 1970년대부터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소재가 섬유강화플라스틱(FRP)이다. 그런데 유리섬유와 플라스틱을 결합한 FRP는 복잡한 면과 매끄러운 표면을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다.
경량화에 일가견이 있는 영국 로터스는 이런 단점을 해결한 진공 사출 플라스틱 VMRP를 차체에 처음 사용했다. 이것은 가공성이 좋고 도색이 잘되어 자동차 보디 소재로 적합하다. 1996년 기아에서도 생산했던 로터스 엘란의 차체가 VMRP로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다양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 개발되어 도어에 들어 있는 사이드 임팩트 빔, 연료탱크, 흡기관 등에 사용되고 있다.
▲ 도어 속 사이드 임팩트 빔도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유리도 경량화의 대상이다. 무게가 유리의 절반에 불과한 폴리카보네이트(PC)가 그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열전도율이 유리의 20%밖에 안돼 단열효과가 뛰어나고, 잘 깨지지 않는 것이 장점이지만, 굴절률과 내마모성이 떨어져 앞유리에는 사용하기 어렵다.
▲ 폴리카보네이트는 유리보다 50% 가볍다
모듈화를 통한 경량화 작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모듈화는 몇개의 부품을 덩어리로 만들어 조립하는 방식을 말한다. 운전석 모듈이 대표적인 예로, 계기판과 공조장치, 오디오, 시계 등이 하나의 모듈을 이룬다. 운전석 모듈을 사용할 경우 개별적으로 조립하는 것보다 무게를 2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프론트 엔드, 시트, 도어, 서스펜션 등이 모듈 형태로 제작된다.
▲ 자동차를 모듈화시켜 만들면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 자동차 메이커들은 환경, 연비, 고성능이라는 난제를 한꺼번에 풀어낼 열쇠로 경량화를 택했고, 그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메이커들의 적극적인 홍보로 인한 영향도 있지만, 이제 ‘경량화=기술력’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만이면서 건강한 사람이 없듯이 자동차도 가벼운 것이 좋다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겠다. 이제 차를 구입할 때 무게까지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