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렌의 대담한 계획
영국 럭셔리 자동차회사 맥라렌은 순수한 스포츠카와 슈퍼카 메이커로 남기로 했다. 이 말은 SUV를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2018-10-30 16:34:22 글 민병권
지난 7월 중순 영국에서 열린 굿우드 스피드 페스티벌에서 맥라렌 오토모티브는 스포츠 시리즈 신작 600LT를 공개하는 한편 야심 차고 광범위한 2025년까지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트랙25(Track25)로 이름 붙인 이 계획은 지난 2016년 제네바모터쇼에서 공개한 트랙22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정표들을 추가했다.” 지난 9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맥라렌 오토모티브 PR 디렉터 웨인 브루스가 설명해줬다. 나는 다름 아닌 맥라렌 600LT 트랙 시승을 위해 그곳에 갔다.
맥라렌은 사업계획을 지속해서 손질하고 있는데, 한가지 변하지 않는 점은 맥라렌 그룹 내에서 독립적이고 강력한 맥라렌 오토모티브의 역할이다. 맥라렌 오토모티브는 론 데니스가 설립한 맥라렌 카(1985년)의 후신으로 2010년 설립됐다. 지난해 7월 맥라렌 그룹의 100% 자회사가 돼 맥라렌 레이싱, 맥라렌 어플라이드 테크놀로지와 한 식구다. 설립 7년 만에 그룹 수익의 80%를 담당하는 중요한 일원이 됐다. 덕분에 맥라렌 그룹의 가치는 24억파운드(3조5210억)로 영국 비공개기업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트랙25는 맥라렌 오토모티브가 앞으로 출시할 신차와 생산 및 기술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을 담고 있다. 회사는 창립 15주년이 되는 2025년까지 스포츠카 및 슈퍼카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입지를 지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맥라렌은 이미 5년 전 세계 최초 가솔린 전기 하이브리드 하이퍼카를 자처하는 P1을 출시했다. 이후 제품들은 전기화에 대해 별다른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트랙25에 따라 맥라렌의 스포츠카와 슈퍼카는 모두 하이브리드화된다. “100%다. 다만 생산대수가 적은 얼티메이트 시리즈는 예외가 될 수 있다.” 브루스가 덧붙였다.
맥라렌은 운전자에게 이로운 기술에 대해서는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새로운 주행 강화 기능을 도입하는 한편 가볍고 급속충전이 가능한 고출력 배터리 시스템을 개발한다. 레이스트랙에서 30분 이상 전기 구동이 가능한 시스템이 목표다. 비록 2020년 이후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전기차의 맥라렌’이라 할 수 있는 순수 전기차도 만든다. 더 앞당기지 않는 이유는 맥라렌 배지에 어울리는 무게 대비 성능과 감성을 보장할만한 기술을 구현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서다.
하이브리드화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동급에서 가장 가벼운 차를 만든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맥라렌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신차 개발에 10억파운드(1조4650억원)를 투자키로 했던 트랙22에 이어 트랙 25는 2025년까지 연구개발에 12억파운드(1조7620억원) 투자를 명시했다. 특히 5000만파운드(730억원)를 들여 곧 문을 열 맥라렌 컴포지트 테크놀로지 센터(MCTC)가 미래 경량기술 개발과 생산의 중추 역할을 맡는다. 탄소섬유 터브를 개발?생산하는 MCTC가 정상 궤도에 오르면 맥라렌 차 구성품의 국산화는 57%에 이르게 된다. 트랙25에는 2024년까지 P1의 후속 모델을 비롯해 신차 18종 및 파생모델을 출시한다는 계획도 있다. 이미 공개한 600LT는 제외한 대수라고 브루스가 확인해줬다. “P1 후속의 차명은 P2가 아니다”라는 농담도 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모습을 드러낼 신차 중 하나는 BP23(비스포크 프로젝트2, 3시터)으로 알려진 스피드테일이다. 맥라렌 F1처럼 3인용 좌석을 갖춘 도로용 하이퍼 GT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고 시속 390km가 넘는 최고속도를 내 역대 가장 빠르고 고급스러운 맥라렌 모델로 등극할 예정이다. “스피드테일은 정말 놀랍다. 올해 안에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며 브루스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말했다. 오리지널 맥라렌 F1의 생산대수에 맞춰 106대만 만들 160만파운드(23억4700만원)짜리 스피드테일은 올해 초 공식 발표가 나기 전에 매진됐다고 알려졌다.
놀랍게도 맥라렌은 앞으로 내놓을 신차 18종에 SUV를 전혀 넣지 않기로 했다. 비단 SUV뿐이 아니다. “하이 보디드 비클(롤스로이스 컬리넌), 슈퍼 SUV(람보르기니 우루스), 페라리 유틸리티 비클… 뭐라고 바꿔 부르던 SUV스러운 차는 만들지 않는다.” 부르스가 과장된 어조로 단호히 말했다. 운전자를 위한 세계 최고 자동차를 만든다는 핵심을 벗어나지 않고 미드십 스포츠카와 슈퍼카를 빚는 데 집중하겠다고 한다.
맥라렌 오토모티브는 2016년과 2017년 각각 3300대 정도 생산했다. 2015년 실적의 두 배다. 지난해 람보르기니는 3815대, 페라리는 8398대를 팔았다. 맥라렌은 올해 4000대, 2024년에는 트랙25 신차 출시와 수요 증가에 따라 6000대를 내다본다. 영국 워킹 맥라렌 프러덕션 센터에서 수제작 하는 방식은 변함이 없다. 자동화 공정은 도입하지 않는다. 현재 31개국에 걸쳐 86개인 판매망은 현재 시장을 확대하는 한편 러시아, 인도, 중동부 유럽 등 새로운 시장에서도 수요를 찾아 2025년 100개소로 늘어난다. 맥라렌 오토모티브는 영국, 미국, 바레인, 중국, 싱가폴, 일본, 스페인에 직원 2300명을 두고 있다.
글 민병권 기자